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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별들과 함께한 수업
김서은 지음 / 두란노 / 2025년 4월
평점 :
나를 읽고, 너를 읽는다.
글은 이야기이고, 이야기는 곧 삶이며, 결국 삶은 글이 됩니다. 그런데 김서은 작가는 『길 잃은 별들과 함께한 수업』에서 이 흐름을 거꾸로 돌립니다. 빛을 잃어가던 청소년들에게 먼저 글을 만나게 했고, 그 글은 결국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길을 잃는 이유는 어쩌면 ‘나’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길을 잃었을까요? 자신을 읽어내는 힘은 혼자만의 노력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길을 헤맨 것은 혹시 그들의 길이 되어주어야 할 부모와 어른들의 무관심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나’를 읽어내지 못하는 어른들이 그들을 외면하고 구석으로 내몬 것은 아닐까요?
『길 잃은 별들과 함께한 수업』은 법원 소년부 처분을 받은 위기 청소년들과 6개월 동안 인문학 수업을 하며 쓴 이야기를 엮은 에세이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따뜻함이 가득했습니다. 작가를 직접 만나 사인을 받았고, 그분이 제가 존경하는 분의 따님이라는 사실은 제 마음을 더욱 움직인것도 사실입니다.
이 위기 청소년들은 6개월이 지나면 다시 변하지 않는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에 직면합니다. 길이 없는 환경에서 다시 길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가정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시간 동안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다면, 그들은 한 줄기의 빛도, 작은 길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읽어내는 힘은 관계에서 나옵니다. 아이들이 쓴 이야기와 작가가 들이민 인문학의 거울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만의 길을 조금씩 찾아갑니다. 이는 인문학 자체의 힘이라기보다는 김서은 작가와 같은 좋은 어른과의 만남 덕분이 아니었을까요? 또한 인문학은 그저 도구일 뿐이지만, 좋은 도구가 있어야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김서은 작가는 그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인문학 목수 같았습니다. "인문학 수업은 독해 능력과 글쓰기 실력을 향상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책을 통해 삶을 바꾸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인문학의 역할이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작고 연약한 존재들과 마주하는 것"이며, "오로지 솔직한 자기 모습을 스스로 앞에, 신 앞에 단독자로 마주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작가가 말하는 성찰입니다. 저자의 역할은 아이들이 신 앞에서 성찰하고 회개하여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인문학이라는 거울로 그들의 얼굴을 끊임없이 비추어주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싼 공구가 있더라도 기술 좋은 목수의 손이 없다면 연장은 창고에 먼지만 쌓일 뿐입니다. 도구도 중요하지만, 그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좋은 목수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목수이신 예수님이 필요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김서은 작가는 신과의 만남을 연결하고, 또한 좋은 어른과도 만날 수 있도록 메신저 역할을 해준 것입니다. 결국 인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그 책의 작가의 인생을 만나게 해준 것, 이것이 김서은 작가가 따뜻한 메신저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에 소개된 지현이의 시는 가슴을 울립니다. "우리 엄마 / 보고 싶은 우리 엄마 / 이렇게 부르니까 생각나네 / 생각나니 속상하고 / 속상해서 울다 보니 결국 보고 싶네… / 언제 봐도 안 질리네 / 벌써부터 생각나네 / 사랑해요." "법을 어기고 재판을 받은 아이들은 냉혈한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그들이 차가워진 것은 혹시 녹을 수 있는 공간, 즉 시로 들여다본 엄마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결국 그들을 얼어붙게 한 냉장고는 무관심한 부모와 사회였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러한 내면의 어두움과 공존하는 아이들. 시현이는 용돈만 주면 유부남이라도 빼앗겠다고 말하며 "자신의 존엄성에 어떤 가격표"를 매긴 듯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레퍼토리인 "잘 모르겠어요"라는 대답 속에 그들의 진정한 속마음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몰랐을 뿐입니다. 몰랐기 때문에 어둠이었고, 길을 잃었던 것입니다.
작가는 인문학 수업 시간이 아이들의 마음 한구석에 희망의 씨앗으로 남아 언젠가 그들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작은 진심 하나를 발
전시켜 아이들의 사고력과 마음을 발달시키려고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며 눈이 시뻘개져" 있었다고 합니다. 작가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부분입니다.
오른손과 왼손이 화해하는 모습의 우화가 있습니다. 왼손은 오른손이 척척 잘하는 일을 부러워하고, 시계, 팔찌, 반지는 독차지하는 왼손을 오른손이 질투하여 둘이 갈등하다 결국 싸워서 다치지만, 서로 손뼉을 마주치며 화해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지현이는 센터를 나가면 부모님과의 관계도 회복하고 싶고, 마음을 나눌 친구도 사귀고 싶다며, 오른손과 왼손이 화해하는 모습을 잘 배워놨다가 써먹겠다고 합니다.
이처럼 현실을 변화시키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몸부림을 알기에, 작가는 지현이의 지평을 넓혀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희망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좋은 관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했던 시간에 구석으로 몰렸던 아이는 이곳에서 아주 작지만 소중한 빛을 발견해갑니다.
"자신을 사랑해야 미래가 보인다."는 작가의 말처럼, 『길 잃은 별들과 함께한 수업』은 아이들이 처음에 마치 궁지에 몰린 쥐처럼 세상을 향해 덤벼들려 했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좋은 선생님과 함께하는 인문학 수업에서 접하는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은 점차 주인공이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 공간은 아이들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따뜻한 곳으로 변모합니다.
이 책은 따뜻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위기 청소년의 문제는 결국 '나'를 읽어내지 못한 무관심한 어른들에게서 비롯됩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런 어른들에게 필수 도서가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나를 사랑해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즉, 나 자신을 먼저 이해해야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책을 읽고 남은 저의 마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