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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하여
정혜신.진은영 지음 / 창비 / 2015년 4월
평점 :
'마음은
빛 같기도 하고 바람 같기도 한 것인데,'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창비)>, 정혜신, 진은영

우리에겐 익숙한 단어의 조합이 있다. '개인사에서의 트라우마', '사회와 민주주의', '실증적인 치료', '선한 의도의 치유는 선한 것'.
그런데 여기 이 책은 부제에서부터 익숙찮은 단어의 조합이 자리해 있다. '사회적 트라우마' 그리고 그것의 '치유를 위하여'.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창비)>는 2008년 무렵부터 고문피해자를 위한 고문치유모임의 집단상담을 시작으로,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 그리고
이제는 1년이란 시간을 지나온 세월호 참사 이후에 생겨난 한국 사회의 다양한 '사회적' 트라우마를 다루고 직접적인 실천을 해온 정혜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사회, 마음, 트라우마, 치유에 대한 생각들을 촘촘하게 들을 수 있는 대담형 책이다. 이 대담은 시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접점을 깊이 바라보는 진은영 시인과 함께 이루어졌다.
세월호 참사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유가족'이라는 한 마디로 간결하게 그 생각을 끝마칠 때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살펴본 이른바 '연결된 이들'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유가족, 실종자 가족, 생존자(학생)와 그 가족, 학생이 아닌 일반인
생존자·실종자·가족, 단원고 교사와 학생들, 안산의 시민들까지 너무도 세세한 스펙트럼으로 나눌 수 있는 '그들'이었다. 또한 같은 참사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가족인 희생자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간에도 또 다른 감정과 생각지 못했던 감정적 역동이 있었고, 다양하게 구분되는 그것에
따라 들어야 할 이야기도, 함께 나눠야 할 대화들도 다른 것처럼 여겨졌다. 이와 같이 세분화된 아픔, 슬픔, 트라우마를 간과하지 않고 치열하게
구분해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 분들과 함께하는 정혜신 전문의의 마음결을 따라가다 보면, 세월호 참사 후의 다양한 개별적, 사회적 접근을 쉽게
결정하고 아무렇게나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 '쉬울 수 없음'은 세월호 참사의 직간접적 트라우마 피해의 다양성보다도, 그 총체적인 아픔의
깊이와 비현실적일 정도로 큰 슬픔으로 인한 것임을 정혜신 전문의는 피해자와의 대화와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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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
'아빠
미안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엄마
미안
밤에
학원 갈 때 핸드폰 충전 안해놓고 걱정시켜 미안
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 못해서 미안
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
할머니랑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
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듯하고 부드럽게 익어가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
(후략)'
(예은이가
불러주고 진은영 시인이 받아적다)
/
204~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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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정혜신 전문의가 안산에 와 배우자인 이명수 심리기획자와 함께 만든 치유센터 '이웃'에서 희생 학생의 생일날에 가족들과 함께 모여
보내는 시간 중 단원고 2학년 3반 학생이었던 예은이의 생일 날에 흘렀던 시이다. 현재 시인들이 희생 학생 유가족이 함께 하길 원할 시, 희생
학생의 목소리를 빌려 시로 써 가족들과 함께 별이 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처럼, 안산의 치유센터 '이웃'은 집밥, 시, 예술, 마사지, 마음껏 울기, ... 그 어떤 치료센터에서 보이는 것과는 다른 풍경들이 있다.
거기에는 이 책에서 정혜신 전문의와 진은영 시인의 대담 속에서 발견되는 '마음'의 어떠함에 대한 견고하고도 부드러운 생각에서 나오는
접근들이었다.
책에서 '마음'이란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이고, 그 마음은 아픈 것들로 자주 부딪히며, 그러나 또 각자의 사람은 그 마음에 각자의 '온전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사회적 트라우마라는 것이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사건, 피해를 통해 생겨난 개인과 사회의 마음에 새겨진 트라우마라
설명할 수 있다면, 이에 대한 접근 역시 개인적이고 또 사회적이며 매우 체계적이면서도 또한 아주 부드러운 예술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그리고 책 속의 대담을 통해 던져지는 몇 개의 질문들 중 우리에게 가장 와닿는 것들 중 하나는, '왜 우리 사회는 서로의 마음을 치유해줄 수
없는가', '사회와 국가적인 사건의 피해와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왜 사회와 그 속의 다른 개인들은 헤아리고 함께 해줄 수
없는가'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단한 이론이나 거대한 설명이 아닌, 그저 '나의 마음을 헤아림 받아본 경험의 부재'에서 정혜신 전문의는
찾고 있다. 치유 받는 순간은 다름아닌 '마음이 휘청'하는 순간이라고. 그러한 순간이 현재 사회적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그들'로 두드러지는
사람들뿐 아니라 오늘 우리 사회 모두에 필요한 것이라는 믿음이 정혜신 전문의의 계속되는 활동의 구체적인 원동력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의 끝 무렵, 정혜신 전문의와 사회적 트라우마와 치유, 마음, 슬픔, 사회,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진은영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마음은 빛 같기도 하고 바람 같기도 한 것인데 그것을 딱딱한 나무막대기처럼 다루는 천편일률적인...(후략, 276쪽)'.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그리고 우리는, 현재의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빛 같기도 하고 바람 같기도 한 내 앞의 사람의 마음에 숫자와 단단한
막대를 가져다 대오기만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케 된다. 스스로의 마음조차 빛과 바람 같은 줄도 모른 채, 그렇게 단단하게만 여긴 스스로의 마음을
내 앞의 사람의 마음에 가져다 댄 건 아니었는지.
세월호 참사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프고 슬프다. 아프고 슬프다가도,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그것 조차 잊게 되는 것도 같다. 그 아픔과 슬픔이
치유되기가 참 어렵다는 걸 지난 일 년간 우리는 쳐다보았다. 그 아픔과 슬픔이 충분히 건강하게 아파하고 슬퍼하기도 힘들었던 이 땅을 어쩌면
무위로써 꾸려왔다는 사실을 쳐다본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슬픔을 조금도 축소시키지 않는다는 선에서, 지금 우리가 사는 여기 역시 그
참사와 다를 바 없이 자꾸만 비현실적일 정도로 슬프고 아프다. 그리고 그 아픔과 슬픔 역시 마음껏 아프고 슬퍼했다가, 누군가로부터,
어딘가에서부터 치유 받을 길을 몰라 멈추어 있다.
마음은 빛 같기도 하고 바람 같기도 한 것이다. 서로의 마음이 그러한 것을 이 책을 통해 세세하게 알아, 그 앎 이후에 삶의 장면 장면들로
촘촘히 깨달았으면 한다. 그래서 빛 같기도, 바람 같기도 한 각자의 마음이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운 빛이자 선선하고 따뜻한 바람으로 비추고 불어갈
수 있다면.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는 우리가 오늘 어찌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을 머금고, 내 마음에 바람이자 빛으로 불어오고
비춰온 종이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