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꼭 알아야 할 외래어 상식 220가지 - 지성in을 위한 외래어 상식사전
박영만 지음 / 프리윌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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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벨탑 이야기를 언제 처음으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어린 시절 성경학교에서였을테다. 오만해진 인간들이 하느님의 권위에 도전했고, 하느님에게 닿고자 바벨탑을 쌓았다고 했다. 이에 화가 난 하느님이 인류에게 내린 벌이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도록 말을 다르게 하셨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그 이야기가 얼마나 신기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바벨탑을 쌓아 하느님의 권위에 도전코자 했다던 "나쁜 인간들"에 대해 화가 나기도 했었던 것 같다. 그들이 그런 오만한 일만 벌이지 않았더라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바벨탑의 전설을 의심할만큼 충분히 커버렸지만 요즘도 종종 생각한다. 인간의 말이 하나뿐이라면 얼마나 좋겠냐고.. 외국어를 배우느라 낭비(?)하는 시간을 좀더 발전적인 데 쓸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외국어가 없는 나로서는 바벨탑을 쌓던 오만한 그들을 원망할 따름이다. [누구나 꼭 알아야 할 외래어 상식220가지]를 읽었다. 원래는 외국어였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제는 우리 말처럼 사용하고 있는 말, 외래어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외래어에 관한 상식사전"이란 말이 이 책의 성격을 대변해 줄 것 같다. 제목에서 말하고 있듯이 220개의 외래어(일일이 세어보진 못했다만)에 대해, 뜻과 유래, 활용의 예를 한쪽 분량으로 설명하고 있고, "매 항목마다 영문 주석을 달아 영어공부에도 도움이 될"(p5)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외래어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었고 그 말의 자세한 의미도 모른 채 사용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주 쓰지만 외래어인지조차 몰랐던 낱말들도 생각보다 많았다. "불도저"라는 말이 'bulldozer'라고 영어로 표기되는 줄은 정말 몰랐었다는 고백은 무식의 표시가 될런지...? 우리 나라에서만 쓰이는 콩글리쉬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를 왜 '퍼센트'라고도 하고 '프로'라고도 하는지도 몰랐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퍼센트는 영어 percent를 그대로 읽은 것이고, 프로(pro)는 같은 뜻을 지닌 네덜란드어 프로센트(procent)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따라서 %는 퍼센트라고 읽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p279)고 한다. 음.. 그렇군. 그럼 시중에 유통되는 모 회사의 음료수 2%는 2프로가 아니라 2퍼센트라고 해야 옳겠군...!

 

    보이콧이나 실루엣이라는 단어는 사람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멘토, 밸런타인데이, 마지노선 같은 말들도 역시 마찬가지... 처음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바뀌어 사용되는 외래어들도 많고, 우리가 쓰는 외래어들 중에는 특히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단어들도 많은 것 같다. 말이라는 것 역시, 하나의 생명처럼 성장하기도 하고 변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한 의미를 몰랐던 외래어들을 알게 되는 재미가 있지만, 소략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소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좀더 두껍고 더 많은 이야기들을 담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다. 상식의 범위를 넓히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한다. 이 정도는 누구나 꼭 알아야 할 것 같기에.. [누구나 꼭 알아야 할 외래어 상식 220가지] 정도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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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 악남 이야기
이경윤.정승원 지음 / 삼양미디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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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남"이라는 단어를,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어봤다. 글쓴이의 말마따나  "악한 사람을 뜻하는 '악인', 악한 여자를 뜻하는 '악녀'란 말은 있어도 도대체 악한 남자를 의미하는 적절한 단어가 없는 것이다."(머리말 中)  XX여자중학교, 00여자고등학교는 있어도 XX남자중학교나 00남자고등학교 따위가 없는 것과도 비슷한 경우일까? "따라서 세상에 악녀란 말만 있고 악남이란 말이 없는 것은 악인 중에 다수가 여자이기 때문이 아님을 명확히 해두고 싶다."(머리말 中)는 글쓴이는 이 책에서 역사상의 걸출한 악남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보따리나 풀어놓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악남은 모두 20명. 대부분 역사상의 "영웅"들로 유명한 이름들이고, 아틸라나 히틀러처럼 따로 악남이라고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인물들도 있지만, "이 사람도 악남?"이라는 의문을 자아내는 이름들도 있었다. 

 

    책을 펼쳐들기 전에 대단히 잔혹하고 끔찍한 악남들의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살펴본 악남들의 면모는 대체로 두 부류 정도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는 모르겠는데, "기대했던 정도의 악남"과 "기대이상의 악남". 정치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자들에 대해 도덕적인 이념과 행위를 하지 않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되, 권력을 가진 자였으니까 이쯤이라면 그닥 잔인하다는 평가를 내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좀 심한데...?"싶게, 그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어버리는 잔혹한 짓을 저질렀던 사람들로 구분이 되었다.

