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활 - 11호 - 2016년 가을 혁신호
말과활 편집부 지음 / 일곱번째숲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0.  우선 존경하는 여러 선생님들 앞에서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키게 된 점 머리 숙여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앞으로 뼈를 깎는 자기 반성을 통해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운 인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하지만 작은 변명을 하자면, 오늘따라 컨디션도 극도로 안 좋았지만 외관 상 지정 성별이 남성으로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이미 (Sedgwick 노선에 대해 발언하던) 초반부터 "질문이냐 지적이냐", "mansplain이냐" 등등 계속 딴지걸며 제대로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는 한 여성 때문에 그때그때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처럼은 보였어도 내적으로는 그 심리적, 감정적 충격을 사후 처리하느라 갑자기 뇌에 부하가 걸려 결국 사고와 발언의 흐름이 끊겨버리면서 헤매게 되어 지연된 것이어서 이런 종파주의적 방해와 저지 행위엔 유감이 있고, (더구나 누군지도 모른 채) floor에는 언제나 질문만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편견이야말로 사악한 Stalin주의의 핵심 본질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러나 무엇보다 이러한 차단을 통해 그 결과 제 발언이 심지어 Lenin주의로 곡해되는 둥 결정적으로 중요한 몇 가지 오해들이 초래됨으로써 반드시 이것만은 바로 잡아야 할 필요가 있기에 본 글의 작성에 이르게 되었으니 상기의 반성을 필수 전제로!! 오해를 바로 잡기 위해 되도록 짧게만 마무리 하고 여성/썽 주체들의 독자적 post-mEgalian Strateg(er)y가 수립될 때까지 당분간 침묵 속의 기다림을 수행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다소 거슬리는 형식/외(형)적 요소들이 있었더라도, (attitudinal) noise와 message를 현명하게 분리하여 이하의 충정어린 간언을 차분히 검토해 주시기를 간구드립니다.





1.  먼저 손희정선생님의 답변과 전적으로 동일하게 문화와 정치경제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 제 발언의 근본 취지입니다. 그러나 따라서 사태와 현상의 정치경제적 측면을 완전히 망실한 현재 feminism 진영의 편향된 연구 방향은 재고되어야 할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현장에 20시 30분경에 도착한 관계로 김신현경선생님의 발표는 전혀 듣지 못 했지만, 이후 발표자[ 실은 토론자]들의 인용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논조는 추측할 수 있었기에 선생님의 사유에는 이미 당시부터 많은 부분 동의하고 있었으나, 제 발언은 선생님 개인이나 심지어 오늘 토론회 (panelist들) 자체만을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었기에 이 부분을 깊이 양해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김신현경선생님의 시도와 같은 전환이 더욱 적극적으로 그리고 대대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환을 통해 손희정선생님이 우려하신 바와 같은 소위 적들의 일부에 대한 면죄부[/사면 효과]가 정말로 발생하게 되는데 저는 이것이야말로 (Post-mEgalia적) 대전환으로서의 "연대를 가능케 할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인문주의 (문화연구) 분파가 생산해내는 정치적 최대 해악은 혼돈된 주적 개념과 교란된 대적 전선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메갈과 Womad 내 활동 대중이 공격하고 있는 남성들의 대다수는 남성동성애자들을 위시한 사회적, 생물학적 약자들일 뿐이며, 심지어 인문주의 연구자 층위에서조차 자신의 paradigm을 가장 깊은 층위에서 위태롭게 지탱해 주고 있는 이런 근본적 설정들은 매우 즉자적이고 즉물적인 대중들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기에 따라서 소위 "약한 남성들과의 연대"가 가능한지 안 한지 같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본질적으로는 그들과 똑같이 순전히 개인적인 감으로!! 그리고 호/불호로 결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손희정선생님(의 우려)처럼 이런 (잠정적!!) 사면 효과의 발생이 싫어서 아예 정치경제((학)적) 연구 자체의 철회를 고려한다는 것은 단순히 목적론적 본말 전도일 뿐만 아니라 황우석에 버금가는 연구윤리 위반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면 가능한 주체들은 방치해 둔다면 결국 그 폭발 직전의 들끓는 불만에 가득 찬 해석의 공백을 싸구려 fascist ideologue들이 메우게 됨으로써 주적의 수중에 장악되어 mEgalian들을 때려잡는 fascism의 하수인과 행동대원들로 역이용 당할 것이기에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반드시 적극적 견인을 통해 전취해 와야만 합니다.


