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자본주의 - 현대 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 아우또노미아총서 27
조정환 지음 / 갈무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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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서에 대한 총괄적 이론 검토는 다른 자리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다만 그간 인지자본주의론에 대한 비판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노동가치론' 논쟁과 관련하여 일단 시급하다 생각되는 짤막한 언급만을 메모형식으로 게재하기로 한다.

 

 
 

 

첫째, 인지자본주의론의 핵심 messege는, 플랫폼만 제공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꿀벌처럼 꿀을 모아오고, 스스로 집을 짓고, 엄청난 활동의 결과물을 스스로 축적해 주는 각종 소셜 네트워크 같은 Platform 자본주의 등 모든 새로운 착취와 전유 방식들의 등장과 변화를 통해 후기자본주의가 탈산업화를 거치면서 이제 공장내 육체노동만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공장 밖으로 전면적으로 확대되어 사회공장, (거대)도시공장화하면서 공장 내외의 모든 다양한 (가치(/)생산)요소들; 감정-정서, 언어, 인지, 인간관계=인맥(활동) 등등 생명과 생활의 모든 요소들에 노동을 시키며 영혼까지 착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인지자본주의론은 노동과 착취개념이 모든 생명활동으로 전면화 되는 현상에 대한 포착과 이론화일 뿐이며, 자본주의의 착취 기반이 과거의 영혼없는 노동에서 이제 노동하는 영혼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이 그 핵심의 가장 형상적인 요약이다.

 

따라서 흔히 오해하는 바처럼 얄팍하게 지식인(계층)을 지식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옹호하려는 중간계급 ideology도 아니고, 이 과정에서 여전히 노동의 위계화와 계급 차별, 계급 서열화는 엄밀히 유지-관철될 뿐 아니라  (노동과 관계의) 식민화, 외주화를 통해 완전부불/무급노동화, 비고용노동화까지 격화됨으로써 이에 의한 노동과 계급 간 차별과 위계-서열화, 계급 적대는 더욱 심화된다. 이 새롭게 서열화된 노동들의 위계에서 절대 다수를 이루는 주류 인지노동은 고급지식노동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시장근본주의에서 악의적으로 차별 받고 있는 새로운 부불노동, 여성노동의 형태들인 하층의 각종 Service노동들, 특히 전화상담, 고객상담 등 감정노동들과 보육, 간병, 가사 등 돌봄노동들, 비정규직, 청년실업, 실버노동, Prosumer노동, Cyber노동, Crowd sourcing 등등 각종 그림자 노동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구조적으로 배제-도태된 가난한 예술노동 등의 모든 비시장주의적 노동들이다.

또한 가치생산에서의 노동(계급)의 독점적 절대적 기여(도)를 위협하거나 전통적인 노동(들)의 가치를 폄훼하려는 어떠한 시도와도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전통적인 (그러나 이제는 체계/체제의 수혜자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대기업/대공장 조직 산업노동자 뿐 아니라 비정규직과 부불노동, 여성노동 등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모든 노동계급 구성원들을 가장 폭넓게 가장 전투적으로 옹호하는 새 시대의 강력한 이론틀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완전히 다르게 인지자본주의론을 노동가치론 논쟁으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의 핵심이 전혀 아니고 오히려 핵심에의 집중을 심각하게 왜곡/방해하는 MacGuffin에 불과하다[각주].

 

 

 

 

둘째, 인지자본주의론은 이러한 노동과 착취의 전면확장과 다양화 과정에서 그 일부의 현상으로 전통적 산업자본주의의 기반이었던 Fordism 체계 상의 표준화된 단순노동을 중심 대상으로 개발된 가치측정 방법론(/)모형이 다소의 난점을 겪(으면서 일반적 설득력이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현실을 부인하지 않고 수용하여 적극적 해결을 모색하려 시도하고 있을 뿐, 단순히 모든 인지자본주의론자가 가치측정 가능성 자체나 가치법칙을 전면 폐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노동가치론을 부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따라서 '노동가치론 논쟁'이라기 보다 '가치측정( 방법)론 논쟁'( 또는 정말 아무리 양보해도 '가치"법칙" 논쟁')으로 호명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왜곡성이 적다고 할 수 있다.

