경성 자살 클럽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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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자살클럽]이라. 이 책을 처음으로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얼마전에 읽었던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이었다.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도 "연애"란 걸 했던가 하는 궁금증에 펼쳐든 책에는, 내가 알고 있던 것, 혹은 짐작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유롭게 연애를 했으며, 그 연애사건만으로도 족히 경성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모던걸과 모던보이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이 비극으로 끝을 맺어 책을 읽으면서 가슴 한켠이 먹먹했다.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 주세요~" 광고 카피가 생각났다. "그냥 사랑"할 수 없는 현실에 죽음을 선택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뻔한 신파조이건만, 연극이나 영화가 아닌 실제 이야기란 게 가슴이 짠했다. 이 책 [경성자살클럽]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실려 있지 않을까 하고 책을 펼쳤더니, 과연 몇몇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같은 주제라도 [~연애사건]과는 저자가 그 사건들 혹은 인물들을 바라보는 느낌도 다르고, 내가 전혀 몰랐던 이야기들도 여럿 수록되어 있어 책읽기의 재미는 쏠쏠했다.

   

    자. 이 책의 내용을 마음가는대로 재구성해보자. 글쓴이는 <근대조선의 사랑과 전쟁> <근대 조선 잔혹사>라는 두 개의 큰 틀로 나뉜 열 가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자살충동의 순간"이라는 이야기를 해보련다. 물론 이 책을 바탕으로.. 시대적 배경은 일본이 우리 나라를 잡아먹지 못해(이미 잡아먹었으면서도) 두 눈을 시뻘겋게 뜨고 째려보고 있는 상황이다. 서양의 제국주의는 조선에도 근대 사상과 문물을 전파하고 있는 중이다. 현대적이라기엔 아직 구식의 냄새가 나고, 구식이라기엔 너무 급진적이다 싶은 요소들이 곳곳에 혼재되어 있는 그 시대 그 공간.

 

   가난하지만 그 가난을 자식에게만은 물려주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부모 아래에서 "나"는 태어났다. 갓 예닐곱살. "사람구실을 하려면 모름지기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인식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은 까닭"(p211)에 부모는 "밥을 굶을지언정 어떻게든 자식 교육은 시키려"(p211)한다.  식민지 지배를 위한 총독부 건물은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지으면서도 초등학교는 더 이상 짓기가 힘에 부친다는 사이토 경성부윤이란 넘의 망발이 치가 떨린다. 부족한 수용시설 덕분에(?) 초등학교 입시를 치러야 한다. 겨우 예닐곱살이 된 아이들이 입시에 시달려야 한다고...? 에라이 나쁜 넘들. 당신들에겐 조선인들을 위한 교육시설을 세우려는 의지가 없었던 것이겠지..? 초등학교에 떨어진 "나". 콱 죽고 싶다.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애간장이 탄다. 초등입시 뿐인가? 이 후에도 치러야 할 시험은 많고 학교수는 부족하다. (제8화 유전입학 무전낙제, 입시지옥의 탄생)

 

   어렵사리 입학한 학교, 가난하기에 학교 일을 도와 학비에 도움을 보태려는 "나". 돈 문제로 오해가 생겼다. "나"는 돈을 훔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다 "나"를 의심한다. 심지어 선생이란 사람들까지 공개적으로 "나"를 의심한다. 그리고 "나"는 따돌림을 당한다. 정말 콱 죽어버리고 싶다. (제6화 고학생 문창숙 집단 따돌림 자살 사건)

 

   신학문을 배우고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인 "나". 하지만 사회는 신여성을 향해 눈을 흘긴다. 집안에선 결혼을 하라고 성화다. 연애라도 실컷 해보자. 주변에 괜찮다 싶은 남자들은 이미 아내가 있다. 조혼의 폐습이 아직도 이어져 온다. 눈을 돌려보니 가까이엔 학창시절을 함께 한 "동성"의 친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동성의 친구에게 연애감정을 느낀 "나". 숨길 것도 없다. 오히려 학생들 사이에서 동성애는 유행처럼 번져나간다.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 이른 결혼으로 힘들어 하는 친구,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다보니 세상이 싫다. 정말 콱 죽어버리고 싶은 거다.(제7화 홍옥임*김용주 동성애 정사 사건)

