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의 조선 1 - 금속활자의 길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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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오세영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니스의 개성상인]. 익히 들어본 제목이고, 베스트셀러였다는 것도 알지만, 직접 읽어볼 기회는 없었기에 어떤 이야기이며, 어떤 소설가일까 궁금했었는데 [구텐베르크의 조선]을 통해 그를 만나게 됐다. 역사이야기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 탓인지, 책 앞날개에 적힌 그의 간단한 프로필이 내 호감을 끌었다. "역사를 전공했다. 흩어진 기록을 모으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사서의 행간을 채우는 일을 즐겻던 오세영에게 역사를이야기로 꾸미는 역사작가는 잘 어울리는 직업인 셈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역사책에 관심이 많은 나는  종종 역사서적을 읽으면서, "정말 이랬을까..?" "이 사건 뒤에는 어떤 뒷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내가 읽고 있는 역사는 진실일까..?"를 종종 의심했다. 그렇기에 그 행간을 채워주는 듯한 역사소설엔 절로 호기심이 인다.

 

   [구텐베르크의 조선]의 창작배경은  "서울 디지털포럼 2005"에 참석한 노벨수상자 앨 고어의 기조연설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서양에서는 인쇄술을 최초로 발명한 것이 구텐베르크라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며,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은 교황 사설단이 조선을 방문하여 얻어간 기술"이라는 앨 고어의 발언이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한 것 같다.

 

   자. 그렇다면 작가 오세영이 이야기하고 있는 "활자인쇄의 진실"에 대해 재구성해보자. 이야기는 우리 역사의 르네상스기라 할 수 있는 세종대왕의 통치기인 1440년대에서 시작하고 있다.  능력이 있다면 신분에 구애됨 없이 인재를 등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했던 세종의 인재관에 대해선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장영실. 동래 출신의 천한 신분이었던 그를 궁궐로 불러들여 각종 과학기구를 만들었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장영실이 만든 어가가 시험단계에서 파손되는 바람에 그는 곤장을 맞고, 이후 역사에서는 그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는 역사사를 통해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져간 장영실이 이 책 [구텐베르크의 조선]에 등장하고 있다.

 

    훈민정음에 대한 조정신료들의 방해공작을 피해 그는 세종의 어명을 받고, 명나라로 몸을 피해, 훈민정음을 널리 유포시킬 수 있는 금속활자를 연구하고 있었던 것. 이 부분을 읽다가 "도슈샤이 샤라쿠"와 김홍도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일본 에도시대 유명한 유키요에 화가였다는 샤라쿠가 바로 우리 나라의 김홍도 일 수도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뒤통수를 뭔가로 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작가가 상상해 낸 이야기가 너무 그럴 듯해 "아,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영실이 그렇게 사라져갔던 것이 아니라, 실은 이 이야기와 같이 살다 갔더라면...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은 장영실이 아니라 그의 제자 석주원이다.(가상인물이다.) 장영실과 함께 견고한 활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석주원은 명나라에서의 모종의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사마르칸트로, 사마르칸트에서 또 독일의 마인츠까지 가게 된다. 마침 유럽에서는 교황청에서 성서의 보급을 위한 인쇄술에 관심이 쏟아지던 차였고, 석주원은 구텐베르크 공방에서 금속활자를 만들게 된다는 내용. 아주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면 내용은 대충 이렇다. 역사 속 실제 인물과 가상인물이 뒤범벅된 이야기를 읽으면서 작가에게 자꾸 설득당해 버린다. 이야기가 너무 그럴 듯하다. 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에 의해 금속활자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구텐베르크 뒤에는 낯선 동방인, 꼬레아에서 온 동방인 석주원이 있었다는 사실. 당시 서양인들에게는 이름조차 낯설던 꼬레아에서는 이미 수백년전부터 금속으로 활자인쇄를 해 왔다는 사실. 그런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진달까...?  상대편 빔펠링 공방에 등장한 서양 최고의 야금장 "발트포겔"과 구텐베르크 공방의 석주원의 대결에서 석주원이 승리하는 것으로 일단 1권은 마무리됐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까..? 석주원과 이레네는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이룰 것인가..? 석주원은 계속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독일에 머물게 될 것인가..? 발트포겔과 석주원의 관계는 또 어떻게 될 것인지.. 여러 가지가 궁금하다. 2권에 펼쳐질 멋진 이야기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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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상인에게 보내는 편지 - 벤저민 프랭클린
벤저민 프랭클린 지음, 이종인 옮김 / 두리미디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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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한권 전체가 좋은 말 덩어리다..!!

