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 설월화雪月花 살인 게임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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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졸업>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7명의 친구들 이야기이다. 이들은 모두 T대학으로 진학하여 우정을 이어가는데 어느 날 마키무라 쇼코라는 여학생이 손목을 그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쇼코는 일기를 써왔기 때문에 자살한 이유도 적혀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지만 일기는 며칠 전에서 멈춰 있었고, 이렇다할 고민도 적혀 있지 않았다. 가장 괴로워한 것은 쇼코의 남자친구 도도 마사히코였다. 

검도부 소속인 가나이 나미카가 쇼코가 자살한 날 그녀의 방 문을 두드렸을 때 인기척이 없었고 잠겨있었다는 진술에 따라 사건은 자살로 종결 처리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옆 방에 사는 학생이 그 직전 쇼코의 방 문을 열었을 때 잠겨있지 않았다는 진술이 추가 확보되고, 방바닥에 흘린 피를 닦아낸 흔적이 있다는 경찰 감식 결과도 나와 사건은 타살로 초점이 맞추어진다.

한편 검도시합 결승전에서 석연치 않게 패배한 나미카는 쇼코가 자살한 이후 검도 연습도 하지 않고 친구들과도 소원하게 지낸다. 은사인 미나미사와 마사코의 집에 모여 설월화 게임(설월화가 적혀 있는 카드를 골라 차나 다과를 마시는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그날 나미카가 차를 마신 후 쓰러진다. 그녀는 청산가리에 중독되어 사망한 것이었다.

설월화 게임은 누가 차를 마시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미카가 쇼코를 살해한 후 죄책감에 자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 하지만 쇼코의 방에서 비소가 든 화장품 병이 발견되고, 설월화 게임 카드가 모교에서 도난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나미카 역시 타살된 것이 분명했다.

 

1986년도에 발표된 작품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두번째 작품이자 가가 형사 시리즈의 출발이다. 부제는 <雪月花 살인게임>이다. 1985년에 발표된 공식 데뷔작 <방과 후>와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보인다. 가가 교이치로는 어머니가 집을 나간 이유가 아버지가 경찰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사토코라는 여성에게 고백을 하면서 가가는 경찰의 꿈을 접고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방과 후>의 수학 교사 마에시마가 살인 사건의 범인이 학생들이었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너희들에게 이제 가르칠 것은 없어'라고 말하며 교사를 그만두는데, 가가 교이치로가 교사를 그만두고 형사가 되는 과정이 <방과 후>에서 설명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방과 후>와 <졸업>은 모두 인간의 냉혹한 측면이 가감 없이 그려진다. <방과 후>에서는 자신의 수치스러운 장면을 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계획 살인을 저지르는 고등학생이 등장하고, <졸업>에서는 출세를 위해 자살에 실패한 여자친구의 손목을 세면대에 다시 집어 넣는 비정한 남자친구가 등장한다. 교사와 경찰이라는 두 개의 직업이 대비되는 점이 흥미로운데, 교사가 '가르침'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는 직업이라면 '경찰'은 이미 벌어진 사건을 파헤쳐 사후적으로 바로잡는 직업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교사라는 직업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비정한 인간 본성'에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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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에서 범인은 도도 마사히코이다. 쇼코가 여름 여행에서 남자들과 문란한 성관계를 가진 후 성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도도 마사히코에게 고백한다. 도도는 그녀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처럼 행동한 직후, 만약 쇼코가 성병에 걸렸다면 자신과 사귀었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말한다. 이에 절망한 쇼코가 손목을 그어 자살하는데 이는 미수에 그친다. 도도 마사히코가 쇼코의 방으로 갔을 때 그녀는 아직 살아있었다. 하지만 향후 자신의 출세에 지장이 있을 것을 우려한 도도는 쇼코의 손을 다시 세면대에 집어넣어 그녀가 죽도록 방치한다. 방에 침입한 방법은 형상기억합금으로 문고리를 변경해 놓은 덕분이었다.

