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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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87년 6월에 대해 나는 정확한 기억이 없다. 그저 어렴풋한 기억 뿐이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것들이 "기억"인지 그 후에 알게 된 정보들과의 조합으로  얻어진 이미지인지조차 자신이 없다. 그 해 여름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tv에선 종종 썸머타임 시행에 관한 보도가 나왔던 것도 같고 "6.29선언"으로 기억되는 그런 거창한 선언이 있었던 것도 같다. 최루탄에 대한 기억도 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종종 뿌연 연기 같은 것을 본 기억이 있는데 그게 최루탄과 화염병이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tv에선 대학생들의 데모가 자주 뉴스에 나왔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이건 확실한 기억인데, 북한이 무슨댐을 파괴하면 서울이 반쯤 물에 잠기고 어쩌고 하면서 그 높다는 63빌딩이 물에 잠기는 화면을 tv를 통해 자주 봤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맞을테다. 그 때가 6.10항쟁이 있었던 1987년즈음이... 뜨거운 만화책 한 권을 읽었다. 제목도 뜨겁다. [100`c]. 처음 읽었을 때 뭔가 자꾸 울컥울컥 올라오고, 눈물이 흐르길래 그 감정의 덩어리를 괜한 감상과 우수로 치부해버렸다. 하지만 오늘 또다시 펴서 읽는데도 여전히 울컥거리고 뜨겁다. 이 땅에서 정말 그런 일들이 있었단 말인가...

 

    사실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내가 1987년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사실과 부합되는가를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여름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들, 그리고 내가 토막토막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제대로 맞춰보고 싶었다. 대머리 아저씨 "뚜뚜전"에 대한 기억, 대학생들은 왜 하라는 공부들은 안 하고 나라(?)에서 말리는 데모만 해댔는지, 그 여름이 지난 후에도 쉽게 볼 수 있었던 "간첩신고는 113"이라는 입간판에 대한 기억들과 반공포스터 그리기 따위의 기억들,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참 이상한 이야기하며, 그 사진.. 대학생 이한열의  피 흘리는 사진과 같은 기억들...

 

   이 책을 통해 그 단편적인 기억들이 하나로 엮어졌다. 아.. 이런 희한하고 이상한 일들이 정말 이 땅에서 일어났던 거구나. "북괴의 공작을 받은 빨갱이"들이 아니라 잘못된 것들을 잘못됐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탄압받았던 시대였구나. tv나 영화, 책 속에서만 봐왔던 "독재"가 이 땅에서도 있었던 거구나.. 불과 2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일들, 이 땅에서 벌어진 일임에도, 먼 나라의 이야기들인 줄 알았다. 관심 갖지 않으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 또한 얼마든지 퇴보할 수 있음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평소 역사에 관한 책을 열심히 읽는다고 자부해왔는데, 모르는 게 너무 많다. 특히 현대사와 관련해서는 아는 것보다 모르고 있는 이야기가 훨씬 더 많다는 생각이 드네. 열심히 공부해서 시대를 바르게 보는 눈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통해 만화가 최규석을 처음 알게 됐다. 감정이 묻어나는 그림과 이야기의 구성이 마음에 와닿았다. 만화를 통해서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한 책 [100`c]. 피를 먹고 자라는 열매 민주주의. 작은 힘이 모이면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값진 경험을 선물했던 87년의 6월 항쟁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케 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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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비 독살사건 - 여왕을 꿈꾸었던 비범한 여성들의 비극적인 이야기
윤정란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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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왕비 독살 사건]이라는 제목을 듣고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조선 왕 독살사건]과 "이덕일"이라는 이름이었다. [조선 왕 독살사건]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역사가 이덕일은 내게 역사책 읽는 재미를 알게했던 사람이기에 그의 신작이 새로 나왔나 싶어 혹했던 게 사실이다. 같은 출판사에서, 기존의 베스트셀러 제목을 연상케하는, 이런 책을 기획했을 때는 분명 나 같은 독자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미리 염두에 두었을터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역사가 이덕일의 책이 아니다. 글쓴이는 윤정란. "숭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일제시대 한국 기독교 여성 운동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책 앞날개)했으며, "현재는 숭실대학교에서 한국사 강의를 하고"(책 앞날개) 계신 교수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왕비(세자빈 포함)는 모두 7명이다. 소혜왕후 한씨, 폐제헌왕후 윤씨, 인목왕후 김씨, 광해군 부인 유씨, 소현세자빈 강씨, 희빈 장씨와 명성황후 민씨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 책의 부제는 "여왕을 꿈꾸었던 비범한 여성들의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이 책의 제목과 부제를 보면서  미리 짐작해 본 내용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났으며 뛰어난 능력에 걸맞게 "실제로" 여왕을 꿈꾸었으나 시대의 한계 때문에 좌절했으며, 그리고 [조선 왕 독살사건]이 제기했던 의혹처럼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반대파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를 왕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이 책의 제목은 오히려 "시대와의 불화 - 불행했던 조선의 왕비들"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책에서 다루어진 7명의 왕비들이 물론 개성이 뚜렷하고 유교사회에서 기대되는 순종적인 현모양처의 범주를 벗어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들 중에서 "실제로" "여왕"을 꿈꾸었던 이는 없는 것 같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그리고 그녀들 중에서 [조선 왕 독살사건]이 제기했던 문제처럼 죽음 이후에 독살의 의혹이 있었거나 죽음과 관련한 이견이 있었던 인물들도 솔직히는 없다. "비록 합법적인 법의 집행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죽음으로 몰아가는 과정 면에서 그것은 정치적인 독살이었다."(p6)는 글쓴이의 말에는 동의하지만 말이다.

