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타자들 - 우리는 어떻게 타자를 혐오하면서 변화를 거부하는가
이졸데 카림 지음, 이승희 옮김 / 민음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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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죄송하지만, 이 Review는 그 시급성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일정관계 상 핵심논지만을 거칠게 요약 제시하기로 합니다.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0.

우선, 혁명적 좌파의 철학은 명확하고 일관되며 방황하거나 동요하지 않습니다.



정치와 경제는 분리될 수 없으며, 이를 분리하고자 하는 모든 경제주의, 정치주의 조류들은 좌충우돌하며 불안하게 흔들려 온 근대 Bougeoisie의 분업적 세계관과 이에 오염된 다양한 편향의 변종들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는 Nancy Fraser에 대한 결정적 최대비판으로서 Judith Butler도 원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Marx주의 사회재생산론의 핵심과도 완전히 일치하며 속류화된 경제결정론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Freud주의 계보에 대한 Marxism의 비판 또한 마찬가지로 세계의 실재로부터 유리된 정신 영역만의 고립적 분석과 대안은 공허하고 근거없는 관념적 유희와 궤변에 불과한 정신분석'질'일 뿐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합니다.



0'.

그런 점에서 Isolde Charim의 본서는 그 참신성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혁명적 좌파 전통의 핵심 정신을 결여한 채 순수 Freudo-Lacan주의의 방법론적 오류를 고스란히 반복답습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한계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정치경제적 실재와 문화심리적 현상은 긴밀히 상호 접합되어 있으며, 분리고립적으로는 결코 그 전면적 진실과 근원이 파악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분석을 완전히 결여하고 있는 본서는 그 인상적 참신성에도 불구하고 혼란스러운 현재 국면의 국제정치와 세계사를 돌파해낼 수 있는 이론적 인지 지도로서는 매우 불충분한 또하나의 실패로 귀결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은, 아직 국내에서 그 숨은 가치만큼 완전히 평가되지 못하고 있으나 과학적 Marxist Analytics의 계보를 잇는 Giovanni Arrighi를 경유하는 model이 제언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하는 Arrighi의 결론을 Kondratiev 파동론 등 여타 경제사론과 통합하여 독자적 통찰로 확장한 하나의 작업모형으로 제국주의론, 세계체계론과 최근의 제국론 등 모든 좌파적 국제관계이론들을 통합하는 paradigm도 함께 제시할 것이다. 경어는 생략]



Nik(h)olai Kondratiev(-Schumpeter) 장기파동론 계열은 10년 주기의 예외없이 반복되어 온 기계적 경기순환을 반영하는 Juglar 파동( 및 Kitchin 파동) 등과 달리 총체적 생산력 및 생산관계의 사회경제적 내부모순과 특히 계급투쟁의 결과로 실현되는 구조위기를 반영한다. 이 모든 파동론들은 각각 실물경제 또는 금융-부채 부문들에서의 순환과 변동을 부분적으로 modelling하여 도출된 것들인데, 이들을 모두 종합하면 기본적으로 Kondratiev 파동에 동조되면서 종합도에 따라 미세조정되고 정교화되는 Ray Dalio의 Economic Machine Theory와 같은 Pattern을 얻게 되는데, 이를 다시 엄밀한 Marx주의 이론에 따라 해석하면 그 어떠한 경로를 채택하든 결국 Arrighi와 유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결론에 의하면, Arrighi가 잘 보여주듯이, 영국에서 촉발된 산업혁명 이후 뿐 아니라, 그 이전의 Netherlands( Holland), Portugal/Espagna, Venezia/Genova 등 12~13세기 이후 세계경제 뿐 아니라 심지어 10세기 남송/북송 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변동/순환과 지구적 중심이동 현상을 모두 설명해내는 장기근대론이 입론될 수가 있다. 






(참고로 좌파 내부의 첨예한 일쟁점과 관련하여 첨언하면, Michael Roberts 등 전통적 구좌파들의 경제(위기)사론이 가진 결정적 문제점이자 Arrighi 세계체계론 등 최신 이론 계열들과의 핵심적 차이는 구좌파 이론들이 금융자본(주의) 영역을 충분히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오직 이윤율 변동만을 고려하는 등 전반적으로 기본 성격이 산업자본주의 모형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Arrighi, Dalio 등으로 대표되는 최신 경제사 model들은 산업자본 중심의 이윤율 추세 뿐 아니라 금융자본 영역의 변동과 순환에도 촛점을 맞춰 통합적 설명을 완성한다. 덧붙여, 거의 국내 최초의 정통 위기론/공황론 전공자라 할 수 있는 김수행 선생님께서도 이러한 사태를 특별히 염려하시며 돌아가시기 직전 행하신 강의들에서 유언 격으로 강조하신 내용 중 하나가 '이윤율 저하'는 추세적 경험칙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음. 그러나 궁극적 이윤율 저하는 (초)장기적으로는 결국 실현되는데 이것이 구조적 축적 위기를 초래하는 근원적 압박이긴 하나, 이를 상쇄하기 위해 자본은 모든 노력을 경주하며, 다양한 변칙들을 시도하는데 금융적 전환, 기술혁신과 구조 '조절regulation[레귈라시옹]', 새로운 지리 및 산업=노동 부문으로의 끊임없는 식민지 개척과 확장, 그리고 전쟁 등등의 순으로 가능한 모든 시도들을 감행하고, 이 때문에 이윤율 저하는 단조감소곡선을 따라 단순하게 예외없는 '구조적 인과법칙'으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며, 지금껏 이러한 시도들이 그럭저럭 성공해 왔기 때문에 심지어 붕괴를 극복하고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변신하며 유지생존해 올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자본가의 이윤 동기는 생산력의 모순적 발전으로서 노동절약적이고 자본소비적인 편향적 기술진보를 추동하고 이는 결국 자본생산성의 저하(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와 이윤율 저하를 초래한다. 자본축적의 한계를 의미하는 이윤율 하락은 자본축적의 일반적 법칙의 두 가지 결과로서 자본의 과잉(금융화)과 노동의 과잉(궁핍화와 그 결과로서 과소소비), 즉 ‘착취와 억압의 증대’를 야기한다. 이러한 기제로 이윤율 저하는 Rosa Luxemburg-LeftCom계열의 과소소비론 등과 대립하는 배타적 유일 원인이라 볼 수 없으며, 위기의 요소들은 이와 같이 복합적이고 동시적으로 진행된다.)





