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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남은 조선의 살인과 재판 - <심리록>으로 읽는 조선시대의 과학수사와 재판 이야기
이번영 지음 / 이른아침 / 2013년 12월
평점 :
연말인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 치고는 너무 험한 주제의 책을 읽었나? [역사로 남은 조선의 살인과 재판]이라.. 비록 살인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 사연을 들여다보면 역사 속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해 펼쳐든 책이다. 어쩌면 가장 처절한 삶의 기록일 수도 있을테고, 역사책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일반 서민들의 삶을 살펴볼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글쓴이 이번영. 책앞날개에는 글쓴이에 대해 "전북 부안 출생 / 서울대 문리대 졸업 / 경기고 등 서울시 교직 종사 " 등의 간략한 약력아래에 그의 작품 제목의 나열로 소개를 그치고 있다. 글쓴이에 대한 소개가 다소 불친절하다 싶을 정도로 간략해서 인터넷에서 저자 이름을 검색해봤지만 책앞날개에 소개된 것 이외엔 더 이상의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지난해 출간된 그의 전작 "왜란 : 소설 징비록" 3권 시리즈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기사에서 "소설가 이번영(65)"이라고 그를 소개하는 것을 통해 그의 나이와 "소설가"라는 정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 나는 책을 읽을 때나 선택할 때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도 중요시하는 편인데, 이왕이면 글쓴이에 대한 정보가 좀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제목에서도 드러나고 있듯이 조선의 "살인자"와 그에 대한 재판의 과정을 소설처럼 각색해 싣고 있다. 18건의 살인사건과 그 재판 기록. 그 사건들은 전부다가 조선 후기 정조 임금 통치 시기의 사건들이다. "이 책은 정조가 남긴 <심리록>을 기반으로 하고, 다산이 남긴 <흠흠신서>의 내용을 덧붙여 정조 당시의 대표적인 옥사 18건을 추리고, 그 사건의 전말과 소송의 과정을 소설의 기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p11) 몇 해 전에 케이블tv에서 "별순검"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나는데, 몇편 보지 못했지만 그 드라마와 비슷한 느낌의 책이랄까.
살인자들의 이야기인데, "재미있다."는 표현이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책은 재미있게 잘 읽힌다. 사람살이가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
이 책에 실린 사건 대부분에서는 여자의 정절을 강조하는 조선시대의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case02의 "간음의 소문이 퍼져 산 채로 수장된 청상과부 살해사건"이나 case04의 "자신의 목을 세번이나 찔러 죽은 의문의 자살사건", case05의 "퇴기 노파를 새색시가 18차례나 찔러 살해한 잔혹사건", case07의 "외간남자에게 팔목을 잡힌 여인이 스스로 팔을 자른 자해사건" 등이 그런 예이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case05의 주인공 김은애에 관한 것이었다. 18살, 갓 결혼한 새색시가 자신에 대한 고의적이고 추악한 소문을 낸 노파에 분개해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에 대한 정조의 최종 판결은 석방이고, 오히려 그녀의 이야기를 이덕무에게 전기로 쓰도록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도록 했다는 것. 요즘에는 이와 같은 사건에 대해 어떻게 판결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건에 대한 조사와 재판의 과정이 결코 비과학적이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서 최종 판결을 내리는 과정도 눈여겨 볼 만했다. <무원록>을 바탕으로 한 시체검안과 사인규명 등의 방법이 그러했고,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왕이 직접 그 사안을 살피고 결론을 내리는 과정 역시 무척 흥미로웠다.
정치사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이 담겨 있는 역사를 다루고 있어서 재미있었던 책, [역사로 남은 조선의 살인과 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