 

    책의 내용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그간 남성들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보아왔기에 그 남성들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는 잘 몰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권력주도층, 그리고 그녀들의 시대와 불화했던 인물들이기 때문에 "모난 돌"처럼 보였던 것일뿐 그녀들은 여왕을 꿈꾸었던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책을 기획하며 굳이 [조선 왕 독살사건]이라는 성공한(?) 역사서를 마음에 담아 둘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는 주제넘는 참견을 해 보게 된다. [조선 왕 독살사건]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인지 왕비들도 독살(글자 그대로의 독살)당했던 걸까 하는 호기심과 궁금증 따위에 책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던 것과는 많이 다른 책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재미있고 역사적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었던 역사책임에는 틀림없지만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방법은 조금 잘 못 선택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책.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느낌은 그랬다는 말이다. 좋은 책을 너무 주관적으로 평한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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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 : 고독한 현대인의 자화상 마로니에북스 Art Book 16
실비아 보르게시 지음, 최병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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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pper라는 화가의 이름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예술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도 유명 예술가라면 그 이름쯤은 한 번이라도 들어봤을 법한데, 혹은 이름을 몰랐더라도 작품 한 두 점 쯤은 어디서 봤을 법한데... 호퍼라는 이름은,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내겐 낯섬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낯섬"의 이유가 그가 유명하지 않은 화가였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예술, 특히 미술에 대해 많이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했다.

 

    마로니에 북스의 아트북 시리즈 책을 세번째로 접해본다. 앞서는 피카소와 고야를 만났는데, 이번엔 미국의 현대 화가 에드워드 호퍼를 만났다. 먼저 마로니에 북스의 아트북 시리즈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가야겠다. 이 시리즈의 책은 "사회, 정치, 문화적 배경과 함께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소개"(p4)하고 있는, 그다지 크지 않고 두껍지도 않은 책들이다. 전체 쪽수는 150쪽 내외로, 다루고 있는 예술가의 생애와 그와 관련한 사진자료와 작품이 많이 실려있어 작지만 한 예술가에 대해 알기에는 꽤 괜찮은 책이다. 나 같이 예술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는 독자라도 큰 부담없이 읽을만한 책이다.

 

    1882년에 태어나 1967년에 생을 마감했던 화가 호퍼. 어려서부터 스케치에 재능을 보였고 "그의 부모는 아들이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다."(p8) 예술에 대해 무지한 나는 사진 같이 실재를 그대로 화폭에 옮긴 그림들이 "잘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리고 예술 작품에 예술가의 사상이 녹아있다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줄 몰랐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화가들과 관련한 책을 종종 읽다보니, 예술가들마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 예술가의 사상이 깃들여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다.  