2. Arrighi 세계체계론의 내용


Arrighi는 '1960년 당시 신고전파 경제학의 강자였던 Milano Bocconi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Zimbabwe의 Rhodesia와 Tanzania 등지에서의 교육 및 민족해방 관련 연구활동을 하면서 Immanuel Wallerstein을 만났고, '69년 귀국 후에는 좌파 노동운동과 연계된 ‘그람시 그룹( il gruppo Gramsci)’에서 활동하다, 다시 Wallerstein과 합류하기 위해 '79년부터 미국 Public Ivy 중 하나인 뉴욕주립대(SUNY Binghamton) 페르낭브로델센터에서 전세계로부터 몰려든 다양한 제3세계 지식인들과 자유롭게 교류하는 가운데 Wallerstein, Andre Gunder Frank, Samir Amin과 더불어 세계체계론 4인방으로 불리며 '98년 Johns Hopkins 대학교로 옮기기 전까지 센터(The Fernand Braudel Center for the Study of Economies, Historical Systems and Civilizations)를 세계체계론의 총사령부로 만든 인물로, 놀랍게도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언했던 그의 주저는 이미 그 14년 전인 '1994년에 초판이 발간된 바 있다.




체계적 축적 순환에 대한 Arrighi의 분석에서 주목되는 것은, 모든 세계적 축적체계가 최종적 붕괴를 맞기 전 금융부문이 일시적으로 팽창하면서 ‘반짝 호황’을 누린다는 점이다. 축적체제가 활력을 잃게 되면 자본이 과잉축적되면서 생산·유통 부문의 이윤율이 금융수익률보다 하락하고, 유동자본을 얻으려는 국가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는데, 그 결과 실물부문의 자본이 금융으로 전환/이탈하면서 두 부문 모두에서 이윤율이 일시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영국의 ‘belle epoque’, 1990년대 미국의 신경제 호황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이런 호황은 금융부문의 투기적 활황과 생산부문의 부분적 경쟁 완화를 통해 달성된 것이기에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이런 분석은 정보기술(IT) 거품[ 소위 'dot com bubble' 등]과 과열된 주택경기 덕에 지탱되던 미국 금융호황이 결국 파국을 맞은 것에서도 입증된다.




Arrighi는 미국 세계hegemony의 최종적 위기가 1970년대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진단한다. 이와 같은 진단은 1970년대부터 미국의 금융적 팽창이 본격화되었다고 보기 때문인데, 자본주의가 등장한 이후 존재했던 체계적 축적 순환들( 특히 Genova, Netherlands, 영국, 미국)을 분석함으로써 그 실증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각각의 체계적 축적 순환은 노동과 기계 같은 실물 부문의 투자가 증가하는 실물적 팽창 국면과 이윤율 한계와 저하에 따라 실물 부문의 신규 투자를 점차 중단하고 금융 부문이 주요 산업으로 부상하는 금융적 팽창 국면으로 구성되는데, 금융적 팽창이 시작됨과 동시에 그 축적 순환의 쇠퇴와 다음 축적 순환으로의 이행이 진행되는 양상을 반복해서 보인다. 197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경제체계를 재편했던 Bretton Woods system이 붕괴되면서 고정환율제가 변동환율제로 전환되었고, 이동자본에 대한 규제가 제거되었으며, 공공채무의 증권화가 진행되는 등,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시작되었다. 이런 일련의 변화는 미국이 자본의 수익률이 하락하고 20세기 초반의 실물적 팽창이 끝나면서, 이를 금융적으로 해결하려 한 증거로 볼 수 있다.



앞선 세계hegemony의 쇠퇴 국면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우에도 자본의 핵심 사업은 점차 금융으로 전환되었다. 이런 금융으로의 전환은 한편에서 세계적으로 금융위기를 전파하는 동시에, 하락하던 자본의 수익성을 반전시키는 효과를 동반하였다. 하지만 수익성의 상승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앞선 체계적 축적 순환에서도 등장했는데, 언급했듯 Arrighi는 이를 19세기 후반 유럽에 등장했던 belle epoque가 20세기 후반의 미국에 재현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축적체계의 근본적 전환이 아닌 단순한 자본수익성 하락에 대한 반작용일 뿐이기 때문에 hegemony의 전성기에 비해 그 지속 기간이 매우 짧고, 세계체계를 거대한 불안정으로 이끌면서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종료된다. 






하지만 쇠퇴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미국의 금융적 팽창은 이전 순환과는 다른 특징들을 또한 보여 주고 있다. 금융화한 세계의 이동자본이 새로운 축적의 중심지로 집중되기보다 기존의 쇠퇴하는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으로 집중되고 있고,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되고 있을지라도 미국의 군사력에 대해서 도전할 수 있는 나라가 없을 만큼 미국의 군사적 우위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또한 동아시아가 새로운 축적의 중심지로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 새로운 체계적 축적 순환을 구성한다고 볼 수 있을 만큼의 전면적 변신을 보여 주고 있지 못하며, 국가간-체계의 위기가 수시로 출현해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개입이 더 늘어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례적 상황은 미국이 쇠퇴하는 헤게모니를 반전시키기 위해 앞선 헤게모니 국가들보다 훨씬 많은 자원과 노력을 쏟아붓게 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이런 미국의 노력이 체계유지비용을 급격하게 증가시키면서, 체계의 구조적 위기를 감소시키기보다 오히려 그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 이라크전쟁의 실패와 미국발 금융위기를 통해 현재 확인되고 있다.




