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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덮고 나니 허하다. 표지에 있는 저 여자는 처음부터 뭔가 묘한 인상을 내게 던졌지만, 책을 덮고 나니 저 여자에게서 더욱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저 여자는 누구일까?
"오래전부터 짤막한 소설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서너 시간 안에 읽을 수 있는 그런 소설 말이죠."(p206) 그래. 비교적 이야기는 짧은 편이다. 하지만 작가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인지, 혹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런지, 나는 책을 읽는데 서너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했다. "원고에서 잘려 나간 부분이 굉장히 많아요. 더 이상 뺄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삭제하고 또 삭제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p206). 글쓴이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잘라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글쓴이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지 잘 모르겠다. 나의 이해력 부족 탓인가...?
한 여인의 장례식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몰리. 표지에 그려진 저 여자는 몰리인가..? 몰리를 사랑했던 클라이브 린리와 버넌 헬리데이. 그녀는 외무장관 줄리언 가머니의 정부(情婦)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 조지. 이야기의 중심축은 작곡가인 클라이브와 신문사의 편집국장인 버넌이다. 둘은 몰리와 한때 연인이기도 했었지만, 절친한 친구 사이이기도 하다. 서양인들의 정서는 우리네와는 좀 많이 다른 모양이다. 한 여자를 사랑했던 두 남자가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었다는 설정 자체에서 나는 어색함을 느끼는데, 이야기 속에선 너무나도 자연스러우니 말이다. 몰리의 남편 조지는 몰리가 남긴 "가머니의 사진 - 가머니는 성도착자였던가? 정부(情婦)인 몰리가 찍은 사진 속에서 가머니는 여자의 옷을 입고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을 버넌에게 넘기고, 버넌은 가머니를 정치적으로 파멸시키기 위해 그 사진을 1면 기사로 싣는다. 하지만 황색언론이라는 비난을 받고 결국엔 실직에 이르고 만다. 클라이브는 미친듯이 오로지 작곡에만 몰두하지만 결국 그것은 "실패작"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결정짓지 못한 모양인지 극단의 선택을 한다.
"내가 누군지조차 모르는 그런 상황. 그럴 때 누군가 나를 도와 끝은 내줄 사람이 있는지...... 나를 죽게 도와줄 사람 말이야. -중략- 자네가 봐서 달리 바업이 없다가 생각되는 그런 순간이 오면 나를 도와줘. "(p65) 클라이브는 이 때 이미 죽음을 결심했던 것일까? "좋아, 단 조건이 있어, 자네도 날 위해 똑같이 해주게.v"(p75) 버넌 역시도 이때 그런 결심에 다다랐던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몰리의 남편 조지로부터 시작되는 것인가? 조지는 이런 결말을 예상하고서 몰리가 남긴 사진을 버넌에게 넘겨줬던 것은 아닐까? 마지막 부분을 보자면 그랬던 것도 같다. 두 남자의 죽음과 한 남자의 정치적 몰락을 가져왔으니, 그의 계획은 성공한 셈인가?
하. 지. 만.. 이 글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도덕적인 척하는 인간들의 위선? 혹은 흔들린 우정? 혹은 일을 그르치면 자살이 그 대안일 수 있다는 것? 죽고 싶을 땐 암스테르담으로 가라는 것? 어렵다. 글쓴이와 마주 앉아서 이 장면은 무슨 의미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