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선생님도 놀란 초등과학 뒤집기 1
정재은 지음, 박수영 그림 / 도서출판성우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초등학생 공부를 가르칠 일이 있었다. 처음엔 아이들 수준을 못 맞춰서 애를 먹었다. 내가 아는 것을 아이들 수준에 맞춰서 얘기를 해 줄 수 없어서 힘들었다. 특히 과학부분은 더더욱이나.. 솔직히 말하자면 과학은 내가 잘 몰라서 제대로 이야기해줄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해야겠다.  분명 나도 배웠었고 중고등학교 땐 그보다 더 어려운 화학식까지 계산하곤 했었다는 게 신기하다 생각될 정도로 "과학적인 사고"와는 무관하게 살아와서였던가..? 대충 큰 틀을 설명하라면 하겠는데, 구체적으로 그게 왜 그런지, 어떻게 되는지를 설명할 수 없어 대충 얼버무리고 만  것들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과학은 이후 생활에서 터득한 것들과 합쳐져 "그러려니.."하고 당연시해왔기에 더욱 무관심했던 것 같다. 

    "선생님도 놀란 초등과학 뒤집기"시리즈의 첫 편 [날씨]를 보고 있자니, 참 괜찮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의 발간사에 나오는 말마따나 재미와 유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기가 쉽지 않은 법인데 이 책이 재미와 유익성의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을 수 있게 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다시 초등학생이 될 수 있다면, 중학생 때 즈음하여 사라져버린 나의 과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주 독자층은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부터 중학생까지를 포괄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읽는 습관이 든 아이라면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도 읽혀도 괜찮지 않을까.. 
 

   [날씨]에서는 초등 과학과 중학교 과학 과정의 기상현상과 관련된 자연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크게 8주제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 주제의 마무리 부분에서는 "올백으로 가는 퀴즈"와 "놀이야? 실험이야?"가 실려 있어 재미있게 정리하고 실험할 기회를 주고 있다. "초등과학  뒤집기"란 제목 때문이었을까? 유치(?)한 수준의 이야기들이지 않을까 하고 책을 깔보고 읽기를 시작했는데, 책에 나오는 내용에는 간간이 나도 잘 몰랐던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도 있다. 바다에서 발생한 토네이도를 "워터스파우트"라고 한다는 것, 우리나라에서도 "용오름"이라는 현상이 관측된 적이 있다는 것, 조선시대에 풍향을 측정하는 "풍기죽"이라는 도구가 있었다는 것 등.  상황에 어울리는 삽화와 쉬운 용어설명도 재미있었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는 재미를 주지 않을까 싶다.

    주변의 "요즘" 초등학생들을 보면 학교 마치기 바쁘게 몇 개의 학원을 가고, 몇 개의 학습지를 하면서도, 학교 공부를 제대로 따라가지도 못하고, 공부에 흥미를 잃는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무작정 남들이 하니깐 덩달아 하는 식의 공부보다, 진득하게 앉아서 책 한 권을 읽어낼 수 있는 독서력을 키워주는 게 나중을 생각할 때 더 좋은 교육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초등학생들이 좋은 책을 많이 접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괜찮은 책이었다. 과학은 무조건 어렵고, 재미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부모님과 함께 읽어보아도 괜찮을 것 같아서 추천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름답게 나이 든다는 것
안젤레스 에리엔 지음, 김승환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책 띠지에서 묻고 있다. "당신은 후회없는 인생을 살아왔는가?"라고.. 아니. 길지 않은 삶을 살아왔지만 후회되는 일이 너무 많다고, 더군다나 요즘엔 모든 게 후회된다고 대답했다. 후회없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있을까? 언젠가 이 다음에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이 없어."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잘 살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후회없는 인생이라니 얼마나 좋은가..?
   이 책에서는 삶의 후반부를 준비하기 위한 여덟 개의 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신의 삶 어디부터가 후반부인지 아는 사람은 없을 게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었기에 "아직 난 젊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더 많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던 것 같은데, 이 책을 잡고선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껏 살아온 시간만큼만 혹은 그보다 더 적은 시간만이 남아 있을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급해지기도 한다. 책의 구성은 8개의 각각의 문이 던지는 과제와 그 문을 통과하면서 이겨내야 할 도전, 도전후의 선물, 그리고 반추와 실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 안젤레스 에리엔이 문화인류학자이자 교육자라 그런지 기독교와 불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에 대한 성찰은 물론이거니와 여러 작가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에게서 발견하는 삶의 지혜까지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늙는다는 것, 나이든다는 것, 그리고 죽는다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머리말에 나오는 글쓴이의 말마따나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축복일 수도 저주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열심히 살아온 젊은 날. 그리고 안정된 노후라면, 젊은 시절 그저 사는 데 급급해서 누려보지 못한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면 그건 축복일테지만, 버림 받고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힘든 노후라면, 그건 저주일 수도 있겠단 생각. 그렇기에 "지금"의 삶도 중요하지만 노후의 삶을 하나하나 준비해나가는 일도 참 중요하리라. 아름답게 나이 들 준비를 미리미리 해나가야 하는 거겠지..?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이미 노년에 접어든 연세 지긋하신 분들에게도, 혹은 나처럼 "아직은 젊다"는 생각에 노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읽어볼 만한 책이 될 것 같다.

