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없다
버지니아 펠로스 지음, 정탄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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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도발적이라고 생각했다. 셰익스피어가 없다니..? 예전에 나온 [~는 없다]는 류의 제목을 달고 나온 선구적인(?) 책이라 할만한 그 책처럼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무언가에 대한 생각의 틀을 깨뜨리기 위해 쓰인 그런 책인가도 싶었다. 그렇다면 너무 진부한 제목 설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고.. 그게 아니라면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번역되었다는 셰익스피어의 저작이기에 그의 위대함을 극찬하기 위한 반어적인 표현인가?  제목만으로도 이런저런 궁리를 하면서 펼쳐든 책.

 

   우선 책 앞날개 저자 버지니아 펠로스에 대한 소개글. "위대한 인물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중 일부만 이해받고 있는 철학자 베이컨에 대한 오랜 연구 끝에 그녀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는 [셰익스피어는 없다]를 집필하기에 이르렀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버젓이 셰익스피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에 왠 베이컨? 베이컨과 셰익스피어가 무슨 관계가 있길래...?  그녀가 발견한 "놀라운 사실"이 뭘까 궁금했다. 베이컨과 셰익스피어? 혹 둘이 동시대 인물인가?(각각의 이름은 들어보았으나, 또 그들이 영국의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동시대의 인물인지는 몰랐었다.) 그럼 혹 그녀가 발견했다는 "놀라운 사실"은 베이컨 =  셰익스피어?  그냥 넌지시 짚어보았다. 그런데 나의 어설픈 추측이 맞아버린 거다! 이런...

 

    이 책 172쪽에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과연 [2절판 초간본]에 수록된 희곡 36편을 전부 집필한 실제 작가인가 아니가, 이 오래되고 소모적인 논쟁을 이 책에서 다룰 생각은 없다."는 다프네 뒤 모리에 여사의 [The Winding Stair]에서의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그래 나는 "이 오래되고 소모적인 논쟁"이 있어왔는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이 책은 내겐 완벽한 충격이었다. 내가 어설프게나마 알고 있는 엘리자베스시대의 영국사를 말짱 허물어버린 충격의 책. 약간의 호들갑스러움을 더해 얘기한다면 이 책은 내가 근래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책이다. 전혀 몰랐던 이 논쟁의 한 가운데로 나를 끌어들인.

 

    책의 내용을 내가 이해한 바대로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이러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라고 했던가. 뭐 하여간 그 비슷한 말을 남긴 걸로 기억하고 있다. 바람둥이(?)였던 헨리8세와 그의 둘째 부인 앤 볼린 사이에서 태어났고, 일생동안 결  혼  하  지  않  았  으  며,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했고,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맞바꾸지 않겠다고 했다던가.. 내가 대충 그리고 있던 엘리자베스여왕.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엘리자베스는 처녀가 아니라 두 아들의 어머니였고(물론 공식적으로는 부인되었고 부인했지만), 그의 두 아들 중 첫번째 아들이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것. 더 충격적인 사실은 바로 그 프랜시스 베이컨이 실제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작가라는 것!! 그에게 이름을 빌려준 스트랫포드의 "윌 샥스퍼"는 그저 촌뜨기 배우에 불과했다는 사실. 책을 읽으면서 너무 놀라웠다. 이런 논쟁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놀라움이었지만, 책에서 말하고 있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탄생배경이 "정황상" 프랜시스 베이컨의 경험과 너무나도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의 가족(베이컨가)과 전혀 닮지 않았다. 책 52쪽에 실려있는 그의 친부 레스터경과 베이컨의 얼굴을 비교해보면서 어찌나 놀랐던지.. 각도가 비슷해서인가 정말 닮았다. 또 [로미오와 줄리엣]은 베이컨이 프랑스 궁정으로 도피 혹은 망명 생활을 하던 중에 만난 연상의 여인 마고공주(당시엔 이미 유부녀)를 향한 사랑에 의한 저작이라니.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묻게 된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문장 사실이오? 하고... 금서를 읽고 있는 기분이랄까..? "충격의 연속"이라는 표현은 내 무지함의 역설일 따름인가?

