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체보 씨네 식료품 가게
브리타 뢰스트룬트 지음, 박지선 옮김 / 레드스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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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체보 씨네 식료품 가게] / 브리타 뢰스트룬트 지음 / 박지선 옮김 / 레드스톤 펴냄



무료하기로 치자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일상에 "툭" 갑작스레 끼어든 틈 하나가 시간을 어지럽히고 정지된 공기의 흐름에 파문을 일으킨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틈은 시간의 두근거림을 북돋우고 호기심을 일깨워 삶을 두드린다. 무관하게 흐르던 두 가지의 일이 하나로 이어지는 구성은 작가 브리타 뢰스트룬트가 혹시 '무라카미 하루키를 동경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프랑스에서 20년을 머물고 있는 스웨덴 기자이며 이번이 첫 번째 작품이라는 이력 외에 검색을 해 봐도 저자에 대한 어떤 한 줄도 알 수 없는지라 나름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읽어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주제가 교차되며 펼쳐지다가 종국에는 하나로 연결되는 구성이 많았고, 소설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만체보 씨가 감시하는 앞 집 소설 작가의 저서 제목이 [쥐 잡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둘러싼 모험]을 보면 '나'와 '쥐'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플롯이고 무엇보다 등장인물을 '쥐'로 지칭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전작이 있다 보니 비슷한 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의 구성은 두 가지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든다. 그들의 행보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레 연결되는 결말에 수긍하게 된다.


원제목은 [Waiting for monsieur Bellivier_무슈 벨리비에를 기다리며]는 한국 번역 책 제목인 [만체보 씨네 식료품 가게]와 함께 전개되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나타낸다. 미지의 인물인 벨리비에 씨를 위해 3주간 비밀스러운 업무를 하는 '폴라사두'와 앞 건물에 거주하고 있는 부인이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며 감시를 부탁한 '만체보'의 시선은 한 인물을 향해 있다. 이름으로만 존재했던 벨리비에 씨, 앞 집 소설가인 테드 베이커 씨는 동일 인물이었고 일상이 무료했던 폴라사두와 만체보에게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삶을 뒤집어 보는 즐거움과 지독한 외로움을 준 것이다.


파리의 상업지구 높은 빌딩 꼭대기 층에서 단순히 이메일을 받고 전달하는 일을 수락한 폴라사두는 매일 업무 후에 받는 꽃다발에 극심한 억압을 느끼고 벗어나기 위해 꽃다발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시작한다. 그 행위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자신의 식료품 가게에서 앞 건물을 예의주시하며 의뢰자 남편의 행동을 보고하는 만체보는 일상의 관찰을 통해 그동안 평온을 가장한 자신 가족의 숨겨진 진실을 마주한다. 쳇바퀴의 일상에서 몰랐을 수 있던 만남이 삶을 흐르게 하고, 감춘 진실은 삶을 바꾸었다.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삶을 향한 변화는 도시의 낯선 내음 속에서 냉정을 가장한 온정을 품고 있다. 꽃에게 부여한 나름의 삶이 자신의 변명일지라도, 수첩에 적어 내려가는 시간의 간극이 연극처럼 유린할지라도 그들의 변화는 시작되었다. 흘러간 것을 인정하고 새로움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는 어느 날 틈새로 스며들었다.


무더운 여름, 파리의 하루는 시작되었고 보통 삶은 그렇게 계속 흐른다. 새로 부여한 의미 또한 일상에 귀속되어 모든 것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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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눈
미하엘 슈톨라이스 지음, 조동현 옮김 / 큰벗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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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눈] / 미하엘 슈톨라이스 지음 / 조동현 옮김 / 큰벗(큰북소리) 펴냄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 헌법의 울타리에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평등의 법은 과연 얼만큼 우리에게 효용의 가치를 지니는지 궁금했다. 결코 "법"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지 않고 기득권과 힘의 원리로 흘러가고 그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법의 눈]을 통해 법의 상징성을 살펴보고자 책을 펼쳤다.

법에 관련된 책이어서 두껍고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으나 책을 받아보니 손가락 두께보다 얇고 핸드폰보다 조금 큰 아담한 사이즈의 책이다. 법이란 무게에 괜히 책의 무게를 걱정했건만 오히려 이렇게 손에 쏙 잡히는 책을 받고 보니 마음은 한결 가볍다. 그렇다고 책의 내용이 가볍지는 아니할 것이니 찬찬히 법의 테두리를 둘러 조금씩 안쪽으로 파고든다.