   사실 이런 책 읽기가 조금 부담스럽다. 인격적으로 너무나 훌륭한 사람을 만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기에 위축되기 마련이다. 이런 류의 책,  펴보지 않아도 "아주 훌륭한 말씀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고 예상할 수 있는 책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이란 저자의 이름이 주는 무게감과 "1000만 미국인의 삶을 바꾼 책!!"이라는 소개 문구 또한 적잖은 부담감이 된다. 나 스스로가 많이 모자르고 부족한 인간임을 알기에, 충고나 좋은 말이 담긴 책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책을 읽다가 혹 좌절할까봐, "난 아무리 해도 저렇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을 꺼야"하는 반동 같은 것이 생길까봐.. 하지만 요즘엔 일부러라도 읽는다. 책에 나와 있는 좋은 모든 말들을 실행에 옮길 수 없더라도, 조금씩이라도 내 사고와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너 자신만큼 자주 너를 배신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책 앞표지에 쓰인 이 말 백번 공감한다. 나를 배신한 사람과의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지만, 평생 나와 함께 가야 할 나 자신 속의 나. 지금까지 가장 자주 나를 배신했던 녀석. 끊임없이 좌절케 하고 절망케 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 책에선 그런 배신자를 응징(?)할 어떤 방법을 이야기 하고 있을까..?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진다. 첫번째가 이 책의 제목인 <젊은 상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편지글 형식의 짧은 글이다. 두번째 <성공에 이르는 자연법칙>에서는 프랭클린이 "리처드 손더스"라는 이름으로 발행한 달력을 편찬하면서 달력에다 적은 훌륭한 격언들에 대한 소개가 이어지고, <프랭클린 자서전>에서 발췌한 그의 간단한 일생이 소개되어 있다. 세번째 부분 <프랭클린, 세상 모든 성공학의 원점>에서는 그가 제시하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13가지 습관"에 대해 소개하고 옮긴이가 아울러 다양한 충고를 아우르고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런 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별 거부감이 없었다. 그가 하나하나 던져주고 있는 충고에 거부반응이 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타고난 부자였고, 아주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며, 혹은 타고난 천재였다면 그의 말은 내게 "덜 먹혔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정규교육이라곤 2년 밖에 받지 못했고,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타고난 천재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근면함과 성실함이 그의 빛나는 이름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말이 참 진실되게 느껴졌고, 나 역시 실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에 좋은 말들이 너무 많아(책 한권 자체가 좋은 말 경연대회를 하고 있다.!!) 어떤 구절을 인용해야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며칠 사이에(두꺼운 책이 아니라 몇 시간이면 읽을 수 있을 책이지만, 천천히 읽었다.) 내 삶을 변화시킨(?!) 그의 충고는 열번째 조언 "청결, 불결함을 보아 넘기지 마라"는 것과 세 번째 조언 "정돈,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두어라"는 것이었다. 주방에 설겆이 꺼리가 놓여있는 걸 보고도 "어머니가 하시겠지.." 하는 핑계로 내버려 두곤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설겆이를 자청했다. 설겆이꺼리가 쌓여있을 때마다 처리하고 나니, 나로선 큰 시간을 투자한 것도 아닌데, 주방이 훨씬 깨끗해진 것 같은.. 더불어 어머니의 수고를 덜어드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는 변화였다. 

 
     "충고를 듣지 않는 자는 도움을 받을 수 없다"(p56)는 그의 말, 정답이다. (사실 이 책은 어느 쪽을 펴더라도 정답 같은 말, 훌륭한 말을 접할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그 말이 너무 거창하거나 거부감이 생기는 종류의 말이 아니다.) 그간 나는 너무 외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지 않았나..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됐고, 삶의 지침으로 여길만한 많은 이야기를 접하게 됐다. 감사하다. 삶의 작은 변화를 찾고 있는 사람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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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보다 소중한 우리미술가 33 - 오늘의 한국미술대가와 중진작가 33인을 찾아서
임두빈 지음 / 가람기획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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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보다 소중한 우리 미술가라... 책을 대충 훑어보며 혹 내가 아는 이름의 화가나 조각가가 있나 싶었지만 없다. 하긴.. 있을리가 없다. 예술이란 것과는 거의 담을 쌓다시피한 나는 학창시절 의무적으로 가야 했던 미술관 두어번 외엔 전시회나 미술관 입구조차 가 본적이 없다.  유명하다는 미술 전시회를 서울에서나 열었지, 지방에서 해 본 적 있냐는 반박을 던지는 게 내게 가해지는 무식하다는 비난에 대한 유일한 방패막일 뿐이다.