 

    그 두 부류를 구분하기 전에 먼저 이 책에 등장하는 악남들의 공통점에 대해 먼저 얘기해봐야 할 것 같다. 그들의 공통점은 "불우한 어린 시절"!  왕자로 태어났건 혹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건 그들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 순수 혈통이 아니기 때문에"(p30) 마음고생을 겪어야 했고, 징기스칸은 어려서 정치적인 이유로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진시황은 연골증 환자에다 적국의 볼모로 어린 시절을 보내야했다. 질드레 역시 어린 시절을 적국의 볼모로 잡혀서 생활했고, 표트르 대제는 정치적인 위협 속에서 자랐다. 이 책에 나오는 악남들의 어린 시절을 보자면 "누가 누가 더 불행했나?"를 내기라도 하듯 불행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애정결핍과 극단적인 상황들이 빚어낸, 어린시절의 삐딱한 성격들이 잠재되어 있다가 권력을 잡은 후에 폭발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무제나 당현종, 마오쩌둥, 헨리8세와 나폴레옹, 알렉산더 같은 인물은 "기대했던 정도의 악남"들이었다. 정치적 반대파의 숙청이나 여자를 탐하는 정도의 일이야 뭐 그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권력자들이 해왔던 일들 아닌가? 뭐 크게 새삼스러울 것까지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내가 "정치"와 "권력"이란 걸 너무 삐딱하게 봐 왔기 때문일까?

 

    하지만 "기대이상의 악남"들은 '이것들이 과연 인간이었나' 하는 개탄이 절로 나오게 했다. 잔혹동화 '푸른수염'의 실제 주인공이라는 질드레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인물이다. 300명 이상의 아이들을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죽인 그는 정말 인간이었을까? 드라큘라이야기의 실제 모델이라는 블라드3세의 잔혹함이나 아틸라가 적군을 죽이는 방법은 그야말로 끔찍함 그 자체였다. 그들과 내가 동종이라는 게 겁이 날 정도로...

 

   그러나 "기대했던 정도의 악남"과 "기대이상의 악남"이라는 분류는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판단일 뿐이리라. 300여명의 어린아이들을 끔찍한 방법으로 "직접" 죽인 질드레에 대해서는 경악하지만,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인명을 "간접"적으로 살상했을  나폴레옹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면죄부를 주고 있으니 말이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 수백명을 죽이면 영웅"이라는 생각이 내게 박혀 있었던 모양이다.

 

     역사에 굵직한 이름을 남긴 남자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 잔혹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 [세계 악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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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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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에서 장영희 교수님의 부고를 들은 지 한달이다. "어머.. 왜?!" 오랜동안 암과 싸우고 계셨다는 걸 몰랐던 나로서는 갑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 속에서 오래전에 읽었던 [내 생애 단 한번]을 다시 펼쳐든 건 그날 밤이었다. 사실 몇 해전에 [내 생애 단 한번]을 처음 접했을 때는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지만, 책 표지의 선한 웃음이 참 인상적이라서, 그리고 글쓴이 스스로 "신파조일 뿐 아니라 지나치게 악착같고 필사적으로 들리기도"([살아온 기적~] 5쪽)한다고 평하는 그 제목에 궁금증이 일어 책을 펼쳐들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는 이렇게 선한 웃음을 가지신 분이, 그리고 이렇게 담백하게 글을 쓰시는 분이 어려서부터 몸이 많이 불편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몸의 불편함이 마음에도 영향을 주었을 거라는 잘못된 선입견 같은 걸 갖고 있었던 탓이다.

 

    오늘, "장영희 교수가 생의 마지막까지 전하려 한 희망의 힘"을 펼쳐들었다. 멋들어진 제목을 생각해 내겠다고 오랜동안 고민한 책이라고 한다. 제목의 후보로 거론된 "새벽 창가에서"도 괜찮고, "나는 내게 동의한다"도 괜찮은 것 같다. "영희야, 뻐만 추리면 산단다"는 너무 강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온 날의 기적, 살아갈 날의 기적"이라는 제목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기적이 아닌, 정말 눈곱만큼도 기적의 기미가 없는, 절대 기적일 수 없는 완벽하게 예측 가능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p9)는 글쓴이의 말을 들으니 코끝이 찡해진다.

 

     이 책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 담긴 글들은 "2000년 <내 생애 단 한번> 출간 이후 월간 <샘터>에 연재되었던 것들"(p10)이라고 한다. 꾸밈없다. 순수하다. 선하다. 5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암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만큼 밝다. 맑다. 교수님 치고는 빈틈이 많아 보여 오히려 인간적이다........ 책을 읽으며 내가 그린 장영희 교수님의 모습이다.