독일의 저명한 법사학자인 저자 미하엘 슈톨라이스는 '법의 눈'이 시대에 따라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지 그 흔적을 따라가는 것으로 포문을 연다. 시민의 안전을 도모하는 의미로 통용되는 현시대의 "깨어 있다"라는 맥락은 '법의 눈'이 경찰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한다. 무생물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되 늘 어디서든 적용되고 감시이자 보호의 의미를 지니는 규범적인 문서인 '법'이 가지는 '눈'의 의미는 무엇일까. [법의 눈]을 통해 의인화된 법의 존재를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법치국가란 용어는 로베르토 폰 몰이 자신의 저서를 통해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절대군주의 지배를 벗어나 행정으로 정해 놓은 법률에 의해 다스려져야 한다는 것으로 객관성을 지닌 법에 의한 지배는 우리 시대의 빅브라더가 되었다. 요즘 우리나라는 '청소년 보호법'의 개정 찬반으로 뜨겁다. 현존하는 청소년 법이 과연 어느 정도 청소년의 계도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법의 허점을 노려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점점 도를 넘어서는 일부 청소년들의 행동과 생각에 경종을 울려야 할 때이다. 개인적으로 청소년 법의 강화를 요구한다. 인간으로서 하지 않아야 될 행동을 서슴없이 양심을 버리는 일들을 보면서 강력한 법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역사적으로 법의 눈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암울기 통치자의 감시로 가려진 거짓의 '평온'은 시대를 억압했다. 서양의 예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지난 정권을 살펴봐도 공공연하게 자행된 감시는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으로 법치국가의 시민 자유를 박탈했다. 단지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사회 활동에 제한을 받은 사람들의 억울함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비단 지난 정권뿐만 아니라 유신시대, 군부 시대의 얼룩은 아직도 깨끗해지지 못 했다. 그 잔재에 둘러싸여 고통받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국가는 적폐 청산에 속도를 가해야 할 것이다.


서양사에서 '눈'이 가지는 의미는 종교와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 무소부재로 고대부터 눈은 신성시되어 왔으며 '신의 눈'은 세속화된 신학적 개념에서 '군주의 눈'으로 또한 '법의 눈'으로 변화되었다. 신을 보호와 군주의 통치에서 벗어나 근대의 법이 지향하는 의미를 갖기까지 서양사에서 '눈'은 실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 비 혁명의 산물로, 혁명의 주체로서 부여하는 의미는 제각기 다를지라도 모두의 염원은 '평화'이다.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 시민의 의무와 그 시민을 지키는 국가의 의무가 '법의 눈'에 맞물려 있다.


옮긴이 조동현 님의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단순한 법의 관점에서 본 것이 아니라 고대부터 이어져 온 '눈'의 의미를 서양사를 통해 통찰하고 현 사회의 정의 구현을 위해 어떤 법의 눈이 적용되야 하는지 살펴본 책이다. 딱딱한 법 지식이 아닌 서양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었기에 의미가 있다. 법과 서양사를 이해하는데 다소 부족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주석과 서양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잘 표기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쉬웠다. 또 다른 의미로 '지혜의 눈'을 부여받은 느낌이다.


'외눈'이 가지는 상징은 '약하고 두려움에 살아가는 인간이 법을 통해 파국에서 벗어나 최선의 상태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의 반영이다.'(본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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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삼키는 게 아니라 뱉어내는 거다
홍승훈 지음 / 젤리판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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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삼키는 게 아니라 뱉어내는 거다] / 홍승훈 지음 / 출판문화 예술그룹 젤리판다 펴냄