 

    또한 화가라면 피카소, 고갱, 고흐와 같은 누구나 다 아는(모른다는 게 이상할 정도인) 서양의 몇몇 화가를 떠올릴 수 있을 뿐이며,  우리나라 화가로는 박수근이나 이중섭 외엔 아는 이름이 없다. "우리 나라 현재의 미술과 미술가"라는 주제는 한번도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던 생소한 주제다. 책 제목을 보고 부끄러웠다. 글쓴이는 나 같이 미술 전반에 무지할 뿐만 아니라 특히 우리 나라 미술의 현재에 대해서는 아예 아는 것이 없는 "미술 빈그릇"들을 위해 이런 제목을 설정한 것일까...?

 

  그림이라면 사진과 같이 사실적인 것이 "잘 그려진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조각 역시도 "진짜 같은 형상"이 잘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수준밖에 가지지 못한 내가 이 책에 소개된 화가와 조각가들의 예술을 이해하는 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글쓴이의 다양한 사고력과 미술 작품을 보는 누적된 안목, 그리고 섬세한 문장 표현으로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는 우리 미술가들의 작품세계가 내겐 어렵기만 했다. 공통의 상식 기반이 있어야 의사소통이 되는 법인데, 내게 바탕이 없으니 말이다. 책에 수록된 작품과 작가에 대해, 글쓴이가 "훌륭하다" "이 그림은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고 하니, '이 작품은 그런 측면에서 보아야 하는 거구나'하는 일방적인 수용만이 가능했다.

   하지만 내게도 마음에 와 닿는 몇몇 미술가와 작품이 있었다. 예전에 tv 광고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화가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 그 광고를 보면서도 그랬지만 푸근하고 편안한 느낌이 참 좋았다. 그리고 조각가 강대철과 전뢰진의 조각작품들.  강대철의 <K농장의 호박들>의 사회참여적인 성격이 내겐 깊이 와 닿았다. 전뢰진의 아늑하고 소박한 느낌의 조각들도 참 좋았다.

 

    글쓴이는 책 여러 곳에서 아주 자주 현재의 우리 미술계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우리 미술계에 엉터리들이 판을 치는 것은 장사에만 눈이 팔린 악덕 화상들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이 뭘 모르는 아마추어 수집가들을 거짓말로 현혹시켜 터무니 없는 가격에 형편없는 실력의 화가들 작품을 구매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p118)는 말이나 "나는 미술대학 교수진의 90%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충격적인 실화를 하나 소개하면, 내가 초청강연을 한 모 대학에서 학생과 교수들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는데 바 이상의 교수들 작품 수준이 우수한 학생들보다 못했다고 하는 사실이다."(p351)는 말들을 보자면 그렇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읽을 때면 그 방면에 전문가인 저자들의 말에 그대로 설득당해 버린다. 아는 게 없으니 글쓴이의 말이 내겐 전부 사실인 양 받아들여지는 거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한편으로 글쓴이의 말에 설득을 당하면서도 "엉터리"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 건지, 글쓴이의 판단기준은 무조건 옳은 것인가 하는 반발이 생기기도 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거의 모든 미술가들은 홍대와 관련있는 분들이다. 그게 잘 못 됐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리고 홍대와 연을 맺고 있는 분들의 작품세계가 훌륭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너무나 편중된 것 같은(?) 인물 선정이 그런 반발을 불러 일으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나라 현재의 미술"이라는 내겐 생소한 주제를 환기시키기엔 충분한 역할을 다 한 책이었지만, 뭔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 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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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를 사랑한 남자 -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를 푸는 심리학 탐험 16장면
조프 롤스 지음, 박윤정 옮김, 이은경 감수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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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흥미로운 책 한권을 읽었다. 영화보다도 훨씬 더 영화 같은 이야기, 소설보다도 훨씬 더 소설 같은 실제 이야기. 처음에 이 책을 손에 잡았을 땐,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로 시작되는 책 앞표지의 소개글을 보고 어렵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했었는데, 정말 기우였다. 처음의 걱정과는 달리, 350쪽에 달하는 약간은 두꺼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 밤잠을 설쳐가며 읽었다.