한편, 나미카는 검도 시합 결승 때 자신이 약물에 중독되어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범인은 뜻밖에도 고등학교때부터 친하게 지낸 와코와 하나에였다. 와코는 형이 운동권이었기 때문에 변변한 직장에 취직하기가 어려웠는데 마침 나미카의 결승 상대가 미시마 그룹 총수의 딸이었다. 하나에는 남자친구의 취직 자리를 얻기 위해 고등학교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나미카의 스포츠드링크에 약을 탔던 것이다.

나미카는 도도가 쇼코의 사망과 관련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도도를 협박해 와코나 하나에를 비소에 중독시켜 테니스대회에서 자신이 맛보았던 절망감을 똑같이 맛보게 하기로 결심한다. 설월화 카드를 훔쳐내 도도와 짜고 그들을 비소 중독 시키려 하지만 도도는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아 나미카를 청산가리에 중독시켜 사망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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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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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에서 약을 받아 먹으며 매일 구타 당하던 시봉과 '나'. 처음에 약을 받아 먹었을 때는 매스껍고 어지러웠지만 이제는 약을 먹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불편하다. 자신들을 '시설의 기둥'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양말을 포장하고, 반장이기 때문에 다른 환자들을 대신해 사회복지사에게 사과하는 이들은 딱히 자신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저 때리면 맞고, 약을 받아 먹고, 사과를 대신할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노숙자 아저씨가 자신은 억울하게 시설에 끌려왔다며 매일 같이 종이 쪽지를 돌맹이에 밥풀로 붙여 바깥에 던져댄 덕분에 한달 뒤 경찰이 들이닥쳐 원장을 비롯한 시설 직원들이 잡혀간다. 졸지에 사회로 내팽개쳐진 둘은 딱히 갈데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시봉의 집으로 간다.

시봉의 집에는 몸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는 시봉의 여동생과, 여동생에게 빌붙어 사는 경마광 안경 쓴 남자가 살고 있었다. 무언가 돈벌이를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안경 쓴 남자' 말을 옳다고 여긴 시봉과 '나'는 대신 사과해주는 일을 하기로 한다.

사과를 대신해주고, 만약 사과할 일이 없다면 죄를 짓게라도 만들어 사과할 상황을 만들던 이들은 '대신 사과하려면 대신 죽을 수도 있느냐'는 사과 대상의 한 마디에 잠시 지체된다. 하지만 '안경 쓴 남자'가 자기들 대신 이미 사과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안 이들은 누군가 죽어야 계약 이행이라는 단순 논리에 의거해 '안경 쓴 남자'를 목메달아 죽이고 만다.

잡혀갔던 사회복지사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나 과거 시설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에 대한 비밀을 지키기 위해 시봉과 '나'를 납치한다. 원장이 남긴 일기장을 회수해 오라는 그들의 말에 '나'만 풀려난다. 되돌아가지 않으면 시봉이 죽을 걸 알면서도 '나'는 시봉에게 죄를 짓기로 마음 먹고 자살을 시도한 시봉의 여동생을 찾아 병원으로 간다. 병원비를 내지 않고 야반도주한 둘은 집을 향해 걷는다. 그 길이 집을 향한 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가 창의적인 소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매력을 가졌던 이유는 정신병원에 대한 충실한 조사(혹은 경험)과 소설적 형상화 때문이었다. <사과는 잘해요>는 매우 조악한 소설이다. 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연상시키는 초반 분위기에 푸코의 <감시와 처벌>, 그리고 카프카의 <심판>을 적당히 버무린 이 소설은 모든 것이 비평의 용이함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기계적인 소설이며, 소설적 형상화의 수준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약을 통해 순응을 내면화시키는 점, 의사 가운과 군화라는 뻔한 상징, 폭력의 명분 찾기용 사과 행위, 전도된 죄지음과 사과 등등 새로울 것이 전혀 없다. '안경 쓴 남자'를 목메다는 섬뜩한 행위나, 시봉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내버려두고 도망치지만 아무런 죄의식도 없는 점 등은 어떤 알레고리로 읽기에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 놀랍게도 작가는 문예창작과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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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아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3
기 드 모파상 지음, 송덕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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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 군인 조르주 뒤루아는 수중에 가진 돈이 3프랑 40상팀 밖에 없는 빈털터리로 끼니를 거르기가 일쑤이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우연히 알제리에서 함께 복무했던 친구 포레스티에를 만난다. 그는 불과 3년만에 신수가 훤해졌는데 자신이 <라비 프랑세즈> 신문사 정치부장으로 높은 연봉을 받고 있다면서, 생각이 있다면 조르주에게 신문사 일을 소개시켜줄 수 있다고 말했다. 뒤루아는 하늘이 내린 기회라 생각하여 선뜻 승락한다.