 

이 논쟁에서 인지자본주의론 진영 내에 '가치실체론'보다 '가치형태론'을 선호하는 경향이 좀 더 다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흔히 오해하듯이 가치수량화는 가치실체론의 전제 하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가치형태론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며, 따라서 인지자본주의론 진영도 제기된 가치측정 상의 난점 문제와 관련하여 가치측정 가능성을 유지 또는 유보하는 그룹과 폐기로까지 나아가는 정치적 독해론 그룹으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그런데 여기서 지적되어야 할 점은 이 논쟁이 언제까지든 측정 가능성 자체를 두고 왈가왈부, 갑론을박 해봐야 결코 해결이 나지 않는 문제 구조로서, 제기된 난점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 (생산) 및 노동, 착취 유형들에서도 엄밀히 관철, 작동되는 새로운 가치측정 방법론(/)모형을 개발해 낼 때에만 건설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국내 가치론 연구의 대가이신 이채언 선생님께서 최근 Communnale에서 발표하신 "Marx 가치이론에 있어서 닫힌 가치체계와 열린 가치체계" 같은 시도는 이런 문제 구조를 정확히 관통하는 매우 생산적의 논의 전개로서 모든 (폐기) 반대론자들에게 (방향과) 시사점을 제시해 줄 매우 의미있는 작업으로 보인다.

 

 

 

 

넷째, '엄밀하게 관철되는 가치법칙'의 자본주의적 역-이용(/)효과 문제.

엄밀한 가치법칙과 가치측정(모형)은 사실 잔인한 '무노동 무임금' 철칙과 함께 엄격한 성과급제의 구현을 위해 필요했던 산업자본주의의 ideology( 요소)이며 Ford주의 생산방식 하 분배체계의 근간이자 그 소산으로서 아무런 반성적, 철학적 성찰없이 교조적 관성에 의해 맹목적으로 추종, 옹호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 현철한 선결적 사유를 시도해 보아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생산과 노동 능력이 없는 장애인 계층 등 모든 존재자를 고려하여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사용한다"는 따뜻한 communism의 이상에도 위배될 뿐만 아니라, 이미 post-Fordism 하의 사회공장, 거대도시공장화된 항상적 복합 network 작업 방식에서도 다시 개인 노동 단위로 "엄밀히" 가치 (생산) 기여도를 환원적으로 복고 계산해 내는 것은 각고의 노력을 통해 설령 성공한다 하더라도 결국 2중 효과를 발생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며 오히려 정보재등 지적 재산과 그외 모든 새로운 식민화 및 상품화와 사적 소유권 주장을 위한 굳건한 토대 개발로서 가치 평가와 가격 계산 등 지금 자본가들이 가장 절실히 원하고 있는 생존도구이자, communism의 도래, 이행을 지연, 방해하고 그 징검다리로서 새로운 시대의 분배체계이자 이념인 기본소득(론)등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이론적 근거 중 하나를 아래에서부터 허물어 자본주의를 구원, 연명시키는 결정적 수단으로 전유당할 수 있음을 먼저 유의, 각성할 필요가 있다.

 

 

 

 

소결1. 인지자본주의론의 의미에 대한 확장적 재평가의 필요성.

  인지자본주의론은 기본관점과 인지태도에서 끊임없이 조절-변화-적응하는 자본주의에 대하여 수구적인 구좌파가 보여주는 방어기제로서의 현실 부정과 억압/망각, (자기)합리화 같은 도피형이나 기만형 패턴, 또는 반대로 조절이론류의 패배주의적 체념과 수용 패턴 양자를 모두 극복하고 현실의 변화를 면밀히 적극적으로 연구하면서도 급진적 관점과 대안 전망을 결코 잃지 않는 (Gramsci적) 투혼을 훌륭히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전통적인 착취모델 이외에도,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로 이윤율이 저하된 자본주의 중심부/선진국들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부식민지에 대한 전면확장의 일과정으로서의 시원축적=비자본주의/탈산업자본주의적 환원의 주요 메커니즘으로 등장한  (노동과 관계의) (재)식민화, 여성(노동)화=무급부불노동화, 금융화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매우 오래된 전통적 무급부불노동인 여성노동에 대하여도 막강한 (친)여성주의 경제학 이론틀을 제공하게 될 것이며 새로운 부불노동, 여성노동의 형태들인 비정규직, 청년실업, 실버노동, 감정노동, Prosumer노동, Cyber노동, Crowd sourcing 등등 그 모든 (신(신))식민주의적 외주노동들과 비고용=미상품(화) 노동들에 강력한 통찰과 영감을 주는 이론적 투쟁 수단이 될 것이다.

