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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히브리서 - 창조부터 종말까지, 순종으로 오늘을 살다 ㅣ IVP 특강 시리즈
이지혜 지음 / IVP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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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해외 생활을 마치고 고향 땅을 밟았다. '여기야 눈 감고도 다니지' 하는 마음에 내비게이션을 끄고 도심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여기가 어디여~?" 익숙하다고 믿었던 길 위에서 나는 이방인처럼 헤매고 있었다. 익숙함이 오히려 눈을 가린 셈이다. 결국 다시 내비게이션을 켜고서야 그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히브리서가 꼭 그렇다. 잘 안다고 여겼던 본문 앞에서도 불현듯 방향을 잃을 때가 있다.

이튿날 해가 떠오른 뒤 그 길을 다시 달려 보았다. 새로 닦인 도로와 옛길이 하나로 맞물려 있었다. 어둠 속에서는 낯설기만 하던 길이 햇살 아래서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이 실감났다.

그런데 지금 필자의 손에 들린 한 권의 책이 바로 그 아침 햇살이었다. 사랑하는 동역자의 누님께서 쓰신 책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펼쳤는데, 행간을 따라갈수록 깊이 매료되었다.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광야의 백성을 사십 년 동안 방치하신 것이 아니다. 그 사십 년 동안 당신의 행사를 보게 하신 것이다(76쪽; 히 3:9). 그것도 참된 가나안의 안식으로 이끄시기 위해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험준한 산자락을 관통하는 기찻길을 닮았다는 데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맥락으로 이어져 독자를 흔들림 없이 끌고 간다. 기찻길은 높은 산을 만나면 터널을 뚫고, 깊은 골짜기를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 조금 더디게 돌아가는 구간이 있을지언정 끝내 목적지를 향해 곧게 뻗어 있다.


저자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소망을 그려 낸다. 그런데 그 소망의 길은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다. 맏아들 되신 예수께서 먼저 걸어가신 길, 곧 낮아지심을 지나 높임을 받으신 길이기 때문이다(히 1:6; 2:9). 우리 역시 그 소망 안에서 낮아지기도 하고,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철길은 결국 약속된 안식에 닿는다. 이 책은 독자를 바로 그 열차에 태운다.


이렇게 이 책은 내게 히브리서의 내비게이션이 되었고, 어둔 길을 비추는 아침 햇살이 되었으며, 마침내 안식으로 향하는 기찻길이 되었다. 이미 알던 옛길 위에 새로운 관점의 길을 겹쳐 놓는, 참으로 귀한 책이다.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손에 넣었고, 방금 또 다른 소중한 벗들을 위해 몇 권을 더 주문했다. 그리고 지금, 이 서평을 쓰고 있다.


흔히 서평이라 하면 저자 소개와 핵심 내용, 가슴에 남은 대목을 차례로 풀어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그 일을 과감히 내려놓으려 한다. 대신 질문 하나를 건네고 싶다. 혹시 아직도 광야를 '시험의 자리'로만 여기며 그곳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히브리서를 그렇게만 읽고 있지는 않은가? 만일 우리의 광야가 끝없이 길게만 느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바라보지 못한 시간만큼 길어진 것은 아닐까.


그래서 더 이상의 내용 소개는 삼가려 한다. 그 답은 독자가 직접 책장을 넘기며 찾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책은 주석에 깊이를 지닌 신학서이기에 신학생과 목회자에게 먼저 권한다. 동시에 성도들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을 만큼 가독성이 뛰어나다. 성경을 곁에 펴 두고, 책에 인용된 구절을 하나씩 찾아 읽어 가 보라. 히브리서 강해 설교를 한 편씩 듣듯, 어느새 본문이 풀려 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매던 그날, 다시 켠 내비게이션이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었듯이, 이 책이 당신의 히브리서 여정을 약속된 안식까지 안내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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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별들과 함께한 수업
김서은 지음 / 두란노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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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읽고, 너를 읽는다.