 

    논쟁의 한 가운데서 다른 쪽을 비판하려면, 시비의 대상이 되는 양쪽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셰익스피어 논쟁의 한쪽 밖에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스트랫포디안(스트랫포드 출신의 그 배우가 셰익스피어의 원작자라고 하는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에는 설득당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베이컨 - 셰익스피어 설에 전적으로 설득당해 버렸다. 물론 이 책이 거의 전적으로 근거를 삼고 있는 오빌오웬의 [Sir Francis Bacon's Cipher Story]가 과연 믿을만한 근거자료인가가 우선 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이 흥미진진한 진실게임으로 초대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앞으로는 더 관심있게 지켜볼 것 같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에 대해서. 위대한 철학자로만 알아왔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진짜 얼굴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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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가게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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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실패한 삶을 사셨습니까? 당신의 죽음만큼은 성공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이 책의 주무대인 자살가게의 광고문구, 책의 띠지에 둘러진 이 문구가 무척 자극적이다. 책을 충동구매라도 해서 보고 싶게 만드는 문구이기도 하다. 제목부터 독특하지만..  "실패한 삶"이란 것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그런 것이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살아가면서 한번쯤 자신의 삶이 "성공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해 봤을 법하다. 누구라도 말이다. 2008년의 연초, 지금까지의 내 삶은 주관적으로 봤을 땐 "실패"에 가까운 그것이라고 절망적인 기분이 되어 말해 본다. 내 마음대로, 내 계획대로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자꾸만 이상한 갈림길로 빠져들어가는 듯한 내 삶이 더럭 겁이 나기도 한다.
    책 표지에 그려진 음산한 분위기의 인물들. 이 책은 삶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그리고 유난히 크게 그려진 저 캐릭터. 보고자 하는 대로 보이는 거겠지. 책을 읽기 전엔 이 캐릭터조차 내 눈에 침울하고 뭔가 괴기스런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었다. 입에 물고 있는 야릇한 미소조차 자살을 권유하는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붉은 색의 사과는 그렇다면 독사과? 한입 베어물고 나면 고통없이 "가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펼쳐들었다.

    이야기의 주무대는 "자살가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죽음만큼은 성공을 보장해준다는" 자살가게. 목매는 밧줄과, 발에 매달고 물에 뛰어들면 가라앉게 만드는 고리 달린 벽돌과, 세푸쿠(할복자살)용 기모노와 칼 세트를 비롯해 각종 독약을 판매하는 자살가게. 10대째 자살로 이어져온 가계의  튀바슈 가문의 사람들.. 아들딸의 이름을 자살한 유명인의 이름 - 반고흐의 이름 뱅상(빈센트), 몬로의 이름 (마를린)으로 지어주는 것으로부터 이 집안의 상황이 대강 엿보인다. 웃음을 부정하는 엉뚱한 모습의 가족들을 보면서 나는 어이없게도 웃음이 나왔다. 깡마른데다 늘 두통에 시달려 머리에다 붕대(?)를 감고 있는 이 집의 첫째 아들 뱅상은 이 집안의 유전적 특성을 가장 완벽하게 물려받은 인물로써 다양한 자살용품을 창안하고 만들어내는 인물. 그가 만든 자살테마파크 모형은 가끔 뉴스에서 보아온 놀이공원에서의 안타까운 사고에 대한 풍자로 보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그런 스스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마릴린 또한 이 가족의 일원으로써 손색이 없다.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성격과 행동거지와 말투. 생일축하의 의미가 "살아가야 할 날이 한 해 더 줄었다는 것"인 이 엽기가족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이 집안의 돌연변이라 할 막내아들 알랑- 책 표지에 사과를 들고 있는 그 아이 말이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웃음을 머금고 있는 아이 알랑으로 인해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마는, "우리가 제공하는 자살은 철저하게 성공이 보장된 것입니다. 만약 죽지 않는다면 전액 환불이니까요!"(p29)를 자랑하던 자살가게.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앞표지를 다시 보니 사과를 든 알랑의 캐릭터가 희망을 전해주는 듯하다. 보기에 따라서 똑같은 사실조차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자살이라는 소재를 가볍고 해학적인 의미에서 다루고 있는 이 이야기가 영화화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옮긴이 성귀수씨의 말마따나  그래!! "웬만하면 자살하지 말자!"  그래도 굳이 해야겠다면, "자살은 노후로 미루세요!"(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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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엔젤 - 스탈린의 비밀노트,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2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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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해리스는 이미 [폼페이]와 [이그니마]등을 통해 국내에도 꽤알려진 작가라지만 나는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했다. 책을 받아들고서 예상치 않게 두꺼운 분량 때문에 읽기 어려울까봐 걱정부터 앞섰다. 더군다나 "스탈린의 비밀노트"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내용 또한 "뭔 소리지..?" 싶을 정도로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더해졌다. 그러나 의외로 쉽게, 그리고 속도감 있게 읽혀졌다.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랄까..? 그리고 책의 띠지에 쓰인 "멜 깁슨의 아이콘 프로덕션, 극장판 영화로 영화화 예정!"이라는 문구 덕분에, 영화화되었을 때의 장면을 상상하는 재미가 더해지기도 했다.
 