3.

Charim의 본서와 관련하여 Arrighi 세계체계론이 주는 핵심적 시사점은 


첫째, 역사 속에서 (Kondratiev 파동으로 modelling된) 이 연속적 구조위기들이 k차 실물경제 위기 이후 k+1차 금융 위기로 쌍을 지어 하나의 체계순환 주기를 완성하면서 이에 따라 유사한 사회현상들이 '반복' 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대략 100년 주기의) 초장기 '체계(적 축적) 순환 주기'를 우리는 (특히 수리정치경제학적 접근을 위해) 'Arrighi 파동'으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며 소위 '장기 20세기'는 그 연속 파동에서 최근의 cycle에 해당한다고 규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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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세대 feminism은 자유경쟁 증기기관 산업자본주의기 섬유업 등의 경공업 분야에 노동자로 대거 진출하며, 이를 위한 대중교육으로 의식이 성장하고 역량이 축적된 여성계층이 1865~1900년 연간에 걸쳐 진행된 제2차 산업혁명과 ’함께’ 발생해 특히 1873~1896년 상간에 정점에 오른 제1차 구조위기 대불황을 전후로 공격받으며 그에 대한 저항으로 ’참정권--suffrage--’ 이쓔를 중심으로 소수 명망가 중심 Suffragette들의 우파적 LF와 노동대중 중심의 좌파적 MF가 동시 부상했던 것이며, 이후 자본주의는 독점자본주의로 이행하고 3차 구조위기기까지는 기본적으로 2차 산업혁명에 의한 석유-전기동력 기반의 대규모 중화학공업 중심체계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된다.




1929~1945년 상간의 제2차 구조위기 대공황기엔 독자적 feminism 물결로 가시화하진 못했으나 연속되는 세계대전의 포화와 지구적 계급투쟁의 열기 속에 (대부분 극우 fascist세력에) 흡수된 애국 feminism[1]의 형태로 동시 출현했었다고 보아야하고, 독점자본주의는 fascism과 Keynesian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전화한다.


1970/74~1982/85년 연간의 제3차 구조위기 불황기를 전후로 68혁명에 뒤이어 2세대 feminism이 부상했으며, 그 원인은 이 직전 3차 호황기이자 자본주의 최대번영기에 건설중화학공업중심의 자본주의적 가부장제가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핵심으로 하는 가족임금제를 본격화, 전사회화하며 오히려 그 정점에 달함으로써 여성계층의 체제불만 또한 역사상 최대화 되었기 때문인데 이는 최근역 『집안의 노동자』에서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도 지적했듯 복지국가의 주도적 기획이기도 했지만, 그동안 다른 글들에서도 계속 설명해 온 바와 같이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단계 상 필연적인 것이기도 했다. 이 가부장제가 복지제도와 함께 위기에 처하고 점차 축소-붕괴해가면서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체제로 전화되어 나아감으로써 이 붕괴기에 폭발한 제2세대 페미니즘은 일반적으로 역사상 가장 급진적이고 격렬한 형태를 띌 수 밖에 없었다.




이 위기를 계기로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세계체계로 다시 한번 전화하게 되고, 3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다가 이번 2007~2008년 세계금융위기에 의한 장기침체라는 제4차 신자유주의 구조위기로 세 번째 feminism 물결이 몰려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기존의 3세대 feminism의 정체가 사실은 2세대 post-feminism에 불과했고 이번이 진짜 3세대 feminism이 될지, 아니면 그냥 4세대 feminism이 될지는 이번 물결의 크기와 구체적 성격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3세대 페미니즘을 post-feminism으로 규정하려는 반동적 ’여성주의’--이건 멸칭이다. 이런 자각없이 과용, 남용되는 경향이 강한데 이유는 후술한다--적 시도가 종종 있어왔으나 이것이 Queer들에게는 그렇게나 고대하던 감격적인 ’물결’이기 때문에 이런 시도는 명백한 ’여성’중심주의, ’여성’이기주의적 퇴행이고 반동이므로 개인적으로는 이번 구조위기를 통해 드디어 페미니즘에서 ’물결’과 ’세대’ 개념이 분리정립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즉 이번 물결은 4세대 페미니즘을 발명해낼 제3물결이다.)








이런 패턴이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이유는 경제위기에 따른 중간계층 몰락과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위기!!"에 의한 피부양 약소계층 혐오, 위기 시 제1 취약대상으로서의 여성계층에 대한 자본과 사회의 수탈, 착취, 공격 집중 같은 두 번째 계열 3원 메커니즘이 반복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적 페미니즘 고양은 극우파시즘의 부상에 의해 촉발되고 촉매되는 ’반응’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이들 지역, 국가와 겹치는 경향이 있고 또 그만큼 보편적 현상이다.


극우파시즘과 페미니즘 부상의 공통 원인은 사회양극화와 복지제도 축소, 가부장 경제(생계부양자-가족임금제) 위기라 할 수 있다.