   책에 인용된 이 말이 참 좋았다.

 "라코타족의 전설에 의하면 어떤 일이든 시작의 과정에는 거짓말에 능한 요술쟁이 이크투미가 나타나서 참된 본성을 찾는 일을 방해하고 뜻 깊고 숭고한 만족을 얻지 못하도록 여덟 가지 거짓말로 우리를 유혹한다고 합니다. 그 여덟 가지 유혹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자였다면 행복했을 것이다. / 유명해졌다면 행복했을 것이다. / 좋은 배우자만 찾을 수 있었다면 행복했을 것이다. / 더 많은 친구만 있었다면 행복했을 것이다. / 더 매력적이기만 했다면 행복했을 것이다. / 몸에 단점이 없었다면 행복했을 것이다. / 가까운 사람이 죽지만 않았다면 행복했을 것이다. / 세상이 더 살기 좋은 곳이었다면 행복했을 것이다. "(p202)

   사실 내가 "당신은 후회없는 인생을 살아왔는가?" 질문에 대해 부정적인 대답을 던졌던 이유도 위에 나열된 여덟가지의 "유혹" 때문이었던 듯하다. 그렇구나. 행복은 무엇과의 비교가 아니라 나 스스로의 만족을 찾아나가는 과정이구나.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기회였지만, 그랬기에 읽은 모든 걸 소화해내진 못하겠다. 다음번에 읽을 땐 좀 더 쉽게 다가오지 않을까...나 역시 아름답게 나이 들 수 있길 바라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서평단 알림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이 책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미술에 대한 지식 파편 몇 개 정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혹은 글쓴이를 통해 미술에는 문외한인 내가 미술에 대한 감각 같은 걸 새발의 피 정도로나마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였는데.. 책 제목 때문이었을까? 오해했었다. 이 책의 성격에 대해. 라틴아메리카의 미술을 둘러 보고 온 기행문이라 생각했었다. 아니다. 이 책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라틴아메리카를 둘러본 화가 김병종의 "그림일기" 같은 책이다.

   우선 책머리에서 만난 김용택 시인의 추천의 말을 읽으며 글쓴이에 대한 부러움으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신춘문예에 두 번이나 등단한 글솜씨를 가진 화가라.. 하느님은 가끔 공정하지 못하게 사람을 편애하시기도 하나보다. 내겐 그림에도 글쓰기에도 유치원생 정도의 재주밖에 안 주셔놓곤 이 사람에겐 그 둘을 함께 주시다니.. "글을 쓰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학청년적(?)이거나 문학소녀적인, 약간은 꼭지가 덜 떨어진 설익은 글이 아니라 탄탄한 문학성을 지닌 성숙한 지식인의 글"(p5)이라는 추천사를 읽고 있자니, 잔뜩 기대가 된다. 본격적인 글읽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알았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의 그림이 뒤로 숨고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의 글이 뒤로 숨는다."(p6)는 시인의 말을..