막연히 바라본다. 억지로 끼워 맞추느라 식은땀을 흘리기보단 그저 흐르는 대로 맡기는 것이 때로는 인생을 바라볼 수 있는 한순간이 되기도 한다. '상실'의 흐름에 손을 놓고 막연히 바라본다. 그 순간만큼은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렇게 바라본다 해도 막연히 생각에 잠기는 그 '잠시'가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자신을 위해 울음을 아끼지 말라 권유하는 작가의 첫 문단은 세상의 잣대에 맞춰 나 자신을 몰아세운 그 시간들을 부끄럽게 한다. 슬픔을 이기려 하지 말고 그 슬픔을 받아들였다면 한 해, 두 해를 살아오며 켜켜이 쌓인 내 삶의 시간이 얼마큼 위로를 받았을까 돌아보게 된다.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은 타인의 위로보다 자신 내면의 굳건함이 우선된다. 어찌 되었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는 일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겪는 미적거림이, 사회의 위치를 비집고 지키기 위한 발버둥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삶에 관여를 한다. 그 관계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은 시행착오 속에서 이어진다. 당장 어떤 일이 앞에 닥칠지 모르기에 그 순간을 살아가는 찰나가 중요한 것이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간은 어찌 보면 무수히 겪는 실패에서 끌어내는 '절실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절실함이 이루어낸 내 마음의 크기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어깨를 펼 수 있는 변화를 가져온다. 그 간절함이 이루어낸 내 자아는 굳건하게 결속되어 쉽게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도전을 외면하고 현실에 안주했던 내 젊음을 이제 와 돌아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발걸음을 달리했다면 삶이 조금은 다채로운 색을 지닐 수 있지 않았을까. 도전에는 때가 없다고 하지만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어 이렇듯 변화를 미루고 있는 것이다. 삶의 버거움이 한계점에 다다를 때면 지금보다는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보다 쉽게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동안 내 안에 삼키듯 버려둔 꿈을 현실에 뱉어내는 시간을 더디 갈지라도 찾아가는 여정을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겠다. 


작가는 '생각 대체의 법칙'을 적용해 시련으로부터 자신을 끌어내는 데 마음을 다하라고 권유한다. 적극적인 생각으로 부정적인 면을 잠재우는 것. 긍정의 사고방식이 변화시킬 수 있는 삶을 품으라 귀띔한다. 그렇게 이룰 수 있는 미래를 꿈꾸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자신을 위로하고 실패를 극복하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일련의 일들은 삶을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자신을 사랑하고 믿는 일이다. 인생은 끝없는 배움이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끌어나가는 힘은 노력을 거듭한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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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바꾸는 미래 비즈니스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 경영 전략
노무라 나오유키 지음, 임해성 옮김, 김진호 감수 / 21세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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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바꾸는 미래 비즈니스] / 노무라 나오유키 지음 / 임해성 옮김 / 21세기북스 펴냄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정과 이성을 구현할 수 있는 강한 인공지능과 학습에 의해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약한 인공지능으로 나눌 수 있다. 빅 데이터의 시대에서 메타 테이터가 가지는 중요성은 이미 우리 생활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다. 실례로 어떤 정보를 한번 검색했을 뿐인데 그 이후에 내가 여는 인터넷 페이지마다 관련 정보가 박스 창으로 뜨는 것을 보면 수집되고 활용되는 내 정보는 무한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특정 영상 검색엔진을 통한 검색 또한 관련 정보랍시고 온 페이지에 수를 놓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만큼 손쉽게 정보를 취하고 그 정보를 어떤 계층이 관심을 갖는지 빅데이터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런 정보화시대에 인공지능이 일상에 얼마큼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는지 알고자 [인공지능이 바꾸는 미래 비즈니스]를 읽는다.


인공지능이 가지는 특이성은 인간의 뇌와 같은 집약적인 활동을 요구하는 강한 인공지능의 발전을 앞당긴다. 완벽한 단계에 다다르기까지는 실로 많은 연구가 요구되지만 약한 인공지능의 발전이라 할 수 있는 알파고를 넘어서는 인공지능은 앞으로 수없이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인간의 뇌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이지(理智)를 가지는 인공지능의 개발도 실현될 수 있다. 그에 따른 결과가 인간에게 어떤 실과 득을 가져다줄지 예측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변수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조금 더 편리한 생활을 위해 개발된 인공지능으로 인해 미래의 척도가 변화되는 만큼 인류애를 향한 인공지능을 접목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다른 견해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빅 데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창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단순한 환경 발전이 아닌 생활 전반의 인프라의 발전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시대에 있어 인공지능을 더욱 부각하는 것은 딥 러닝이다. 인공지능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빅 데이터 수집과 정보 활용이라는 면에서 보면 깊은 상호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딥 러닝 기술 또한 분류를 통한 예측이니 둘의 상관관계는 따로 생각할 수 없다.


