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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쟈핑와 지음, 김윤진 옮김 / 이레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거의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무작정 펼쳐든 책이다. 잿빛이라고 해야하나, 하여간 무겁고 약간은 우울해 보이는 표지 색깔이며, "친구"라는 제목에만 혹해 손에 잡은 책. 회갈색 표지에서 아련한 추억이 내 눈에 보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마음 찡한 소설 한 권을 읽고 싶었다. 이 책이 그런 책인 줄 알았는데,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수필집이었다. 옮긴이의 말을 인용해 보자면 이렇다.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쟈핑와의 작품 [친구]는 그가 1983년부터 최근까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산문, 머리말, 수필 등 다양한 장르로 무려 24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모아 담담하게 주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묵직한 중수필집이다."(p440). 그렇단다. 이 책은 수필집이란다. 것도 "묵직한 중수필집".
옮긴이도 말하고 있듯 이 책은 "주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은 두 부류다. 그의 가족 혹은 그의 친구..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대부분이 그의 친구이고, 글쓰기를 본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그의 주변엔 글쓰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혹은 서예(서화?)를 하는 사람 등 주로 예술분야의 벗들이 많다. 그들을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었으며, 그들과 만나면 주로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지, 그 친구는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를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달까.. 더러는 남의 책 앞머리에다 써준 추천사 같은 글들도 보이고, 혹은 죽은 친구 혹은 선후배를 위한 추모의 글 같은 것도 보인다. 수필이기 때문일까..? 지극히 "개 인 적 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앞의 몇몇 이야기를 읽다가(사이즈는 작지만, 450쪽에 달하는 꽤 두꺼운 책이다.)는 내가 이 사람의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왜 듣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덮어버릴까도 싶었다. 하지만 한편한편 읽다보니, 사람살이의 이야기라 그런지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고, 의외로(?) 재미도 있어서 읽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게다가 글 곳곳에 배어나는 위트와 유머스러움도 내가 책을 끝까지 읽는데 도움을 준 요소다. 그 중에서 재미있었던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본다.
"시안의 화가 천윈강에게는 쌍둥이 아들이 있는데, 이름이 각각 룽먼과 둔황이다....(중략) 두 아들은 생김새도 똑같고 옷도 똑같이 입고 다녀서 다른 사람들은 도무지 구분을 할 수가 없다. 심지어 윈강 부부도 가끔은 헷갈려 한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약을 먹일 때면 한 아이는 약을 한 번도 먹지 못하는 반면, 한 아이는 약을 두 번씩이나 먹는다."(p145) 중국의 유명한 윈강, 룽먼, 둔황 석굴의 이름을 딴 식구들의 이름도 재미있었지만, 부모조차 구별하기 힘든 쌍둥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너무 웃겨서 한참이나 실실거렸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에서 소개된 "땅에 뭐든 묻어두면 자라잖아. 할머니! 그런데 땅에 묻어 둔 할아버지는 왜 자라지 않는 거지?"(p285)라고 묻는 아이의 순수함이란...
책을 읽으며, 내 가족에 대해, 그리고 내가 의도적으로 도망치고 있는 친구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글쓴이는 스스로가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그의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야말로 "지음"의 벗을 가졌구나 하는 부러움이 일었다.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어서인지, "중국문단을 대표한다"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책에 소개된 요절한 여류 작가 싼마오에 대해서도 무척 궁금해 인터넷을 한참이나 뒤져보았지만, 거의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어서 아쉬움이 컸다.
"수필"이란 장르 때문이겠지만, (하지만 수필과 가을 사이에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는 설명해내기 힘들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가을에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어느 작가의 인간관과 인간관계를 통해, 나의 인간관과 인간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책으로 기억될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