다음 날 포레스티에를 찾아간 뒤루아는 사장 왈테르를 소개 받고 그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 왈테르는 뒤루아에게 알제리에서의 경험을 연작 기사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즉시 일에 착수한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경험을 글로 옮기려 하니 막연하기만 할 뿐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뒤루아는 어쩔 수 없이 친구 포레스티에를 찾아가 기사쓰는 법을 배우기로 결심한다.

친구집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하니 친구는 자신이 경황이 없어 도와줄 수 없으니 아내 마들렌에게 기사 쓰는 방법을 배우라고 한다. 마들렌은 포레스티에가 말하는 과거 이야기를 적당히 각색하여 기사를 써주었는데 그녀는 매우 재기발랄한 필치를 자랑했다. 포레스티에 역시 아내 마들렌의 도움으로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첫 번째 기사가 사장 왈테르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뒤루아는 다음 회에 착수했지만 자신이 다음 이야기를 끌어나갈 수 있는 역량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 다시 마들렌의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친구 역시 이제는 자신을 부하 직원으로 대하며 거리를 두었기에 기사는 흐지부지되고 만다. 

그렇다고 뒤루아에게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포레스티에의 집에 드나드는 부유한 드 마렐 부인이 뒤루아에게 반해 정부가 된 것이다. 드 마렐 부인의 딸이 뒤루아에게 '벨아미(Bel-Ami, 미남 친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뒤루아는 이 별명이 썩 맘에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귀부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뒤루아의 야망은 드 마렐 부인으로 충족되지 않았다. 자신의 빼어난 외모를 잘 이용한다면 더 높은 지위로 상승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생각된 뒤루아는 포레스티에의 부인 마들렌을 유혹하기로 결심한다. 마침 포레스티에가 앓던 폐병이 악화되자 뒤루아는 대담하게 마들렌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포레스티에가 죽자 마들렌을 아내로 맞는다.

이제 뒤루아는 포레스티에의 아내뿐 아니라 그가 살던 집, 그리고 정치부장이라는 직위까지 물려 받는다. 마들렌은 결혼 즉시 귀족 행세를 하기 위해 뒤루아의 이름을 나누어 뒤 루아 캉텔이라는 귀족처럼 들리는 이름으로 변경하는 꾀를 낸다. 또 수완을 발휘에 후에 장관이 되는 라로슈 마티외를 비롯한 정계의 유력 인사들과 교분을 맺고 뒤루아의 신문 기사 재료를 모은다. 뒤루아는 그녀 덕분에 신문사 내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게 되었고, 마들렌과 수상쩍은 관계였던 보드렉 백작이 죽으면서 남겨준 유산 100만 프랑 중 50만 프랑을 나눠 갖게 되어 상당한 재산도 얻게 된다.

 

하지만 뒤루아의 욕심은 만족을 몰랐기에 왈테르 부인을 정복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녀는 정숙한 여자였고 추문에 휩싸인 적도 없었지만 뒤루아의 집요한 구애에 결국 무녀져 내리고 만다. 그녀는 뒤늦게 알게 된 욕정에 눈이 멀어 맹목적으로 뒤루아에게 달려들어 서투룬 애정 행각에 온 몸을 바친다. 뒤루아는 처음엔 그녀를 정복하기 위해 애썼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집착하자 싫증이 나고 말아 어떻게 하면 떼어낼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 즈음 왈테르와 라로슈 마티외 등이 아프리카 침공 계획을 비밀리에 붙인 채 전쟁 공채를 사들여 큰 이득을 취한 사건이 일어난다. 수천만 프랑을 손에 거머쥔 왈테르를 보면서 뒤루아는 자신이 진작 왈테르의 둘째 딸 쉬잔을 취했더라면 큰 이득을 얻었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친다.