2.1.

지금 총체적 사태는 (참석자) 여러분들이 안이하게 생각하고 계시는 것보다 훨씬 더 엄중하고 위험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Russia-Ukraina/e 戰 양상을 띨) 국지화된 21세기 3차대전으로서의 동북아/한반도 전쟁 가능성이 점점 가시화되어가고 있고 이는 은폐된 세계대공황과 양적 완화 실패( 가능성)에 근본적으로 연동되어 있으며 이런 세계 경제 전망과는 별도로 한국 경제는 전쟁과 상관없이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에 따라 한국에서는 점점 더 fascism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부상할 수 있습니다.



2.2.  신자유주의와 (고전적) Fascism의 관계, 그리고 혐오의 정치학

앙자는 구체적 앙태에서

축적 위기에 몰린 독점자본의 노골적 폭력 체제라는 공통 본질을 기반으로, 경제위기의 최대체감피해자로서 몰락해가면서 신분상승의 닫혀가는 좁은 문 앞에서 하층계급과 자신을 구별짓고 그 차별성을 극대화시켜 appeal하고자 열망하는 Petit Bourgeoisie 중(하)위 계급을 혐오의 정동을 통한 주체화의 열정으로 무장한 중심 주체로 동원해 냄으로써 (여성과 잉여계층을 포함한) (최)하층계급들에 대해 (복지 및 부양 부담 일소와 노골적 차별 및 배제를 위한) 무자비한 폭력을 실현해 낸다는 공통점이 있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양자는 상호 대립 길항하는 2개의 진영이 아니라 위기의 정도와 국면에 따라 자유자재로 전환되는 Janus의 두 얼굴일 뿐이며 위기가 심화되면 자유방임을 표방하는 신자유주의라는 가면을 벗어 던지고 극단적 폭력체제로서의 Fascism이라는 진짜 얼굴이 드러나게 되는 것.


¶ (혁신호 발간 기념 참조)☞ 박찬종. "금융화: 현대 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 {말과활} 11호




((참고로, 따라서 좌파도 Bolshevism 대 자유/자율/자주(관리) 사회주의 및 anarchism 간에 불구대천의 영구대립적 선악 2분법과 독선적 유일진리관의 사고방식을 지양하고 각 정세 국면에 민감하게 연동하며 유연하고 신속기민하게 이동전환할 수 있는 다양하고 체계적인 좌파-통치성 유형들을 끊임없이 발명해 내야 한다는 것이 후기 Foucault에 대한 졸고들의 행간 취지였던 것입니다.))







최종 결론:  막연한 약자들과의 윤리적 연대가 아닌 반Fascism 연대 전선으로!!!






마지막으로 Sedgwick 노선에 대한 비관은 상기 1항의 맥락에서 그 연장으로서 본의 아니게 서동진, 최원선생님 등과 궤를 같이 하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이 자료들에 대해서도 적극 검토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 ☞ 최원. " ’정동 이론’ 비판 ―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과의 쟁점을 중심으로". 『라캉 또는 알튀세르(; Lacan sive Althusser)』 난장. ’2016.

¶ (혁신호 발간 기념 참조)☞ 서동진. "마음의 관상학에서 벗어나기 ― 감정과 체험의 유물론 1". {말과활} 11호.



[참고 자료]


한국 노동 시장에서의 세대별 남녀 취업 현황 및 임금 격차












[추  기]


    본서를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글들 중 하나는 단연 [흐름과 초점] column으로 기획번역소개된 Nancy Fraser의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의 도래"라 할 수 있는데 현재의 세계사적 단계에서 모색될 수 있는 (강력한) 하나의 대안 paradigm model 제시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Nancy Fraser model에 대한 본격 검토는 다른 공간에 할당키로 하고 여기서는 (마무리에 해당하므로) 보다 긴급한 단상들만을 추가하는 것으로 갈음하겠습니다.

