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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대의 과학수사 X파일
이종호 지음 / 글로연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책 앞날개에 실린 글쓴이의 이력이 약간 의아했다. 공학박사 학위와 "조선"이라는 낱말 사이에서 어떤 연결고리를 발견하기 어려웠기에. 책 제목에서 "과학"이라는 용어는 무시하고 "조선"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이 책의 성격은 지극히도 '인문학적일 것이다'고 단정지어버린 내 사고의 한계 때문에 든 의아함인 듯도 하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각종 사건과 그 처리과정에서의 과학적 수사기법 뿐만 아니라, 법전과 형벌 제도에까지 조선의 사회 단면을 포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글쓴이는 영화 [혈의 누]나 [다모], [대장금]과 최근에 방영된 [별순검]이란 사극을 재미있게 본 모양이다. 텔레비전과는 별로 친하지 않은터라 영화 [혈의 누]를 빼고 위에서 나열한 세 편의 드라마는 한 편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책에서 소개되는 [별순검]과 [대장금]과 관련한 이야기는 공감가지 않는 부분이 몇 군데 있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기도 하다.
제1장 [추리 수사의 탄생]에서는 추리를 통한 과학수사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단, 유럽에서 말이다.) 아서 코난 도일(1859~1930)과 그의 유명한 추리소설 셜록홈즈 시리즈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코난 도일에 의해 과학적인 수사 기법이 등장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비해 조선에서는 매우 이른 시기에 과학 수사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글의 요지인 듯 하다. "제 아무리 셜록 홈즈라 해도 조선의 수사진 앞에서는 탁월한 수사 실력을 자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p25)라고 글쓴이가 극찬하고 있는 조선의 과학 수사대를 만나러 가는 마음이 뿌듯함과 기대감이 넘쳐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제2장 [별순검과 다모]에서는 기존의 사극과는 형식이 다른 사극이었음에도 매니아층을 형성할만큼 성공했던 드라마 [다모]와 [별순검], [대장금]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역사 속 실제의 (별)순검과 다모 의녀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특히 의녀 대장금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의녀의 역할과 의녀가 되는 과정,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의녀의 성격과 그 역할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에 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어, 나로선 새롭게 알게 된 이야기들도 많았다.
제3장 [법전 외우는 왕]에서는 이영규와 노복 김도홍의 사건 처리를 둘러싼 정조와 신하들의 문답에서 보이다시피 법에 밝았던 왕과 관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4장 [조선의 과학수사 교과서]에서는 [무원록]과 [신주무원록], [중수무원록언해]등을 통한 검험법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흥미롭게 보았던 장은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제5장 [조선시대 사건 일지]부분이다. 예전에 "귀신처럼" 범인을 찾아내는 셜록 홈즈에 매료되어 셜록홈즈가 등장하는 소설을 비롯해,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모르그가의 살인사건,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등을 탐독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또 한동안은 어린이 프로그램이었음에도 명탐정 코난이라는 일본 만화를 케이블 tv에서 즐겨 보았던 기억도 나고.. 제5장 [조선시대 사건 일지]를 읽는 기분이 딱 그러했다. 현대의 법의학적 측면에서 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만한 과학적인 수사 기법을 도입해 사건을 풀어낸 이야기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 속에서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아울러 살펴 볼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살인은 그 때나 지금이나 분명 용서받지 못할 범죄이건만 자신의 부모님을 욕되게 한 경우 혹은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경우, 그에 대한 복수로써 상대방을 죽인 경우에 대해서는 관대한 처벌을 했었다는 여러 사건들을 보면서, 시대에 따라 가치관이나 윤리 혹은 법까지 많이 변화함을 알 수 있었다. 5장에서 가장 놀랍게 읽었던 이야기는 인체의 자연연소 현상에 관한 것. 글쓴이는 정약용의 흠흠신서에 기록된 두 남녀의 자연연소 사건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 있었던 인체의 자연연소 현상에 대해서도 사진과 함께 여러 예를 들고 있는데, 나는 처음 접한 사실이라 무척 놀라웠다.
제6장 [조선시대의 법전], 제7장 [조선시대의 형벌제도]에서는 조선 전 시기에 걸친 법전과 형벌제도에 관해 꼼꼼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생기게 마련인 갈등의 해결방법을 역사 속에서 찾는 재미도 있었고, 그 갈등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범죄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라."는 조선 시대 사람들의 해결안을 읽는 재미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