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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동성당 이야기
송차선 지음 / 일상이상 / 2020년 8월
평점 :
이 책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여행을 못다니고 있지만, 여행을 다니던 때에는 낯선 도시, 시골을 지날때 그 지역의 성당을 찾아보곤 했었다.
미사 시간이 항상 맞지 않아서 사람 하나 없는 조용한 성전에 들어가 잠시 짧은 기도를 드리고, 성당 주변을 둘러보며 성모상까지 빠지지 않고 다 찾아보며 낯선 성당을 눈에 마음에 담아 오곤 했었다.
가회동 성당 이야기 라는 이 책은 이 성당을 건축하신 신부님이 쓰신 책이다.
성전을 지으면서 일어났던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넣어야만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모아 이 책에 정리해 놓았다고 한다.
이렇게 사건 중심의 글을 쓰다 보니 등장인물이 제한적이고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실명으로 쓰다보니 거론되지 않은 많은 숨어 있는 공로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어 화려한 조명뒤에 가려진 소외를 간과했고 재미를 앞세우느라 가벼움이 따랐다는 자책때문에 하마터면 이 책은 출판되지 못할 뻔 했다고.
이 책은 우리 주변에 숨어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통해 타종교 신자나 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천주교는 어떻게 하느님을 체험하는지를 소개하며 맨처음 하느님의 사제 성소에 대한 이야기 부분은 단순한 성당 건축 이야기가 아니라 하느님 이야기이며, 부르심에 대한 이야기라서 성당 건축에 신부님 개인의 사제 성소에 관한 부분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그 성전을 지으시는데 있어 저자가 사제로서 느끼고 체험한 이 모든 일들이 하느님을 빼면 설명이 안되는 이야기들이기에 사제 성소를 체험하고 사제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를 언급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저자는 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건축학도로서 교수의 추천으로 이탈리아 유학을 준비하던 중, 하나의 계기로 인해 유학 대신 다소 늦은 나이에 신학교에 입학하여 사제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 계기는 앞서 언급한 대로 1장 부르심에서 설명되어 있다.
이렇게 저자는 사제가 된 후 다시 해외 유학을 다녀오고, 대학에서 사제양성을 하다가 가회동 본당 주임신부로 인사발령이 난다.
붕괴직전의 가회동 성당의 주임신부로 가서 성당을 지으라는 명과 함께.
대학 전공을 이미 멀리한지 오래되었지만 모든 일에는 다 하느님의 뜻이 있으리라는 마음으로 가회동과 관련된 교회사 연구를 시작한다.
그리고 알게 된 가회동 본당의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해 놓았는데 읽는 동안 여러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섞이는 듯 했다.
조선 땅에서 첫 미사가 드려진 곳, 북산사건이 일어난 곳, 박해의 주체인 황실(의친왕과 왕비, 고종의 여섯자녀중 단명한 2명을 제외한 4명의 자녀들 포함)이 박해가 시작된 곳인 가회동성당에서 세례받은 것, 가회동성당이 박해의 주체를 그 품에 받아들인 것, 이로써 순교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또한, 경복궁과 창덕궁의 궁녀들과 그 사이의 수많은 신앙인들, 그 궁녀들중 세 명의 성인이 탄생하였고 그 지역이 가회동본당이 있는 북촌한옥마을이라 하니 가회동본당은 그저 평범한 성당이 아닌 역사적 의미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셈이다.
과연 지옥과 천당은 바라보는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주체인 내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 루카 17, 21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이렇게 가회동 성당 재건축의 콘셉트(concept)가 잡힌다.
이 컨셉의 가장 큰 틀은 선교본당의 기능과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건축물이어야 한다는 것.
성당내에 전시실도 고려해서 설계를 하고 성당 건축을 위한 건축비를 마련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만나는 하느님의 손길을 함께 느껴본다.
건축비 마련을 위해 신자의 사후 기증이 된 로마나의 집을 성당건축비로 쓸 수 있도록 매입해준 신자부부, 박스나 폐지를 주워서 팔아 생계를 이어가시는 80대 할머니가 내어주신 100만원 이 두 경우의 액수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것 같다.
할머니의 100만원은 전재산이나 다름 없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마음이 울컥해진다.
성당 건축 과정에서 겪었던 저자의 투병, 기계식 파이프 오르간에 관한 스토리텔링, 그 자금 마련에 관한 이야기, 본당에서의 첫 장례미사의 주인공이 가회동 성당과 얽힌 인연가지..
모든 것이 우연히 그냥 이루어진 것이 없었고 하느님의 뜻이라고 밖에는...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성당들이 있다.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히는 아산 공세리 성당, 원주 용소막 성당, 횡성 풍수원 성당, 칠곡 가실 성당등등을 방문했었다.
그리고 저자가 언급한 '빛의 설계', 색이 있는 빛의 성당으로 문득 부산 남천동 주교좌 성당이 생각났다.
남천 성당은 낮은 오후의 대성전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 책을 읽으며 남천성당도 빛의 설계가 반영된 성당이겠구나 생각 들었다.
가회동 성당의 빛의 설계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졌고 사진들을 찾아보았다.
사진으로는 제대로 느낄 수 없어 보여 기회가 되면 꼭 방문해서 직접 봐야겠더라는.
가회동성당의 빛은 색이 없는 단순, 소박의 컨셉을 담고 있다 하니 한옥의 단아함을 잊지 않고 담은 것 같다.
한옥과 양옥의 건축이 어우러진 성당, 가회동성당
하나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한편에는 아프고 슬픈 역사를 담고 다른 한편에는 영광스럽고 감사한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노력의 힘을 담고 있구나..
마지막으로 성당 건축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도움을 받았던 성당이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성당 재건축에 도움을 되돌려주는 것을 보며 가톨릭 신자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많은 생각들에 잠기기도 했다.
나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을 가져본다.
저자의 이 말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쓰고 남는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은 나눔이 아니라 처분이지요. 진정한 나눔은 나에게도 필요하고,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더 필요한 사람에게 나의 것을 떼어주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을 때 그것을 나눔이라고 하는 겁니다. 나눕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