   이야기는 스탈린의 죽음을 목격한( 그 당시엔 젊은 경비병이었던) 한 노인-라파바-의 회상과 더불어 시작된다. 스탈린의 비밀노트를 그가 숨겨두었다는 진술. 그리고 스탈린의 비밀노트를 찾아내려는 영국인 역사학자 켈소.(그가 이 책의 주인공 격이다. 영화화된다면 멜 깁슨이 켈소 역을 맞게 되는 걸까..?) 이야기의 중반부까지 나의 관심은 오로지 "스탈린의 비밀노트"에 무슨 이야기가 적혀있길래,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그것이 어떤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길래 여러 사람이 목 매달고 있나 싶었다. 스탈린이란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스탈린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긴 의문점일 수도 있겠다. 러시아인들, 조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구소련인들에게 스탈린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사람인지가 궁금하다. 내가 알고 있는 독재자, 히틀러만큼이나 많은 인명을 살상한 사람 정도의 이미지라면, 그의 비밀 노트가 가지는 영향력은 거의 제로이거나 마이너스일텐데, 이 소설을 통해 보자면 그게 아닌가 보다. 스탈린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한다는 과제를 함께 던져주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중반을 넘어서면 핵심은 스탈린의 비밀노트가 아니라 정확히 얘기하자면 스탈린의 정부(情婦)였던-이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중요한 사실이다- 한 소녀 안나 사파노바의 것임이 밝혀진다. 오로지 스탈린의 비밀노트만을 추적하던 나는 약간의 배신감 같은 걸 느꼈다. 이건 또 뭐야? 스탈린의 비밀 노트가 아니잖아?! 그렇다면 안나 사파노바의 비밀노트엔 무슨 이야기가 적혀있나? 열렬한 공산주의자의 모습을 가진 어린 소녀의 모습?  "어, 엄마, 아빠, 그는 고독한 분이세요! 제 가슴이 아릴 정도로요. 결국 그분도 우리처럼 살과 뼈로 된 인간이랍니다. 게다가 가까이서 보니 너무 늙으셨더군요. 사진에서 볼 때보다도 훨씬요. 콧수염은 하얗게 세었고, 수염 끝은 파이프 담배 때문에 노랗게 변색되었더라고요. 게다가 이는 거의 하나도 없고 숨을 쉴 때마다 가슴에서 딸그락 소리까지 났어요. 그분이 불쌍해요. 우리 모두가 불쌍해요."(p256)라는 그분, 스탈린의 인간적인 모습? 그게 비밀이라고 할 만큼 혹은 밝혀진다면 현재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값어치가 있는 이야기들인가..? 어찌보면 너무 평범한 이야기가 아닐까? 스탈린 같은 거물급 독재자의 의외의 인간적인 면모, 그리고 그 옆에 한명쯤 있었을 법한 어리고 예쁜 정부(情婦)의 이야기라면.. 아닐텐데.. 분명 뭔가 더 있단 말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다. 스탈린에 의해 선택되어진 - 집안의 유전적 배경까지 조사한 후에 선택되어진 - 그녀 사파노바와 스탈린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있었던 거다.!! 스탈린의 숨겨진 아들 말이다. 나의 이해력 부족 때문인지 "그런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건데..?" 싶었다. 그러다 곧이어, 아. 그 아들이 엄청난 인물이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스탈린의 숨겨진 아들은 어떤 인물일까?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당시의 러시아 대통령 "옐친"이 그 아들일까? 아님 구소련을 해체시킨 "고르바초프"? 오.. 그 정도라면 엄청나겠는걸.. 전혀 엉뚱한 추측이었다는 게 곧 밝혀지지만 말이다.

