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o 기다리는 사람들

사메시마 고이치는 어느날 회장의 집에 초대를 받는다. 회장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한때는 문학청년을 꿈꾸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매년 연휴에 직원 한 명을 초대하는데 이번에는 고이치가 낙점된 것이다.

그곳에 가니 회장 외에도 잇시키, 기모시다, 미즈코시 세 명이 더 있는데 이들 모두는 광적인 미스터리 팬이다. 이들은 10년째 한 권의 책을 찾고 있다고 한다. 책의 이름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 원작자가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 않으며 200부만을 출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작자는 이 책을 준 사람들에게 한 가지 단서를 붙이고 책을 주었는데, 책을 절대로 내돌려서는 안되고 누군가에게 빌려주더라도 단 하룻밤에 한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책들이 회수되기 시작하여 지금 돌아다니는 책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만이 가능하다.

회장을 비롯한 네 명은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되었고 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회장의 집을 설계한 사람은 아쿠쓰 히로오라는 사람인데 그는 활자중독증으로 자기 집의 20개의 서고를 책으로 꽉 채워 놓았다. 그가 죽기 전에 회장에게 책을 집 어딘가에 숨겨 두었고 그 단서는 '석류 열매' 라는 다잉메시지를 남겼다. 그래서 회장은 아쿠쓰 히로오의 집 전체를 이축한 뒤 매년 직원을 초대하여 책을 찾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고이치는 석류 열매를 단서로 여러 각도에서 책이 숨겨져 있을 만한 곳을 추리한 뒤 마침내 이축된 집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또 책을 읽는 족족 방에다 던져두었다던 회장의 말과 달리 순서대로 책이 방안에 있지 않은 것을 보고 누군가 읽었던 책이 아니라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이 없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많은 양의 책을 한꺼번에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추리를 내놓는다.

하지만 집은 잠함공법이라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원래부터 지면보다 낮게 건축되었고, 책이 놓인 순서가 다른 것은 누수로 인해 책을 옮긴 적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회장은 고이치의 추리가 틀렸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사실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란 책의 초판본 스물아홉권을 수집한 상태고, 그 책의 훌륭함을 알리기 위한 장난을 친 것이라고 말하며 책들이 꽂힌 장식장을 보여준다.

자신의 추리가 틀렸다는 것에 낙심한 고이치가 돌아가자 네 명은 고이치가 책 내용을 보자고 하지 않은데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들이 보여준 책은 겉표지만 있는 가짜 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넷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 즉 실재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쓰게 될 책을 쓰기 위해 회의를 시작한다.

 

o 이즈모 야상곡

다카코와 아카네(朱音)는 회사는 다르지만 편집 일을 하고 있다. 어느날 다카코가 아카네에게 이즈모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한다. 다카코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작가가 이즈모에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는 말에 아카네는 제안을 수락한다.

이즈모로 가는 밤 열차의 침대칸에서 다카코는 아카네에게 자신의 조사결과와 추리를 이야기 한다. 

다카코는 소설을 국어교사였던 자기 아버지에게 빌려서 읽었는데, 아버지 사후에 소설 역시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한번 읽고 싶다는 마음과, 편집자로서 작가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는 마음에 아버지가 몸담았던 동인지를 뒤져가며 작가를 추측했는데, 가능성 있는 인물을 현재 작가로 활동중인 사에키 시에이와 모로즈미 미쓰오, 그리고 평론가로 활동중인 사이토 겐이치로 좁힌다. 공동집필의 의혹도 있었으나 4부작의 소설에서 석류에 관해 일관된 분위기가 나오는 것을 보아 단독집필로 가닥을 잡는다. 계속되는 추리에서 다카코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왼손잡이인 것을 알아차리게 되고 작가 역시 왼손잡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작품의 불완전한 면 때문에 세 명의 작가는 결국 제외되지만 그들에게서 강하게 영향을 받은 누군가가 썼을 거라는 추리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작가와 작가의 가족, 그리고 주변 인물들 중 왼손잡이는 없었기 때문에 왼손잡이설을 포기할 무렵 우연히 작가를 발견하게 된다.

단서는 술병에 달린 조그마한 팸플릿에 적힌 문구였다. 그 문구는 모로즈미 미쓰오가 쓴 글이었는데 내용은 자신의 필명이 두 딸이 태어난 달의 이름을 이어 붙인 미나즈키 야요이(水無月 弥生, 6월과 3월)라는 것과 딸이 왼손잡이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혼을 하였기 때문에 딸들이 왼손잡이인 사실이 공식적으로는 알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야요이(弥生)라는 이름의 딸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쓴 것이 아닐까 아카네는 추측한다. 결국 이즈모에 도착하여 야요이의 집을 찾아가지만 그곳은 이미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폐가이다.

그리고 허탈해하는 다카코의 앞에서 아카네가 담배를 피워 무는데 그 손이 왼손이다. 그리고 차례로 떠오르는 단서들. 아카네의 이름은 '붉다'는 뜻이다. 그리고 폐가에 있는 가면이 아카네의 물잔에도 그려져 있다.  아카네의 한자는 다르게 읽으면 '주네', 로마자로 소리나는대로 표기하면 JUNE, 즉 6월이다.

무언가 실상을 알아가고 있는 듯한 다카코에게 아카네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서로를 미워하며 폐쇄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매가 있었다. 어느날 유명한 작가가 자매에게 편지를 보내온다.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둘에게 책읽기와 글쓰기를 권하고 둘은 아버지를 본보기로 삼아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들은 매일 치료요법으로 문장을 조금씩 써나갔고 긴 세월을 들여 완성한 소설을 아버지에게 보낸다. 그리고 제본된 책이 되돌아온다.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이고도 수치스러운 기록인 소설이 출판된 것이 너무 부끄러웠고 고민 끝에 아버지에게 그 책을 회수해 달라고 부탁한다. 황급히 책들을 회수했지만 책의 일부는 이미 세상에 퍼져버린 뒤였다.

