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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 : 고독한 현대인의 자화상 ㅣ 마로니에북스 Art Book 16
실비아 보르게시 지음, 최병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5월
평점 :
Hopper라는 화가의 이름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예술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도 유명 예술가라면 그 이름쯤은 한 번이라도 들어봤을 법한데, 혹은 이름을 몰랐더라도 작품 한 두 점 쯤은 어디서 봤을 법한데... 호퍼라는 이름은,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내겐 낯섬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낯섬"의 이유가 그가 유명하지 않은 화가였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예술, 특히 미술에 대해 많이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했다.
마로니에 북스의 아트북 시리즈 책을 세번째로 접해본다. 앞서는 피카소와 고야를 만났는데, 이번엔 미국의 현대 화가 에드워드 호퍼를 만났다. 먼저 마로니에 북스의 아트북 시리즈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가야겠다. 이 시리즈의 책은 "사회, 정치, 문화적 배경과 함께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소개"(p4)하고 있는, 그다지 크지 않고 두껍지도 않은 책들이다. 전체 쪽수는 150쪽 내외로, 다루고 있는 예술가의 생애와 그와 관련한 사진자료와 작품이 많이 실려있어 작지만 한 예술가에 대해 알기에는 꽤 괜찮은 책이다. 나 같이 예술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는 독자라도 큰 부담없이 읽을만한 책이다.
1882년에 태어나 1967년에 생을 마감했던 화가 호퍼. 어려서부터 스케치에 재능을 보였고 "그의 부모는 아들이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다."(p8) 예술에 대해 무지한 나는 사진 같이 실재를 그대로 화폭에 옮긴 그림들이 "잘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리고 예술 작품에 예술가의 사상이 녹아있다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줄 몰랐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화가들과 관련한 책을 종종 읽다보니, 예술가들마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 예술가의 사상이 깃들여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다.
"현대 예술을 연구하는 예술사가"(책 앞날개)라는 이 책의 글쓴이 실비아 보르게시가 호퍼의 그림 아래에다 간략하게 쓴 작품들에 대한 설명은 사실 내게는 좀 어려웠고, "이 그림을 그렇게 봐야 하는 건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처음엔 그런 해설에 얽매여서 그렇게 보고자 노력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호퍼의 그림들을 내 마음대로 해석해보기도 했다. 내가 본, 이 책을 통해 본, 호퍼라는 화가의 그림들은 참 따뜻했다. 그리고 생동적이고 활발하다기보다는 정적이고 고요한 순간을 그린 그림들이 많아 호퍼 또한 매우 차분하고 따뜻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지만... "고독한 현대인의 자화상"이라는 이 책의 부제는 호퍼에게 참 잘 어울리는 설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퍼 뿐만 아니라 그에게 영향을 준 예술가들의 작품과 그리고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 세계까지 맛 볼 수 있어 얇은 책이지만 무척 풍성하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예술에 문외한인 내겐 예술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징검다리 같은 역할을 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