  

   스탈린의 아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무얼까..? 어디일까..? 누굴까..?"를 끊임없이 추리하면서 읽는 재미가 읽는 책이었다. 사실 이 글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역자 후기에 나와있는 것처럼 "이놈의 어리석은 역사가 다름 아닌 우리들의 일그러진 이성에 의해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p510) 같은 것, 혹은 광기의 역사 같은 것을 말하고자 함이었을까..?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이야기였지만, 내겐 스탈린에 대해 그리고 현재의 러시아에 대해 한발자국 정도 가깝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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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 - 고원에서 보내는 편지
이상엽 외 지음 / 이른아침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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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나는 모르는 게 이렇게 많은 걸까? 어딘가에서 "차마고도"란 말은 들어본 적 있지만, 중국 어디즈음에 있는 길인가 보다에서 관심을 끝내고는 더는 궁금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tv다큐멘터리 <차마고도>의 예고 방송을 본 적이 있지만 '중국의 오지 탐험 다큐인가..?' 정도에서 관심을 뚝 끊어버린다. 푸얼차가 유명하다는데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푸얼차"를 알았으니 유행에서도 한참 동떨어진 사람인 게다. 이왕 고백한 김에 하나 더 나의 무지 혹은 무관심을 고백한다. 이 책의 제목 <윈난>을 보고서도 중국의 어느 지명 중 하나겠거니 하고 말았다. 책을 펼쳐들고서야 윈난이 어디에 있는지나 알아야겠다 싶어서 지도를 살피는데 중국 남부에 위치한 윈난과는 전혀 동떨어지게 중국 북부에서 지명을 훑어내리며 "윈난"의 위치를 찾고 있다.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은 나이기에 이런 책은 마냥 고맙다. 윈난이 중국 어디쯤에 붙어 있다는 것도 가르쳐주고, 푸얼차가 무언지, 차마고도가 무언지도 가르쳐주고, 수준급의 사진들은 윈난의 분위기까지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책은 윈난을 여행한 사진 혹은 여행 전문가 7인의 편지글 묶음이다. 편지글 뿐만 아니라 윈난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사진 또한 글만큼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책을 쓰윽 한번 훑어보다가 내가 가본 곳도 아닌 곳인데 사진이 너무나 눈에 익어 이상하다 싶었다. 어디서 본 듯한.. 몇 개월 전엔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열반송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책에는 그야말로 그림같은 사진들이 같이 실려있었다. 사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 무척 궁금했었는데,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사진을 여기서도 보다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7명의 글쓴이 중 한명인 사진작가 이상엽의 사진이 바로 그것. 지난번 책에서 보았던 사진도 몇 장 있어서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졌나 보다. "카메라가 쓰는 책"이라는 표현이 이 책에 딱 들어맞는 것 같다. 나는 책에 실린 그림이나 사진은 그저 공간메우기라는 무식한(?)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는데, 요즘엔 그림이나 사진도 글만큼이나 강한 호소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이 책도 그렇다. 책에 실린 글도 한문장 한문장 마음에 와 닿는 것들이었지만, 사진이 마음 한켠에 자국을 남기는 책이기에..