 

글은 이야기이고, 이야기는 곧 삶이며, 결국 삶은 글이 됩니다. 그런데 김서은 작가는 『길 잃은 별들과 함께한 수업』에서 이 흐름을 거꾸로 돌립니다. 빛을 잃어가던 청소년들에게 먼저 글을 만나게 했고, 그 글은 결국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길을 잃는 이유는 어쩌면 ‘나’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길을 잃었을까요? 자신을 읽어내는 힘은 혼자만의 노력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길을 헤맨 것은 혹시 그들의 길이 되어주어야 할 부모와 어른들의 무관심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나’를 읽어내지 못하는 어른들이 그들을 외면하고 구석으로 내몬 것은 아닐까요?

 

『길 잃은 별들과 함께한 수업』은 법원 소년부 처분을 받은 위기 청소년들과 6개월 동안 인문학 수업을 하며 쓴 이야기를 엮은 에세이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따뜻함이 가득했습니다. 작가를 직접 만나 사인을 받았고, 그분이 제가 존경하는 분의 따님이라는 사실은 제 마음을 더욱 움직인것도 사실입니다.

 

이 위기 청소년들은 6개월이 지나면 다시 변하지 않는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에 직면합니다. 길이 없는 환경에서 다시 길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가정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시간 동안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다면, 그들은 한 줄기의 빛도, 작은 길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읽어내는 힘은 관계에서 나옵니다. 아이들이 쓴 이야기와 작가가 들이민 인문학의 거울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만의 길을 조금씩 찾아갑니다. 이는 인문학 자체의 힘이라기보다는 김서은 작가와 같은 좋은 어른과의 만남 덕분이 아니었을까요? 또한 인문학은 그저 도구일 뿐이지만, 좋은 도구가 있어야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김서은 작가는 그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인문학 목수 같았습니다. "인문학 수업은 독해 능력과 글쓰기 실력을 향상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책을 통해 삶을 바꾸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인문학의 역할이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작고 연약한 존재들과 마주하는 것"이며, "오로지 솔직한 자기 모습을 스스로 앞에, 신 앞에 단독자로 마주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작가가 말하는 성찰입니다. 저자의 역할은 아이들이 신 앞에서 성찰하고 회개하여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인문학이라는 거울로 그들의 얼굴을 끊임없이 비추어주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싼 공구가 있더라도 기술 좋은 목수의 손이 없다면 연장은 창고에 먼지만 쌓일 뿐입니다. 도구도 중요하지만, 그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좋은 목수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목수이신 예수님이 필요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김서은 작가는 신과의 만남을 연결하고, 또한 좋은 어른과도 만날 수 있도록 메신저 역할을 해준 것입니다. 결국 인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그 책의 작가의 인생을 만나게 해준 것, 이것이 김서은 작가가 따뜻한 메신저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에 소개된 지현이의 시는 가슴을 울립니다. "우리 엄마 / 보고 싶은 우리 엄마 / 이렇게 부르니까 생각나네 / 생각나니 속상하고 / 속상해서 울다 보니 결국 보고 싶네… / 언제 봐도 안 질리네 / 벌써부터 생각나네 / 사랑해요." "법을 어기고 재판을 받은 아이들은 냉혈한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그들이 차가워진 것은 혹시 녹을 수 있는 공간, 즉 시로 들여다본 엄마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결국 그들을 얼어붙게 한 냉장고는 무관심한 부모와 사회였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러한 내면의 어두움과 공존하는 아이들. 시현이는 용돈만 주면 유부남이라도 빼앗겠다고 말하며 "자신의 존엄성에 어떤 가격표"를 매긴 듯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레퍼토리인 "잘 모르겠어요"라는 대답 속에 그들의 진정한 속마음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몰랐을 뿐입니다. 몰랐기 때문에 어둠이었고, 길을 잃었던 것입니다.

 

작가는 인문학 수업 시간이 아이들의 마음 한구석에 희망의 씨앗으로 남아 언젠가 그들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작은 진심 하나를 발

전시켜 아이들의 사고력과 마음을 발달시키려고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며 눈이 시뻘개져" 있었다고 합니다. 작가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부분입니다.

