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여인들 - 역사의 급류에 휩쓸린 동아시아 여성들의 수난사
야마자키 도모코 지음, 김경원 옮김 / 다사헌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내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글로 쓰면 책으로 몇 권이 될꺼다..."는 말을, 나보다 앞서 살아오신 분들한테서 듣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파란만장하고 치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나 지금 사회생활에서 은퇴하고 계신 분들이 당신들의 삶을 더욱이나 소설 몇 권짜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우리 근현대사의 큰 흐름과도 관련있는 부분이다.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이, 역사의 흐름이 그들의 삶을 요동치게 만든 경우가 많으므로..

 

  [경계에 선 여인들]이란 책을 읽었다. 사실 제목만 보고서는 가십거리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는 특이한 삶의 이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미리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생각했던 것에 반성한다. 처음의 내 생각이 죄송하다 싶을 정도로 처절하고도 특이한 삶을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여기에 실려 있어 읽는 내내 가슴 한켠이 찡했다. 글쓴이는 "야마자키 도모코". 1932년생. "연극공부를 하다가 사귄 도쿄대학 대학원생 김광택과 사실혼을 맺었으나"(책앞날개) 이후 여러가지 사정에 의해 헤어진 경험을 가지고 있는 여성연구가이다.

 

   책의 부제는 "역사의 급류에 휩쓸린 동아시아 여성들의 수난사"이다. 전체 7개의 장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성들의 삶을 "수난"으로 만든 그 "역사의 급류"는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이다.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에 의해 너무나 극적인 삶을 살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 1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두 개의 인신공양 결혼 - 이방자와 아이신줴로 히로". 일본의 국가 정책에 의해 생면 부지의 인물들과 강제 결혼을 하게 된 일본의 두 여인. 이방자의 이름과 삶에 대해서는 자세히는 아니지만 들어는 봤다.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본 이방자의 삶은 안타까웠다. 그런데 내가 전혀 몰랐던 이름 하나. 원래 황태자 이은의 약혼녀였다가 이은과 이방자가 결혼하게 되면서 밀려나게 된 한 여인 민갑완의 삶은 더더욱이나 안타까웠다. 일본과 우리와의 관계에서만 있었던 일인 줄 알았는데 일본이 만든 꼭두각시 왕국 만주국 황제의 동생 푸제 역시도 일본에 의해 강요된 결혼을 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2장 "버림받은 일본 여성들"편의 이야기도 참 안타까웠다. 특히 일본의 패전 후 정착할 곳이 없게 된 한국 남성과 결혼했던 일본 여성들의 삶은 내가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주제라 놀랍기까지 했다. "야마자키 시게"라는 여인은 어렸을 때 실명해 눈이 보이지 않았는데 돈벌이를 하러 온 부친을 따라 조선에 왔고 가난한 조선 남성과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일제 강점기, 가난하지만 비교적 평범한 살았던 시게의 삶은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혈혈단신이 되어버린 맹인 여성에게 어떤 생활이 가능했을가. 남편 김남학이 죽은 지 13년이 지난 1974년, 인구 및 세대 조사 담당자가 방문했을 때 그녀는 산기슭에 땅을 약간 파고 앞쪽에 천막을 친 채 간신히 비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엉금엉금 기어서 나타난 남루한 늙은  여성을 보고 조사원인 젊은 여성은 거의 졸도할 지경이었다고 한다."(p68). 참 기구한 삶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렇게 우리나라에 버려진 일본인 여성들을 위한 시설 경주 "나자레원"이 있다고 하는데 처음 접하게 된 이야기라 놀라웠다. 나자레원을 열게 된 김용성의 이야기도 그저 놀라웠다. 7장의 "한국 고아에게 헌신하고 고독한 재일 조선인 노인에게 봉사하다"는 다우치 치즈코라는 일본 여성이 우리 나라에서 공생원이라는 고아원을, 남편인 윤치호와 함께 경영한 이야기인데 김용성의 이야기와는 다른 방향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민족을 초월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면에서 감동적이었다.

   6장 전쟁이 낳은 두 아내와 3장 '일본군 성노예'의 비극 역시도 매우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종군위안부로 강제 동원된 정서운 할머니의 이야기는 전쟁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끔 했다.

 

  이 책은 그간 내가 생각해본 적 없는 여성들의 삶을 그리고 있어서 충격적이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그 인생사 하나하나가 참 안타깝기도 했고. 처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글쓴이가 일본인이라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 어떻게 기술하고 있을지도 하나의 관심사였는데, 보편적인 인간의 관점에서 이렇게 많은 이들의 삶을 힘겹게 했던 과거사에 대해 반성어린 서술이라는 점 또한 내게는 만족스러웠다. 여러 면에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다. [경계에 선 여인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