 

  동성연애도 실컷 해 보았다. 이성에 관심이 간다. 빠져들듯 사랑한 그 역시 열렬히 "나"를 사랑한다. 사랑을 다짐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남자 이미 유부남이다. "나"를 속였던 거다. 그의 본처가 그에게서 떠나라고 협박한다. 이런저런 핑계로 그 역시 나를 피하는 눈치다. 억울하다. 그에게 속은 것이 억울하고, "나"를 보는 주변의 차가운 눈빛들도 억울하다. 이럴 때 정말 "콱" 죽어버리고 싶은 거다. (제4화 박금례 순정애사)

 



    결혼이란 걸 했다. 하라는 강요에 한 결혼이지만 이 남자, 의외로 마음이 맞다. 행복하다. 하지만 시댁에서는 신여성인 "나"를 곱잖은 눈으로 바라본다. 사사건건 트집이다. "한 남자를 사랑한 두 여인"(p62) 구시대적인 사고를 가지고 며느리를 구속하고 구박하는 시어머니와 시댁식구들에게  신여성인 "내"가 예뻐보일리 없다. 하지만 남편 때문에 "참는다." 하지만 그 시어머니와 "나" 사이에서 힘들어 하던 남편은 병을 얻어 요절하고 만다. 남편이 죽고도 이어지는 시댁식구들의 횡포에 힘들다. 이럴 때 정말 콱 죽어버리고 싶다.(제2화 청상과부 신여성 윤영애 자살사건)

 

    너무 도식적으로 이야기한 걸까..?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데 말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그들의 사연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데 말이다. 이유없는 죽음이 어디 있겠냐만은 이 책에 실린 그들의 "자살"은 사실 자살이 아니다. 시대상황, 주변환경이 그들을 "자살"하게끔 만들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하지만 글쓴이의 말처럼 "아름다운 자살은 없다."(p294) 그리고 "그래도 자살은 아니다."(p300) 자살하지 말지어다. 뭐 급히 갈 것 있나?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들 마음껏 누리고 그 시간이 다하면 가면 되는 거지..  식민지 하의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 저자에게 고마움의 말을 전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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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없이 떠나는 101일간의 과학사 일주 지도 없이 떠나는 101일간의 세계 문화 역사 10
박영수 지음, 이리 그림 / 도서출판영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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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없이 떠나는 101일간" 시리즈의 열번째 책.[지도없이 떠나는 101일간의 과학사일주](이하 [과학사일주]). 내가 읽은 걸로 따지자면 이 시리즈의 두번째 책. 지난번엔 [지도없이 떠나는 101일간의 세계인물 여행]을 읽었었는데 어린이책임에도 내가 몰랐던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인물들을 알게 되어 참 고마웠다. 어린이책을 통해서도 더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은 한편으론 고맙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다. 이 책 역시 그 시리즈의 책이라 내게 뭔가를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펼쳐들었다.

 

    이번 책을 읽고 나선, 지난번엔 궁금하지 않았던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 이 시리즈의 제목은 "지도없이" 떠나는 것이고, 하필이면 "101일"일까? 하는 것. "지도없이" 떠난다는 건 "종횡무진"의 의미일까..? 100일이 아니고 굳이 하루를 더 보탠 건 무슨 의미일까..?  모르겠다. 지도가 있다면 어린이들이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될 텐데, 이 시리즈가 내걸고 있는 "지도없이 떠나는" 이유를 아직 모르는 터라 다소 의아스럽다.