(경제문제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분들만을 위해 첨예한 쟁점 하나만 짧게 부연하면 신자유주의는 내부식민화와 노골적 차별 및 배제를 통해 얻어지는 (내부)식민지 초과이윤을 포함한 각종 초과이윤 부스러기들을 통해 이윤율하락과 축적의 위기를 타개하면서 독점을 극적으로 강화하려는 plan을 그 메커니즘의 한 핵심축으로 탑재하고 있고 이것은 일정한 효과를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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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요약될 수 있는 장기 20세기 경제사에서 1차와 3차 위기는 실물경제위기, 2차와 4차 위기는 금융(자본)위기로서 1차 위기 후 belle epoque를 거쳐 2차 위기로 하나의 체계순환이 완료되었던 것과 같이, 각종 사회적 저항과 계급투쟁에 의해 '60년대 후반 부터 본격화되어 '70년대 정점에 오른 3차 위기로 대대적 금융화에 의해 금융자본이 주도해 온 belle epoque가 바로 신자유주의이며, 2007~8년부터 본격적인 4차 위기가 시작되어 체계붕괴기로 접어들면서 대순환 주기가 완료되어가고 있는 것이 바로 최근 100년 전 상황이 계속 반복 출현하고 있는 듯한 deja vu를 겪게 된 근본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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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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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작성중으로, 특히 이하는 개인적 memo들에 불과하므로 아직 읽지 말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정세 분석의 방법론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상과 같이 상황과 시기/국면의 역사적 기본 성격을 규정한 다음 객관적 요소들의 구체적 기제와 양상들을 분석하고, 이어 주체들의 대응 방식




체계의 한계와 붕괴



주체들의 (심리적) 대응 양상




4. 체계와 체계 ideology 붕괴기 각종 방어기제로서의 반동 현상들




4.1. 대안 정립 전에 기존의 공동체구성 ideology를 포함하는 지배적 체계 ideology가 붕괴하는 혼란기에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로서 가장 먼저 등장해 온 개인주의; 각자도생의 ideology


퇴행/소극/감소적 개인주의가 득세하고 다시 정체성( 정치학)이 사회적 논란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다는 것은 기존의 신념과 ideology 체계를 지탱해 온 hegemony가 붕괴되는 혼란의 과도기(/잠재적 이행기)라는 징후임을 가장 먼저 지적하지 않는 모든 논의는 이미 궤변의 입구로 걸어 들어가는 첫 발을 뗀 것이다.


그리고 한없이 자기 내면세계에 집중하며 침잠해 들어가는 Hermann Hesse가 매우 잘 대표하는 수많은 전후 문학들에서도 곧잘 목격되듯, 이렇게 구조붕괴기 또는 최소한 구조전환기마다 제일 먼저 작동하는 원초적 필수방어기제로서 반복 출현해 온 개인주의가 Charim에게 '2세대'라며 특히 '60~70년대 유형만이 유독 인상 깊게 각인된 이유는 그것이 획일적 대중(소비)사회를 핵심적 특성으로 하는 Fascism등 전체주의와 Keynesian 복지국가, 현실사회주의를 모두 포괄하는 소품종 대량생산 Fordism기반의 국가(독점)자본주의 붕괴기 전후에 그 반립으로 출현한 진보적/공세적/대안적 개인주의였기 때문에 당시의 역사적 기능과 역할이 매우 적확하고 절실했었기 때문이다.




4.2. 기존의 고도한 가상/상상/추상/구성적 세계관과 자아(정체성) 이념들의 허구성이 폭로되며 붕괴할 때, 다음으로 등장하는 방어기제는 단순명쾌한 근본주의들, 특히 외모 (피부색, 성sex, 연령) 같은 확실하고 직관적인 생물학적/신체적 근본주의이다.

  

Charim의 주장을 한국처럼 인종적 외모 다양도가 낮은 사회들에 적용하려 할 때 드러나는, 아예 전혀 적용할 수조차 없게 만드는 가장 큰 모순점이기도 한데, 왜 한국 등에선 인종-민족이 아니고 대신 성별과 세대가 계층갈등의 주 전선으로 현상하는가의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선


직관적 표지(/)식별자




4.3. (금융자본(가 계급)의) 세계화/다문화/다원화 ideology 및 hegemony 붕괴와 그 반동으로서( 산업자본주의(부문) (기본=노자) 계급들)의 보호무역주의, 국수주의

     : Brexit와 Trump를 지지하는 Rust (Belt) 노동계급들[2]


국제적 규모에서는 실물경제 팽창기부터 점차 자유무역의 촉진을 위해 국제주의, 세계화 ideology가 서서히 각광받기 시작하다가 실물경제가 축적위기를 맞게 되면 이를 상쇄하기 위해 급격한 금융화가 이루어지면서 금융자본의 자유롭고 신속한 국제이동성을 위해 이전과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세계화 ideology와 정책들이 대대적으로 본격화된다.



바로 이 금융자본(가 계급)이 주도해 온 금융팽창의 체계(/) ideology가 Fredric Jameson의 후기 자본주의, Postmodernism, 탈산업/탈공업 사회 같은 한 축의 관념들의 실체로서의 신자유주의 체계이고, Charim 수준에서 사회 변화의 근본 원인으로 주장된 다원화의 실제적 주요 동인으로서의 세계화 '정책'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문화사적으로는 avant-garde 운동에서 발아하여 전기 la belle epoque 때를 '정점으로' 꽃피워 이후 Fascism에 융획되고 마는 사조가 futurism, surrealism을 포함하는 modernism이고, '68혁명을 motif로 발화하였으나 후기 bellle epoque에서 지배계급의 역습이자 포섭전략으로서 신자유주의에 혼종교착되고 착종교란되며 결국은 포획당한 채로 결탁과 협작공모를 통해 시대를 풍미한 것이 postmodernism이라 할 수 있는데, '68혁명과 신자유주의는 양자 모두 국가(독점)자본주의/독점자본국가주의 체계에 대한 (좌우) 대안 운동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국수주의적 보호무역주의는 국내적 복지축소 및 긴축정책과 함께 만연한 대중적 혐오감정을 연료로 추진되면서, 상호결합해 synergetic한 폭발적 상승효과를 발휘하며 결국 세계경제의 침체와 수축을 급격하게 가속시켜 한 체계의 구조적 순환주기를 파국적으로 완결하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4.4. 






5. 기술혁신이 몰고 오는 대량실업과 경제공황





6.




