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화 -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은 뜻밖의 조선사 이야기
배상열 지음 / 청아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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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분야의 책보다 역사책을 좋아해서, 이 책의 제목을 보고서 꼭 한번 읽어봐야지 별렀는데, 이렇게 읽게 됐다. "비화"라는 단어 때문에 재미있는 역사책일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글쓴이의 <글을 시작하며>를 통해서 그 기대감이 충족되는 느낌이었다. 글쓴이가 <글을 시작하며>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야기는 최근(뿐만 아니라)의 tv 사극 속에 보이는 여러 오류에 대한 지적이었다. "대부분의 사극이 정통을 표방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시트콤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p20)는 작가의 눈에 비친 오류 중에서도 내가 가장 놀라웠던 이야기는 "촛불"에 관한 것이었다. tv사극에서 흔히 등장하는 조명수단 양초. 글쓴이의 말마따나 "서양에서 만든 초"(p10)라는 의미의 그 양초는 19세기 중반에야 서양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데, 조선은 물론 고려시대에 양초가 등장하는 사극이란... 글쓴이를 통해 발견한 사극 속의 오류가 흥미로웠다.  마치 "tv 속 옥의 티"를 찾는 프로그램마냥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 숨겨진 역사적 오류를 조목조목 언급하는 글쓴이의 글쓰기 방식이 마음에 들어, 글쓴이가 본격적으로 풀어낼 조선 이야기가 자못 궁금했다. 

    글쓴이가 본문에서 풀어낸 조선의 숨겨진 이야기는 <사건비화> <인물비화> <세태비화>의 세 가지 분야로 나뉘어진다. 글쓴이는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이야기들이란 주제로 일반인들의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는 조선이란 나라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들을 일반에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이 글을 쓴 것 같다. 하지만 역사책을 좋아하는 터라 그런지 글쓴이가 소개하는 몇몇 이야기는 기존에 내가 어디서 주워들은 것들도 있었고(물론 전혀 몰랐던 이야기들이 더 많은 편이었지만 말이다.), 제목과 서문격이라 할 수 있는 <글을 시작하며>를 통해 내가 기대했던 톡톡 튀는 이야기들은 아니라 약간의 실망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사건비화의 두 번째 이야기 "살해당한 왕"에서는 경종 살해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선시대 몇몇 왕과 세자가 제명에 죽지 못하고 암살 혹은 독살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상식이 되어버렸다. 글쓴이는 일반에 알려진 경종의 죽음과 관련한 영조(당시 세제 연잉군)의 혐의에 대해 거의 전적으로 부정하고, 경종의 죽음은 누적된 스트레스와 병약한 그의 체질에 의한 것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예전에 읽은터라 기억이 선명하진 못하나 역사학자 이덕일의 <누가 왕을 죽였는가>에서는 경종의 죽음과 연잉군(영조)의 관련성에 무게를 두고 서술했던 것 같은데, 그 책을 먼저 읽고 설득당해 버렸기 때문인지 글쓴이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글쓴이의 말대로라면 "특정한 혐의에 불순한 의도가 배합되면 억울한 사람을 우습게 진범으로 만들 수 있"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허나 이런 것이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아니겠는가..? 같은 사건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배워야겠다. 

    그리고 사건비화의 세번째 이야기 "살인의 추억"에서는 김은애 사건과 신여척 사건을 다루고 있다. 현재의 관점에서도 쉽게 용서되지 않는 죄, 살인에 대하여 두 "범인(?)"을 방면조치함은 물론 이덕무에게 <은애전>을 서술하라 일러 오히려 칭찬을 하고 있는 정조. 글쓴이는 이에 대해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함한 노론에 대한 증오와 관련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예전에 김은애 사건에 대해 알게 됐을 때, "그 억울함을 참작해 준 조치겠구나" 생각했을 따름인데, 다른  측면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이 신선했다. "정조의 눈에는 무고한 은애를 모함한 안조이가 임금을 기만하고 나라를 좀 먹는 간신배의 무리로 비쳤을 것이다."(p89).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인물비화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 중에서 내 관심을 끈 것은 이징옥과 사화동이었다. "이징옥은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p184) 그렇다.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 이징옥.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그의 이야기는 내가 모르던 것이었다. 세종 대에 "명나라 사신을 대놓고 모욕한 사람"(p174)으로 소개되고 있는 그의 면모는 처음 알았다. 글쓴이가 이징옥이란 인물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이징옥이란 인물은 계유정난에 반대하여 난을 일으킨 무사였다는 정도로 각인되어 있었는데, 글쓴이는 이징옥에 대해 따로이 한 장을 할애하고 있고 세조와 박호문을 각각 다룬 장에서도 이징옥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책을 통해 내게 이징옥은 "이징옥의 난"을 일으켜 정국불안을 초래한 인물이란 이미지 대신, 명나라에 굽히지 않는 꿋꿋한 자주성을 지녔던 인물로 기억될 것 같다. 사화동이란 인물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터라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고..

   세태비화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은 조선의 부정적인 이미지들이다. 동방예의지국, 유교를 신봉하는 꼬장꼬장한 선비들이 살았던 나라가 아니라, 간음을 일삼고, 현재와 같이 조폭(무뢰배)들이 거들먹거리고 나다니며, 병역비리는 물론 학력위조까지 있었던 나라. 그 중에서도 관심을 끌었던 것은 "과거급제의 대가 면신례"에 관한 것. 지금으로 치자면 학년초마다 말썽이 되는  "신입생 환영회" 정도의 의미랄까...? 현재보다도 오히려 더 심한 면신례의 모습은 입안에 쓴맛이 나게 했다. 

    그러고보면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한 것일까? 돈이 있는 곳에 각종 비리가 난무하고, 남녀 문제가 일어나는, 현재의 우리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조선의 모습. 이 책을 통해 살펴본 조선의 숨겨진 이야기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모습들이 많아, 다소 씁쓸했지만, 어쩌랴. 그렇게 살았다는데... 나중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후손들이 바라보며 씁쓸하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일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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