  글쓴이의 말마따나 "이 책은 이상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p9).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은 그간 "고전적 조건화"니 "혐오요법" "다중인격장애"등 이론으로만 두루뭉실하게 알고 있던, 심리학의 사례연구에 관한 것들이다. 이 책에 실린 16가지의 모든 주제들이 실제 있었던 일이며, 그를 토대로 심리학자들이 그들을 치료 혹은 연구했던 과정을 담고 있다. 몇몇 이야기는 전에 주워들은 것들도 있었지만, 이렇게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외 대부분의 사례들은 내가 정확히 몰랐던 것들이라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이 많다.

 

   두번째 주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1920년대 신문기자로 살았던 "솔로몬 V.셰르셰프스키"에 관한 이야기였다. 모든 것을 기억한다..? 라는 소제목만 보고 "좋 겠 다"는 부러움이 일었다.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공부한 것들을 다 기억할 테니까, 시험에 낙방할 일이 없을 테고, 그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심지어 솔로몬은 글자나 숫자들을 역순으로 기억해내고, 특정 단어의 뒤나 앞에 오는 글자나 숫자들도 알아맞힐 수 있었다."(p46) 무섭도록 놀라운 기억력이다. "보통 사람들은 생후 처음 몇 년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때는 기억력과 언어가 아직 발달하지 않아서 자료들을 저장하는 법도 모르기 때문이다."(p50) 하지만 솔로몬이라는 이 남자는 한 살도 안 됐을 때 엄마가 자신을 품에 안던 것조차 기억하는 남자다! 그것은 그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억을 저장하기 때문이라는 것.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의 기억력에도 단점은 있었다. 솔로몬의 기억은 사물을 시각화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시각화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단어를 기억으로 저장하는 것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신이 모든 것을 한 사람에게만 주시지 않았구나 하는 깨달음, 이럴 때 신은 공평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이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얼마전에 읽은 또다른 심리학 책에서는 그가 결국 정신분열증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만화유쾌한심리학1])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해서 좋은 것만도 아니구나. 하긴 그렇다. 내게 상처 준 사람들에 대한 것, 어느 정도 잊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당신이 그 때 말이야, 흰 셔츠에 검은색 줄 손목시계를 하고서, 내게 이런 표정을 지으며 비난했잖아.!"하고 다 기억하고 있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 적당히 잊을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망각이여. 고맙다.

 

    또 다른 사례 "손 씻기를 멈출 수 없었던 소년"에 관한 이야기는 강박증에 시달렸던 소년, 찰스에 관한 것이다. 나 역시 찰스만큼은 아니지만 강박증에 시달려 본 경험이 있어서 관심이 가는 주제였다. 이 책에 따르면 강박증의 유형은 "씻는 유형"과 "점검하는 유형"으로 나누기도 한다는데, 찰스가 씻는 유형이었다면 나는 한동안 점검하는 유형의 강박증에 시달렸었다. 혼자 지냈을 땐데, 집을 나서면서 가스밸브를 분명 잠근 것을 확인하고서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 가스불을 잠궜는지 확인해야 하는 강박증이 있었다. 밸브가 잠겨 있음을 확인하고 다시 집을 나서서는 이번엔 가스불은 잠궜는지에 덧붙여 문은 잠그고 왔나가 의심스러워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처음엔 혼자라, 확인해 줄 사람이 없어서 그러는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지만, 이 증상이 심해지니 견딜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내가 이건 제대로 했나? 저건 제대로 했던가?"하는 점검을 하기에 바빴다. 지금은 그런 증상이 거의 없어졌지만 말이다. 찰스의 강박충동장애에 대한 이야기와 치료방법은 나에게 여러모로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리고 "38명의 이웃들 앞에서 죽어간 여자" 키티 제노비스에 관한 이야기는 tv를 통해 본 적이 있었다. "함께 있는 사람들이 많으면 책임분산 효과가 나타나서 책임감을 덜 느낀다. '다른 누군가가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p84)라는 말을 설명해주기에 가장 적절한(너무나 안타깝지만 말이다.) 사연이 아닐까 싶다. 얼마전에 읽었던 범죄에방 관련 책에서도 어려운 일에 처했을 경우 그저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거기, 야구모자 쓴 아저씨! 저 좀 도와주세요"라고 구체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사람을 지목해야 한다는 걸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게 제노비스 신드롬이라는 이런 이유 때문이구나 싶었다.