7




8. 




9.1. 항상 독점자본 승자독식과 그에 의한 극단적 양극화 및 경제공황, 시장의 실패로 귀결하는 ((신))'자유주의'의 (총체적) 위기와 붕괴, 그리고 그 종말




9.2. 다시 돌아온 "자유로부터의 도피" : (새로운) Charisma 갈망과 Fandom화



9.3. 독점자본 (신)자유주의기 혐오의 응축과 그 최종적 폭발로서 후속하는 Fascism



9.4. 연성 Fascism이자 맹아로서의 우익 Populism






10.

Fascism화의 속도와 강도는 전적으로 경제위기의 크기에 비례할 것이며, 지금까지는 사상 유례없는 전무후무 전대미문의 대규모 양적 완화에 의해 간신히 지탱해 오는 와중에 때맞춰 발생한 (소위 (축약된) 반도체 supercycle로 마무리 되는) Juglar 파동 하나의 융기로 여지껏 버텨올 수 있었으나 이제부터 3중 위기, Thucydides 함정까지 고려하면 4중 위기가 동시에 중첩된 골짜기를 곧 지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흔한 예측처럼 미중 단독 경쟁으로 상정되는 Thucydides 함정은 시기상조로 보이고, 요동치는 국제정세와 경제위기 정도에 따라 북중러 동맹을 기본으로 Iran, Syria 등 중근동 및 Venezuela, Cuba 등 중남미 국가들[3]이 참여하는 신 추축국 bloc에 의한 함정은 여전히 불씨가 남아 있다. 




11.




12. 기존 체계의 기만적 elite 운영/지배계급에 대한 분노로서의 반elite주의, 반권위주의, 반지성주의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런 국면에서 주체 대응 양식의 기본 요소는 대중들의 분노와 (파괴적) 행동 energy이며, 이것이 자신을 장악하고 그 흐름을 인도할 paradigm power의 홈을 따라 긍정적 진보로도, 부정적 반동으로도 흐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3.




14.




15. 



16. 대안 문제


66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중립성‘뿐이다. 중립성은 구역, 공간, 공적 공간으로 구체화된다. 다양한 문화, 종교, 정체성이 한 사회를 ‘공유‘해야 하는 상황에서 서로 만나면 중립적인 공공 영역이 시급하게 필요하다. 사람들이 다양하고 다원화된 상태로 동등할 수 있는 영역, 중립적인 만남의 장소로서 공공 영역과 공적공간이 필요하다. 이 만남구역bebegnungszone은 다름이 동등할 수 있는 다름의 공간이다..추상적인 영역에서만 실현된 다름이 동등하게 만날 수 있는, 추상적이지 않은 만남의 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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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Charim이 제시하는 대안이란, (재미있게도 거의 유사한 주제에 대하여 內田 樹 선생이 최근간 [[소통하는 신체]]에서 아직 지극히 동양적인 동네 훈장이나 도장 사범 같은 시야에만 갇힌 채 사태의 세계사적 심각성을 철저히 통감하지 못하고 얇은 이해와 섣부른 비판을 시도하고 있는, 그러나 실은 이미 l'epoque postmoderne의 끝자락에 서서 처절한 문제의식 속에 제기된) commonwealth나 commons 이론의 매우 초보적 맹아 형상에 불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Charim의 bebegnungszone[만남구역; 중립적 공공영역]도, 內田 樹와 보다 진일보한 '부대끼는' 신체들의 공통장도 모두 서로 대립하는 불상용적 대안들이 아니라 이 초장기 탈근대 대안체계로서의 commonwealth-commons(론)의 시원적 일형들prototypes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X.1. 좌파적 국제관계이론들의 통합 모형


협의의 세계체제


Arrighi의 독자적 세계체계론은 근대세계체계, 특히 실물부문은 기본적으로 세계경제와 국가간체계의 결합이라고 보는 Wallerstein의 These를 체계적 축적 순환과 국가간체계의 모순적 결합으로 발전시킨다. 세계경제를 독창적인 개념인 체계적 축적 순환으로 구체화하는 주목적은 중세 말부터 현재의 전지구적 차원까지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그것을 통해 팽창해 온, 연이은 체제들의 형성, 공고화, 그리고 해체를 묘사하고 밝혀내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원리상 국가를 초월해 팽창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으나, 현실의 자본주의 역사에서 대자본들의 경쟁은 이런 경쟁을 지원하는 민족국가에 기반하고 있다. 여기에서 독특한 역사적 특성이 발생하게 되지만 이러한 특성은 지금까지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체계적 축적 순환은 국가간체계와 결합됨으로써 본격적으로 근대자본주의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근대자본주의의 역사에서 특정 시기 강력한 국가를 배경으로 한 자본은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축적체제를 수립한다. 동시에, 강력한 군사-정치-이데올로기적 우위를 바탕으로 국가간체계에 자국 중심의 새로운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고이윤 부문을 독점할 수 있는 hegemony 국가를 등장시키게 된다. 이때 헤게모니 국가에게 중요한 것은 "새로운" 세계적 축적체제를 주도하여 이윤율 동학의 궤적을 주도할 수 있는 ‘경제적’ 역량과, 체계의 chaos에 빠져 있는 세계질서를 hegemony 국가의 축적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보편성’에 기반을 둔 국가간체계를 수립해 내는 역량이다....................




세계체계의 질서와 무질서











X.2.

Hannah Arendt의 평악(/악의 평범성)론과 Stanley Milgram의 복종실험, Philip Zimbardo의 SPE[4] 이래 여러 모의 교도소 실험 등에 의해 반증된 사실을 정면위배하는 전문가주의의 거대한 삽질연구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이 시기는 여성/Gender 및 Feminist History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나 의외로 그 중요성에 비해서는 수행된 연구가 많지 않은 편인데*그간의 연구가 밝혀 낸 핵심적 결론 중 하나는 여성들이 어떤 의미에서도 결코 이 국면의 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롭거나 결백한 무죄의 피해자들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시 남성 만큼이나 많은 여성들이 fascism에 투표하고 적극적으로 동의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fascism 치하의 여성 관료조직들을 지원하고 참여했다.


