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 클리닉 - 비뚤어진 조선사 상식 바로 세우기
김종성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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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엔 이런 게 대세인가..?  내 눈에 띄는 책들에 한정되는 문제일런지 모르겠는데 비주류의 역사서를 자처하는 책들이 부쩍 눈에 많이 띄인다. 최근에 읽은 역사서들 절반 이상이 "그동안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던" 여성의 역사, 민중의 역사, 소수의 역사와 같은 주제이며, 주류의 역사에서 왜곡되거나 잘못된 관점을 보완하겠다고 자처하는 책들이 많다. 이 책 [조선사 클리닉]도 그렇다. 제목부터  잘못된 무언가를 바로잡겠다는 느낌이 강하고 부제는 "비뚤어진 조선사 상식 바로 세우기"이다. 얼마전에 읽은 [조선비화]라는 책에서 글쓴이의 서문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서문의 제목의 "사극이 아니라 사기극이로다"였는데, 대중의 관심을 끄는 사극이 얼마나 사소하면서도 치명적인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가에 대해 언급한 글이었는데, 무척 공감가는 글이었다. 그런데 이 책 [조선사 클리닉]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러한 오류들을 조목조목 찾아내서 바로잡아주겠다니 기대가 무척 컸다.

 

   글쓴이는 그간 잘못 알려진 조선사 상식을 네 개의 큰 주제 아래 50개의 의문해결 형식으로 구성하여 풀어나가고 있다. 사극의 이미지 혹은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이나 "그렇다더라~"는 식으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 온 조선사 전반의 상식에 대해 "과연 그러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는 글의 의도가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읽으면서 그간 내가 잘못 알았거나 혹은 전혀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 유익했다.

 

     예를 들자면, 연산군에게 충언을 하다 죽임을 당했다고 알고 있는 김처선의 이미지는 "곧고 바른 신하"라는 인상이 강했는데,  글쓴이가 소개하고 있는 <세조실록>등에 기재된 가끔은 도를 지나치다 싶을만큼 자유분방했던 김처선의 모습은 의외였다. 글을 읽다보니 연산군에 대한 김처선의 직언도 그런 자유분방한 성격에 기인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p231, 32주제 진짜로 내시가 왕권을 위협했을까?) 또 하나. 주제 31의 군호(君號)에도 숨겨진 의미가 있다?는 주제도 흥미로웠다. 태조와 태종이 아들의 군호에 "安"이나 "寧"을 돌림자로 넣은 것에 대해 글쓴이가 가한 해석이 그럴 듯 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글쓴이가 의도했던 바대로 괜찮은 책이긴 했지만, "책 내용 중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언제라도 독자 여러분의 질책을 기꺼이 받아 들일 것이다."(p7)는 저자의 말을 믿고(?) 책을 읽으며서 다소 불편했던 한두군데 정도 지적해보고자 한다. 글쓴이의 의도는 알겠지만, 책의 상당부분이 "무슨무슨 사극에서는 이렇게 상황을 설정하고 있는데 실은 그건 잘못된 것이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 사극들을 시청했던 독자들이라면 충분히 공감이 가겠지만, 글쓴이가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극을 시청해보지 못한 나 같은 사람에겐 "무슨 말이지?" 싶은 부분이 종종 있었다. 글쓴이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질감 같은 것이 느껴졌달까...?

   그리고 50개라는 다소 많은 주제를 다루려다 보니 그랬겠지만, 각각의 주제에 대해 수박 겉핥기 식으로 대충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친절하지 않다는 느낌?  글쓴이가 여러 부분에서 사용하고 있는 비유들은 가끔은 지나치게 도식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너무 과장된 비유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p94, "고장난 컴퓨터 = 조선 / 수리점 = 명나라" 같은 비유들을 읽기에 거북했다.)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아나가는 재미도 있었지만 다소의 아쉬움이 남기도 하는 책 [조선사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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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
이수광 지음, 정윤정 외 극본 / MBC C&I(MBC프로덕션)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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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에 관한 이야기만 잔뜩 읽었더니 다소 으스스하다. 간밤에 잠자리에 누워 읽은 이야기는 하필이면, "돌아온 옥이 살인사건"이라는 소제목의, 귀신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의 이야기라 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책을 읽으면서 늘 부족한 상상력을 탓하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어찌된 것이 장면 장면이 너무 상상이 잘 되서 추석도 지난 이 늦여름에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오싹함이 들어 애를 먹었다. 작가의 장면묘사가 훌륭해서인지, 부족한 상상력이 끔찍한 장면을 상상하는 데만 비상한 능력을 부리는 탓인지 모를 일이다.