 

      "현대 예술을 연구하는 예술사가"(책 앞날개)라는 이 책의 글쓴이 실비아 보르게시가 호퍼의 그림 아래에다 간략하게 쓴 작품들에 대한 설명은 사실 내게는 좀 어려웠고, "이 그림을 그렇게 봐야 하는 건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처음엔 그런 해설에 얽매여서 그렇게 보고자 노력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호퍼의 그림들을 내 마음대로 해석해보기도 했다. 내가 본, 이 책을 통해 본, 호퍼라는 화가의 그림들은 참 따뜻했다. 그리고 생동적이고 활발하다기보다는 정적이고 고요한 순간을 그린 그림들이 많아 호퍼 또한 매우 차분하고 따뜻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지만... "고독한 현대인의 자화상"이라는 이 책의 부제는 호퍼에게 참 잘 어울리는 설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퍼 뿐만 아니라 그에게 영향을 준 예술가들의 작품과 그리고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 세계까지 맛 볼 수 있어 얇은 책이지만 무척 풍성하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예술에 문외한인 내겐 예술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징검다리 같은 역할을 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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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불멸의 기억
이수광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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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의 이토히로부미 저격. 그게 '벌써' 100년 전의 일이란다. 아니다. '겨우' 100년 전의 일이란다. 이토히로부미가 죽은 날은 1909년의 10월 26일의 일이었고, 안중근 의사가 사형당한 날은 1910년의 3월 26일이었다고 한다. 안중근과 이토히로부미. 그리고 하얼빈역. 여순감옥. 그렇게 단편적인 단어의 토막들로 기억할 뿐, 2009년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나와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역사 속의 이야기로 여겨왔다. 인간은 기억력도 뛰어나지만 망각의 능력 역시 탁월한 모양이다. 잊고 있었다. 아니, 경험해 본 적이 없어 막연한 증오심만 키워 왔을 뿐 구체적인 내막을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도 같다. 내가 지금 두 발 디디고 있는 이 공간을,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수탈당해 신음했던, 겨우 100년도 지나지 않은 역사에 대해서 말이다.

 

    [안중근 불멸의 기억]을 읽었다. 안중근에 대해서는 어렸을 적에 읽었던, 낡고 오래되서 빛이 바랬던 문고판 위인전을 읽은 기억이 전부다. 별 감흥없이 그저 의무감으로 읽었던 탓인지 그 문고판의 내용조차 거의 기억에 없다. 안중근이 어렸을 때 동네 포수들을 따라서 산에 올라 사냥을 자주 했다는 정도의 이야기만 기억 날 뿐. 그렇기에 이 책은 내겐 안중근에 대한 최초의 책이다. 책의 구성이 독특하다. 안중근은 여순 감옥에서 자서전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고 한다. 그 두 권의 저서를 읽어본 적이 없어서,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지 자신은 없는데, 아마도 그 두 권의 책을 참조하여 글쓴이가 재구성한 듯한 안중근의 자서전적 글이 한 장, 그리고 글쓴이의 안중근 유적 순례기가 한 장, 그렇게 교차되는 형식이다.

 

    그가 젊은 나이에 사형을 당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겨우 서른둘이었는지는 몰랐다. 서른둘. 안중근이 살았던 시대만큼 절박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까.. 나라를 위해 이 한 몸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다 늙어서 지금쯤은 죽어도 덜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나이가 아니라 겨우 서른 둘에, 나라의 부름이라는 거창한 명목 앞에 내 목숨을 던져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안중근의 삶은 충격이다. 열여섯의 나이에 결혼했고, 이미 아들 둘을 둔 사람이었다. '아려'라는 이름을 가진 그의 아름다운 부인을 지극히도 사랑했던 한 남자였다. "해마다 3000석을 하는 부호의 장자였다."(p270) 시대에 적당히 영합했더라면 오히려 편안한 삶을 누렸을지도 모를 그는, 그러나 동양평화를 생각했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건 의병활동을 했으며,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그리고 죽음 앞에 초연했다. "일본이 강하다고 지레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다."(p76)는 자신의 소신에 따라 살았다. 글을 읽으며 그의 자리에다 나를 가져다 놓아 봤지만, 나 역시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라고는 감히 말할 수가 없었다. 그의 삶의 자세 앞에, 그리고 그의 단정한 사진 앞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오늘이 마침 제헌절이다. 그가 그렇게 되찾고자 했던 나라를 되찾고 헌법을 만든 날이다. 늘 있어 왔기에 그 소중함을 느낄 수 없었던 "대한민국"의 고마움을 새삼스레 새겨볼 일이다.