이를 중심 주제로 한 Feminism 내 대표 연구로는 (특히 그 심리 분석과 관련하여) 전통적으로 다음이 참조된다.



Italia 사례로는 다소 기만적인 Victoria De GRAZIA (1993) 보다 

MACCIOCCHI[마치옥희], Maria-Antonetta (1979). 'Female sexuality in fascist ideology'. Feminist Review no.1. : Italian 원본은 '1975년 Milano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처음 발표.

MACCIOCCHI, Maria-Antonetta (1976). La donna "nera"-"Consenso" femminile e fascismo. Milano: Feltrinelli.

Maria-Antonetta MACCIOCCHI는 저명한 feminist이자 지도적 좌파 이론가로 Letters from inside the Italian Communist Party to Louis Althusser (NLB. '1973)의 저자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런 전간기 Gender사 연구에서 Fascism과 여성, 그리고 여성의 sexuality가 맺었던 관계가 오랫동안 침묵과 은폐의 대상이 되어온 점을 가차없이 질타하는 관점을 제시한 문헌 상 거의 최초의 연구자로 보인다.


독일 사례로 유명한

KOONZ[콘:츠], Claudia (1987). Mothers in the Fatherland: Women, the Family and Nazi Politics. London: Methuen.


영국 사례는

GOTTLIEB, Julie V. (2000). Feminine Fascism: Women in Britain’s Fascist Movement 1923–1945. London: I.B. Tauris.


특히 영국에서는 Suffragette들의 이후 Fascist화가 각별히 주목해야 할 핵심 사례를 이루며 최근에도 이를 압축적으로 제시한 문헌(용)으로 다음도 참조할 것.

CALDICOTT, Rosemary (2017). Lady Blackshirts: The Perils of Perception - suffragettes who became fascists. Bristol Radical History Group.




근년의 주목받은 종합 연구로는

DURHAM, Martin (1998). Women and Fascism. (Oxfordshire &) London & N.Y.: Routledge.


PASSMORE, Kevin (2003). Women, Gender and Fascism in Europe, 1919-45. New Brunswick, N.J.: Manchester UP.


LIM Jie-Hyun & PETRONE, Karen et al (2010). Gender Politics and Mass Dictatorship: Global Perspectives. London: Palgrave Macmillan.

(: 이 출판사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MASSD로 약칭되는 5권 짜리 Mass Dictatorship In The Twentieth Century Series로 간행된 야심찬 기획의 일부로 이전 edition은 편제도 전혀 다르고 Series 자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과 이론 구도)는 그 야심 때문인지 과도 일반화와 무차별 동질화/평행/대칭화 등 다듬어지지 않은 주장이 섞여 국내에선 크고 작은 논란도 빚었으나, 편저자들이 제기한 문제의식의 합리적 핵심을 CPR하는 발전적 논의 구도는 분류학적 논쟁이 아니라 그 작동원리와 구현기제, 장치들에 대한 정교한 (Gramsi-Althusser-Foucault적) 미시분석으로의 확장계승에 있다고 봄. 

왜냐하면, 모든 dictatorship은 기본적으로 가능(만)하다면 mass dictatorship을 이상으로 추구하지만 체계 전체의 가장 우선적인 절대 목적과 운동 동기가 언제나 자본 축적과 이윤 보호이기에 자발적 복종과 동의, 참여 여부는 항상 이 조건에 제약받는 부차요소로서 이에 의한 이상 도달 정도에 따라 명쾌한 분할이 불가능한 연속적 spectrum으로 분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한 분류학이란 애초에 별 의미가 없고 (fascism 등 dictatorship이라는) 문제의 본질도 아님.)




[*] 이 시기의 연구량에 관한 사실 자체까지 부정하려는 듯한 일부 시도자와 그 주변은 

우선 이 분야의 국제적 연구자 중 한 명인 상기한 영국 Cardiff 대학교 역사학과(modern European history) Kevin PASSMORE 교수의 2011년 논문 'Theories of Fascism: A Critique from the Perspective of Women's and Gender History' in PINTO, Antonio Costa ed. Rethinking the Nature of Fascism: Comparative Perspectives. (Basingstoke &) London: Palgrave Macmillan, pp. 119-140을 참조할 것. [2010년 원본 논문 'Theories of Fascism: A View from the Perspective of Women's and Gender History'의 단행본용 수정논문]


논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66

Nearly 40 years after second-wave feminism first challenged academe,

theorists of fascism have yet to engage seriously with women's or gender

history. This neglect is not entirely their fault: neither women's nor

gender historians have systematized the implications of their work for

understanding fascism as a category of analysis, perhaps seeing fascism

studies as a domain of positivist model building, dependent upon the

universalization of the male subject. (From the other side, fascism theorists'

neglect of women's and gender history stems, in a few cases, from

a wider unfamiliarity with historical research on fascism.

It is not difficult to find abstract models based entirely on dialogue

with other equally abstract models, with hardly a glance at research into

the movements and regimes they discuss, let alone at the writings of fascists

themselves; some cite Adorno on the nature of Nazism more readily

than they do Hitler. Of course, most theorists do read historical works,

yet too often they see in them only 'historical detail'-to be reworked

into a theoretical interpretation. Perhaps they are influenced by the old

adage that 'historians collect the facts while sociologists and political

scientists provide the theory'. They appear unaware of the theoretical

assumptions intrinsic to historical research, and still less of the contribution

of women's and gender historians towards developing those

methods.

