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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조선 2 - 꽃피는 인쇄술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역사연표를 꺼내보았다. <1234년 : 고려, 금속활자로 상정고금 예문 간행>,<1443년 : 훈민정음 창제>, <1446 훈민정음 반포>, <1450년 : 구텐베르크, 활판인쇄술 시작>, <1453년 : 비잔틴 제국 멸망>. 역사 이래 어느 시대가 격동의 시대가 아니었겠냐만은 이 시기의 연표를 살펴보니 우리 나라 역사로 보나, 굴곡이 많았던 시기인 것 같다. 소설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겐 단순히 암기꺼리에 불과했던 간략한 연표가 소설가의 상상력을 통해 이런 이야기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놀랍다.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까..?
[구텐베르크의 조선] 2권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다. 앞부분은 인쇄틀의 균열을 메우기 위해 안티몬이라는 물질을 구하기 위해 동로마제국에 가게 된 석주원과 이레네가 목격한 동로마제국의 최후에 관한 것이다. 역사를 배우면서 서로마제국이 멸망(476년)하고도 1000여년을 지속해 왔던 제국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멸망되는 장면을 머리 속으로만 그려보았었다. 비잔틴 제국 최후의 날에 대해서는 서양사를 통해 혹은 서양 소설을 통해 자세히 접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한국인 소설가가 쓴 비잔틴 제국 최후의 날의 모습을 먼저 접하게 되다니 기분이 묘하다. 역사소설을 여러 권 접하면서도, 특정 국가, 특정 시기를 범위로 한 이야기가 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구텐베르크의 조선]은 조선과 명, 사마르칸트와 오스만제국, 동로마제국과 독일(당시 신성로마제국 되겠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장소를 무대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내겐 무척 신기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소설이다. 특히 비잔틴 제국의 멸망과 관련된 두 남자(팔라테토스와 데미티리오스)의 비극적인 운명과 "그리스의 불"이라는 소재는 마치 판타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신선했다.
이 소설을 드라마나 영화로 극화한다면 무척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잘만 만들면(어설프게 만들려면 만들지 말아주오. 원작의 감흥을 깨뜨리진 말아줘요.) 동서양의 문화가 혼합된 새로운 의미의 퓨전사극 하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까지, 한발 앞서 느껴본다.
2권의 뒷부분은 구텐베르크 공방의 위기에 관한 것이다. 구텐베르크에게 돈을 빌려준 악덕 고리대금업자 푸스트가의 형제가 계약상의 헛점을 이용, 구텐베르크 공방을 낼름 삼키려는 음모를 꾸민 것이다. 호사다마라.. 남 잘 되는 꼴 절대로 못 보는 그런 사람들이 꼭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인쇄소 경영엔 관심도 없던 푸스트家의 형제가 구텐베르크의 인쇄공방이 비약적인 발전을 보고는 대부금을 투자금으로의 전환을 요구, 인쇄소에 대한 경영권을 요구한 것. 재판과정에서 이레네의 법률지식이 상당한 도움을 주어 구텐베르크 공방은 간신히 위기를 넘기지만 상당한 손해를 보는 것으로 일단 2권은 마무리짓고 있다.
"1455년.
마침내 로마 교황청은 금속활자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것으로 고려에서 시작되어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발전을 거듭한 금속활자가 멀리 유럽에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p154). 작가는 이 시기 유럽에서 이루어진 인쇄술의 발전에 대해 전적으로 우리의 주인공 석주원에 의한 것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보자면(작가의 의도를 마음에 와 닿는대로 표현해보자면) 구텐베르크는 단지 열정을 지닌 한명의 "사업가"였을 뿐이다. 내겐 국수주의적 자부심을 안겨주는 소설가의 상상력이 서양인들에게는 터무니없는 사실 왜곡으로 여겨지겠지..? 역사의 어디까지가 진실을 말하고 있으며, 소설의 어디까지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2권을 읽으면서 1권을 덮으며 궁금했던 점 중에서 몇 가지는 해결됐다. 석주원과 이레네는 마인츠 시민권을 얻었고, 결혼하게 된 것.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속 독일에서 머무르게 될 것인가..? 그리고 또 하나 궁금했던 발트포겔과 주원의 관계는 2권에서는 발트포겔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있다. 2권을 덮으며 새로운 궁금증이 생긴다. 석주원은 결국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일까..? 반쪽의 위기에 처한 구텐베르크 공방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