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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권력
아서 제이 클링호퍼 지음, 이용주 옮김 / 알마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했나 보다. "지도와 권력"이란 제목에서 느껴지는 지적 냄새에 끌렸다. '이 정도의 책이라면 읽고 소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하는 약간의 거만함도 함께 해 이 책을 펼쳐들었는데, 역시나 과대평가였나 보다. "왜 유럽은 지도 상단에 표시되어 있고 아프리카는 지도 하단에 표시되어 있을까?"라는 책 표지의 궁금증 또한 나로 하여금 책을 펼쳐들게 한 한가지 동인이기도 하다.
책을 읽느라고 다 읽었지만, 나는 이 책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초반엔 꼼꼼히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메모하고, 지도책에서 낯선 지명들을 확인하며 읽었기에 비교적 이해가 쉬웠으나 책의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내 배경지식의 한계를 느꼈다고나 할까.. 내겐 어려운 책이었다. 그래도 이 다음에 이 책을 반드시 다시 펴보길 바라는 마음에 간단하게나마 정리해보고자 한다.
"분명한 것은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객관적인 지리학은 없다는 사실이다. 지도는 제작자의 경험, 가치관, 미학, 정치학을 반영하는 '대륙이나 '본초자오선' 같은 개념들을 부여한다. 분명 지도 제작자는 과학적 원리를 적용하지만 그들은 같은 지역에 대해서도 상이한 지도를 제작한다."(-p22)는 말이 내겐 약간의 충격이었다. 놀라웠다. 내가 지금껏 "객관적"인 땅의 모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지도 위의 그림이 인간의 사상에 의해 그저 "부여된" 작품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아이가 동네 지도를 그릴 때, 아이는 자기중심적으로 자신의 집을 지도 중심에 표시하는 경향이 있다."(-p23) 그렇겠구나. 인간이 "만든" 지도이니깐, 다분히 주관적인 측면이 있을텐데 왜 나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걸까.. 1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우리가 보고 있는 지도가 결코 "사실 그대로의" 지구모습이 아니라 지도를 제작하는 사람에 의해 선택되어진 요소들의 표현임을 말해주고 있다. 책 초반에 내가 얻게 된 앎의 즐거움이었다.
두번째장 <문화적 요인>에서는 자기중심주의에 의해 "의도적으로 축적을 조작"(p40)하거나 우리가 현재 그리고 있는 지도그리기 방식과는 다르게 지도를 그렸던(혹은 지금도 그러한) 사례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알 이드리시라는 아랍인은 메카와 아라비아를 중심에 두고(1154년) 지도를 그렸다 하고, 중국 역시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아왔듯- 천하의 중심에 그들을 두었다. "영국의 그리니치를 지나는 본초자오선이 확정되었지만 아직도 경도의 중심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지도의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잇다. 유럽인들이 지도 중심에 본초자오선을 배치히고 싶어하는 반면 중국인들은 태평양을 지나는 날짜변경선을 선호하면, 미국인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양쪽에 '안전한' 바다를 놓고 유럽과 아시아를 가장자리에 놓기를 원한다."(p43) 그렇구나. 우리 나라 또한 중국의 옆나라이기 때문인지 중국인들처럼 지금껏 내가 보아온 세게전도는 태평양이 한가운데 그려진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래서 유럽과 아메리카는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 생각해왔었는데,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전도를 보아왔겠구나 하는 생각 또한 처음으로 해 보았다.
내용에 대한 부족한 이해력의 핑계거리일지는 모르겠지만,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다양한 지도가 그림자료로 더 많이 수록되었더라면 내용 이해가 더 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제 3장 <정치적 조각 그림 맞추기>를 읽으면서 어렸을 때 고산자 김정호의 위인전기를 읽으면서 가졌던 의문점을 해결했다. 교통이나 장비가 발달하지 못한 그 때, 현재의 것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지도를 만들어냈는데 왜 김정호는 '처벌'을 받았을까를 고민했었다. 그런데 제3장에서는 '지도'가 국제 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지도의 보안을 유지했던 외국의 사례들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 우리 조상들만이 고리타분하고 배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지도가 국내외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게 됐다고나 할까?. "국가 안보나 상업적인 이유 때문에 지도가 비밀에 부쳐지는 경우가 많다."(p57)
또 한가지. "동해"를 둘러싼 논쟁에 우리 편을 들어주는 것 같은 자료를 보고 이 책에 대한 호감이 더 커졌다면, 일본인들에게는 이 부분이 비호감이 될까? "남한과 북한은 '일본해'란 명칭을 거부하고 '동해'라는 이름을 선호한다. -중략- 영국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80장의 18세기 지도들을 조사해본 결과, '한국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62개, '동해'는 7개, '한국해'와 '동해'를 동시에 사용한 것은 2개, '일본해'는 6개, '중국해'는 3개가 있었다."는 부분말이다. 외국인이 쓴 책에서 우리와 관련된 이야기를 발견했을 때의 뿌듯함, 긍지 같은 것은 나만 느끼는 걸까...?
본초자오선의 설정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도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했던 '시간'이라는 관념조차도 인간의 편의와 권력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책의 중반부까지는 그럭저럭 이해가 쉬웠으나 중후반을 넘어서면서 등장하는 다양한 사건과 지명과 인명에 기가 눌려 흥미가 줄어들었다. 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내 배경지식의 부족 탓인 것 같다. 이 책은 "지도"라는 매개물을 통해 인류의 역사와 힘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책은 훌륭했으나 독자(=나)의 역량 부족으로 30% 정도 밖에 소화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다음에 다시 폈을 땐, 전부는 아니더라도 70%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