In my view, theorists of fascism could learn something from women's

and gender history. Although not my concern in this chapter, the

reverse is also true; for those who write about women and gender in fascism

ought to think carefully about the nature of fascism. Returning to

my own purpose, I do not mean merely that theories of fascism would be more 'complete' if they included an understanding of gender relations

(although it would be pleasing if they did); rather, the critical method

honed by gender historians and others allows us to understand the historical

nature of fascism. This in turn exposes inherent weaknesses in

those theories-not just in terms of their exclusion of women, but of

their very assumptions about the nature of society and of the methods

of the human sciences.

:  제2물결 feminism이 (기성)학계에 도전한 지 40년이 지나도록 fascism 이론연구자들은 여성사나 gender사 연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무관심은 fascism 이론연구자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여성사가나 gender사들 역시 대개는 fascism 연구를 단지 남성 주체의 보편화에 종속되는 실증주의 model 구축의 영역으로만 보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작업이 분석 범주로서 fascism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갖는 함의를 체계화시키지 못했다. (다른 한편 fascism 이론연구에 있어 여성사와 gender사 무시는 어떤 경우엔 역사 연구 일반에 익숙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기도 했다. 사료의 검토는 차치하더라도 fascism 운동이나 정권에 대한 기존 연구도 훑어보지 않고, 추상 수준이 같은 다른 model과의 대화만을 통해 추상화 model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fascism 이론 연구자들은 여성사와 gender사의 성과에 무지할 뿐만 아니라 역사 연구에 내재된 이론적 가설조차 모르는 듯하다.)

   필자[Kevin PASSMORE]가 보기에 fascism 이론은 여성사나 gender사로부터 배워야 할 뭔가가 있다. 이 논문에서의 관심사는 아니지만 반대로 여성사나 gender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fascism하의 여성이나 gender에 관해 글을 쓰는 자는 fascism의 본성에 대해 주의 깊게 성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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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이대 지구사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김용우 선생님이 '이탈리아 파시즘과 파시스트 신여성'이라는 논문에서 파시즘과 여성: 페미니스트 역사 서술의 성과와 한계라는 제하의 도입부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서술도 참조할 것.

66

   파시즘이 남성의 독재 체제라는 시각은 오랫동안 페미니스트 역사 서술을 지배했다. 사실상 여성의 긍정적 정체성을 확립하려 했던 대부분의 페미니스트 역사가들에게 수많은 여성과 남성의 자유를 압살하고 생명을 빼앗은 파시즘은 그다지 매력적인 주제는 아니었다. 따라서 파시즘 자체, 나아가 파시즘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의 삶이 페미니스트 역사가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간혹 파시즘이 논의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남성의 독재 체제로 쉽게 등치되고, 여성은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가혹한 남성의 지배 체제 아래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꾸려갔던 수동적인 희생자로 그려졌다.

.....그러나 파시즘이라는 가장 극단적 유형의 가부장제의 대대적인 탄압 아래에서 온갖 권리와 힘을 박탈당한 수동적 희생자로서 여성을 규정짓는 입장은 다른 한편으로 행위자로서의 여성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적극적 행위 주체(agent)로서 역사의 격랑을 헤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여성의 상을 모색했던 페미니스트들에게 파시즘과 여성이라는 주제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를 입증하는 사례였던 셈이다.

   따라서 여성과 파시즘이라는 주제가 역사가들 사이에서 새롭게 부각되었을 때, 페미니스트 역사가들의 관심이 주로 반파시스트 저항운동에 가담했던 여성 전사들에 집중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파시즘에 맞서 헌신적인 투쟁을 전개했던 여성 전사들은 많은 페미니스트 역사가들에게 적극적인 행위자로서의 여성의 본보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연구가 이들 여성 전사들의 영웅적 저항운동에[만] 바쳐지고, 그들을 '성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남성의 독재 체제에 굴복한 무력한 희생자에서 오히려 폭압적 체제에 헌신적으로 저항하는 역동적인 행위 주체로서 여성을 복원하기 위한 페미니스트 역사가들의 노력이 거둔 결실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반파시스트 저항운동에 가담했던 여성들이 여성 해방의 전사로, 반파시즘 문화의 수호자로, 그리고 전후 사회 재건을 위해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조하고 북돋우며 보존할 모범으로 간주될수록 오히려 페미니스트 역사가들이 직면한 딜레마는 더욱 부각되었다. 적극적 행위자로서의 여성은 오로지 반파시스트 저항운동에서만 존재하는가? 파시즘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 역시 때로 파시즘이 제공하는 다양한 기회와 환경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전유하지는 않았던가? 여성은 적극적 행위자로서 파시스트 이데올로기를 수용하고, 파시스트 운동에 가담할 뿐만 아니라 파시즘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그것을 지지하고 후원한 것은 아닌가? 가부장제의 감옥에 갇힌 무력하고 수동적인 여성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적극적 행위자로서의 여성이라는 인식이 저항운동에서는 귀중한 장점이지만, 파시즘을 지지한 여성들과 결부되었을 때는 치명적 약점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Koonz의 저서와 그를 둘러싼 논쟁, 그리고 뒤이은 연구들은 나치 시대의 여성들이 더이상 무력한 희생자 또는 수동적 공모자가 아니라 나치의 학살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체제 유지에 기여한 적극적 행위자였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최근의 한 저서[JOSHI, Vandana (2003)]는 나치 시대 여성사, 젠더사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뒤셀도르프 지역 여성들의 밀고를 다룬 이 연구는 비밀경찰인 게슈타포(Gestapo)가 대중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효과적으로 행사함으로써 사회 통제에 성공했다는 기존의 성과를 훨씬 뛰어넘어서 있다.현재 혹은 전 남편의 폭력성에 맞서 그들을 좌파, 공산주의자, 인종적으로 의심스러운 자[ 즉, 비-Aryan]로 비밀경찰에 밀고했던 현재 혹은 전 아내들, 심지어 다른 남성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남편을 은밀하게 고발하는 아내들은 사실상 밀고라는 수단을 이용해 비밀경찰로 매개되는 나치 국가 권력을 오히려 여성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활용]했던 것이다.99







