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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유엔인권자문위원이 손녀에게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시공사 / 2019년 1월
평점 :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장 지글러 지음 / 양영란 옮김 / (주)시공사 펴냄
인간의 노동과 재능, 천재성은 공동의 선,
즉 우리 모두의 공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마땅하지.
소수의 안락과 호사, 권력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선 안 된다는 말이야.
p.22
인간애와 냉철함으로 세계의 빈곤과 자본주의의 모순된 사회 현상을 파헤친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신작인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는 세계의 자본주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소외된 계층의 평등과 자유의 삶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손녀 조라와 대담체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자본주의의 형성과 그로 인한 인류의 이익, 폐단을 이야기한다. 네덜란드 역사학자브라베크 레트마테가 "역사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는 인류의 자유와 복지를 보장하며, 지구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경제 형태"(p.17)라고 주장하는 반면 저자는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생산 방식이 가져온 환경파괴와 가난, 범죄 그로 인한 아이들의 굶주림과 질병으로 인한 죽음을 통탄한다.
지구 76억 인구 중 48억 명이 남반구에 거주하며 10억 명이 자유롭지 못한 환경 속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의식주에서 밀려나 있다. 전체 지구 인구의 극소수 지배자들에 의해 순환되는 자본주의가 옳은지 늘 고뇌하는 저자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발전과 적응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본적의 권리조차 누리지 못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 진입조차 할 수 없어 하루의 삶을 근근이 이어가는 이들에게 어떤 희망이 있을까.
익숙하기에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자본주의에 기반한 경제 체제를 갖추고 있고, 그로 인해 재화를 획득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소비 사회' 시스템에서 돈을 지칭하는 '자본'과 노동자들의 희생에 따른 자본주의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본의 형성이 구체화된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혁명과 체제라는 이름으로 어떤 흐름이 이어졌는지, 구체화된 기반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다. 세계의 가난에 대한 토론도, 논문도 아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이어져 왔는가에 대한 고찰은 역사와 경제로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을 담고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 들여다보니 혁명 속에 사그라진 자본주의의 민낯이 부끄럽다. 산업화의 성황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다. 지배계층의 억압으로 말미암은 고통, 눈물로 얼룩진 피지배계층의 산물이 현재의 자본주의를 이루고 있다. 자본의 '평등과 소유'는 '다국적화, 독점화'로 소수 권력에 집중화되었다.
억압에 항거하는 혁명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는 자본주의로, 과도하게 집중된 자본주의에 반하는 사회주의로 체제는 각 나라마다 다분화되었다. 어느 방식이든 독재를 탈피하여 자유를 갈망한 이들로 인한 체제의 붕괴와 산업화에 따른 기술혁명은 금융 자본주의를 양성하게 된다.
집중화된 금융 자본에 맞선 세계 공유 경제,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위한 국가 간의 협약을 위해 활발히 논의하는 단체가 많이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배고품과 질병을 해갈하기엔 너무도 부족한 실정이다. 개개인의 작은 관심과 도움이 집단에서 국가로 확장되어야 한다. 거듭된 산업화와 기술혁명은 자연과 환경의 파괴를 초래하게 되었고 자연에서 얻을 수 있었던 산물은 더 이상 풍요로운 것이 아니게 되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태어난 것을 요행으로 여겨야 할까, 아프리카를 비롯한 내전에 휩싸인 곳의 죽음은 그저 타인의 이야기라 치부해야 할 것인가. 자본주의로 인해 행복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체제가 옥죄어 허덕이는 사람도 있다. 비단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닌, 빈부의 차이는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아동의 노동 착취가 이루어지고, 쓰레기 더미를 찾아다니고, 깨끗하지 못한 물을 걸러 먹고, 질병에 대응하지 못해 야위어가는 수많은 아이들이 있다. 간절한 눈빛이 많은 매체를 통해 알려지고 있지만 국가 간의 불평등이 야기하는 경제 악순환의 고리는 여전히 단단하다. 하루의 먹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어른과 더불어 아이들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부의 분배로 이익의 극대화를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까. 유토피아의 가치는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누구나 소외에서 벗어나 동등한 하루를 갈망한다. "민중의 소극성, 즉 자본주의자들의 거짓말에도 기꺼이 복종하는 그 소극성에 분노하는 거란다."(p.161) 개인의 힘이 약하다 생각하지만 같은 뜻을 가진 생각이 모여 집단을 이루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극소수인 부의 지배자들의 자본주의에 동조하기보다 상생을 향해 손을 잡고 커다란 파도를 일으켜야 한다. 금융 자본주의, 소비 자본주의에 치중하지 말고 공유 자본주의로 점차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