 

   별순검이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모았고, 마니아층까지 형성했다는 인터넷뉴스를 얼핏 본 적이 있다. 예전엔 tv드라마를 시간 맞춰 잘 챙겨보았건만 최근 몇년간은 그런 기억이 없다. 드라마가 끝나갈 때 쯤 "그 드라마 재미있었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한 번 보기나 할껄 하는 아쉬움이 들곤 했다. 별순검이라는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

 

  별순검을 책으로 읽었다. 읽고나니, 드라마로 봤더라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 별순검의 시대적 배경은 1895년 갑오개혁에서 1905년 을사늑약까지다. 1895년은 일본군의 경복궁 난입사건, 청일전쟁, 동학농민전쟁, 명성황후 시해사건 등으로 나라가 온통 뒤숭숭하던 시기였다."(서문 중에서) 시대적 배경이 그러하기 때문인지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도 "뒤숭숭하다." 어느 죽음에 사연이 없겠냐만은 사연많은 사람들의 생과 사의 모습은 그 시대를 담고 있다. 죽음을 통해 오히려 그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는 일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지는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열한가지의 살인사건을 살펴보는 일은,  제국주의 외세가 국내정치에 위협을 가하고, 전통적인 신분사회가 무너지고 있던 때, 양반과 평민, 조선인과 외국인, 신사상과 구시대적 발상이 마구 뒤범벅되고 그에 따른 혼란으로 소용돌이치던 그 시대의 생활상과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또한 그 시대의 사건 해결을 담당했던 별순검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기회이기도 하고. 또 하나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한 점은, 서구 중심의 교육을 받아온 탓인지 서양의 것은 우월한 것, 우리 전통의 것은 열등한 것으로 도식화해왔던 이분법적 사고. 서양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과학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해왔지만, 우리 나라는 주먹구구식으로 해결하지 않았을까 하는 잘못된 사고 방식이 내 안에 자리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별순검들이 [무원록] 등의 서적을 참고하여 과학적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방식이 유독 눈에 띄었다.

 

   요 근래  그 시대 경성(한성)에 관한 이야기를 몇 권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책들의 공통점은 자살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는 것. 그 시대 사람들도 그렇게 살다 그렇게 죽었구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닌 듯 하다. 얼마전에 한 연예인의 가슴 아픈 자살 때문에 뒤숭숭했는데, 삶이란 게 그런가 보다. 다들 힘들고 가슴 아픈 사연 하나쯤 가지고 살아가는... 죽음을 통해 삶을 생각케 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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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회 추억
신영복 지음, 조병은 영역, 김세현 그림 / 돌베개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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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복 교수의 이름은 여러 매체를 통해 익히 들어왔지만, 어떤 분인지도 잘 몰랐고, 그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등  유명한 책들도 읽어보지 못했다. 이 책 [청구회추억]이 내겐 신영복 교수와의 첫 만남이다. 글쓴이에 대한 기본상식없이 예쁜 표지에 끌려 선택한 책에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20주년을 출간하는 기념 오디오북 CD가 딸려있었다. 글쓴이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하지만, 그가 장기간 감옥에서 생활했다는 이야기는 어디서 주워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 이 오디오북부터 먼저 들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에 들어있는 16부분의 작은 주제를 낭독해 오디오북으로 만든 것인 듯 한데, 그 중에서도 열네번째 실린 "여름 징역살이"가 마음을 짠하게 했다.  없이 사는 사람들에는 겨울이 고역이지만, 없기는 더한 징역살이에서는 겨울보다 오히려 여름이 못 견딜 계절이라는데 그 이유가 더위 때문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증오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서 미움 받아야 한다는 것..

