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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뜬한 잠 ㅣ 창비시선 274
박성우 지음 / 창비 / 2007년 3월
평점 :
박성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가뜬한 잠>. 군대에 있을 때, 그의 첫 시집 <거미>를 읽으며 코피 자주 쏟는 시인의 어깨를 떠올려본 적이 있다. 정신의 그믐으로 허기졌던 그때의 내게 그의 시 한 편 한 편은 참 고마운 위로가 되어주었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이제 코피를 쏟기보다는 뒤안에서 잡풀 뽑으면서 산비탈을 오르면서 탁배기 한 잔에 구수한 웃음 흘리면서 소박한 '서정의 빛깔 또는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표지에 두른 연두색이 잘 어울린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시 중 하나인 <능구렝이>. 그렇다. 연애할 때 우리는 모두 능구렝이가 된다. 언어에 대한 그의 관심이 토속어의 무한한 보물창고로 향한 듯, 표현 하나하나가 팔딱팔딱 튀어오르는 것 같다. 참 좋은, 건강한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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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렝이
詩 박성우
풋앵두 송송 열린
우물집 뒤안에서 잡풀을 뽑는다
앵두나무 아래서 능구렝이를 보았다는 안주인은
독은 없을 거라 말하고는
예닐곱 골이나 되는 토란 밭을 꿰찬다
능구렝이 생각은
물컹물컹 울렁울렁 밟혀오고
여우비는 아까 그쳐 풀 뽑기를 마침맞다
앵두나무 아래서
머뭇머뭇 풀줄기를 당긴다
능청능청 당겨 올라오는
능구렝이 생각은 엉클어져
능구렝이는 이내 손등을 물어오고
능구렝이는 이내 발등을 물어온다
능글능글 기어 나오는 능구렝이
싱그레 벙그레 막대기로 걷어
풀숲에 놓아줄 사람처럼
잔가지 무성한 앵두나무 아래서
우거진 잡풀을 뽑고 앵두 헛가질 쳐낸다
나를 안 보는 척 쳐다보는 안주인도
비암이라면 아주 기겁을 하는 나도
능글능글 능글맞은 능구렝이 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