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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를 사랑한 남자 -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를 푸는 심리학 탐험 16장면
조프 롤스 지음, 박윤정 옮김, 이은경 감수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정말 흥미로운 책 한권을 읽었다. 영화보다도 훨씬 더 영화 같은 이야기, 소설보다도 훨씬 더 소설 같은 실제 이야기. 처음에 이 책을 손에 잡았을 땐,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로 시작되는 책 앞표지의 소개글을 보고 어렵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했었는데, 정말 기우였다. 처음의 걱정과는 달리, 350쪽에 달하는 약간은 두꺼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 밤잠을 설쳐가며 읽었다.
글쓴이의 말마따나 "이 책은 이상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p9).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은 그간 "고전적 조건화"니 "혐오요법" "다중인격장애"등 이론으로만 두루뭉실하게 알고 있던, 심리학의 사례연구에 관한 것들이다. 이 책에 실린 16가지의 모든 주제들이 실제 있었던 일이며, 그를 토대로 심리학자들이 그들을 치료 혹은 연구했던 과정을 담고 있다. 몇몇 이야기는 전에 주워들은 것들도 있었지만, 이렇게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외 대부분의 사례들은 내가 정확히 몰랐던 것들이라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이 많다.
두번째 주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는 1920년대 신문기자로 살았던 "솔로몬 V.셰르셰프스키"에 관한 이야기였다. 모든 것을 기억한다..? 라는 소제목만 보고 "좋 겠 다"는 부러움이 일었다.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공부한 것들을 다 기억할 테니까, 시험에 낙방할 일이 없을 테고, 그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심지어 솔로몬은 글자나 숫자들을 역순으로 기억해내고, 특정 단어의 뒤나 앞에 오는 글자나 숫자들도 알아맞힐 수 있었다."(p46) 무섭도록 놀라운 기억력이다. "보통 사람들은 생후 처음 몇 년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때는 기억력과 언어가 아직 발달하지 않아서 자료들을 저장하는 법도 모르기 때문이다."(p50) 하지만 솔로몬이라는 이 남자는 한 살도 안 됐을 때 엄마가 자신을 품에 안던 것조차 기억하는 남자다! 그것은 그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억을 저장하기 때문이라는 것.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의 기억력에도 단점은 있었다. 솔로몬의 기억은 사물을 시각화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시각화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단어를 기억으로 저장하는 것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신이 모든 것을 한 사람에게만 주시지 않았구나 하는 깨달음, 이럴 때 신은 공평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이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얼마전에 읽은 또다른 심리학 책에서는 그가 결국 정신분열증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만화유쾌한심리학1])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해서 좋은 것만도 아니구나. 하긴 그렇다. 내게 상처 준 사람들에 대한 것, 어느 정도 잊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당신이 그 때 말이야, 흰 셔츠에 검은색 줄 손목시계를 하고서, 내게 이런 표정을 지으며 비난했잖아.!"하고 다 기억하고 있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 적당히 잊을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망각이여. 고맙다.
또 다른 사례 "손 씻기를 멈출 수 없었던 소년"에 관한 이야기는 강박증에 시달렸던 소년, 찰스에 관한 것이다. 나 역시 찰스만큼은 아니지만 강박증에 시달려 본 경험이 있어서 관심이 가는 주제였다. 이 책에 따르면 강박증의 유형은 "씻는 유형"과 "점검하는 유형"으로 나누기도 한다는데, 찰스가 씻는 유형이었다면 나는 한동안 점검하는 유형의 강박증에 시달렸었다. 혼자 지냈을 땐데, 집을 나서면서 가스밸브를 분명 잠근 것을 확인하고서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 가스불을 잠궜는지 확인해야 하는 강박증이 있었다. 밸브가 잠겨 있음을 확인하고 다시 집을 나서서는 이번엔 가스불은 잠궜는지에 덧붙여 문은 잠그고 왔나가 의심스러워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처음엔 혼자라, 확인해 줄 사람이 없어서 그러는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지만, 이 증상이 심해지니 견딜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내가 이건 제대로 했나? 저건 제대로 했던가?"하는 점검을 하기에 바빴다. 지금은 그런 증상이 거의 없어졌지만 말이다. 찰스의 강박충동장애에 대한 이야기와 치료방법은 나에게 여러모로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리고 "38명의 이웃들 앞에서 죽어간 여자" 키티 제노비스에 관한 이야기는 tv를 통해 본 적이 있었다. "함께 있는 사람들이 많으면 책임분산 효과가 나타나서 책임감을 덜 느낀다. '다른 누군가가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p84)라는 말을 설명해주기에 가장 적절한(너무나 안타깝지만 말이다.) 사연이 아닐까 싶다. 얼마전에 읽었던 범죄에방 관련 책에서도 어려운 일에 처했을 경우 그저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거기, 야구모자 쓴 아저씨! 저 좀 도와주세요"라고 구체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사람을 지목해야 한다는 걸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게 제노비스 신드롬이라는 이런 이유 때문이구나 싶었다.
그 외에, 어린 시절의 의료사고 때문에, 남자에서 여자로, 또다시 남자로 성별을 바꾸어야 했고 성정체성 때문에 힘들어 했던 브루스에 관한 이야기, 프랑스에서 발견된 야생소년에 관한 이야기, 마지막 장에서 다루고 있는 다중인격에 관한 이야기까지 모두가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신비로운 생물체인가에 대한 생각을 거듭하게 되었다. 인간은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나는 걸까, 그렇게 교육되어 지는 걸까?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노래처럼 내 육체안에 다양한 인격이 존재할 수도 있는걸까? 사람은 왜 잠을 자는가? 잠을 자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 심리학이란 학문과, 인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참 좋은 시간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꼭 한번 권해 주고 싶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