자신이 목적하는 바가 명확해지자 그는 즉시 경찰을 섭외한다. 진즉부터 정부와 놀아나던 마들렌을 미행하여 불륜 현장을 덮치기 위해서였다. 마들렌과 라로슈 마티외의 불륜 현장을 잡아낸 뒤루아는 즉시 그녀와 이혼하고 쉬잔에게 구애하여 그녀를 꼬드겨내는데 성공한다.

그녀와 결혼하는 날, 왈테르 부인은 질투와 배신으로 죽을 듯한 얼굴이었고 드 마렐 부인은 향후 불륜을 암시하는 손짓을 뒤루아에게 건낸다. 물론 뒤루아는 이에 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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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프랑스 소설의 주된 경향은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였다. 스탕달과 발자크가 연 사실주의 소설의 시대가 플로베르에 이르러 정점에 도달하고 에밀 졸라가 자연주의 문학을 탄생시켰다. 모파상은 플로베르에게 배워 감성을 억제하고 대상을 치밀하게 연구한 자연주의 작가로 분류된다.

1880년 에밀 졸라의 주도 하에 자연주의 작가들의 작품집 <메당의 저녁>이 출간되는데 모파상은 이 작품집에 <비곗덩어리>를 발표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후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1884년 여름부터 1885년 2월까지 씌여진 이 책은 잔혹한 인간성을 개연성 있게 그려낸 것으로 평가된다. "나는 내 책이 말하도록 내버려둘 뿐이다."라는 모파상의 말은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개입을 삼가고 사실적인 묘사로서 독자가 소설을 판단하도록 한다는 작품관이 담겨져 있다.

소설은 1880년에서 1885년 사이에 프랑스가 국내 경제 부양을 위해 식민지 확장 정책을 쓰던 때가 배경이 되고, 자본주의적 가치가 사회 전반을 압도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한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뒤루아는 이러한 시대상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전형적 인물이다.끼니를 거를 지경이었던 뒤루아가 기존 가치 질서를 가차없이 부정하고 신과 도덕을 짓밟고 출세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소설에서 유일한 쉼표는 '죽음에 대한 공포' 뿐이다.

뒤루아는 늙은 시인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의도하지 않은 결투에 휘말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때, 그리고 친구 포레스티에가 죽었을 때 문득 '죽음'이 상기시키는 인간의 유한성에 공포심을 느낀다. 하지만 그럴수록 뒤루아는 욕망에 몸을 내맡김으로서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자 한다. 결국 뒤루아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룬다. 모파상은 이에 대한 평가을 온전히 독자에게 맡겨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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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비뚤어진 집 -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08 -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사 크리스티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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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스미나르 출신의 그리스인이며 영국으로 이민 와 자수성가한 에리스티드 레오니데스가 사망한다. 사인은 안약으로 쓰이는 에제린 중독. 누군가 에리스티드가 평소 주사하는 인슐린과 바꿔치기한 것이다. 찰스는 자신의 애인 소피아의 할아버지가 사망하자 사건 해결에 뛰어든다.

 

첫번째 용의자로는 에리스티드의 젊은 새부인과 가정교사가 지목된다.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는 증언에 따른 것이다. 게다가 둘 사이에 오고 간 연애편지에는 살인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문구도 적혀 있다.

다음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에리스티드의 큰 아들이다. 그는 최근 아버지가 물려준 식당 체인점을 파산 직전에 이르도록 방만하게 경영했고, 아내와 함께 해외로 떠날 준비도 마쳤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큰아들의 아내 역시 남편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보여 시아버지에게 남편을 빼앗겼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듯 보여 수상했다.

또한,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이 그동안 큰아들에게 집중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사라진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킨다. 자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기로 했던 유산을 손녀인 소피아에게 모두 준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소피아 역시 의심 받는 상황이다.

