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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
이덕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역사가 이덕일의 새 책이다. 제목이 특이하다.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라니.. 이 무슨 소린가 싶었다. 서문을 읽으면서 그 궁금증은 해결됐다. 기존의 역사서와는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온 김일경의 후손을 회상하며, "그 분을 생각하면 역사의 붓을 잡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돌이켜보곤 한다."(p7)는 역사가 이덕일. 이 책의 제목은 김일경이 영조에게 했다는 말에 기인한다. 김일경은 "경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노론이 지지하는 영조가 즉위하면서 가장 먼저 사형당했던 인물이다.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다고 믿은 그는 영조에게 "시원하게 나를 죽이라"고 맏섰다"(p6)고 한다.
역사라는 테두리에도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지만, 역사가 이덕일의 글을 좋아하고 일부러라도 챙겨서 읽는 편이기에 그의 새 책을 잡은 기쁨이 크다. 그래서일까. 다른 책보다 그의 글은 한 글자 한글자, 한 문장 한문장 꼼꼼히 씹어가며 읽게 된다.
김일경을 회상하며 책을 시작했기 때문일까, 이 책에서 그가 다루고 있는 스물다섯명의 인물은 "그 시대와는 불화했던 사람들"(p11)이다. 그 중에는 정도전이나, 최치원, 허난설헌, 홍경래, 김시습과 같이 역사서를 통해 익히 그 이름을 들어왔던 인물도 있고, 이경석, 정하상, 유몽인, 이광사와 같이 낯선 이름도 있다. 자신의 시대와 불화했던 인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선구자"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 시점에서 보았을 때(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겠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간 인물들이었기에 자신의 시대와 마찰음을 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적당히 남들처럼 그렇게 어울려서 살 수 없었던 인물들...
그 자신이 정승이라는 최고위직에 있으면서도, 기득권을 가진 지배층이면서도, 오히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동법의 시행을 주장한 김육을, 대한민국의 정치인들과 비교해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뛰어난 재주와 학식을 가졌으면서도 그 뜻을 마음껏 펼 수 없었던 박제가(와 조선시대의 서얼들), 그리고 신분의 한계 때문에 아깝게 묻혀버린 인재 최치원을 보며, 평등사회라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과연 능력대로 대우 받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승자의 관점, 남성중심적이고 성리학적 관점에서 기록된 역사이기에 그간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졌던던 강홍립과 천추태후, 이경석, 이징옥의 삶을 다시 보며, 인물판단에 있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역사가는 숨겨졌던 진실을 바라보게 하는 안경이다. "[사기]를 쓰기 위해 살아남은 사마천, '사초'를 전하기 위해 죽어야 했던 김일손, 상식을 뒤엎었던 신채호!"(p10)와 같이 "그 시대가 아니라 다음 시대와 대화"(p10)하려고 한다는 역사가 이덕일은 그간 내게 좋은 안경의 역할을 해 왔다.(앞으로로 그럴꺼라 믿는다.) 전혀 문외한이었던 역사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해 주었고, "이런 글을 쓴 사람이 누구야?" 싶어서 책을 읽다말고 저자의 이름을 살피며 읽었던 역사책은 그의 책이 내겐 처음이었기에..
다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각각에 대해서 한 권의 책을 엮는다고 해도 설득력있고, 쉽고 재미있게 글을 쓸 수 있는 역사가가 그 라는 생각이 들기에, 오히려 이 책에 대해서는 다소의 아쉬움이 남았다. 좀 더 자세히, 좀 더 길게 이야기했어도 좋을텐데 하는 것. 명강사의 짧은 강연이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