   책을 읽으며 나는 또 한번 "여행가"라는 직업에 대해 흥미와 궁금증을 가지게 됐다. 여행가.. 좋겠다. 여행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니 좋겠다. 아둥바둥 삶에 얽매여 매일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일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 삶과 비교해 보니 "좋겠다."는 말 외에 어떤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부러움에 시샘까지 더해지는 말 . "좋겠다."... 어떻게 하면 여행가가 될 수 있을까?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닐테고. 혹.. 있나? 모르는 게 워낙 많기에 뭐라 단정하기 겁난다.  여행가가 되는 방법도 궁금하지만 그것보다도 여행을 업으로 삼고도 생계가 유지되나? 하는 것도 궁금하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 이름 옆 직업을 써야 할 것 같은 자리에다 "여행가"라고 쓰고 있는 것이겠지.. 여행가가 되려면 혹은 여행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면 사진찍는 기술이나 글을 좀 쓸 줄 알아야겠다. 여행지의 풍광을 멋지게 담아낼 사진이나 글이 기본기가 되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나는 부적격자구나..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여행가에 대한 부러움과 시샘만 더해진다.

  111쪽에 실려있는 다랑논의 모습은 놀랍다. 마치 그림 그리기 연습이라도 한 듯이 구불구불한 다랑논의 풍광이란.. 또 그 뒷장에 실린 "다랑논에 비친 일출'이라는 흑백톤의 사진 속 풍경은 내 눈으올 직접 보고 싶은 풍경이다. 그럴 기회가 있을까? "서양의 어느 학자는 이곳의 다랑논을 가리켜 '진정한 대지의 예술, 진정한 대지의 조각'이라고 표현했습니다."(p114).

   "그래도 물건을 살 때는 깎아야 제맛이라는 심보에 가격 흥정도 해보고, 안 맞는다 싶을 땐 매몰차게 뒤돌아서 버리니, 이 순진한 아지매들 결국엔 우리가 부르는 값에 그들의 값진 노동을 팔아버리고 마네요.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흔쾌히 그 값에 물건을 파는 이 아지매들이 너무나 정겹게 느껴지더군요." (p148)직장인이라는 황문주씨의 인간적인 냄새가 좋았다. 7명의 글쓴이 모두가 사람을 향해 글을 쓰고 있고, 그 사진에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 느낌이 좋아서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샹그리라"라는 이국적인 지명도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됐는데 그 사연이 중톈이 샹그리라로 바뀐 사연이 재미있기도 하고 씁쓸한 맛이 나기도 했다.

    사진도 글만큼이나 강한 기억의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글쓴이의 사람 냄새나는 글도 좋았고, 풋풋한 느낌이 나는 사진들도 좋았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자의 낙원"이라는 윈난에 언젠가는 내 두 발을 내디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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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권력
아서 제이 클링호퍼 지음, 이용주 옮김 / 알마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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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했나 보다. "지도와 권력"이란 제목에서 느껴지는 지적 냄새에 끌렸다. '이 정도의 책이라면 읽고 소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하는 약간의 거만함도 함께 해 이 책을 펼쳐들었는데, 역시나 과대평가였나 보다. "왜 유럽은 지도 상단에 표시되어 있고 아프리카는 지도 하단에 표시되어 있을까?"라는 책 표지의 궁금증 또한 나로 하여금 책을 펼쳐들게 한 한가지 동인이기도 하다.
   책을 읽느라고 다 읽었지만, 나는 이 책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초반엔 꼼꼼히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메모하고, 지도책에서 낯선 지명들을 확인하며 읽었기에 비교적 이해가 쉬웠으나 책의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내 배경지식의 한계를 느꼈다고나 할까.. 내겐 어려운 책이었다. 그래도 이 다음에 이 책을 반드시 다시 펴보길 바라는 마음에 간단하게나마 정리해보고자 한다.