 

오른손과 왼손이 화해하는 모습의 우화가 있습니다. 왼손은 오른손이 척척 잘하는 일을 부러워하고, 시계, 팔찌, 반지는 독차지하는 왼손을 오른손이 질투하여 둘이 갈등하다 결국 싸워서 다치지만, 서로 손뼉을 마주치며 화해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지현이는 센터를 나가면 부모님과의 관계도 회복하고 싶고, 마음을 나눌 친구도 사귀고 싶다며, 오른손과 왼손이 화해하는 모습을 잘 배워놨다가 써먹겠다고 합니다.

 

이처럼 현실을 변화시키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몸부림을 알기에, 작가는 지현이의 지평을 넓혀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희망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좋은 관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했던 시간에 구석으로 몰렸던 아이는 이곳에서 아주 작지만 소중한 빛을 발견해갑니다.

 

"자신을 사랑해야 미래가 보인다."는 작가의 말처럼, 『길 잃은 별들과 함께한 수업』은 아이들이 처음에 마치 궁지에 몰린 쥐처럼 세상을 향해 덤벼들려 했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좋은 선생님과 함께하는 인문학 수업에서 접하는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은 점차 주인공이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 공간은 아이들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따뜻한 곳으로 변모합니다.

 

   이 책은 따뜻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위기 청소년의 문제는 결국 '나'를 읽어내지 못한 무관심한 어른들에게서 비롯됩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런 어른들에게 필수 도서가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나를 사랑해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즉, 나 자신을 먼저 이해해야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책을 읽고 남은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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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야곱 DNA - 축복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이중적 욕망
김기현 지음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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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과연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 그 과거가 있기에 지금의 실수가 없을 뿐, 되돌아간다고 해도, 현재의 변화를 가져가지 않는 이상, 실수투성이인 나로 돌아갈 뿐이다. 그 타임이 있었기에 지금의 타임을 살아갈 뿐이다. 헛된 시간이 있을까? 물론 있을 것이다. 타임 거울속에 비친 헛된 나를 고쳐 입지 않으면, 그저 그 허름한 나로 그럭저럭 살아갈 뿐이다. 헛되고 정말 헛된 시간이다.

인생의 타임 라인에 걸쳐져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와 변화무쌍한 환경. 그 시간 속에서 비친 나의 이중성. 서로 치열하게 싸워야만 했던 양면성. 고통을 삼키며 벗어 던져야만 했던 또 하나의 나. 마치 1도 화상 입은 자의 겉옷을 벗기듯, 아픔과 고통을 억지로라도 벗겨내야만 했다. 그 시간의 거울 속에 누더기로 비친 단점 가득한 나의 모습은? 과연 그 시간은 나에게 헛되었나?

저자 김기현, 그가 다시 한번 나를 거울 앞에 세웠다. 아니, 이번에는 도서 ‘내 안에 야곱 DNA’을 통해 나를 시간의 거울 앞에 세웠다. 반백살 가까이 살아온 필자의 인생 타임라인. 수도 없이 부딪쳐 온 나의 이중성, ‘자기와 불화를 빚는 일체의 이중성’을 갖은 나를 화해시켰다. 이 책의 핵심이다. “내 영적 DNA의 이중 나선인 영적 갈망과 육적 욕망 두 개의 가닥이 배배 꼬여” 있던 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전체를 보니 결국 축복’이라는 한 가닥을 발견한다. 내가 지금 그렇게 서있는 것이다. 그게 나다.

저자 김기현. ‘이 시대의 영적 청진기’이다. [글 읽는 그리스도인 개그맨 최형만]의 추천사다. 맞다. 정말 이시대의 청지기라 불릴 만하다. 그의 글은 청진기다. 독자의 깊은 내면 속에 들려오는 몹쓸 잡음을 감지하고, 독자 스스로 진단하게 한다. 그의 힘이다. 그는 이사야 50장 4절의 학자와 제자가 되어, 작가와 목사, 한국침례신학대학 교수로 말과. 글로 주님과 교회, 이웃을 섬기고 있다. 그의 많은 도서 소개는 생략하고, 요즘 가장 핫한 사순절에 맞춰 나온 [고난은 사랑을 남기고]를 읽으며, 예수님과 함께 사순절을 동행하면서 진단받아봐라! 말해 뭐하랴!

