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고 둥근 달
정찬 지음 / 현대문학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나는 소설가 정찬의 소설을 좋아한다 

내가 정찬 소설에서 좋아하는 지점은 이런 것 들이다 

더이상 진실, 영원 등 피상적인 근원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려 하지 않은 때 

정찬은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그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고 있다 

 그래서 정찬의 소설을 보면 나는 소설 앞에서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워짐을 느낀다 

나는 그것을 향해 파고들기는커녕 보려고도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정찬의 '희고 둥근 달'에서도 역시 파상적 근원에 대한 작가의 집요한, 경건한 

마치, 어떤 종교의식을 보는 것과 같은 자세가 느껴졌다 

무조건적인 추종이 아닌, 온몸으로 끊임없이 그것에 다가가려는 몸부림이 느껴졌다 

 

나는 글을 잘 못 쓴다 

그래서 이럴 땐 내가 느낀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다 

그래서 그냥, 소설의 한 대목을 인용하고 말련다 

 

'진실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러므로 진실을 보려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진실을 잃어버리는 까닭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는 인간을 고정시킨다. 역할에 고정시키고, 영역에 고정시키고, 계급에 고정시키고, 집단에 고정시키고, 이데올로기에 고정시킨다. 인간의 꿈조차도 고정의 대상이다. 고정된 인간은 고정된 얼굴을 갖는다. 세계는 고정된 인간의 얼굴을 끊임없이 찍어낸다. 고정된 얼굴은 생명의 얼굴이 아니다. 죽음의 얼굴이다. 세계가 거대한 묘지로 느껴지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이 묘지 사이를 바람처럼 질주하는 이들이 있다. 유랑자들이다. 그들의 존재성은 끊임없는 변신에 있다. 그들은 고정된 얼굴을 거부한다. 고정된 얼굴을 거부함으로써 세계를 근원적으로 비판한다. 세계가 그들을 두려워하고 적대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유랑극단'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낯선 사람들 세계사 시인선 3
이하석 지음 / 세계사 / 198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시집을 읽어야 겠다, 생각하고 책장에 읽지 않은 시집 중
손에 잡히는대로 뽑아든 게 이하석 시집이다


반 정도 읽었을 때는


도시를 두려워 하여,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겁에 질린,

그래서 나 또한 그들을 주시하며, 두려워 하고


그러나 나머지 반을 더 읽으니 뭔가 낡은 느낌...


아마도 (기억나지 않아 죄송하지만) 선배에게 받은 시집인 듯 한데
첫장을 펼쳐들자 열 장 정도가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쩍 떨어져 버렸다


바스라질 듯 낡은 시집, 그만큼 낡은 시들

낯선 것이 낡아지기도 하는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을 잃어버리면 어디서 찾아야 할까?

'저마다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이 따뜻한 체온의 '나'로부터 결국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낡은 과자통 속에서 노랗게 바래져가는 몇 장의 사진들, 지금은 바뀌어버린 지 오래인 전화번호들, 차례차례로 사라져가는 몇 사람의 증인들...... 그리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역자후기

이런, 한때 내가 생각했던 것들인데...

'과연 이것은 나의 인생일까요? 아니면 내가 그 속에 미끄러져 들어간 어떤 다른 사람의 인생일까요?' p.241

자신의 삶에 대해 이것이 나의 인생이다, 라고 말 할 수 있을까?
그것을 규정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프랑스 소설은 명확하지 느낌을 주지 않아 잘 읽지 않는데
이것 역시 그렇지만,

괜찮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 쓰는 밤 랜덤소설선 11
윤영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작가는 90년대 초 주목받던 작가였다

이 소설은 긴 침묵을 깨고 2006년에 나온 소설집이다
그냥 소설집인줄 알았는데 읽고보니 연작이다

작가는 52년생이다
그래서 약간 편견을 갖고 읽었다
혹, 서정적이거나 고리타분하지 않을까? 아집으로 가득 차지 않을까?
그것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무대 뒤의 공연
내 창가에 기르는 꽃
당신의 저녁 시간
달빛 고양이
성주(城主)
소설 쓰는 밤

「무대 뒤의 공연」을 중심 삼아 거기서 갈라져 나온 이야기들이 차례로 이어진다 그리고 「소설 쓰는 밤」으로 소설은 이야기들에서 거리를 두고 마무리를 짖는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성주」였다
지하철에서 읽다 나도 모르게 울컥 울뻔 했다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동화되어 읽기, 참 오랜만이었다
주인공에게 동화되었다기보다는
일흔 살 먹은 주인공을 바라보는, 그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는 작가의 필력에 감동받았다
놓아주고 싶은 사람들, 순간들 그것을 놓아줄 수 있는 힘

작가의 나이에 대한 편견은 정말 쓸데없는 것이었다
계층과 세대가 다양하게 등장하는 연작에서
어느 하나 소흘하게 다룬 인물이 없다
정말 딱 그들이 할 만한 고민을 담고 있다

단점이 있다면,
작가가 모든 인물들을 이해하고 있어서
그들을 모두 배려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나는 그 단점마저도 좋아하기로 했다

작가의 다른 소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용희 옮김 / 하문사 / 1996년 7월
평점 :
절판


 


이야기는 부담없었다.
관찰자인 남자와 사건의 진행자인 사내와 창녀

낯선 항구에서 하룻밤 묶게 된 남자가 우연히 들어간 술집에서 만난 창녀와 사내의 이야기에 끼어들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표지에서도 거창하게 얘기하고, 작가 소개에서도 얘기하듯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독일사람으로 신낭만적 경향의 작품을 주로 발표했다.
나치의 추적을 피해 망명생활을 하다 우울증이 심해져 부인과 동반자살했다.
개인의 사랑과 자유 그리고 인간의 운명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에서 설명이 많다.

 소설 속에서 창녀는 행동한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건을 이끌고, 자신의 감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내는 끊임없이 말한다.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을 말하고 만다. 유일한 행위인 마지막 결말의 모습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남자는 변사처럼 끊임없이 읊는다. 그렇지만 사내의 부탁에 끔찍해 보이는 그의 사랑에 엮이기 싫어 거부하는 모습은 인간적이다.

 사랑에 있어 극단적인 두 사람을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을 통해 소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이 집착이든 증오든 사랑이든, 태초부터 있었던 것이다.

남자가 사내의 부탁을 끝내 받아들였다면,

책을 집어던지고 말았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