 

  오디오북도 다 듣고, 책도 다 읽고 난 후에야 글쓴이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서 검색을 해 보니 인혁당 사건으로 약 20년의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말이 쉬워 20년이지, 그간 삶의 시간이 아니었으리라. 이 책 [청구회추억]은 그의 옥살이 초기에 쓴 짤막한 이야기이다. 글쓴이가 1966년 어느 봄날 서울대학교 문학회 학생들과 서오릉으로 소풍을 가는 길에 만난 여섯 명의 아이들과 청구회를 결성하게 된 사연과 청구회 모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풍길에서 우연히 만난 남루한 차림의 아이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모임으로까지 만든 글쓴이의 순수한 마음과 60년대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아련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한 이야기다. 그 여섯아이들 대부분이 가난해 중학교로 진학할 수 없어,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로 진출해야 했고, 그러면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청구회 모임에 즐겁게 참여했던.. 그리고 다 큰 어른(?)인 글쓴이가 그들과의 만남을 꾸준히 이끌어 나갔던 점도 무척 신기(?)해 보인다. 함께 실린 순한 삽화들 덕분에 마치 한편의 동화를 읽는 것 같았다.   글쓴이의 갑작스런 징역살이로 인해 와해되어 버린 그들의 만남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만약 글쓴이가 감옥으로 가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직도 청구회 모임을 이어나가고 있지 않을까..? 어려운 시절을 만나,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그 시대의 가슴 아픈 추억. - 청구회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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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로드 - 라이더를 유혹하는 북미 대륙과 하와이 7,000km
차백성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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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와 여행의 결합, 매력적이다.

  남의 여행기 읽는 것을 그닥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읽어볼수록 매력적인 책이 여행기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직접 나의 두 눈으로 보고, 나의 두 발로 디뎌보는 것만은 못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 힘들다는 핑계는 여행기로 스스로를 만족시키고 위로시키곤 한다. 자, 이번에 내가 펼쳐든 책은 [아메리카 로드]다. 얼마전에 읽은 미국에 관한 책 탓인지, "아메리카"라는 단어가 내 눈에 유난히 크게 들어와 선택한 책이었다. 여행자의 눈을 통해 본 미국의 모습은 어떠할지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독특한 여행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여행기를 읽으면서 매번 느꼈던 것이지만, 여행기를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여행에 대해 한 권의 책으로 펴내도 좋다고 자부할만큼의 독특한 자신감과 만족감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자전거로 미국을 여행한 이야기라... 미 서부해안 3천 킬로미터의 대장정, 그리고 하와이를 자전거로 내달리다니...!  미국보다 훨씬 좁은 우리 나라를 자전거로 누벼보겠다는 생각조차 감히 못 해 본 나에게 글쓴이의 무모해(?) 보이는 미국 여행기는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고 설레는 경험이었다. 더군다나 글쓴이의 나이(연세)가 환갑을 바라보고 있다니(51년생이시란다~!) 그 도전정신과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정말 부럽기 짝이 없다.

 

   여행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일까. 그가 여행길에서 만난 여행자들의 이야기는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낯섬과 두려움을 사그러들게 했다. 현지 동포들과의 따뜻한 만남 역시 그렇게 푸근해보일 수 없다. 책을 통해 내가 궁금해했던  미국에 관한 이야기, 미국 서부 개척시기의 인디언과 관련한 이야기도 적당히 섞여 상식을 보충하는 재미도 준다. 하와이에서는 우리 이민 1세대에 관한 이야기가 가슴 한 켠을 아프게도 하지만.  글쓴이의 연륜과 멋진 사진과 자전거 이야기가 적절히 섞여 맛있는 비빔밥처럼 감칠맛 도는 여행기였다.  "자전거여행가"이며, "자전거 전문지 [자전거생활]에 5년간 여행기를 연재했"(책 앞날개)던 기고가이기 때문인지, 책 말미에는 자전거 여행을 위한 꼼꼼한 준비사항까지 부록으로 실려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자전거 여행에 관심이 부쩍 간다. 굳이 자전거 여행이 아니더라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바람도 간절해진다. 늘 그렇지만.. 떠날 수 있고, 떠났고, 이렇게 글로 남길 수 있는 그들. 부럽다. "연륜과 독서, 풍부한 경험으로 다져진 내공이 느껴진다."는 추천의 말마따나 독특하면서도 그 독특함이 불편하지는 않았던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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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잔혹의 세계사 - 인간의 잔인한 본성에 관한 에피소드 172
기류 미사오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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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보다는 "잔혹"에 훨씬 무게를 둔 책.

