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철학의 즐거움 -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들려주는 120편의 철학 앤솔러지
왕징 엮음, 유수경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5월
평점 :
철학의 즐거움을 읽다.
철학이라는 단어는 왠지 무겁다. 그리고 추상적이고 어렵다.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 한데, 철학자라 불리우는 역사상의 인물을 살펴보면 너무나 다재다능한 완벽한 인간의 표본이 되거나 혹은 괴팍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떠올라, 그들이 "철학"에서 말하는 "삶"은 평범한 그것과는 동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꽤나 두툼한 분량의, 게다가 "철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을 한 권 만났다. 읽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은 "철학"보다는 "즐거움"이라는 단어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해결코자 했다. 그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이 책의 부제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들려주는 120편의 철학 앤솔러지". "앤솔러지"란 단어를 몰랐다. 찾아봤다. "어원은 그리스어(語)의 앤톨로기아(anthologia)로 ‘꽃을 따서 모은 것’이라는 뜻이다. 짧고 우수한 시의 선집(選集), 특히 여러 작가들의 시를 모은 것을 가리킨다."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시뿐만 아니라 산문집도 ‘앤솔러지’라고 하는 경우가 있으며"라는 설명도 덧붙여져 있다.
그렇다. 이 책은 [참과 진리] [생명의 존귀함] [고귀한 덕] [인간의 본성] [우정] [사랑] [삶의 즐거움]이라는 일곱가지 주제로 나뉘어진 삶에 대한 짧은 글모음이다. 이 책을 굳이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책에 실린 유명한 인물들의 이름 때문이기도 하다. 헤르만헤세, 루쉰, 투르게네프, 에리히프롬, 에밀졸라, 싼마오, 톨스토이, 타고르, 라이너마리아릴케, 칸트, 베이컨, 볼테르, 루소, 칼릴지브란, 몽테뉴 뭐 등등.. 내 속에 든 지적 허영심 같은 것의 발동이었을까. 이 책 한권으로 그 유명한 인물들을 알게 되는거야..? 하는...
책에는 일기 같은 글들도 있고, 아주 짧은 분량의 이야기들도 있고, 실린 글의 성격들이 다양하다. 성격이 급한터라, 처음부터 끝까지 한꺼번에 읽어버렸지만, 다 읽고 보니 이 책은 그렇게 읽을 책은 아닌 것 같다. 책의 부제처럼 "삶에 지"칠 때마다 찾아서 한편한편 읽어볼 때 더욱 와 닿는 글이 될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 글이 몇 편 있다. 투르게네프가 소개하고 있는 "소인배"에 관한 글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멍청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p24)된 그 소인배는 그 짜증나는 소문을 막기 위해, 다른 유명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다닌다. 그 유명화가가 한물 갔는데 넌 아직도 몰랐냐, 그 책 재미없다고 소문난 지 한참인데 너는 아직 몰랐냐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를 악랄하고 못된 녀석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정말 천재인 것 같다고, "권위에 저항하는 사람으로 평가"(p25)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그는 또 다른 권위자가 되어 간 것이다. 맞는 것 같다. 어느 사회에서나 헛된 명성과 잘못된 권위가 종종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선뜻 반박할 용기는 없다. 다른 사람이 좋지 않다고 하는 걸 나 혼자 좋은 것이라고 우길 용기도 없고,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하는 것을 나 혼자 비난할 용기도 없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는 식으로 묻어갈 뿐..
오그 만디노의 "만약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이라는 글도 깊이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매일이 내 생의 마지막날이라면 결코 "때우거나" "죽이면서" 보낼 시간은 없을텐데, 나는 그간 그저 보내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반성해봤다. 그 밖에도 관심가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곁에 두고 생각날때마다(짧으니까.) 한편씩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철학을 형이상학의 최상위 범주에 둠으로써 우리를 "ㅇㅇ주의"니 아니면 "관념""이념""궤변" 따위의 노예로 전락시키곤 합니다. 그러나 죠르쥬 깡길렘에 의하면 우리고 철학을 배우고 공부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반성(깨달음)>에 있다고 합니다."(p398)라는 편저자의 말을 철학에 대한 나의 잘못 굳어진 생각을 수정하는 기반으로 삼아야겠다. 묵직하지 않은 철학책이었다. 선각자들의 삶에 대한 여러 생각을 살펴볼 수 있었던 괜찮은 시간을 제공해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각각의 글쓴이들에 대한 생몰연대나 간단한 이력이 함께 기재 되어 있었더라면 글을 쓴 배경이나 그 성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을텐데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