 

   각설하고 [과학사일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지난번 [세계인물여행]은 각 인물의 중요도(?라는 표현이 좀 그렇다만은..)에 따라 할말이 많은 인물은 이틀치 분량으로, 다소 가벼운(?) 인물에 대해서는 하루치 분량으로 구성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었는데 비해, 이 책에서는 그런 중요도(?)의 구분없이 각 과학적 업적에 대해 일률적으로 이틀치로 구성했으며, 맨 마지막 하루치 분량은 컴퓨터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은 "과학사"로 표현되고 있긴 하지만,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던 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활을 좀더 편리하게 해준 발명품 혹은 문화에 관한 것들이다. [세계인물여행]을 읽으면서도 아쉬웠던 점이지만, 이 시리즈에 관련 사진이 실려있지 않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물론 적지 않은 그림자료가 책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긴 하지만, 보다 사실적인 사진과 인물초상화가 실려 있다면 더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는 인류의 발전의 모습은 여전히 흥미롭다. 이 책의 글쓴이가 "발명" 혹은 "과학"의 발전을 보는 관점이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전사 그 자체에만 관심을 두지 않고, 하나의 사물에 대해 동서양을 비교해 보기도 하고, 계층이나 인종에 따라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 유난히 눈에 크게 들어온 건 나뿐일까..? 글쓴이는 자전거의 활용에 대해서 동양에서의 그것은 "가난의 산물"(p148)이라 표현하고 있고, 서양에서의 그것은 "즐거운 오락"이라고 표현하고 있기도 하고, 기차의 발전에 대해서는 백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관점에서 비교하고(p152) 있다.

   어린이책임에도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되는 곁다리 상식이 흥미롭다. 셜록 홈즈의 이름에 관한 이야기나(p125) 실수에 의한 발명품인 합성섬유나 플라스틱에 대한 이야기들 말이다.

   어린이들이 책을 통해 다양한 간접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의 기획의도 마음에 든다.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앎의 욕구도 채워주는 책이라,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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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s 더 뉴스 - 아시아를 읽는 결정적 사건 9
쉐일라 코로넬 외 지음, 오귀환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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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책은 일부러라도 챙겨 읽는 편이지만 시사(時事)에 관한 책을 읽어본 적이 별로 없다. 인터넷뉴스를 보긴 하지만, 종이신문을 챙겨서 읽어본 적도 없고, tv뉴스를 잘 챙겨보는 편도 아니고, 그래서인지 시사(時事)에 어두운 편이다. 시사(時事) 역시 어느 정도의 세월이 지나면 역사(史)가 되기 마련인데, 지나간 일은 일부러라도 챙겨보면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세상의 일들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는 건 나의 게으름 때문이다.

 

     내게 부족한 시사상식을 채우기 위해서 펼쳐든 책 [THE NEWS]. "아시아를 읽는 결정적 사건9"라는 부제에 관심이 갔다. 국내 뉴스조차에도 별 관심이 없었던 터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아시아를 읽는 "결정적 사건"들은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9가지의 주제들은 필리핀의 에스트라다 대통령에 관한 것, 네팔의 왕실 총기사건, 인도 보팔 독가스 사건, 오사마 빈 라덴, 폴 포트, 김일성, 팔레스타인의 정치문제, 태국의 군주정치에 대한 것, 인도네시아의 혼란한 정치에 관한 것 등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사건들 혹은 인물에 대해 객관적으로 기술했다기보다는 9명의 기자가 그 사건 혹은 그 인물과 관련해서 과거에 어떻게 취재했으며, 어떻게 보도했었는지를 회고의 형식으로 써내려가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과 그닥 멀지 않은 아시아권에서, 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혹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사건들임에도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필리핀의 대통령 에스트라다. 그 이름은 한두번쯤 들어본 듯 한데, 시사상식이 이렇게 부족한 나조차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걸 보면 과히 긍정적인 인물은 아니겠구나 싶었는데, 과연 그러했다. 정치"꾼"의 이중적이고 가식적인 면모의 본보기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거에 선한 이미지의 배우였다는 그는 대통령직조차도 연기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조명 앞에선 선한 인상과, 서민적인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을 보였던 그가 조명이 비치지 않는 곳에서 벌인 온갖 추악한 행위들을 보고 있자면.. 에스트라다 이전에도 필리핀 정치사정은 꽤나 어지러웠던 모양인데, 장기집권 아니면 독재 혹은 군인정치가들.. 어째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나라의 근현대사와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은 "친근"하기까지 했다. 