史라는 글자가 달린 책은 꼭 읽어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다. 모순되는 말이겠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다 느껴졌을 때, 오히려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과거를 살았던 그들. 내가 대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도 있고, 정반대의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역사 책 속의 사람들의 삶을 보고, 이야기를 주고 받고, 배우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하고, 인물평을 하기도 하고. 그런 과정이 내겐 지친 인간관계의 회복제가 되기 때문일까...?



   자. 이 책은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다. 역사 속의 사랑 그리고 잔혹.. 궁금했다. 어떤 이야기들이 실려 있을까? "사랑과 잔혹"이라는 매혹적인 제목에 홀려 미쳐 간과했던 것은 "인간의 잔인한 욕망에 관한 에피소드 172"라는 부제. 그래.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책을 펼쳐들며 기대했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없다.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해도 괜찮을 만큼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잔인한 이야기들이다. "사랑과"를 빼고 "잔혹의 세계사"라고 해도 충분히 책 내용을 포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류 마사오"라는 필명을 쓰는 두 공동저자의 전작들을 보아하니 대충 분위기가 짐작이 갈 법도 하다.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1,2,3] [알고 보면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 [무시무시한 처형대 세계사] [뒤바뀐 세계사의 진실] [무서운 세계사의 미궁]등.. 와우.. 저자는 영화를 본다면 호러물만 관람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전작들이다.

 

  저자의 말, 첫마디가 심상찮다. "나는 기묘한 잔혹함을 좋아한다."(p5) "모두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잔혹한 행위이기는 하지만 검붉은 피가 흐르는 생생한 장면이 아니라서 그런지 오히려 기묘한 공허함이 길게 꼬리를 끈다."(p5). 하지만 글쓴이가 역시 밝히고 있지만,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피가 철철 넘치는 생생한 이야기가 많"(p5)다.

 

    어설픈 귀신이야기만 보고서도 잔뜩 겁을 먹는 나 같은 겁쟁이들에게 이 책은 읽어내기 다소 역겨운 책이었다. "역겨운"이란 표현이 극단적이긴 하지만, 내겐 그랬다. 책 내용들이 소름끼치는 것이기도 하고, 부족한 상상력이건만, 이 책은 읽으면서 그 장면 하나하나가 왜 그렇게 생생하게 상상이 되는 건지, 정말 읽기가 고역이었다. 군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죽여서 요리해 바친 요리사의 이야기(p157)나, 1974년 일어난 일이라는 생방송 도중의 아나운서 자살(p135)이라든지, 사람의 몸에서 포를 뜨듯 살을 잘라내는 형벌이라는(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능지처참형에 관한 이야기(p61), 한 겨울에 어린 소녀에게 물을 끼얹어 얼음조각을 만들어버린 백작부인에 관한 이야기(p105) 등.  책을 읽으며 머리 속에서 그 장면을 상상해내고 있는 것이 끔찍할 정도로 잔인한 인간들의 이야기에 전율했다. 그러면서도 하나하나의 이야기 내용이 짤막하다는 것을 핑계로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내 손길이란....그것이 이 책의 매력...?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전부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데, 그 잔인함이 속을 다소 메스껍게 했지만, 뭐..나쁘진 않았다. 지금껏 내가 읽었던 이야기들 속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난 것으로 만족하련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글쓴이의 잔혹한 취미엔  공감이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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