 

  그 외에, 어린 시절의 의료사고 때문에, 남자에서 여자로, 또다시 남자로 성별을 바꾸어야 했고 성정체성 때문에 힘들어 했던 브루스에 관한 이야기, 프랑스에서 발견된 야생소년에 관한 이야기, 마지막 장에서 다루고 있는 다중인격에 관한 이야기까지 모두가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신비로운 생물체인가에 대한 생각을 거듭하게 되었다. 인간은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나는 걸까, 그렇게 교육되어 지는 걸까?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노래처럼 내 육체안에 다양한 인격이 존재할 수도 있는걸까? 사람은 왜 잠을 자는가? 잠을 자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 심리학이란 학문과, 인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참 좋은 시간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꼭 한번 권해 주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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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허에 떨어진 꽃잎 VivaVivo (비바비보) 3
카롤린 필립스 지음, 유혜자 옮김 / 뜨인돌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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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색적으로 그려진 표지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동화같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일까 하는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표지를 다시 보니 슬프다. 짙은 원색만큼 짙은 슬픔이 배어나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두껍지 않은 책이라 '빨리 읽을 수 있겠구나'하고 펼쳐든 책인데, 읽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책을 읽으면서, '만약 내가 이 상황이라면....'하는 상상이 끊임없이 이어졌기 때문에 그랬던 모양이다. 

   이 책은 1979년과 1980년에 발효된 중국의 "1가정 1자녀 정책"을 서양인의 관점에서 본 소설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1가정 1자녀 정책'에 따라 중국인들은 하나의 자녀 밖에 낳을 수 없었고, 그 하나의 자녀가 남자이길 바랬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중국의 1가정 1자녀 정책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남아선호사상이 깊게 박힌 나라라는 걸 알기에 궁금했었다. 1가정 1자녀 정책이 행해지는 중국에서 원치 않는 여자아이는 대체 어떻게 "처리(?)"되는가가..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성별감정을 통해 낙태를 해 버리나..? 잔인한 일이다. 아님 태어나도 여자아이는 공식적인 서류상에 기재되지 않는걸까..? 이 역시도 잔인한 일이다.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져버리는 일이나, 태어났어도 공식적으로 태어나지 않은 취급을 받는 일이나.. 
 

   나의 짧은 상상력은 거기까지.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살펴보자면 "매년 6만 명의 신생아가 살해되는데 모두 여아다."(p55) 물론 소설이라 정확한 통계인지는 모르겠다. 경악할 일이다. 내 짧은 상상력으론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신생아 살해방법"이 원치 않은 여자아이에 대한 처리방법(?)이라니..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열여섯살 레아. 아주 어렸을 때 독일인 부모에게로 입양된 중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여자아이. 레아의 친부모 역시 아들을 원했다.  레아는 태어나자마자 "비닐봉지"에 담겨져 독일인 부모에게로 넘겨지고.. 레아의 양부모는 그 사실을 레아에게 숨겨왔지만, 레아는 그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고 충격을 받는다. "한쪽 부모는 비닐봉지에 아기를 담아 남에게 줬고, 또 다른 부모는 그 사실을 숨겨 왔다. 아무도 솔직하지 않았다."(p80) 분노할 일이다. 아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남에게 줘버리다니... 사람이 사람에 대해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은가..? 책을 읽다가 레아와 함께 분노했다. 왜 그런 식으로 아기를 버려야했는가...?  하지만 책을 좀더 읽다 보니, 자신이 낳은 아기를 비닐에 넣어 생판 낯선 외국인에게 넘겨야 했던 레아의 생모가 이해가 됐다.  레아의 언니는 태어나자마자 강물에 던져졌다. 생모로서는 레아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분노보다는 안타까움만 가득했다. 마지막 장면은 레아 역시 생모를 용서했다는 의미겠지....?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레아라면 어떤 기분일까?" "내라 레아의 생모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 "비닐봉지에 든 아기를 받아든 레아의 양부모라면 어떻게 했을까?" ..........비단 중국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우리 나라 역시도 중국인과는 다른 이유에서지만 해외로 많은 수의 아이들을 입양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해외 입양 뿐만 국내 입양에 대해서도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나로서는 아직 판단기준이 없다.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입양아"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것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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