 

 

 

 

 

소결2. 보편성? 또는 추상에서 구체로의 상승

;  역사적 자본주의와 현실 자본주의

a.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화 문제

b. 순수이념형 자본주의 vs 현실 자본주의로서의 macro사회구성체 문제.


잉여가치추출의 다양한 복합 경로들과 그 원천으로서의 부불(분) 노동.

상품(경제)회로를 통한 일부불 고용노동의 소위 "착취" model은 그 일 경로/형태에 불과할 뿐.

오히려 후기 자본주의는 유일한 활로로서 (직접)고용의 최소화 때문에 상품회로의 외연(/)주변부에 지배-관리-통제권 하에 있으면서도 (전혀) 지불되지 않는(,) 노동들에 대한 "수탈"과 액체화되고 추상/일반화된 현대(판) 토지로서의 금융-자산에 의한 임대-지대 "수탈" 기반 내부식민지 model들로의 환원과 다양한 (재)확대가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후기자본주의에서 자본(경제)의 정치-명령-폭력화는 자본주의의 국가화에 의한 국가(독점)자본주의화에 정확히 조응하는 일반 현상으로(서), 이 모든 기저에는 (공황, 과소소비, 이윤율저하 등등) 순수자본주의의 (각종) 위기와 그에 따라 (재)식민화(에 의한 폭력적 원시축적 model)로의 (탈산업적) 환원과 확산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근원이 존재한다.

 

 

 

 

 

소결3. 자기붕괴에 대한 구좌파의 불안-공포증에 대하여

; 소극/방어/수구적 협의의 Marxism과 확산/진취/혁신적 광의의 Marxism.

 

 

 

 

 

소결4. 인지자본주의론은 Foucault 정치경제학의 혁명적 발전으로서의 생명경제, 생명자본주의론의 다른 이름이자 그 일부.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인지자본주의론은 국내에선 극히 최근에야 출간된 Foucault의 선구적 신자유주의론( 비판)을 담고 있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과, (그 주제에 너무 몰입하는 바람에 본격 시도도 제대로 못하고 못내 아쉬워하며 끝나버린) 그 책의 원래 궁극적 목표였던 "삶/생(명)(관리)-정치론"의 합리적 핵심을 더욱 발전시켜 경제적, (총)체제적 차원까지 끌고 나가는 생명-경제, 생명-자본주의(bio-capitalism)론의 다른 얼굴이고 층위인 것이며, bio-capitalism 시대 금융자본주의 분석의 핵심적 혁신 중 하나랄 수 있는 Lazzarato의 부채(인간)론 같은 통찰들이 계속 잉태되고 터져 나오는 혁명 정신의 토양이다.

 

그런데 그간의 (한국 사회에서) 인지자본주의론의 수용과 논쟁 과정을 돌이켜 보건데 그 최대 장점으로서의 혁명적 잠재력과 설명력에도 불구하고 반대 흐름은 오히려 좌파 내부 그것도 급진 좌파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구좌파적 전통으로부터 제기되어 왔다는 사실은 irony를 넘어 비극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여러 구시대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그 하나로 계속 확인되는, 예상 외로 낮고 불철저한 구좌파의 인지자본주의론에 대한 이해도와 그에 의해 거대증폭된 '인지자본주의'라는 '이름'이 초래한 오해와 선입관념-태도들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이름'이 아무 (실질적) 연관도 없이, 위에서도 지적했듯 꽤 오랜 역사가 있는 '얄팍하게 지식인(계층)을 지식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옹호하려는 (중간계급) ideology'에 대한 구좌파의 거부감과 저항을 불필요하게 소환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도 인지자본주의론은 물론 Foucault, Agamben등등으로 이어져 온 '생명(관리)정치'론/개념의 본질과 핵심 messege들도 더욱 잘 표현하고 있는 '생명자본주의'론이라는 호명이 여러가지로 더욱 적절해 보인다. 

 

 

 

 

 

 

 

 

[각주]――――――――――――――――――――――――――――――――

 

MacGuffin, McGuffin (맥거핀)

 : 소설이나 영화에서, (주로 결말부에서의 (예상치 못한) 극적 대반전을 위해) 어떤 사실이나 사건이 매우 중요한 것처럼 꾸며 독자나 관객의 주의를 전혀 엉뚱한 곳으로 돌리게 하는 속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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