“내 안에 야곱 DNA” 너무 새롭다. 특별히 인간의 이중성을 하나의 선택이 아닌, 그것이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한다. 자신이 누군지 확실히 보기 시작할 때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이 보이게 된다.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은 야곱 스스로 어떻게 살았고,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야곱보다 까다롭고, 더 냉혹하게 더 욕심 많고, 더 간교한 사람에게 야곱을 맡겨두셨다.”(141p) 그렇다. 그렇게 야곱을 타임라인에 자신보다 더한 야곱을 만남으로써, 하나님께서 진정 내가 아니길 바라는 단점들을 벗어 던지도록 시간의 거울 앞에 세워나가셨다. 내가 지나왔던 시간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고 필자를 위로하였다. 놀랍고 새로울 뿐이다.

야곱은 무척이나 나와 닮았다. 아니 그 장인이 바로 야곱의 거울인 것처럼. 그가 나다. ’야망, 수단, 은혜로 야곱이 삶을 읽어내는 핵심 열쇠를 필자도 쥐고 있었다. 필자의 타임 거울의 자물쇠를 이 도서를 통해 진단받고 열어보니 ‘하나님의 축복을 탐하는 야망의’ 야곱인 내가 있었고, 그 야망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내가 서 있다. 그런 나를 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버러지보다 못한 나를 사랑하신다.’(33p) 아 야곱을 사랑하시니 그와 같은 나를 사랑하신다. 참 은혜이다.

벧엘에서 야곱을 만나셨던 하나님. 진정한 벧엘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 타임거울 속에 자신보다 더한 나를 만나게 하셨다. 아픔이었지만, 쓰라린 헤어짐이었지만, 모든 것이 나를 위한 벧엘이었다. 은혜였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그 놀라운 은혜를 발견하게 한 도서 “내 안의 야곱 DNA”! 특별히 타임 거울 속에 멈춰 현재를 헛된 후회와 고민으로 사는 독자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진단받고, 그 과거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당신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보지 않겠는가? 벗어던져야 한다. 그 상처에 허름해진 누더기가 되어버린 상처의 옷을 이제 벗어 버리고, 은혜로 덮어주신 흰 눈보다 흰 옷을 입고, 참 벧엘을 누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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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사랑을 남기고 - 김기현 목사의 사순절 가상칠언 묵상집
김기현 지음 / 두란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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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울 앞에 서다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셨나? 십자가다. 십자가를 예수가 지셨다. 그가 자신을 남기셨다. 그는 여전히 원수와 죄인들 사이에 머리 되시고 우리를 자신의 몸 되게 하신 교회로 남으셨다. 아니 자기 몸을 주신 것이 맞는 표현이다. 교회가 예수고, 그의 몸이 나고, 우리다. 그러므로 나도 그 십자가에 메달린다. 우리도 남겨야 한다. 남겨야 살린다. 예수님이 그 십자가에서 몸부리치신 기도이자! 선포이신 가상 칠언 ‘고난은 사랑을 남기고’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춘다. 내가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 그 옆에 달린 나를 본다. 십자가의 예수가 내 안에 남았다.

 

       ‘고난은 사랑을 남기고’ 기다리던 책이 내 손에 쥐어졌다. 아니, 거울이었다. 십자가의 거울. 그 속에 아직까지 십자가에 메달려 비춰진 예수가 계셨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용서하지 않은 내가 망치를 쥐고 있다. 그를 못박은 자도, 메달을 자도 나고, 예수 옆에 메달린 강도도 나다. 이런 용서받을 수 없는 자를 용서로 말씀하시니, 오늘이 낙원이 되었다. 그것을 누린다. 주님의 십자가다. 그곳에서 남기신 가상칠언, 그 거울 속 십자가 그늘 아래 나를 비춘다.

 

 

      저자 김기현 역시 김기현 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신 가상칠언. 마치 2D 영상처럼 사복음서의 동서남북의 단면적 측면으로 보았던.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현장을 필자에게 4D 펼쳐보였다. 이것이 연결이 된다고? 역시 김기현이다. 

     사순절 기간 그토록 성도들과 함께 묵상하고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 하지만, 모두 단면적이었다. 사순절 기간 무엇을 나눌까? 이제 이 고민도 덜어낸다. 내년에는 40일 동안 함께 내면 깊이 자신을 ‘십자가 거울’에 입체감 있게 세우게 될 것이다. 왜? ‘고난은 사랑을 남기고’의 거울 앞에 서서, 십자가를 보고, 나를 보고, 가정과 교회를 보게 됐으니 말이다.