 

    몸이 불편하시기 때문에, 피해의식나 상대적인 박탈감 같은 걸 갖고 계시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신체장애를 갖고 살아간다는 건 너무나 끔찍하고 비참하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p179)고, "그러니 누가 뭐래도 내 삶은 '천형'은커녕 '천혜天惠'의 삶이다."(p182)고 말하는 글쓴이 앞에서 오히려 내 마음이 너무나 비뚤어졌음을 반성했다. 그녀보다 내가 훨씬 더 많은 걸 가지고 있다는 우월의식 같은 것도 저만치 던져버려야할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참 많이 배우고 많이 위로받았기에.. 그녀가 바랐던, 정말 눈곱만큼도 기적의 의미가 없는 예측가능하고 평범한 삶을, 나는 소망하지도 않고 그저 덤으로 받아 살다보니 너무 안일해졌던 모양이다.

 

    "'그만하면 참 잘했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 '너라면 뭐든지 다 눈감아 주겠다'는 용서의 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편이니 넌 절대 외롭지 않다'는 격려의 말, '지금은 아파도 슬퍼하지 말라'는 나눔의 말, 그리고 마음으로 일으켜 주는 부축의 말. 괜찮아."(p131)가 이 책에 가득 들어 있었다. 고맙다. 고마웠다. 그녀의 잔잔한 이야기가 앞으로의 내 삶에 많은 위로와 용기를 줄 것 같다. "'잊히지 않는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P53). 여기의 삶보다도 좀 더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계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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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의 왕실사 - 베개 밑에서 발견한 뜻밖의 역사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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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역사책을 읽었다. 이 책 [불륜의 왕실사]는 기존에 내가 읽어왔던 역사서들과는 느낌이 많이 다른 책이다. 각각의 소주제들에 대해서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각 주제 뒤에는 글쓴이의 기행문이 실린, 약간은 낯선 느낌의 역사서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은  우리 역사 중에서도 부끄럽고 다소 한심한 인물들의 이야기라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답답했던 것도 사실이다.

 

    [불륜의 한국사]는 고려와 조선의 왕실에서 일어난 불륜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천추태후, 숙창원비, 충숙왕, 이방석의 세자빈 유씨, 화의군, 연산군.. 연산군과 천추태후를 제외하고는 내겐 대부분 낯선 이름이었다. 그 낯선 이름들을 하필이면 이렇게 "오명汚名 묶음"으로 만나게 된 점은 안타깝지만, 뭐 어쩌랴.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것 쯤은 그들도 알고 있었을 터.

   먼저 천추태후. 텔레비전에서도 천추태후란 제목의 사극이 방영되고 있는 모양인데 시청한 적이 없어 잘 몰랐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본 천추태후는 사극의 제목이 될만큼 "잘 했다."고 칭찬해줄만한 이미지라곤 찾아보기 힘든 여인에 불과하다. 지금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고려왕실의 근친혼이야 그럴 수도 있다 치자. 하지만 숙부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그 사이에서 난 자식을 왕위에 올리겠다고 자신의 자식과 조카를 위협한 행위는 그 시대의 관점으로 봐도 칭찬해주기 힘든 행위일 듯 하다. 글쓴이는 "이번 글을 집필하면서 방송에 나오는 드라마 <천추 태후>를 관심 있게 보게 되었는데, 우리 역사가 이렇게까지 왜곡되어도 좋은가 하는 위기감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p82)고 한다. 사극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온 문제이지만, 역시나 글쓴이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청소년이나 일반인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사실인양 받아들이게 할 위험이 크"(p82)다. 정말 그렇다.

 

   충숙왕에 대한 이야기는 고려 말기 "충忠"자 돌림의 왕들이 재위했던 시절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이렇게까지 썩어빠지고 한심한 작태를 보였던 지도자들이 있었던 시기가 있었단 말인가..? 한심하고 안타까워 절로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충선왕과 충렬왕의 왕위 교체에 관한 이야기며, 충숙왕의 패륜적인 모습은 차라리 몰랐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읽었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한심한 인물들의 이야기였기에...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연산군과 그의 백모 박씨 그러니까 월산대군의 부인이자 중종반정의 주역 박원종의 누이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로 믿기가 힘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몇몇 역사서 때문이었을까? 당시 박씨는 회임할 수 없는 나이였고 박원종이 중종반정을 일으킨 것도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전에 읽었던 역사서들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기 때문에... 사실 관계를 지금 와서 명확히 확인할 방법은 없겠지만 말이다.

