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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2 - 일타 큰스님 이야기
정찬주 지음 / 작가정신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드디어 다 읽었다.. 다 읽고난 이 느낌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1권을 읽을 땐, 내가 잘 몰랐던(지금도 잘 모르는) 불교에 대한 이야기와 승려로서의 삶에 끌려 읽었고, 2권은 소위 말하는 "큰스님"이란 어떤 분들이고, 어떻게 사셨는지에 치중해서 읽었다. 2권에서는 일타스님의 본격적인 수행기. 일타스님의 수행기 뿐만 아니라 책에 일타스님과 관계된 여러 큰 스님들,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분이지 싶다, 성철스님을 비롯, 만공스님, 구산스님 등의 이야기도 함께 살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극히 종교적인 삶을 살다 가신 분들을 지극히 세속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 내가, 그 분들의 삶은 어떠했다고 말하기가 참 뭣하다. 참 뭣하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 파악한 스님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이렇다.
먼저 성철스님. 불교도가 아니라도 성철스님에 관해서는 조금씩들 알고 있을테다. 나 역시 아주 조금. 사진 혹은 tv를 통해서 본 그 분의 강한 인상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 한마디. 그리고 돈오점수냐 돈오돈수냐의 논쟁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 책에 소개된 성철스님의 면모는 그 인상만큼이나 강하다. 손가락을 연비한 젊은 승려를 두고서는
" "그놈 오기만 해봐라. 그런 무식한 새끼가 어디 있느냐. 장경각 앞에서 태우다가 정신을 잃었으면 장경각 국보를 다 태웠을 거 아닌가!"하면서 막 욕을 해댔다는"(p35) 이야기 등을 통해서 성철스님의 면모를 대강이나마 짐작해보자면(이렇게 속세적인 관점으로, 내 마음대로 짐작해도 되는지 조심스러워진다.) 말수 적은 경상도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에 비해 일타스님은 자상하고 주변 사람들까지 편안하게 해 주는 어머니 같은 모습이랄까...?
일타스님의 삶은 끊임없는 자기연마와 수행으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노장님, 소신공양은 왜 하는 겁니까."
"부처님 법대로 살겠다는 맹세이지."
"자신을 학대하다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학대가 아니라 중으로서 자신과의 약속 같은 것이지. 저 수좌의 얼굴을 보았는가."(p192)
일타스님의 손가락 연비를 본 노스님과 젊은 스님의 대화다. 나 역시 젊은 스님처럼, 일타스님의 손가락 연비나, 추금스님(일타스님 속가의 외할아버지)의 자화장을 스스로에 대한 "학대"라고 생각했기에,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도 솔직히는 잘 모르겠다. "육신에 대한 애착은 그림자를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p200)라는 말이 아직 이해되지 않는 어리석은 중생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깨끗한 부분의 종이는 가위로 오려 화장실에 두고, 글이 써졌거나 더러운 부분은 아궁이에 놓고 태우시더라고예. 그뿐만 아닙니다. 우편물이 올 때마다 봉투를 조심스럽게 개봉한 다음 봉투를 뒤집어 풀로 붙여 다시 사용하셨십니더."(p311)와 같은 일타스님의 작은 모습에 오히려 더 감동을 받는 나. 이 부분을 읽다가 내 방을 훑어보니, "너무 많이 가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서, 책을 읽다말고 방청소부터 했다. 구석구석 켜켜이 쌓아둔 많은 욕심들을 발견하고선 조금씩 나누고 줄여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처음으로 접한 큰스님의 삶을 다룬 이야기라 읽기에 만만한 책은 아니었다. 이야기 속에 간간이 나오는 "방부 들이다"는 말이나 "조실스님", "원주스님" , "상좌", "수좌" , "연비" 같은 불교와 관련된 낱말들도 내겐 낯설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껏 내가 읽어온 책들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이야기라, 이 이야기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혹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조차 잘 몰랐기 때문에. 하지만 스스로를 끊임없이 연마하고, 주변을 감화시킨 일타스님의 일대기를 보며, 내 삶을 한번더 돌아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기도 했다. (참, 1권을 읽으며 일타스님의 행적을 쫓아가는 고명인 아저씨, 승려가 될 것 같다고 내 마음대로 짐작했는데, 내 짐작이 틀렸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