   2001년에 일어난 네팔 왕실의 총기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2001년이면 그닥 오래된 일도 아닌데 난 왜 이 사건을 들어본 적조차 없는 걸까.. 왕세자가 자신의 가족들을 죽이고 자살했다는 이 사건 역시 권력과 정치와 인간사에 관한 생각까지 곱씹어보게 했다.  태국에서는 불문율처럼 여겨지는 국왕에 대한 비판금지와 캄보디아의 속시끄러운 정치상황 역시 그닥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일까..? 오사마 빈 라덴과 폴 포트에 관해서는 좀더 객관적인 사실을 알기를 원했는데 책에서는 빈 라덴과 폴포트보다는 그들을 취재했던 기자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았던 점이 다소 아쉽다.

 

    이 책에 소개된 9가지 주제들도 꽤나 흥미로웠지만, 이 책에는 그 사건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보다는 기자 개인에 관한 이야기며, 취재과정 등이 더 자세히 실려있다. "이런 '류'의 책들이 하나같이 기자 '정신'을 앞세우고 언론 '사명'을 말하지만 여전히 서구중심주의를 깔고 있"(p6)음이 "아시아의 눈으로 읽기에는 몹시 거슬"(p6)려 "이런 류"의 책을 기획하게 되었다는 엮은이. 아.. 그러고 보니 "그랬었나?"싶다. 뉴스를 제대로 챙겨보지 않기 때문에, 어떤 매체가 공정하다거나 편파적이다는 것조차 제대로 분별할 줄 모르던 눈이 조금 뜨인 느낌이다. 바른 언론의 중요성, 올바른 언론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였달까..?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만으로는 덜 만족스럽지만, 나의 좁은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는 점이 매우 감사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몇 가지의 키워드에 대해선 스스로 찾아보고 좀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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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 인류 역사를 진전시킨 신념과 용기의 외침
장 프랑수아 칸 지음, 이상빈 옮김 / 이마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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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읽고 나서 이 책은 상당히 불친절한 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렇게 책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기보단, 이 책을 읽기 위한 준비로서의 배경상식이 일천한 스스로에 대해 먼저 불평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어려웠다. 500여페이지의 적지 않은 분량이 염려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굳이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책의 제목과 목차 때문이었다. "인류역사를 진전시킨" 이라는 문구에서 이 책을 통해 내겐 숙제와도 같은 "역사"에 대해 좀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고, 그 기대는 책의 목차 덕분에 부풀어졌었다. "프랑스혁명, 나폴레옹, 파리코민, 드레퓌스, 윈스턴 처칠, 노예제도, 민족해방, 전쟁, 사형, 봉건제도, 민족해방" 등의 단어로 채워진 30개의 소주제들을 통해, 그런 인물들 혹은 그 사건들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책에 대한 기대가 정말 컸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이 책을 통해 알기를 원했던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듯이"라고 전제해버리고 있다.!! 프랑스, 조금더 넓게는 유럽 독자층만을 겨냥하고 글을 쓴 건지, 독자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듯이 생략해 버린 설명이 많아, 프랑스인도 유럽인도 아닌, 그렇다고 해서 서양역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축에 속하지도 못한 동양인인 내겐 다소 답답하고 불친절한, 그래서 글쓴이가 "독자를 배제한 과시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 책의 글쓴이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프랑스인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신념과 용기의 외침"인 "NO!"는 "인류역사"를 진전시켰다기보다는 유럽사 혹은 프랑스사를 진전시켰다고 보기에 적합할 사례들이 더 많다. 그래서 가끔은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알아둘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엽적인 내용도 있었다.(("지나치게 프랑스 독자들을 위해 씌어진 느낌이 강했던 일부 내용을 과감하게 손질하면서 번역이 제2의 창작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기도 했다."(p18)고 옮긴이가 말하고 있음에도 그랬다.)) 프랑스 대혁명과 드레퓌스사건과 빅토르위고와  잔다르크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에서 아주 여러번에 걸쳐 불쑥불쑥 다루어지고 있다. 다소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기대했던 책은 사실 이 책의 끄트머리에 실린 약 8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부록과 같은 성격의 책이었는지도 모른다. 부록에서는 ""노"라고 이야기한 또 다른 사람들"이란 주제로 140여명에 이르는 인물들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건에 대해, 왜 NO라고 말했는지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있는데, 이 간략한 설명에 살과 뼈를 붙여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더라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쓴이의 광범위한 관심사와 지식의 방대함이 놀랍기도 했지만, 나 역시 그 관심사와 지식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펼쳐들었지만, 글쓴이가 자꾸 나 같이 무식한 독자층을 밀어내는 듯한 느낌 때문에 기가 죽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역사공부를 조금 더 하고 나서 이 책을 다시 읽어보아야겠다는 다짐만 할 수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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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
이덕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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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가 이덕일의 새 책이다. 제목이 특이하다.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라니.. 이 무슨 소린가 싶었다. 서문을 읽으면서 그 궁금증은 해결됐다.  기존의 역사서와는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온 김일경의 후손을 회상하며, "그 분을 생각하면 역사의 붓을 잡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돌이켜보곤 한다."(p7)는 역사가 이덕일. 이 책의 제목은 김일경이 영조에게 했다는 말에 기인한다. 김일경은 "경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노론이 지지하는 영조가 즉위하면서 가장 먼저 사형당했던 인물이다.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다고 믿은 그는 영조에게 "시원하게 나를 죽이라"고 맏섰다"(p6)고 한다. 

