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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오브 더 북
제럴딘 브룩스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 등 세 소설의 공통점은 ‘책에 관한 책’이라는 것, 또한 미스터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서 미스터리 소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이번에 읽은 <피플 오브 더 북>은 무척이나 특별했다. 전 세계가 종교와 인종을 초월해 지키고자 했던 한 권의 책, <사라예보 하가다>의 실화를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탄탄한 플롯과 해박한 지식, 뛰어난 스토리텔링으로 독자들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작가 제럴딘 브룩스]
<피플 오브 더 북>은 다음과 같은 인용구로 시작한다.
책에 불을 지르는 곳에서는 결국 사람에게도 불을 지른다. _하인리히 하이네

이 구절을 읽고 있노라면 저 진시황의 분서갱유, 나치의 문서 소각 등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권력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불태워져야 했던 책들의 수난사. 한 민족의 정통성을 지닌 상징적인 책일수록 그 수난의 역사는 아찔하기 그지없다.
제럴딘 브룩스 소설 <피플 오브 더 북>에 등장하는 책 <사라예보 하가다>는 14세기 스페인에서 제작된 이래 수세기 동안 유럽을 떠돌다 1894년 빈에서 모습을 드러낸 양피지로 만든 유대교의 경전으로,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중세 유대인들은 어떠한 형상도 그리지 않았다는 미술사학자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아름답고 화려한 채식의 고서이다.
[사라예보 하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박물학적 가치가 있는 이 책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몇 번 소실될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기적처럼' 책은 누군가에 의해 구출되었고, 오늘날까지 오백 년의 시간을 견뎌올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위기 때마다 이 책을 구출한 그 '누군가'가 유대인이 아닌 무슬림,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이다. 왜 그들은 목숨을 걸면서까지 굳이 다른 종교의 오래된 경전을 구하려고 한 것일까?
시드니의 어느 깊은 밤, 서적보존 전문가 해나 히스 박사는 이스라엘의 고문서 학자 아미타이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1992년 보스니아 내전 중 유실된 줄 알았던 <사라예보 하가다>가 발견되었으니 그 책의 상태를 분석하고 보존하는 작업을 해달라는 것. 해나는 세상에서 가장 진귀하고 신비한 책을 가지고 작업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며 흔쾌히 제안을 수락한다.
해나는 UN의 공식 초청으로 보스니아로 날아가 <사라예보 하가다>의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사진으로 찍고 상태를 기록한다. 작업을 진행하던 해나는 몇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한다. 책 사이에서 나비 날개 조각이 발견되고, 어느 페이지에는 소금물에 닿은 흔적이 있다. 또다른 페이지에는 붉은 와인 자국이 있고, 유월절 저녁 식사 장면에는 샛노란 옷을 입은 흑인 여인이 한 명 있는데, 그 페이지에서 실처럼 가느다란 하얀 털이 발견된다.
해나는 이 단서들을 통해 오백여 년의 긴 시간 속 <사라예보 하가다>가 간직한 이야기들을 추적해나간다.
이 책이 스페인에서 사라예보까지 어떻게, 왜 오게 된 것일까…… 이제부터 각 장은 15세기 종교재판의 광기에 사로잡힌 스페인, 17세기 초 번성하던 베네치아, 19세기 말 퇴폐에 물든 빈, 2차 대전과 내전으로 폐허가 된 사라예보, 그리고 2002년 예루살렘을 거슬러 올라가며 여러 번 소실될 위기에 처했던 <사라예보 하가다>의 역사와, 이것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사랑과 신념, 목숨까지 바쳤던 이들의 경이로운 이야기를 그린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는 <사라예보 하가다>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책을 따르는 사람들, 책을 사랑하고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 제럴딘 브룩스가 역설하는 책에 대한 사랑이란 인간 문명에 대한 믿음, 인간 본성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싶다. 바로 그러한 믿음과 애정을 통해 지난 세기의 사람들이 지키고자 했던 종교와 문화를 초월한 이해와 사랑, 공존의 드라마를 보여주는 이 소설, 참으로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