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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견문록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 지음, 김철 옮김 / 이숲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매력적인 책이다! 이 책의 존재를 진작 알았더라면 나의 근현대사공부는 "암기"꺼리가 아니라, "흥미"꺼리였을 텐데 하는, 뒤늦은 아쉬움을 한보따리나 던져준 책이기도 하다. 개항에서부터 해방에 이르는 그 시기(지금은 "근현대사"교과서가 따로 있는 그 시기)에 관한 이야기는 국내의 문제와 국외의 문제가 뒤범벅이 되고, 온갖 사건과 인물들이 뒤범벅이 되어버리곤 했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고, 좀더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이야기꺼리가 많을 듯도 한데, 그저 사건이름을 차례대로 줄세우기 하는 것에만 관심을 뒀기 때문에 재미가 없었던 걸까...? 이 책은 그렇기에 내게 "타임머신" 같은 책이다.
글쓴이 "언더우드 부인"은 1888년 3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30년전에 한국에 온 미국 개신교의 선교사. 1년 뒤 이미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자)씨와 결혼을 하고, "서른 해가 넘도록 격동기의 조선 땅에 살면서 기독교 선교 활동 뿐 아니라 의료 사업과 교육사업, 사회 사업 등에 전력했"(책 앞날개)던 인물이다.
이 책의 원전 [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상투잽이들과의 십오년)]은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한국의 사정과 한국인에 대해 좀더 잘 앎으로서 "그녀가 유일한 진리로 믿었던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하는"(p315)데 후배 선교사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쓴 것인 듯 하다. 하지만 한국어판에서는 지나치게 종교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몇몇 장을 삭제한 것이라 그런지,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는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는 정도였다.
"이 책에는 대체로 세 가지의 내용이 서로 어울려 있다. 곧,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 양상과, 제국주의 열강의 세력 다툼 사이에서 힘없이 몰락해 가는 조선 왕조의 모습, 그리고 당대 조선의 민중의 삶이 외국인의 독특한 시각으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p310/편집자의글) 외국인 선교사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당시 조선왕실과 민중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던 그녀의 눈을 통해 본 조선의 모습은 무척 흥미로웠다. "격동의 시기"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듯한 모습이다. 글쓴이와 같은 선교사를 앞세운 제국주의 세력이 물밀듯이 밀려오는데, 그런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조선의 정치현실, 그로 인해 벌어지는 각종 사건들과 그 아래에서 힘든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 조선민중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있다. 물론 "역사가도 아니며 인류학자도 아"(p315)닌 선교사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이라 더러는 왜곡된 모습이겠지만 말이다. 불결하고, 무지한, 그러나 그보다는 더 순박하고 착한 영혼을 가진 조선인들에 대한 이야기.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찬찬히 관찰하고, 그들과 부대끼며 살았던 그녀의 경험담은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폭소할 장면이 있는가하면 한없이 애처로운 장면들이 이어지는 그런 영화..
"이 작은 나라에 호기심을 느꼈"(p19)던 그녀. 신혼여행길에 만난 감당하기 힘들만큼 그녀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던 평범한 조선인들의 모습. 조선인들의 생활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이중적 시선(불결,무지/순박),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감상이 얽혀져 정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아울러 외국인의 눈을 통해 그 시기에 벌어진 정치적 사건들을 바라보는 역사공부까지 겸할 수 있어서 더욱 괜찮은 책이었다.
*오류 ; 30쪽 각주9번에서 김윤식의 생몰연도에 대해 잘못 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