 

 

     저자의 묵상은 벧엘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던 야곱을 연상케 한다. 하나님의 허리를 붙들듯 말씀의 삿바를 붙들고 씨름하였다. 고관절이 상할 만큼 그가 말씀과 씨름한 그의 묵상은 "욥, 까닭을 묻다",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 "말씀 앞에 울다"와 같은 도서로 독자들을 하나님(말씀) 앞에 씨름하게 한다. 말과 글로 주님과 교회와 이웃을 섬기는 비전을 품고 있는 저자 김기현. 이번에는 가상칠언이다. 그의 비전이 이루어질 만 하다. “고난을 사랑을 남기고” 그 십자가 거울 앞에 모두 새울 만 하다.

 

 

      저서 [고난을 사랑을 남기고]는 제목과 같이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면서, 용서 받을 수 없는 강도와 같은 우리 가슴에 7번 사랑을 남기셨다. 가상칠언, 십자가에서의 기도이고, 유언이며, 선포이신 그 사랑은 사순절 40일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여러분을 가슴치게 할 것이다. 사역의 첫 시작을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시던 40일과 같이,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탐한 40일과 같이, 사순절 40일 기간에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사랑의 유언을 받아 먹게 할 것이다. 40일간 그 말씀을 씨름하고, 정탐하고 묵상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신 주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책의 흐름은 제목으로  말해준다. 고난에서 사랑을 남긴다. 예수님의 고난은 용서이다. 자신을 죽이고, 십자가에 메단 자를 용서하셨고, 오른 쪽 강도를 용서하셨다. 용서의 십자가 나를 용서하셨으니, 우리를 용서로 초대한다. ‘용서는 정의의 실천이고, 정의의 실현이며, 용서는 자유롭게 한다.'(21p) 주님이 날 용서하셨으니 타인을 내가 용서해야하는 이유이다. 그곳이 곧 낙원의 시작이다. ‘그 용서는 우리의 삶을 낙원으로 이끈다(64p) 주님의 세 번째 용서가 필요한 곳이 ‘가정과 교회’임을 지목한다. 저자는 우리는 이 두 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해야 하고, 우리에게 이 두 공동체를 낙원 공동체로 일구어야 할 사명’있다. 그 사랑을 남겼으니 그 사랑을 남기라 말한다.

 

 

    특별히 책의 구조와 요구가 너무 소중하다. 낭독하고, 써라! 그리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실천하라!! 나눔과 질문은, 어머니를 부탁하신 예수님의 유언처럼, 공동체와 가정이 낙원을 이루도록 요구이자 동력이 된다. 그러므로 특별히 가정에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사순절 기간, 아니 십자가를 사랑을 갈급하다면, 누구나 함께 나누길 추천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필자는 책을 다 읽고, 저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누리기만 할 것인가? 그 길을 따라갈 것인가? 저자가 말한 것처럼 ‘십자가는 모든 것의 완성이지만,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나는 그 십자가의 거울 앞에, 오늘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살았다. 그리고 벌써 사랑으로 벌써 살아내기 위해 출발한 자라는 것을 일깨운다. 공동체를 향해 가족을 향해, 이웃을 향해 그들의 배 고품과 목마름을 위한 ‘주님의 목마름은 삶을 찾는 목마름이고, 사람을 사랑하려는 목마름이다.’(126P) 그 십자가를 따른다.

