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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평점 :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고교 필독서로 꼽히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인간사를, 우리의 현실을 초등학교 학급에 집약하여 다양하게 보여 주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초등학교 학급의 모습에서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을 그렇게 세심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또한 용기 있게 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을 소설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계기가 된 것일 게다.
우리나라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소설이 있다면 영국에는 파리대왕이라는 소설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을 세밀히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고 파리대왕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등의 정치적인 개념을 폭넓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파리대왕이 나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문열의 소설과 비교뿐만 아니라 또 아동도서로 유명한 15소년 표류기와도 흡사하다는 것때문이다. 15소년 표류기의 경우 마치 요즘 유행하고 있는 어드벤처 판타지의 소설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반면 파리대왕의 경우는 거의 똑같은 배경과 상황설정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과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크게 다르다.
파리대왕의 등장인물은 다들 어린 소년이다. 많은 아이들은 대중을 상징하지만 그곳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각자의 정치성향을 상징하며 그것으로 압축된 표현을 한다는 점은 참 흥미로운 설정이다. 민주주의를 뜻하는 주인공과 아무 힘이 없는 지성인을 상징하는 돼지피기와 또 신비주의자적인 몽상가를 상징하는 사이먼 그리고 민주주의의 나약함을 꼬집으며 강력한 힘의 정치 즉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또 다른 주인공.. 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예전 냉전시대의 각 나라를 표현하는 듯하며 또한 마지막에 모두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정치라는 것 그리고 또 이데올로기라는 사상의 허무함을 말할 때는 무한한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파리대왕은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지 않고 즉,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간다고 그것을 미화시키지 않으며 민주주의의 가장 큰 취약점과 그리고 민주주의의 허약함 그리고 사상적인 철저함의 결여 등을 여실히 드러내면서 그렇다고 하여 그것을 대체하는 것으로 전혀 반대 노선인 군국주의 또한 그 허무함과 인간성 말살이라는 것도 드러내면서 그에 대한 옳고 그름의 차이를 독자에게 한껏 열어주고 있기 때문에 가장 현실감 있으면서도 또한 문학적인 미도 살아 있는 드문 책이라는 생각이다.
민주주의란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이상적인 정치사회형태라고 누군가 이야기했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것 또한 그 허점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기본 사상인 벤담의 공리주의 즉, 최대다수 최대행복이라는 사상 자체가 사상으로서의 완벽함보다는 현실 운용의 유동성의 개념에서 받아들이는 시점에서 민주주의 또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취해지는 행동이 바뀌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유동성 현실성이라는 것에는 뛰어난 효용을 보이지만서도 사상적인 면 또는 철학적인 면에서는 그 논리의 오류가 여실히 드러나며 이것이 현실적인 면에서도 사회 부조리라는 이름으로 나타남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파리대왕이 좋은 소설로 자리 잡은 이유는 민주주의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내면서도 또 우리가 이 민주주의를 왜 고수할 수밖에 없는가 아니 더 나아가 왜 우리는 이 민주주의를 수정하고 한 단계 승화시켜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설득한다는 점일 것이고 이런 소설이 오랫동안 민주주의의 전통을 계승하고 개선하던 영국에서 쓰여진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도 한 번 깊이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