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범 2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구판절판


마이의 어머니는 옷차림도 화려한데다 중학생 딸을 둔 사람치고는 너무 젊어 보였다. 말투도 건방지고 예의라고는 모른다. 그런 주제에 젊은 남자선생 앞에 서면 애교 만점이다. 어머니나 아내보다는 여자로서만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11쪽

어머니가 그런 유의 사건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구리하시 히로미는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엽기적인 토막살인이라든지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 방화나 유괴, 폭행 같은 그런 이야기를 너무도 좋아했다. 그런 사건들은 모두 남들에게나 일어나는 것일 뿐,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 놓고 남의 불행을 안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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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멋대로 지껄이지만, 사실은 남의 일이 아니야. 이 여자들을 죽인 범인이 바로 나라구. 오른팔을 잘라서 버린 것도 나란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있었다.-21-22쪽

텔레비전만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사건을 보도하는 동안은 그래도 괜찮았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다른 코너가 시작되고 '홈메이드 케이크 가게 순례' '가을을 즐기는 패션' 같은 평화로운 화면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곳에 안락과 행복이 있는데, 치아키의 상황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텔레비전이란 얼마나 잔혹한 장난감인가.
히다카 치아티가 조금이라도 상상력이 있는 소녀였다면, 구리하시 히로미가 텔레비전을 켜둔 의미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실체가 없는 '정보'만 던져줌으로써 고독과 허기와 목마름의 고통을 한층 더 부추기는 일종의 고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74쪽

유미코는 생각해보았다. 지극히 기본적이고 소박한 의문이었다. 왜 남자는 여자를 죽일까. 얼굴도 모르는 여자를.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여자를. 여자이기 때문에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남자에게는 여자를 죽일 수 있는 특별한 권리라도 있다는 것일까.-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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