 

 

    ‘나의 죽음은 하나님 나의 아버지 손에 맡기고, 나의 시작은 주님의 사랑을 남긴다.’ 책의 마지막 공백에 남긴 필자의 한 줄 감상평이다. 저자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죽는 법을 배우고, 참답게 사는 법도 배운다. 삶의 눈으로 보면 죽음은 삶의 종언이지만, 삶의 목적이 된다. 죽음의 위협 요소에서도 잘 죽는 것이 내 이력의 마침표이다.’(162p) 말한 것 처럼, 필자도 다짐한다. 십자가의 거울 앞에 다시 한 번 믿음의 옷을 추스려 입어본다. 십자가에서 주님의 말씀을, 그 사랑을 남기셨던 것처럼, 그 주님의 사랑을 남기며 살아내려 한다. 당신도 이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춰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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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타래

 

 '부럽다!' 책을 읽고, 책을 내려 놓기까지 뇌리에 떠오른 단어이다. 방황하던 사춘기, 오직 의지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삶과 신앙생활의 괴리감 속에 해결될 수 없는 의문들, 나에게 속 시원하게 고민 들어주고 대답해 줄 멘토가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연한 아들에서 단단한 아버지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서로 고민하며 답해주는 아버지와 아들의 진솔한 신앙의 이야기. 지금 내 마음속에 부러움으로 가득하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사춘기에 할 만한 고민인가? 신학생들이나 품을 의문들을 어린 나이 공부하기 바쁜 시기에 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영적 질문, 의문을 품은 것조차 놀라운데, 그 의문을 풀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고자 몸부림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비친다. 시원하게 답해주기 위해 몸부림치며 말씀과 글들과 씨름하는 아버지가 반사되니, 역시 부전자전이다.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는 글의 형태가 마치 풀지 않으면 더 엉킬 실타래와 같은 상황을 연상케 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편지 형식으로 아들이 사춘기에 자칫 지금 상황을 풀지 않으면 더 엉켜버릴 것 같은, 신앙의 의문들을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관점과 여러 도서를 찾아 꼬인 곳을  찾아 아버지께 묻고, 저자 김기현은 그 아들의 질문들을 성경의 말씀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학도구들을 사용하여 한곳 만 풀면 술술 풀리는 그 지점을 꼭 집어주는 듯하다. 

 

   책 처음에는 아들이 ‘하나님께서 왜 악에 침묵하실까?’ [미션]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세상을 알아가면서 품은 이 악의 문제를 침묵하시는 하나님, 과연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셔서 그의 나라를 회복하실 것인가? 강력한 악의 존재! 정의의 하나님의 침묵 가운데 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에 대한 아들의 깊은 영적 고찰이 묻어난다.   

    아버지는 이것을 하나님의 도움에 대한 아들의 깊은 갈망으로 보고, 하나님의 침묵의 이야기를 출애굽 400년에 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사사기 시대에 한 사사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시고, 성경 전체가 이렇게 흘러간다 설명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악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 최종적으로 궁극적 해결은 예수님의 십자가이다. 결국 이 십자가의 사랑은 악인마저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악을 악으로 대응하지 말라 가르친다.

 

     얼마 전 교회에서 환경 관련 바자회를 크게 열었다. 축제인 만큼 만국기를 이곳저곳에 설치했다. 새로 산 만국기는 잘 정리되어 있었기에 50m의 길이지만 잘 풀어 설치하였다. 하지만 예전에 사용했던 무지개 바람개비가 문제였다. 바람개비 끈이 바람으로 인해 바람개비와 함께 꼬여서 제대로 엉켜있었다. 결국 잘라내고 이어 붙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신앙의 문제가 이와 같다. 잘 정리되지 않으면, 삶의 풍파에 더 꼬여서 더 이상 풀지 못하고 잘라낼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다. 본 책에 저자 아들은 깊은 신앙의 의문점을 지금 당장이라도 풀어내고자 고민하고 편지한다. 또 다른 저자 아버지는 이 엉킨 실타래를 다양한 방향에서 고찰하고, 정확한 한 곳을 풀어 다른 곳이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도록 명쾌하게 답한다. 이 책의 매력이다. 

 

   나도 아들이고 아버지이다.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와 대화한적이 별로 없다. 편지는 더욱 그렇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아무도 없었던 나의 사춘기를 돌아 보았고, 사춘기를 지난 나의 자녀들을 바라본다. 지금 어떤 영적 고민으로 살고 있을까? 추측하고, 속으로 응원하고 있지만, 역시 부전자전인가? 참 대화가 없다. 도전해 보자!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아이들과 깊은 신앙 이야기를 편지해 봐야겠다. 어색해하겠지만,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 저자들의 서로 묻고 대답하며 풀어나가는 영적 실타래 처럼  나도 한번 도전해 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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