이상의 역사적 실재들은 현재 한국에서도 태극기 집회를 열렬히 좇아 다니며 '햇님 복권'을 끊임없이 외쳐대고, 최근 Trump Tower가 있는 New York Midtowon Manhattan의 Times Square 근처[ 54번가]에 박근혜 석방 요구 광고까지 게재하면서, 반대로 난민 문제에는 목숨 걸고 반대하고 전태일 열사를 한남 통구이라 조롱하는 자신들은 절대 페미니즘 단체가 아니라 강변하며 오히려 기회 있을 때 마다 페미들을 공격하는데 여념이 없는 Womad 같은 단체들과 관련하여서도 그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데, 흔히 운동 내 많은 분들이 막연히 기대하고 계시는 바와 달리 구조 위기기에 여성 계층을 포함한 피지배 대중은 정치적으로 활성화되고 고양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Ranciere도 강조하듯 많은 경우 이처럼 그 활성화 결과가 자동적/자연발생적으로 반드시 진보로 귀결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Womad의 경우는 특히 우파 정보조직들에서 운동(권)에 대한 각종 황당한 가짜뉴스 생산유포 등 집요하고 주도적으로 여남분열과 극우화 공작을 펼치고 있는 여러 정황이 포착되고 있기에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아무리 그 미정형의 잠재성을 긍정적으로 봐주고 있는 정파나 분자라 해도) 최소한 적극적 견인경쟁이라도) 노력을 경주해야 할 이유로도 좋은 참조를 제공해 줌.

((하지만, 그 경쟁도 철저히 노골적인 동물 감정과 욕망, 이익으로 선동되는 극우적 특성에 고도의 이상과 윤리, 정치적 올바름으로만 대항해야 하는 좌파의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음.)) 



다음 사항도 일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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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미시위도 하면 좋겠노. […] 다른 외국인들이 알게 이태원, 미군캠프에서도 하는거노.이태원 시위는 좀 더 가벼운 분위기로 많은 사람들도 많이 참여할 수 있게 하자노. 그리고 미대사관 앞에서는 적극적이게 친미를 어필하는거노. […] 성조기 두르고 미대사관 앞에서 이니으니사진 인공기 오성홍기 다 불태우고 찢는 퍼포먼스 하는거노. […] 그리고 전에 웜에서 나왔던 얘기인데 박 터트리기에 재앙이 얼굴을 넣어서 그걸 깨는 퍼포먼스를 하는거노. 좆불시위때 햇님 얼굴로도 했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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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lownews.kr/72259에서 재인용.

이런 극우성향이 일부 구성원만의 특수편향이라느니, 심지어 '흔한 인터넷 놀이 문화' 정도로  무책임한 오해를 하고 있거나 그들의 반문재인 구호 핵심 사유가 박근혜 탄핵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분들은 기사 전체를 숙독할 것.






[2] 이들 특정계층의 독특한 행동양식을 설명하고 반복지칭하기 위한 계층분류개념으로 우리는 Rustariat나 Corrodentariat 같은 술어를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Brazil은 현재는 중도우익으로 분류되는 사회자유주의를 표방해 온 사회자유당(Partido Social Liberal) 출신 자이르 메씨아스 보우소나루Jair Messias Bolsonaro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정치경제 정책은 좌우 간에 우왕좌왕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반면 기록적 범죄율 속에서 치안을 회복하고 만연한 정치적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약속과 전통적 가족 가치관 수호 등 강경한 입장으로 급격히 대중의 지지세를 넓혀 가며, Trump와 유비되는 극우 populist라는 구미 언론의 성급한 평가 속에 ('2018년 10월 7일 실시된 대선 1차 투표에서 46.03% 49,277,010표 득표로 당선을 위해 필요한 유효 투표의 과반을 얻지 못한 관계로) 결선 투표에서 PT(노동자당)의 페르난두 아다지Fernando Haddad와 맞붙어 55.13% 57,797,847표 득표로 신승하며 제38대 대통령으로 '2019년 1월 1일 취임한 상태이나, 소속 정당의 전반적 지지율은 의석수 등에서 5~10%를 넘지 못하고, 특히 전국 시의회 의석수는 겨우 1.5%에 불과한 군소정당에 가깝고, 상하원 등 모두에서 나머지 대부분은 진보좌파 계열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




[4] 최근 한 유명 media에서 SPE에 대한 review가 있었는데, 이에 대하여는 이미 초고 memo 작성 이전부터 충분히 비판적인 심층 검토 하에, 평악론과 일상/미시 fascism론, 구조주의 환경론, Tabula rasa론과 告子의 性無善無不善論 등 정연하고 정합적인 Core 이론 집합들과 이를 강력하게 지지해주는 엄격하게 검증된 다른 많은 실험들, 그리고 특히 이런 비정상적 동조현상의 발생은 무엇보다 생활반경, 시야각, 준거계 등 장(場) 범위와 폐쇄성, 장내 권력/위계의 장악강도와 크기, 피실험자의 그에 대한 장-의존도[: 이 제3 인자를 집중 천착해 항상 독립적으로 사유하는 비판적 자율이성/의식의 훈련을 강조한 것이 바로 Arendt(적 경로)]라는 요소들에 의해 지배 규정된다는 확립된 정설에 의거해 종합적으로 판단컨대, SPE 수행 과정에서 비록 다소의 과장이 있었더라도 그 결론 자체까지 완전한 날조로 평가되지는 않았기에 인용했던 것이므로 혹여라도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저의 졸고들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따듯한 연관언급들에 대하여는 감사하고 있으며, 그에 보답드리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정진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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