총 3부로 나누어 인공지능의 본질과 연구의 성과, 화이트칼라의 지적 생산과정이 인공지능으로 인한 변화의 물결을 다루고 있고 마지막 3부에서는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가 가야 할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물론 인공지능이 가지지 못한 인간의 감정과 사람과의 관계는 인간 본연의 영역이다. 단순히 명령하고 처리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영역을 차지할 강한 인공지능이 탄생할 수 있다. 전쟁 분야에서 활용하게 될 로봇 병사의 경우 자국 병사를 보호한다는 목적 아래 타 동족에 대한 위험성이 제시될 수 있는 사악한 인공지능으로 발전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한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직업군이 늘어나는 만큼 인공지능을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짧은 지식으로 책의 중요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낯선 용어와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학자의 생각을 읽기가 다소 버거웠다. 그러나 약한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생활의 전반적인 환경을 차지하고 있고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현대에 더욱 알아야 할 내용이라 생각해서 편한 마음으로 읽었다. 물론 본문과 검색창을 오고 가며 용어 찾기에 분주했지만 나름의 공부가 되었으니 그 시간을 그저 흘러보낸 것은 아니다. 다만, 좁은 소견으로 책을 읽고 이 책의 내용을 갈무리한다는 것이 심히 부끄러울 뿐이다.

정독을 요하기도 하지만 [인공지능이 바꾸는 미래 비즈니스]는 숙독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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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논쟁과 한국 민주주의
김상태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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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논쟁과 한국 민주주의] / 김상태 지음 / 글로벌콘텐츠 펴냄



'모르도록 세뇌되었다'는 저자의 의견을 보는 순간 몸이 굳었다. 그래 어느 누가 먹고 사는 문제에 고대사를 운운하겠는가. 무엇이 올바른지 역사의 진면목을 들여다 보려고 하겠는가. 그러나 명백히 이어져 내려온 역사의 한 줄기가 바로 지금의 '우리'이기에 이런 논쟁이 반갑다. 비록 무지하여 고대사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이라도 고대사와 관련한 논쟁이 불러온 쟁점을 들여다볼 수 있어 기쁘다.


국정교과서의 밑바닥에 깔린 문제점들을 깊게 들여다볼 것도 없이 왜 그런 국정교과서가 편찬되어서는 안 되는지 현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깨닫는 바가 있었기에 나는 국정교과서를 반대했다. 자기들 입맛대로 이리저리 휘두른 왜곡을 내 아이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에 환멸을 느꼈다. 지금껏 내가 알고 있었던 역사 조차도 잘못 받아들이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책을 펼쳤다. 알아야 한다. 고대사학자들이 뿌려놓은 역사의 씨가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잡초라면 뽑아버리고 고목이라면 키워야 할 것이다. 진보의 여부를 떠나 한국 고대사의 흐름이 어떤 민주주의를 부흥케 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면 이 논쟁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고조선 논쟁에 있어 '윤내현' 사학자를 새롭게 조명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에서 고대사에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나는 사학자 윤내현'에 대해 알고자하는 욕구가 생긴다. 고조선 논쟁에서 윤내현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덕일'의 저서 몇 권을 읽어본 적이 있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사도세자의 고백],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다. 역사서임에도 조선시대의 정치를 이야기하고 있어 흥미롭게 봤다. 역사서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으니깐. 이덕일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어찌보면 역사로 받아들이기보다 문학으로 읽었기에 냉철함을 잃었을지 모른다.



저자는 학자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고조선 학자들의 논문을 인용한 것이고 학문을 통한 논문으로 증명된 자만이 스스로 학자라 일컫을 수 있다고 서언의 말미에 당부하고 있다. 들어가는 글부터 서언까지 23페이지에 걸쳐 이 책을 펴내게 된 동기와 고대사와 민주주의 상관성에 대해 면밀히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의 말을 꼼꼼히 읽어보는 나는 작가가 서언을 통해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했으며 고대사의 중요점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고조선 논쟁과 한국 민주주의]를 보는 내내 검색창을 향한 두드림은 끊이질 않았다. 윤내현, 신채호, 복기대를 비롯해서 고조선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나름 확인하고 알아보는데 시간을 할애해서 책을 보는 시간이 더 걸렸다. 그럼에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가 고대사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모르도록 세뇌' 되어버린 역사일지 모를 고조선을 향한 물음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해석과 이해의 차이를 역사를 통해 돌아본다.


이 책은 고조선의 이야기가 아니다. 철저히 고조선을 향한 물음이 어떻게 해석되어지는지, 그것을 받아들이는 학자들이 어떤 주장을 하는지, 그로인해 벌어진 논쟁을 뜨겁게 다루고 있다. 그만큼 많은 학자들과 관련 인물들이 나온다. 대고조선론과 소고조선론을 통해 바라본 학계의 비판은 서로를 향한 흑색선전으로 얼룩져 있다. 저자는 본문 말미에 정작 중요한 것은 "정직하고 민주적인 과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친일에 둘러싸인 역사를 바로잡고 학문을 향한 열정만이 고조선을 향한 논쟁을 투명하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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