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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잔혹의 세계사 - 인간의 잔인한 본성에 관한 에피소드 172
기류 미사오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사랑보다는 "잔혹"에 훨씬 무게를 둔 책.
史라는 글자가 달린 책은 꼭 읽어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다. 모순되는 말이겠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다 느껴졌을 때, 오히려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과거를 살았던 그들. 내가 대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도 있고, 정반대의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역사 책 속의 사람들의 삶을 보고, 이야기를 주고 받고, 배우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하고, 인물평을 하기도 하고. 그런 과정이 내겐 지친 인간관계의 회복제가 되기 때문일까...?
자. 이 책은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다. 역사 속의 사랑 그리고 잔혹.. 궁금했다. 어떤 이야기들이 실려 있을까? "사랑과 잔혹"이라는 매혹적인 제목에 홀려 미쳐 간과했던 것은 "인간의 잔인한 욕망에 관한 에피소드 172"라는 부제. 그래.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책을 펼쳐들며 기대했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없다.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해도 괜찮을 만큼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잔인한 이야기들이다. "사랑과"를 빼고 "잔혹의 세계사"라고 해도 충분히 책 내용을 포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류 마사오"라는 필명을 쓰는 두 공동저자의 전작들을 보아하니 대충 분위기가 짐작이 갈 법도 하다.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1,2,3] [알고 보면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 [무시무시한 처형대 세계사] [뒤바뀐 세계사의 진실] [무서운 세계사의 미궁]등.. 와우.. 저자는 영화를 본다면 호러물만 관람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전작들이다.
저자의 말, 첫마디가 심상찮다. "나는 기묘한 잔혹함을 좋아한다."(p5) "모두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잔혹한 행위이기는 하지만 검붉은 피가 흐르는 생생한 장면이 아니라서 그런지 오히려 기묘한 공허함이 길게 꼬리를 끈다."(p5). 하지만 글쓴이가 역시 밝히고 있지만,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피가 철철 넘치는 생생한 이야기가 많"(p5)다.
어설픈 귀신이야기만 보고서도 잔뜩 겁을 먹는 나 같은 겁쟁이들에게 이 책은 읽어내기 다소 역겨운 책이었다. "역겨운"이란 표현이 극단적이긴 하지만, 내겐 그랬다. 책 내용들이 소름끼치는 것이기도 하고, 부족한 상상력이건만, 이 책은 읽으면서 그 장면 하나하나가 왜 그렇게 생생하게 상상이 되는 건지, 정말 읽기가 고역이었다. 군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죽여서 요리해 바친 요리사의 이야기(p157)나, 1974년 일어난 일이라는 생방송 도중의 아나운서 자살(p135)이라든지, 사람의 몸에서 포를 뜨듯 살을 잘라내는 형벌이라는(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능지처참형에 관한 이야기(p61), 한 겨울에 어린 소녀에게 물을 끼얹어 얼음조각을 만들어버린 백작부인에 관한 이야기(p105) 등. 책을 읽으며 머리 속에서 그 장면을 상상해내고 있는 것이 끔찍할 정도로 잔인한 인간들의 이야기에 전율했다. 그러면서도 하나하나의 이야기 내용이 짤막하다는 것을 핑계로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내 손길이란....그것이 이 책의 매력...?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전부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데, 그 잔인함이 속을 다소 메스껍게 했지만, 뭐..나쁘진 않았다. 지금껏 내가 읽었던 이야기들 속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난 것으로 만족하련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글쓴이의 잔혹한 취미엔 공감이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