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
이천우 지음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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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는 꽤 볼만한 타임루프물이다.

SF를 정말 좋아하고, 그렇기에 과학적인 그럴듯함을 갖추고 있는 잘 짜여진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들에 혀를 내두르며 감탄을 하고 또 좋아라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SF적인 뉘앙스를 풍기면서 대단히 판타지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서 대체 이유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도 모르는 사건에 휘말렸다가 당연하게도 왜인지도 모르는 새에 그로부터 빠져나오는 이야기도 잘만 만들어낸다면 꽤나 흥분하며 좋아하는 편이다.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바로 타임루프물이다.

사실 타임루프물은 SF라고 하기는 좀 쪽팔릴 수 있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시간을 거슬러 감으로써 생기는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그걸 반복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 밖에 없는 문제, 간단하게 퉁쳐서 얘기해 소위 나비효과라는 걸 완전히 무시하곤 하기 때문이다. 대다수는 형편좋은 부분만이 유지되고 나머지는 되돌려지는 작가 편의주의적인 장치로서만 사용하기 때문에 일단은 SF라는 것으로 분류하고는 있지만 사실은 전혀 SF적이지않은, 판타지에 더 가까운 장르다.

대신 그렇기 때문에 그 작은 아이디어에 어떤 상상을 덧붙이냐에 따라서 작품의 질이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최악은 쓰레기가 나올 수도 있는 반면, 잘하면 걸작이 나오기도 한다는 말이다.

지금도 타임루프물의 걸작이라 하면 주저없이 추천할 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1993)’이 그 중 하나다.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은 진지한 SF물같은 색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걸 사소한 장치처럼 사용한 로맨틱 코미디였다는 점으로 그게 설정이나 서사의 허술함 같은 것을 꽤나 쉽게 매꿔주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SF적인 타임루프 설정은 딱히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좋았다는 말이다.

이 소설도 조금은 그렇다. 느닷없이 시작된 타임루프에 갇힌 남매들이 그걸 해소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을 주요 사건으로 전개하지만, 그보다는 더 중요하게 삼남매의 삶과 그들을 하나로 모이게 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주요하게 다루면서 꽤 괜찮은 인생드라마를 보여준다.

결코 형편좋은 리셋을 제공하지도, 모든 것을 판타스틱하게 해결해주는 극적인 변화 같은 걸 가져오지는 않지만, 그것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소소한 깨달음 같은 걸을 느끼게 하기에, 비록 중간에 좀 작위적이고 지루한 부분도 있긴하나, 묘하게 옛 영화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게 하고, 전체적으로 썩 나쁘지 않다.



*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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