 

한편, 탐정놀이를 하던 어린 손녀 조세핀이 크게 다친다. 그녀는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범인을 알고 있다는 암시를 끊임없이 하던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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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사 크리스티 자신이 뽑은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작품이다.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

 

o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The Murder of Roger Ackroyd, 1926)

o 화요일 클럽의 살인(The Thirteen Problems(영), The Tuesday Club Murders(미), 1932)

o 오리엔트 특급 살인(Murder on the Orient Express(영), Murder in the Calais Coach(미), 1934)

o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Ten Little Niggers(영), And Then There Were None, Ten Little Indians(미), 1939)

o 움직이는 손가락(The Moving Finger, 1942)

o 0시를 향하여(Towards Zero, 1944)

o 비뚤어진 집(Crooked House, 1949)

o 예고살인(A Murder is Announced, 1950)

o 누명(Ordeal by Innocence, 1958)

 

주의 깊게 읽으면 범인 유추는 비교적 쉽다. 찰스의 아버지가 어린 아이의 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과, 문 위에 돌을 올려놓아 부비트랩을 만든 장면에서 의자에 발자국이 찍힌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대목이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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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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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원으로 일하다가 직장을 그만 두고 편지여행을 떠난 '나'의 기록이다. 당뇨로 시력을 잃은, 할아버지의 안내견 와조가 함께 하는 이 여행은 이제 3년에 접어 들고 있다. 

'나'는 원래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발명을 위해 물리교사를 그만두고 장난감 가게를 차린 아버지와 수학교사인 어머니, 전국 1등을 놓치지 않던 형과, 여러가지 재주가 많으면서도 외모에 컴플렉스를 갖고 있는 여동생이 '나'의 가족이다. 어느 날부터 '나'는 집을 견딜 수 없었기에 집배원 일을 그만 두고 여행을 떠난 것이다. 이 여행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주소를 물어보고, 주소를 가르쳐준 사람에게는 번호를 붙이는 것이다. 번호로 기억된 그들에게 '나'는 편지를 쓴다. 집으로 답장이 오는 날, 이 여행은 끝이 날 것이지만 나에게 '아무도 편지하지 않는'다.

 

어느 날 전철에서 책을 파는 751과 동행하게 된다. 751은 소설가였고, 자기 책을 팔았다. 얼핏 칠칠치 못해 보이는 751과 '나'는 사소한 일들을 가지고 틱틱 댄다. 하지만 751이 기본적으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기에 여행은 한동안 지속된다. 남녀간에 일어날 법한 애정의 감정을 미묘하게 넘기지 않으며 함께 하는 동안, '나'는 헤어진 옛 애인을 만나기도 하고 고시원 화재를 겪기도 한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며 사랑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기도 한다.

 

와조가 여행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제서야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지로 가던 차가 전복되어 '나'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죽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751로부터 편지가 오고, 옆집 아주머니가 골판지 상자 하나 가득 편지를 담아 온다. 집배원에게 부탁해 '내'가 없는 동안 편지를 자기 집으로 배달되도록 했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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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에 다닌지 10년이 되었지만 나 역시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통상우편은 52억통을 정점으로 매 년 몇 억통씩 줄어들고 있다. 통수만 보면 여전히 많아 보이지만 그 중에 일반적인 의미의 편지는 1%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선거나, 카드회사의 대량 정보 유출 사과문이나, 공과금 고지서 등이 대부분이다.

 

편지를 쓴다는 행위는 욕망을 발현이다.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하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 그 사람과의 관계 변화를 도모하는 행위다. 관계 변화를 도모하는 방식이 고전적인 손편지에서 이메일이나 SNS, 카카오톡 등 실시간 매체로 바뀌면서 우리의 욕망에 대한 성찰의 시간도 줄어든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소설엔 깜짝 반전이 있지만, 반전에 소설적 구성을 기대고 있지 않아 품격을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다.

집배원 채용에 관한 부분은 발로 뛰어 알아본 흔적이 역력하다. 대무사역이니 상시위탁이니 하는 말은 일반인들이 모르는 말이다. 통상우편의 배달 기한에 대해서는 약간 착오가 있는 것 같다. 편지를 보내며 '이틀 안에 답장이 도착할 수 있게 해달라'는 문구가 있는데 일반우편은 D+3일이 배달 기한이다. 그러니 이틀 안에 답장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내'가 전직 집배원으로 설정되어 있어 어색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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