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불멸의 기억
이수광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안중근 의사의 이토히로부미 저격. 그게 '벌써' 100년 전의 일이란다. 아니다. '겨우' 100년 전의 일이란다. 이토히로부미가 죽은 날은 1909년의 10월 26일의 일이었고, 안중근 의사가 사형당한 날은 1910년의 3월 26일이었다고 한다. 안중근과 이토히로부미. 그리고 하얼빈역. 여순감옥. 그렇게 단편적인 단어의 토막들로 기억할 뿐, 2009년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나와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역사 속의 이야기로 여겨왔다. 인간은 기억력도 뛰어나지만 망각의 능력 역시 탁월한 모양이다. 잊고 있었다. 아니, 경험해 본 적이 없어 막연한 증오심만 키워 왔을 뿐 구체적인 내막을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도 같다. 내가 지금 두 발 디디고 있는 이 공간을,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수탈당해 신음했던, 겨우 100년도 지나지 않은 역사에 대해서 말이다.

 

    [안중근 불멸의 기억]을 읽었다. 안중근에 대해서는 어렸을 적에 읽었던, 낡고 오래되서 빛이 바랬던 문고판 위인전을 읽은 기억이 전부다. 별 감흥없이 그저 의무감으로 읽었던 탓인지 그 문고판의 내용조차 거의 기억에 없다. 안중근이 어렸을 때 동네 포수들을 따라서 산에 올라 사냥을 자주 했다는 정도의 이야기만 기억 날 뿐. 그렇기에 이 책은 내겐 안중근에 대한 최초의 책이다. 책의 구성이 독특하다. 안중근은 여순 감옥에서 자서전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고 한다. 그 두 권의 저서를 읽어본 적이 없어서,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지 자신은 없는데, 아마도 그 두 권의 책을 참조하여 글쓴이가 재구성한 듯한 안중근의 자서전적 글이 한 장, 그리고 글쓴이의 안중근 유적 순례기가 한 장, 그렇게 교차되는 형식이다.

 

    그가 젊은 나이에 사형을 당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겨우 서른둘이었는지는 몰랐다. 서른둘. 안중근이 살았던 시대만큼 절박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까.. 나라를 위해 이 한 몸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다 늙어서 지금쯤은 죽어도 덜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나이가 아니라 겨우 서른 둘에, 나라의 부름이라는 거창한 명목 앞에 내 목숨을 던져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안중근의 삶은 충격이다. 열여섯의 나이에 결혼했고, 이미 아들 둘을 둔 사람이었다. '아려'라는 이름을 가진 그의 아름다운 부인을 지극히도 사랑했던 한 남자였다. "해마다 3000석을 하는 부호의 장자였다."(p270) 시대에 적당히 영합했더라면 오히려 편안한 삶을 누렸을지도 모를 그는, 그러나 동양평화를 생각했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건 의병활동을 했으며,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그리고 죽음 앞에 초연했다. "일본이 강하다고 지레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다."(p76)는 자신의 소신에 따라 살았다. 글을 읽으며 그의 자리에다 나를 가져다 놓아 봤지만, 나 역시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라고는 감히 말할 수가 없었다. 그의 삶의 자세 앞에, 그리고 그의 단정한 사진 앞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오늘이 마침 제헌절이다. 그가 그렇게 되찾고자 했던 나라를 되찾고 헌법을 만든 날이다. 늘 있어 왔기에 그 소중함을 느낄 수 없었던 "대한민국"의 고마움을 새삼스레 새겨볼 일이다.

 

   안중근의 삶을, 그리고 불과 100년 안팎의 일들임에도 기억 저 편에 멀어져 있었던 나라 잃은 서러움을 생각하게끔 했던 책. 만족스러운 책이었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글쓴이의 기행문 외의 글들, 그러니까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적인 글은 글쓴이가 감정이입하여 짐작해서 쓴 글인지, 혹은 <안응칠 역사>의 글을 쉬운 말로 옮겨쓰기만 한 글인지 독해력이 부족한 나 같은 독자는 헷갈린다. 이 부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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