   화가의 그림을 통해, 그리고 신춘문예에 이미 두번이나 등단한 작가의 글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를 보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쿠바와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페루 여섯개의 라틴아메리카를 둘러본 이야기 중 절반 정도의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쿠바 이야기다. 쿠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체 게바라"에 대한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그리고 부에나비스타소셜. 내겐 낯선 음악, 낯선 그들이었지만 글쓴이를 통해 만난 그들은 동네 할아버지들처럼 친근한 느낌을 준다. 쿠바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주제 또 하나 "헤밍웨이"의 이야기. "이 미국 작가는 어느새 반미국가 쿠바의 관광산업이 되어 있었다."(p56) 암보스문도스 호텔, 카페 프로리디타와 보데기타 델 메디오, 코히마르 마을, 노인과 바다, 푸엔테스의 이야기. 글쓴이를 통해 본 쿠바는 낡고 오래된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다. 내 아버지의 어린 시절 흑백사진을 보고 있는 것처럼 빛이 바랜 느낌이랄까? 몇 개월 전에 쿠바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과는 또다른 느낌의 쿠바는 이웃 동네처럼 내게 가까이 와 버렸다.

   그 다음 멕시코. 멕시코의 유명한 벽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역시 화가였고 리베라와 결혼하기도 했던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가 안타까워 가슴이 한켠이 짠해진다. 라틴아메리카에 가 본 적도 없고, 자세히 공부해 본 적도 없지만, 그 곳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글거리는 태양과 원색의 강렬한 느낌, 아울러 "혁명"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쿠바의 체게바라, 멕시코의 카를로스 푸엔테스. 거대한 "제국" 미국에 가려져 그동안 잘 몰랐던 그들의 혁명 이야기는 이글거리는 태양과 원색의 색감과 동의어처럼 느껴진다.

   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와 에비타에 대해서는 좀더 알아보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탱고. "육체로 쓰는 가장 아름다운 시"라는 그 표현이 그렇게 적절할 수가 없다. "탱고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우리의 마당극 같은 것."(p183). 그들에겐 아직도 탱고가 생활에 자리잡고 있지만 우리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마당극을 쉽게 접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저 문장을 읽으며 아쉽고 허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브라질과 칠레, 페루의 이야기까지 좋은 여행기였다.

    글쓴이의 감성적인 눈을 통해 남미를 바라봐서인지 남미의 역사와 사람과 문화가 아름답고 고전적이고, 이웃집 이야기처럼 친근하면서도 푸근한 느낌. 낯설지 않은 느낌이 참 좋았다. 지금 바로 달려가도 낯설지 않을 것 같은 그 곳에 가 볼 날이 언제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도 세종대왕 - 조선의 크리에이터
이상각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적인 세종을 만나다>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야했고, 그 지도자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함께 하기 때문일까 지난해부터 유난히 리더쉽에 관해 이야기가 많다. tv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군주를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 눈에 띄고 출판분야에서도 비슷한 분위기인 듯 하다. 그런 흐름 덕분인지 나 또한 이 책과 몇 개월 전에 읽은 그 세종에 관한 두 권의 책을 합해 3권의 세종에 관한 이야기를 읽게 된 셈이기도 하다. 처음에 펼쳐들었던 책은 내용이 방대하고 세세한 점은 좋았으나 그 방대함에 치여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으니 사실 "읽었다"고 하기엔 뭣하다. 두 번째로 펼쳐들었던 책에서는 세종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이번에 펼쳐든 책은 지난 번 책에서보다 세종의 업적에 대해 더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었던 듯 해서 두 책을 비교해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intro부분에서는 세종대왕의 수많은 업적 중에서 현재에도 칭송받고 있는 "훈민정음"창제와 관련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런 식으로 편집된 책을 접해 본 적이 없어선지, 책의 초입부분에서 적잖게 당황했다. 글쓴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과감히 붉은 색 음영처리를 한 데다가 쪽수가 없어서..뭐, 나쁘진 않았다. 이 부분에선 훈민정음에 대한 세종의 확고한 의지와 최만리로 대표되는 신하들의 거센 반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언문은 여러 글자를 합하여 함께 써서 그 음과 해석을 바꾼 것이라 글자의 형상이 아닙니다."라며 거세게 반발하는 신하들. "글자의 형상이 아니라는" 그 글자로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한 그들의 글을 읽고 있으니, 이런 상황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알 수 없는 웃음이 나왔다.