 

   역사라는 테두리에도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지만, 역사가 이덕일의 글을 좋아하고 일부러라도 챙겨서 읽는 편이기에 그의 새 책을 잡은 기쁨이 크다. 그래서일까. 다른 책보다 그의 글은 한 글자 한글자, 한 문장 한문장 꼼꼼히 씹어가며 읽게 된다.

    김일경을 회상하며 책을 시작했기 때문일까, 이 책에서  그가 다루고 있는 스물다섯명의 인물은 "그 시대와는 불화했던 사람들"(p11)이다. 그 중에는 정도전이나, 최치원, 허난설헌, 홍경래, 김시습과 같이 역사서를 통해 익히 그 이름을 들어왔던 인물도 있고, 이경석, 정하상, 유몽인, 이광사와 같이 낯선 이름도 있다. 자신의 시대와 불화했던 인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선구자"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 시점에서 보았을 때(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겠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간 인물들이었기에 자신의 시대와 마찰음을 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적당히 남들처럼 그렇게 어울려서 살 수 없었던 인물들...

  

    그 자신이 정승이라는 최고위직에 있으면서도, 기득권을 가진 지배층이면서도, 오히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동법의 시행을 주장한 김육을, 대한민국의 정치인들과 비교해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뛰어난 재주와 학식을 가졌으면서도 그 뜻을 마음껏 펼 수 없었던 박제가(와 조선시대의 서얼들), 그리고 신분의 한계 때문에 아깝게 묻혀버린 인재 최치원을 보며,  평등사회라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과연 능력대로 대우 받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승자의 관점, 남성중심적이고 성리학적 관점에서 기록된 역사이기에 그간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졌던던 강홍립과 천추태후, 이경석, 이징옥의 삶을 다시 보며, 인물판단에 있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역사가는 숨겨졌던 진실을 바라보게 하는 안경이다. "[사기]를 쓰기 위해 살아남은 사마천, '사초'를 전하기 위해 죽어야 했던 김일손, 상식을 뒤엎었던 신채호!"(p10)와 같이 "그 시대가 아니라 다음 시대와 대화"(p10)하려고 한다는 역사가 이덕일은 그간 내게 좋은 안경의 역할을 해 왔다.(앞으로로 그럴꺼라 믿는다.) 전혀 문외한이었던 역사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해 주었고, "이런 글을 쓴 사람이 누구야?" 싶어서 책을 읽다말고 저자의 이름을 살피며 읽었던 역사책은 그의 책이 내겐 처음이었기에..

   다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각각에 대해서 한 권의 책을 엮는다고 해도 설득력있고, 쉽고 재미있게 글을 쓸 수 있는 역사가가 그 라는 생각이 들기에, 오히려 이 책에 대해서는 다소의 아쉬움이 남았다. 좀 더 자세히, 좀 더 길게 이야기했어도 좋을텐데 하는 것. 명강사의 짧은 강연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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