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서평단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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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ㅣ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이 책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미술에 대한 지식 파편 몇 개 정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혹은 글쓴이를 통해 미술에는 문외한인 내가 미술에 대한 감각 같은 걸 새발의 피 정도로나마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였는데.. 책 제목 때문이었을까? 오해했었다. 이 책의 성격에 대해. 라틴아메리카의 미술을 둘러 보고 온 기행문이라 생각했었다. 아니다. 이 책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라틴아메리카를 둘러본 화가 김병종의 "그림일기" 같은 책이다.
우선 책머리에서 만난 김용택 시인의 추천의 말을 읽으며 글쓴이에 대한 부러움으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신춘문예에 두 번이나 등단한 글솜씨를 가진 화가라.. 하느님은 가끔 공정하지 못하게 사람을 편애하시기도 하나보다. 내겐 그림에도 글쓰기에도 유치원생 정도의 재주밖에 안 주셔놓곤 이 사람에겐 그 둘을 함께 주시다니.. "글을 쓰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학청년적(?)이거나 문학소녀적인, 약간은 꼭지가 덜 떨어진 설익은 글이 아니라 탄탄한 문학성을 지닌 성숙한 지식인의 글"(p5)이라는 추천사를 읽고 있자니, 잔뜩 기대가 된다. 본격적인 글읽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알았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의 그림이 뒤로 숨고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의 글이 뒤로 숨는다."(p6)는 시인의 말을..
화가의 그림을 통해, 그리고 신춘문예에 이미 두번이나 등단한 작가의 글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를 보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쿠바와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페루 여섯개의 라틴아메리카를 둘러본 이야기 중 절반 정도의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쿠바 이야기다. 쿠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체 게바라"에 대한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그리고 부에나비스타소셜. 내겐 낯선 음악, 낯선 그들이었지만 글쓴이를 통해 만난 그들은 동네 할아버지들처럼 친근한 느낌을 준다. 쿠바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주제 또 하나 "헤밍웨이"의 이야기. "이 미국 작가는 어느새 반미국가 쿠바의 관광산업이 되어 있었다."(p56) 암보스문도스 호텔, 카페 프로리디타와 보데기타 델 메디오, 코히마르 마을, 노인과 바다, 푸엔테스의 이야기. 글쓴이를 통해 본 쿠바는 낡고 오래된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다. 내 아버지의 어린 시절 흑백사진을 보고 있는 것처럼 빛이 바랜 느낌이랄까? 몇 개월 전에 쿠바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과는 또다른 느낌의 쿠바는 이웃 동네처럼 내게 가까이 와 버렸다.
그 다음 멕시코. 멕시코의 유명한 벽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역시 화가였고 리베라와 결혼하기도 했던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가 안타까워 가슴이 한켠이 짠해진다. 라틴아메리카에 가 본 적도 없고, 자세히 공부해 본 적도 없지만, 그 곳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글거리는 태양과 원색의 강렬한 느낌, 아울러 "혁명"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쿠바의 체게바라, 멕시코의 카를로스 푸엔테스. 거대한 "제국" 미국에 가려져 그동안 잘 몰랐던 그들의 혁명 이야기는 이글거리는 태양과 원색의 색감과 동의어처럼 느껴진다.
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와 에비타에 대해서는 좀더 알아보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탱고. "육체로 쓰는 가장 아름다운 시"라는 그 표현이 그렇게 적절할 수가 없다. "탱고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우리의 마당극 같은 것."(p183). 그들에겐 아직도 탱고가 생활에 자리잡고 있지만 우리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마당극을 쉽게 접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저 문장을 읽으며 아쉽고 허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브라질과 칠레, 페루의 이야기까지 좋은 여행기였다.
글쓴이의 감성적인 눈을 통해 남미를 바라봐서인지 남미의 역사와 사람과 문화가 아름답고 고전적이고, 이웃집 이야기처럼 친근하면서도 푸근한 느낌. 낯설지 않은 느낌이 참 좋았다. 지금 바로 달려가도 낯설지 않을 것 같은 그 곳에 가 볼 날이 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