 

   <1부 웅크린 잠룡, 승천하다>에서는 양녕이 세자로 있던 때의 이야기부터 양녕이 폐세자가 된 과정, 급하게 진행된 세종의 즉위에서부터 상왕이 된 태종 사망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들이라 특별할 건 그닥 없다. 1부를 읽으면서  문득 "젊은 독자를 겨냥하고 쓴 책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에 의해 재구성된 그들의 대화가 아주 현대적이다. "나는 조선에 올인한 사람이니 자식들을 생각해서 자중하시오. 오버하면 당신과도 남남이오."(p55)라는 태종의 말이나 "괜찮아. 저런 깜짝쇼가 다 나를 임금 만들려고 하는 일이니까."(p55)라는 세자 양녕의 발언을 보고 있자면 말이다. 그래도 역사서는 좀더 무게감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보수적인 사고를 하는 내 입장에서는 글쓴이가 약간 "오버스럽다"고 오버스럽게 참견하고 만다.

   <2부 조선의 마스터플랜을 세우다>와 <3부 찬란한 문화시대를 열다>에서는 세종의 위대한 업적이 꼼꼼히 설명된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창업의 군주였다면, 세종은 수성의 군주로써 손색이 없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의욕적으로 계획하고 진행해나갈 수 있었는지, 만약 세종이 왕위에 오르지 못했더라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짐은 국가 제일의 공복' 이라고 서양의 군주가 이야기했다던가. 세종이야말로 그 말에 적합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애민정신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가진 군주가 서너명만 더 있었더라면 우리 역사가 지금보다 몇 배쯤은 더 긍정적인 모습을 가질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4부 고독한 임금의 초상>에서는 그의 불행했던 개인사와 그로 인해 불교에 심취하게 되는 모습,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한 신하들과의 마찰을 보여준다. 두 번의 세자빈 폐출, 그리고 세번째 세자빈마저도 세손(단종)을 낳은 산통으로 숨졌고, 유난히 자식들을 사랑했던 세종이 정소공주와 광평대군, 평원대군 등 잇따라 자식들을 앞세우면서 겪어야 했던 고뇌가 안타까웠다. 세종 말년의 내불당 투쟁이나 신하들과의 부딪힘은 세종의 개인적인 불행과 함께, 그간 모범생 역할만을 해야했던 그의 억눌린 감정의 폭발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고 어설프게 추측해본다.

   <5부 세종과 그의 신하들>  "세종 치세의 찬란한 업적들은 임금 개인의 뛰어난 식견과 학문적 소양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를 보좌했던 뛰어난 인물들이 있었으므로 가능한 것이었다."(p332) 그렇기 때문인지 세종에 관한 책에는 그 신하들에 관한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에서도 황희정승이나 맹사성, 장영실 등 우리가 흔히 꼽는 세종 시대의 유명한 인물 말고도 (나는? 나만?) 잘 몰랐던 이천과 이순지 등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인간 세종과 군주 세종에 대해서 관찰해 볼 수 있었던 좋은 책이었다. 세상의 모든 지도자가 세종만큼만 잘 해 준다면 독재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위험한 발상으로 책을 덮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카라무슈
프로메테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옆에 사람에게 읽어보라고 권해 주고 싶은 책이다. 예전에 tv토크쇼에 나온 어떤 개그맨이 영화 식스센스가 영화관에서 상영중일 때의 자신의 경험담이라며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식스센스를 관람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 그 영화를 본 그가"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야~!"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이 책을 덮고 나니 나도 입이 막 근질근질하다. 재미있는 책이라고 권해주고 싶으면서도 "사실은 말이야~ 그 사람이 말이야~"하고 막 떠벌리고 싶은. 이러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인 걸 보고만 두건 만드는 사람처럼 병이 나는 건 아닌지 몰라. 반전이 기가 막히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을 펼쳐들 게 된 이유는 나의 숙제와도 같은 역사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책 소개글에서 얼핏 본 "프랑스혁명"이라는 단어가 아니었으면 이 책을 그냥 지나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띠지에 있는 "활극소설"이란 단어 때문에 일본 중세의 사무라이가 먼저 떠올라 혹 칼싸움 얘기가 지루하게 나오면 어떻게 할까 걱정을 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걸 두고 "기우"라고 하는 모양이다.