 

   "역사는 인생교육서"(p247)라는, 글쓴이의 역사관이 여러 곳에서 드러나는 역사책이다. 각 주제와 관련된 인물들의 묘소나 유적을 고집스레 찾아가 그들과 대화하는 "필자 특유의 상상력"(p256)이 펼쳐지는, 기존의 사서들과는 무척 다르고 독특하게 느껴지는 역사서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역사의 순간을 다룬 역사책 [불륜의 왕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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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불패 - 이외수의 소생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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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같은 시간의 강 뒤엔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왜?! "청춘"이란 두 글자를 보며 흥얼거리다 만 가요 끝에 눈물이 글썽여지는 걸까.

왜?! 젊은 날에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때 사랑이 보이지 않았던 걸까..

 

   [청춘불패]를 읽었다.  이 책은 작가 이외수가 젊은 날을 누리고 있음에도 젊음을 모르고, 사랑을 하고 있음에도 사랑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자신을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그대에게', '열등감에 사로잡힌 그대에게', '시대에 뒤떨어진 그대에게', '돈을 못 버는 그대에게', '자살을 꿈꾸는 그대에게', '시험으로 시달리는 그대에게',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대에게'.. 딱 나 같은 사람들 보라고 쓴 글이로구나.   "그대는 마치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인간으로 이 세상을 겉돌고 있었다."(p12) 그렇다. 내가 그랬다. 아니 그러고 있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인간으로 이 세상을 겉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는 일이 많아졌다. 한밤중에 깨어나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곤 한다. 그래도 지난 밤엔 고민 속에서도 희미하게나마 "희망"이란 글자도 그려볼 수 있었다. 이 책 덕분에..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슬펐다. 서글펐다. 책을 펴들기 전엔, 지난번 책 [하악하악]을 통해 처음으로 만났던 작가 이외수의 생기발랄함을 기대했었다. "팍팍한 인생, 하악하악/ 팔팔하게 살아보세"하던 그 유쾌함을 기대하며 이 책을 펴들었는데,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작가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

 

   이른 봄에 처마밑에 제비가 둥지를 틀었다. 매년 날아오는데 궁금타. 지난 해 날아갔던 그 제비인지..그 제비의 새끼들인지... 제비는 몇 년을 사는지.. 보금자리도 마련하고 알도 낳고 그랬나 보다. 새끼는 네 마리. 며칠전까지만 해도 둥지 밖으로 고개를 내밀기만 했었다. 어미가 날아오면 먹이를 받아먹겠다고 주둥이를 벌리는 모습이 정겨웠다. 하루는 새끼 제비 하나가 둥지 아래 떨어져 버둥대고 있어 둥지로 올려준 일이 있다. 날갯짓 연습을 했던 걸까?  그런데 어제 오늘은 둥지에서 어미가 가져다 주는 먹이를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는다. 아직 멀리까지 날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 둥지에서 멀지않은 빨랫줄까지는 날아갈 수 있는 모양이다. 빨랫줄에 앉아서 어미를 기다리곤 한다. 이제 곧 제비들은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겠지..?  올봄에 태어난 생명체가 알을 깨고 나와서 날개짓을 배우고 세상을 향해 날아오를 때까지 난 무얼했나 싶었다.

 

    글쓴이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건지 어떤건지 잘 모르겠다. 글쓴이가 이 책을 통해 해 주고 싶었던 말을 내가 받아들인대로 정리해보자면 딱 한 마디다.  "그대는 지금 그 모습만으로도 멋있다."(p117) 한 줄의 글이 정말 고마웠다. 참 듣고 싶던 말이었다. "세상은 그대를 낙오병처럼 남겨두고 한사코 어딘가로 떠나고 있다. 그대의 친구도, 그대의 이웃도 그대가 모르는 사이 모두들 무슨 결탁이라도 한 것일까. 세상과 함께 바삐 어딘가로 떠나고 있다."(p183) 나는 늘 제자리걸음인데, 사람들은 뛰어가고 날아가는 것 같아서 울적했다. 불면의 원인을 몰랐었는데, 외로움과 열등감이었나 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펴면, "쨍그랑. / 그리고 / 원샷. "(p194)을 해주시는 연세 많지만 친구 같은 작가가 있어서, 외로움과 열등감을 덜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잉크냄새가 아니라 향기가 나는, 독자를 향한 세심한 배려가 손에 묻어나는 책이다.  "영혼의 연금술사 이외수의 처방전". 전력질주도 해보기 전에 힘들어 하는 나와 같은 청춘들에게 권한다. 절대로 지지 않을 청춘을 위하여. 오늘은 "쨍그랑 그리고 원샷" 대신 "쨍그랑 그리고 청춘불패"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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