   "분명한 것은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객관적인 지리학은 없다는 사실이다. 지도는 제작자의 경험, 가치관, 미학, 정치학을 반영하는 '대륙이나 '본초자오선' 같은 개념들을 부여한다. 분명 지도 제작자는 과학적 원리를 적용하지만 그들은 같은 지역에 대해서도 상이한 지도를 제작한다."(-p22)는 말이 내겐 약간의 충격이었다. 놀라웠다. 내가 지금껏 "객관적"인 땅의 모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지도 위의 그림이 인간의 사상에 의해 그저 "부여된" 작품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아이가 동네 지도를 그릴 때, 아이는 자기중심적으로 자신의 집을 지도 중심에 표시하는 경향이 있다."(-p23) 그렇겠구나. 인간이 "만든" 지도이니깐, 다분히 주관적인 측면이 있을텐데 왜 나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걸까.. 1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우리가 보고 있는 지도가 결코 "사실 그대로의" 지구모습이 아니라 지도를 제작하는 사람에 의해 선택되어진 요소들의 표현임을 말해주고 있다. 책 초반에 내가 얻게 된 앎의 즐거움이었다.

   두번째장 <문화적 요인>에서는 자기중심주의에 의해 "의도적으로 축적을 조작"(p40)하거나 우리가 현재 그리고 있는 지도그리기 방식과는 다르게 지도를 그렸던(혹은 지금도 그러한) 사례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알 이드리시라는 아랍인은 메카와 아라비아를 중심에 두고(1154년) 지도를 그렸다 하고, 중국 역시 -우리가 국사책에서 보아왔듯- 천하의 중심에 그들을 두었다. "영국의 그리니치를 지나는 본초자오선이 확정되었지만 아직도 경도의 중심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지도의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잇다. 유럽인들이 지도 중심에 본초자오선을 배치히고 싶어하는 반면 중국인들은 태평양을 지나는 날짜변경선을 선호하면, 미국인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양쪽에 '안전한' 바다를 놓고 유럽과 아시아를 가장자리에 놓기를 원한다."(p43)  그렇구나. 우리 나라 또한 중국의 옆나라이기 때문인지  중국인들처럼 지금껏 내가 보아온 세게전도는 태평양이 한가운데 그려진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래서 유럽과 아메리카는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 생각해왔었는데,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전도를 보아왔겠구나 하는 생각 또한 처음으로 해 보았다.

  내용에 대한 부족한 이해력의 핑계거리일지는 모르겠지만,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다양한 지도가 그림자료로 더 많이 수록되었더라면 내용 이해가 더 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제 3장 <정치적 조각 그림 맞추기>를 읽으면서 어렸을 때 고산자 김정호의 위인전기를 읽으면서 가졌던 의문점을 해결했다. 교통이나 장비가 발달하지 못한 그 때, 현재의 것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지도를 만들어냈는데 왜 김정호는 '처벌'을 받았을까를 고민했었다. 그런데 제3장에서는 '지도'가 국제 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지도의 보안을 유지했던 외국의 사례들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 우리 조상들만이 고리타분하고 배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지도가 국내외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게 됐다고나 할까?. "국가 안보나 상업적인 이유 때문에 지도가 비밀에 부쳐지는 경우가 많다."(p57)

   또 한가지. "동해"를 둘러싼 논쟁에 우리 편을 들어주는 것 같은 자료를 보고 이 책에 대한 호감이 더 커졌다면, 일본인들에게는 이 부분이 비호감이 될까? "남한과 북한은 '일본해'란 명칭을 거부하고 '동해'라는 이름을 선호한다. -중략- 영국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80장의 18세기 지도들을 조사해본 결과, '한국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62개, '동해'는 7개, '한국해'와 '동해'를 동시에 사용한 것은 2개, '일본해'는 6개, '중국해'는 3개가 있었다."는 부분말이다. 외국인이 쓴 책에서 우리와 관련된 이야기를 발견했을 때의 뿌듯함, 긍지 같은 것은 나만 느끼는 걸까...?

  본초자오선의 설정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도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했던 '시간'이라는 관념조차도 인간의 편의와 권력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책의 중반부까지는 그럭저럭 이해가 쉬웠으나 중후반을 넘어서면서 등장하는 다양한 사건과 지명과 인명에 기가 눌려 흥미가 줄어들었다. 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내 배경지식의 부족 탓인 것 같다. 이 책은 "지도"라는 매개물을 통해 인류의 역사와 힘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책은 훌륭했으나 독자(=나)의 역량 부족으로 30% 정도 밖에 소화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다음에 다시 폈을 땐, 전부는 아니더라도 70%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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