 

   <BOOK1 시골변호사>. 이야기의 주인공은 앙드레 루이 모로. 부모가 없는 고아이지만, 그의 대부(대부라는 게 어떤 개념인지는 정확히가 아니라 대충 감이 올 뿐이다.)인 가브라앙의 영주 켕텡 드 케르까디유의 보살핌으로 그는 귀족도 아닌 그렇다고 평민도 아닌 약간은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변호사다("였다"가 더 맞을래나?). 그런 그였기에 흔히들 말하는 프랑스혁명 전야의 모순된 사회에 대해서도 약간은 어정쩡하고 다소 냉소적인 자세를 지닐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랬던 그가 절친한 친구 필립 드 빌모렝의 어이없는 죽음으로 제3신분을 대변하는 위치로 전향(?)하게 된다. "당신들은 흐르는 강물에도, 풀과 보리로 만든 가난한 자의 빵을 굽는 불에도, 또한 방앗간을 돌리는 바람에도 봉건 권한을 행사하고 있지 않습니까?"(p48)라고 귀족계급을 비판하던 빌모렝이 라 뚜르 다쥐르 후작(이 사람이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과의 결투에서 저항 한번 못 해보고 개죽음을 당했으니 말이다.

 

   이 책의 매력은 재미와 함께 프랑스 혁명기의 프랑스 사회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거다. "여러분! 우리 프랑스의 구조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국민 중 백만 명이 특권계급을이루는데, 이들이 곧 프랑스를 의미합니다. 설마 나머지 국민들에게도 무슨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으시겠지요? 현재로선 나머지 이천사백만 명 역시 특권계급 만큼이나 중요하며, 이 나머지 국민들도 위대한 국가의 대표가 될 수 있다거나, 또는 선택된 백만 명 특권 계급의 노예 이외에 다른 존재 이유가 그들에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p88)와 같이 당시 프랑스 사회가 처한 상황이 이야기 곳곳에서 보인다. 그리고 교과서적으로만 암기하고 있던 인물 로베스피에르, 당통, 마라 등 프랑스혁명의 주역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고, 역사학도였다는 역자가 낯선 프랑스 용어에 대해서도 괄호로 잘 풀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타고난 입담으로 정치를 비판하고 시민들을 선동한 죄로 쫓기게 된 앙드레의 삶은  떠돌이 극단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완전히 달라져버리고 만다. <BOOK2 연극배우>에서는 떠돌이 극단에 합류한 앙드레의 이야기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비네 극단이 앙드레를 만나면서 규모있고, 관객의 환호를 받는 극단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앙드레는 정말 못하는 게 없다!! 너무나 매력적인 인물. <BOOK2 연극배우>에서 언급되고 있는 서양 연극의 전형적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시끌벅적하고 호화롭지만 뭔가 촌스런 연극판의 모습이 이국적이면서도, 우리네 판소리 혹은 탈춤 같은 서민적인 정서와의 공통점이 느껴져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가끔 프랑스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프랑스인들의 주거니받거니 하는 역설적이고 가끔은 말장난 같은 대화를 읽는 재미도 이 책의 매력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앙드레가 수배자라는 약점을 주고 있는 단장 비네와 자신없이는 극단이 성공할 수 없다는 약점을 쥐고 있는 앙드레와 비네의 "적과의 동침"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결국 앙드레와 사사건건 대립 구도를 이룰 수 밖에 없는 다쥐르 백작으로 인해 결국 앙드레의 연극배우로서의 삶도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그는 무대에서의 스카라무슈였을 뿐 현실의 옴네스 옴니버스가 그의 본 모습이 아니었을까..

    이후의 이야기 <BOOK3 검객>편에서는 또 우연히 만나게 되는 베르트랑 데자미와의 만남이 그의 삶을 변신시킨다. 검객으로써 말이다. 역시나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다쥐르와 앙드레의 결투장면이겠지? 아니다. 그 뒤에 숨겨진 엄청난 반전이 더 스릴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말이다.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리뷰를 쓰고 있자니 그 재미가 전달되지 못하고 오히려 훼손되는 것 같아서 내 글을 지워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하.. 만약 이 서평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 읽어도 후회 안 할 것 같으니 한 번 읽어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실로 앙드레 루이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이런 남자를 보고 가슴이 뛰지 않을 여자가 있을까? 누구나 드라마틱한 연인이 되어 줄 것 같은 이 다재다능한 남자"(p525 옮긴이의 말)를 한번 만나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