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의 왕실사 - 베개 밑에서 발견한 뜻밖의 역사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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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역사책을 읽었다. 이 책 [불륜의 왕실사]는 기존에 내가 읽어왔던 역사서들과는 느낌이 많이 다른 책이다. 각각의 소주제들에 대해서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각 주제 뒤에는 글쓴이의 기행문이 실린, 약간은 낯선 느낌의 역사서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은  우리 역사 중에서도 부끄럽고 다소 한심한 인물들의 이야기라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답답했던 것도 사실이다.

 

    [불륜의 한국사]는 고려와 조선의 왕실에서 일어난 불륜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천추태후, 숙창원비, 충숙왕, 이방석의 세자빈 유씨, 화의군, 연산군.. 연산군과 천추태후를 제외하고는 내겐 대부분 낯선 이름이었다. 그 낯선 이름들을 하필이면 이렇게 "오명汚名 묶음"으로 만나게 된 점은 안타깝지만, 뭐 어쩌랴.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것 쯤은 그들도 알고 있었을 터.

   먼저 천추태후. 텔레비전에서도 천추태후란 제목의 사극이 방영되고 있는 모양인데 시청한 적이 없어 잘 몰랐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본 천추태후는 사극의 제목이 될만큼 "잘 했다."고 칭찬해줄만한 이미지라곤 찾아보기 힘든 여인에 불과하다. 지금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고려왕실의 근친혼이야 그럴 수도 있다 치자. 하지만 숙부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그 사이에서 난 자식을 왕위에 올리겠다고 자신의 자식과 조카를 위협한 행위는 그 시대의 관점으로 봐도 칭찬해주기 힘든 행위일 듯 하다. 글쓴이는 "이번 글을 집필하면서 방송에 나오는 드라마 <천추 태후>를 관심 있게 보게 되었는데, 우리 역사가 이렇게까지 왜곡되어도 좋은가 하는 위기감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p82)고 한다. 사극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온 문제이지만, 역시나 글쓴이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청소년이나 일반인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사실인양 받아들이게 할 위험이 크"(p82)다. 정말 그렇다.

 

   충숙왕에 대한 이야기는 고려 말기 "충忠"자 돌림의 왕들이 재위했던 시절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이렇게까지 썩어빠지고 한심한 작태를 보였던 지도자들이 있었던 시기가 있었단 말인가..? 한심하고 안타까워 절로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충선왕과 충렬왕의 왕위 교체에 관한 이야기며, 충숙왕의 패륜적인 모습은 차라리 몰랐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읽었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한심한 인물들의 이야기였기에...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연산군과 그의 백모 박씨 그러니까 월산대군의 부인이자 중종반정의 주역 박원종의 누이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로 믿기가 힘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몇몇 역사서 때문이었을까? 당시 박씨는 회임할 수 없는 나이였고 박원종이 중종반정을 일으킨 것도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전에 읽었던 역사서들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기 때문에... 사실 관계를 지금 와서 명확히 확인할 방법은 없겠지만 말이다.

 

   "역사는 인생교육서"(p247)라는, 글쓴이의 역사관이 여러 곳에서 드러나는 역사책이다. 각 주제와 관련된 인물들의 묘소나 유적을 고집스레 찾아가 그들과 대화하는 "필자 특유의 상상력"(p256)이 펼쳐지는, 기존의 사서들과는 무척 다르고 독특하게 느껴지는 역사서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역사의 순간을 다룬 역사책 [불륜의 왕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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