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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ㅣ 생각하는 힘 :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1
호메로스 지음, 진형준 옮김 / 살림 / 2017년 9월
평점 :
‘생각하는 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시리즈 첫번째 책인 ‘일리아스(Ilias)’는 ‘호메로스(Homeros)’의 유명한 서사시의 축역본이다.
축역본이란 완역본과 달리 내용을 축약해 담은 것을 말한다. 원작의 일부를 빼거나, 고쳐 쓴다는 얘기다. 그래서 보통 축역본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 않다.
나 역시 축약본(축역본)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용이 누락되어있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너무 커서다. 실제로 꽤 많은 축약본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거나 묘사가 부족한 면모도 보이곤 한다. 그러니 기왕 볼 거면 처음부터 완역본을 보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지 않겠는가. 최근 완역본이 인기를 끄는 것도 다 그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시점을 조금 바꾸면, 축약의 질이 안좋은 게 문제다. 원작의 내용을 살려서 제대로 축약하기만 한다면 읽기는 쉬우면서도 원작의 매력도 어느정도 담아낼 수 있다. 특히 세계문학은 더 그렇다. 글의 양에 따라 비용을 지급하는지라 불필요한 내용을 집어넣어서라도 분량을 늘리던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빼고 정제할 수 있다면 축약본도 나름 긍정적일 수 있다.
‘생각하는 힘: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시리즈에 관심이 간 것도 그래서다. 완역본을 내는 유행에서 벗어난 축역본 시리즈인데, 그렇다고 전에 있었던 것처럼 대략 줄인 것이 아니라 ‘축역본의 정본’을 내세울만큼 ‘제대로’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꽤 괜찮다. 트로이 전쟁이라는 인간의 역사와 그에 깊게 관여하는 그리스 신들, 그리고 그들에게 치이며 발버둥치는 인간들의 모습이 나름 잘 살아있다.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우연적인 일들을 과거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는지도 엿볼 수 있는데, 갑작스런 기세나 마음의 변화를 신들이 꾄 것으로 그린다던가 전쟁의 기세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신이 주는 축복이나 운명으로 얘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것들은 당시의 세계관이나 사상 같은 것을 짐작케하는 한편, 이 이야기를 더욱 신화의 일종으로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나름 장점도 보이는 반면, 축약본이라서 보이는 한계도 분명헸다. 분량이 줄었기에 등장인물과 그들의 개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그 하나다. 사건의 진행이 빨라 인물들의 감정이나 결심이 순식간에 이리 저리 흔갈대처럼 흔들리듯 보이기도 한다. 이야기도 중요 내용 위주로만 다뤄져, 세부 묘사가 부족하다는게 여설히 느껴진다.
작품 양식을 서사시에서 소설로 다시 쓴 것도 비록 익숙하여 훨씬 편하게 읽을 수 있게는 하나 원작이 서사시라서 갖고있던 그만의 독특한 양식미는 모두 잃어버려 아쉬움도 남는다.
작품의 매력까지 모두 담아낸 책은 아니다. 그래도 일리아스의 전체 내용을 편하게 훑어보기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