먼저 가장 아쉬운 부분인 매우 독특한 Nancy Fraser식 Feminism 분류법에 대한 평가인데 그는  2세대 1막, 2막, 3막이라는 명명을 창안하고 있는데 그 세부 내용을 검토해보면 그가 말하는 2세대 feminism이란 사실상 좌파 feminism으로 1막은 좌파 feminism 1세대로서의 MF[ =Marxist feminism]를, 2막이 그에 대한 반동/반발로서 가부장제 주적론과 정체성 정치로 발화한 RF[ =Radical feminism( ≠Radicalist feminism; (3세대) 급진(민주)주의 feminnism)]를 주축으로한 주류 2세대 feminism과 좌파 feminism 2세대로서의 SF[ =Socialist feminism ;사회주의 feminism](내 온건우파)의 혼합을, 3막으로 3세대 (좌파) feminism을 의미(하고자 시도)하고 있는데 이는 좌/우파의 정치적 분류축(과의 교차)을 사상하고 시간축 하나로만 모든 feminism들을 분류하려는 오류로 복합/통합주의자로서의 자기위반일 뿐이며, 이러한 2세대 feminism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과장은 그의 출발점=출신지=고향과 혼동된 좌파 지향성의 표식/흔적이고, 진정한 2세대의 부정성에 대한 비판과 탈주를 가능하게 할 상대화를 가로막는 감옥으로서의 (분류) 도식일 뿐으로 사료됩니다.


다만, 이러한 착상의 그나마 긍정적 측면을 최대한 재활용해 세분화라는 구도로 정당화하면 2.1세대는 그래도 계급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SF[ =사회주의 feminism으]로, 2.2세대는 이것을 완전히 망실해버린 채 극단적 2분법의 정체성 정치로 빠져버리게 된 RF로, 2.3세대는 이들의 해악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본질로 표방하며 등장한 3세대의 좌파, 즉 (postmodern 및) poststructuralist 급진(민주)주의 feminism으로 합리화해 볼 수 있겠으나, 밝힌 바와 같이 2.3세대는 2.2세대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그 과업이자 본질이고 무엇보다 기반하고 있는 근본적 paradigm이 매우 상이하기 때문에 양자는 같은 세대로 묶이기 어려워 보입니다. 아무리 적극적으로 긍정화해도 2.3세대로 정위 시도해 볼 수 있는 2세대 말 3세대 초(기) feminism은 사실은 2세대 feminism 전체에 대한 비판에 더 주력하는 2세대 post-feminism이었고 이러한 반립을 통해 이후 미세한 차이를 보이며 3세대 feminism으로 계승, 정립되어 나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작성자 본인의 전고들에서 제시된 분석/분류 model에서의 LF[ =Liberal feminism]에 대한 결과적 과소평가가 반성될 수는 있는데, 이는 한국을 포함하는 많은 나라들에서 LF가 본격적 (대중)운동으로 출현하지 못하고 누락, 미발현, 압축-이월/월경하거나 좌파 1세대 대중 feminnism운동의 영향과 연동/혼합되어 출현했었기 때문에 먼저 (자가) 시도된 바대로 0세대 feminism으로 분류하거나 아니면 1세대 우파/중도 feminism 등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공히 모든 1세대 feminism( 분파들)의 근본 동력과 기반은 누가 뭐래도 어쨌든 전고에서 밝힌 바와 같이 경공업 중심의 근대 산업자본주의 초기 값싸고 복종적인 여성 노동력의 대규모 동원과 이를 위한 여성 (대상) 대중교육 도입이며 LF는 그 대중 기반 동력의 특수한 일파적 반영이었을 뿐이고 이 계급 분파들의 LF는 이를 (분)기점으로 같은 LF계보라도 그 내부에서 이전의 극히 제한되고 수동적인 소수 elite 여성들의 선각자적 0세대 LF(/)운동과 이후 시대 분위기에 편승해 본격 대중운동으로 발화한 1세대 우파/중도 LF로 양분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당시의 시대 분위기(, 특히 1세대 안에서의 좌/우파 관계, 작성자의 model에 기반하여 좀 더 정밀히 표현하면 1세대 좌파 feminism과 1세대 우파 feminism 간 관계)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서술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할 수 있음.

¶ ☞ Orr, Judith (2015). Marxism and women’s liberation. Bookmarks Publications.

국역본: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 역: 이장원. 간: 책갈피. ’2016.















(여담으로 별표 평가점수제는 선호하지 않으나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Review 작성 자체를 할 수 없는 system이라 어쩔 수 없이 표시했고, 별 5개는 주로 명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중요한 책들에 주기 위해 자제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혁신호의 기개가 느껴지는 본서에는 잡지류로서는 최고점을 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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