 

   안중근의 삶을, 그리고 불과 100년 안팎의 일들임에도 기억 저 편에 멀어져 있었던 나라 잃은 서러움을 생각하게끔 했던 책. 만족스러운 책이었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글쓴이의 기행문 외의 글들, 그러니까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적인 글은 글쓴이가 감정이입하여 짐작해서 쓴 글인지, 혹은 <안응칠 역사>의 글을 쉬운 말로 옮겨쓰기만 한 글인지 독해력이 부족한 나 같은 독자는 헷갈린다. 이 부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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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미스터리 세계사 - 법의학과 심리학으로 파헤친 세계 왕실의 20가지 비밀과 거짓말
피터 하우겐 지음, 문희경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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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문이나 가십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자꾸 듣다보면, 황당무계하다 싶은 그 이야기들 속에도 사실은 일말의 진실이 들어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는 속담을 두고 최근에는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나더라."고 발끈하는 연예인들도 봤지만, 그런 해명을 들으면서도 해명이 아니라 변명이나 거짓말이 아닐까 하는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나는 취미가 절대 고상한 편은 못 되나 보다.

 

    [왕실 미스터리 세계사]를 읽었다. 책을 펴들기 전에는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딱딱한 역사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상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재미가 있을 것 같은 기대 뒷 편엔, "카더라"통신 류의 무책임한 가십꺼리의 범벅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처음의 우려는 말끔히 덜어냈고, 그리고 처음의 기대보다는 훨씬 재미있었던, 내겐 꽤나 괜찮았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세계사상의 유명한, 아직까지도 이론의 여지가 많은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예를 들자면 프랑스 루이14세때의 철가면 죄수의 정체라든가 영국의 전설적인 왕 아서의 실체, 나폴레옹 독살설과 러시아 황녀 아나스타샤의 진실,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들..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책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이 왕과 여왕, 왕자와 공주를 비롯한 왕족이라는 점이다. 예전에는 왕족이 오늘날의 스타나 유명인사처럼 대중의 호기심과 흥미의 대상이었다."(p5) 그래, 이 책 재미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은 역사적인 교훈보다는 소문과 호기심을 정면으로 다루기 위해 구상했다."(p6)고 하는데, 그 기획의도를 충분히 살린 책이 아닐까 싶다.

 

    책에서 다루어진 이야기들을  몇 가지 주제로 분류해보자면 "그는 진짜 왕자(혹은 공주)였을까?", "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은 무엇일까" 정도의 범주에 드는 이야기들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그 밖에는 "왕실의 사랑 혹은 불륜에 관한 이야기"와 "전설 같은 이야기들의 진실" 정도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분류이다.

 

    현대의 과학이라면 쉽사리 풀렸을 것 같은 문제들, 왕자(공주)를 자처하고 나선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특히 흥미로웠다. 영국의 리처드3세는 조카들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고, 그 후 어린 두 왕자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왕자들은 리처드3세에 의해 살해된 것일까 혹은 어딘가에서 목숨만은 부지하고 있었던 걸까? 왕자를 사칭하고 나선 퍼킨 워벡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조선시대 소현세자의 아들을 자처하고 나섰던 요승 처경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역사란 그렇게 비슷한 걸까? 조선의 수양은 조카 단종을 죽이고 세조가 되었고, 영국의 리처드는 조카를 실종시키고(?) 왕위에 올랐으며, 소현세자의 불행한 죽음 후엔 그의 아들을 주장하는 요승이 등장했고, 리처드의 조카들의 실종 후에는 퍼킨이 나타나고...   자신이 러시아 로마노프 황실의 공주라고 주장했던 안나 앤더슨은 정말 아나스타샤였을까?  "자신이 루이 17세라고 주장한 사람이 30명이 넘었다"(p229)고 하는데, 그 서른명이 넘는 인물들 중에 정말 루이 17세가 있었을까? 불행했던 정치적 사건들 뒤에는 그렇게, 빈틈을 노리는 사람들이, 어느 나라인가를 막론하고 어느 시대인가를 막론하고 많았던 모양이다.

 

     왕실 인물들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도 흥미로웠다. 나폴레옹은 정말 "살해"당했던 걸까?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사였을 뿐인걸까?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는 남편의 죽음에 개입했던 걸까?

 

    글쓴이는 자신은 이렇게 생각한다고는 더러 말하지만, 이렇다 저렇다 결론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다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과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함께 소개함으로써 각종 의혹들에 대한 해결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역사를 더 두껍게 보는, 더 재미있게 보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에 든다. "세계사"라고 묶기에는 너무 서양에 치우친 이야기들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다양한 분야의 자료조사와 재치있는 글솜씨로 역사상의 흥미로운 주제 속으로 독자들을 이끌고 가는 탐험대 같은 책. [왕실 미스터리 세계사].

 

 

 

잘못된 글자

15쪽 사진 아래 "1992년" -> "1922년"

23쪽 네번째 줄 "가습뼈"

91쪽 일곱번째 줄 "왕제자인 웨일스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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