 

o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

11월도 끝나가는 어느 아침 인구 15만이 안 되는 도시의 성터 공원 낭떠러지 밑에 소녀 두 명이 포개어지듯 죽은 채로 발견된다. 두 사람은 고교 3학년의 시노다 미사오와 2학년인 하야시 쇼코로 밝혀진다.

쇼코의 친구 마키코는 낭떠러지에서 쇼코가 미사오가 쇼코를 질투하여 살해했다고 생각한다. 그때 게이스케라는 소년이 그곳에 나타난다. 게이스케는 쇼코야 말로 살인범이라고 마키코에게 말한다.

마키코는 증거가 있다면서 편지 얘기를 한다. 그 편지는 봉투 안에 다시 봉투가 들어있을 정도로 용의주도했는데 편지에는 잔인한 내용이 가득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게이스케는 편지에 봉투가 또 들어있는 이유는 쇼코가 잔인한 내용의 편지를 미사오에게 보냈던 것이고,그것을 읽지 않은채 미사오가 쇼코에게 봉투째 되돌려보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노가미 나오코는 미사오의 과외선생으로 장래 편집자가 될 꿈을 꾸고 있다. 그녀는 어느날 미사오로부터 한권의 노트를 받는데 일기 형식의 그 노트에는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 노트에는 미사오가 어느날 쇼코가 자신의 이복동생임을 알게 되고 서로 만나게 되었음이 적혀있다. 사이가 좋아진 두 자매는 어느날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그 여행 직후 공백이 있고, 쇼코가 미사오에게 잔인한 편지를 보내어 왔음이 적혀있다.

나오코는 게이스케와 함께 둘이 여행했던 곳을 방문하면 실마리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함께 니가타 현을 방문한다. 자매가 여행한 곳은 아버지의 산소였고, 그곳에서 쇼코는 아버지가 무시무시한 살인범임을 알게 된다. 미사오는 이미 아버지가 살인범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쇼코는 새로 알게 된 사실에 충격을 받고 미사오를 미워한다. 나오코와 게이스케는 결벽증적인 성격의 쇼코로서는 살인범이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라 미사오만의 아버지라고 말하며 현실에서 도피하려 했고, 결국 미사오만 죽으면 이 사실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절벽으로 미사오를 불러 살해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미사오의 집을 방문한 나오코와 게이스케는 쇼코가 미사오의 팔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다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어쩌면 미사오는 쇼코를 이용하여 자살하려 한 것이고 쇼코 역시 한 순간의 충동으로 미사오를 밀었지만 자매에 대한 정 때문에 손을 놓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나오코는 언젠가 미사오가 쓰고 싶다는 소설을 자신이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 소설의 제목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다.

 

o 회전목마

나는 언젠가 로렌스 더렐의 <알렉산드리아 4중주>와 같은 역작을 쓰리라 다짐했었다. 그 결과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쓰려고 한다. 기획방향은 1부 '기다리는 사람들' 에서는 소설이 실제로는 없다는 내용으로, 2부 '이즈모 야상곡' 에서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3부 '무지개와 구름과 새' 에서는 앞으로 쓸 것이라는 내용이다. 4부는 '회전목마'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다. 

또 미우치 스즈에의 만화 <성 엘리스 제국>에 무척 매료되었었는데 여왕을 정점으로 하는 학원 제국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1회분의 흡입력을 이어가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연재가 중단된 것이 아쉽다고 생각한다.

나는 4부작의 제1부 제목을 듀크 엘링턴의 명곡을 따서 <흑과 다의 환상>이라고 명명려 한다.

 

★ 액자 속의 얘기

2월의 마지막 날 미즈노 리세는 '파란 언덕'에 있는 학교로 간다. 그곳은 하나의 제국이다. 학교에서 누군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보니 한 소년이 나무 뒤에 숨듯이 서 있다. 검고 긴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소년이다. 봉제 인형의 온몸에 시침 핀을 꽂아 놓은 섬뜩한 교감의 안내를 받아 학교를 안내 받은 리세는 '패밀리'를 만난다. '패밀리'는 각 학년을 모아 놓은 학생 그룹이다. '패밀리'의 일원인 레이지는 리세가 2월의 마지막 날에 왔다는 것에 불길에 한다. 왜냐하면 그곳은 3월에만 학생을 받으며 다른 달에 온 학생은 학교를 파멸시킬 거라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레이지는 이 학교에서는 졸업하는 사람이 없고 부모들은 그들을 학교에 영원히 감금시켜 놓으려 하고 있으며 학교의 취지에 어긋난 사고를 갖게 되면 어느틈에 사라진다고 말한다. 어느날 리세는 얼핏 울타리 부근에서 시체를 보지만 시체가 곧 사라지고, 분수가에서는 한 여자애가 살해당해 분수가 온통 피로 물든 것을 발견하지만 역시 잠시 후에 그곳을 누군가 말끔히 치운 것을 발견한다. 

얼마간 시간히 흐른 아침, 리세가 일어나 식당에 가보니 학생들이 죽어있고, 누군가가 리세 때문에 학교에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자 아이들은 리세를 죽이려 한다. 레이지의 도움으로 그곳을 벗어나지만 학교는 불에 타고 리세는 자신의 방에 있던 빨간색 책을 가지러 가야 한다고 되돌아간다. 그리고 검고 긴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소년을 다시 만난다. 그때 나타난 유리는 소년의 이름은 레이코로 여자이면서 남자처럼 자라났고 리세와 유리가 지내던 방에는 레이코가 기록한 빨간 일기장이 있었다고 말한다. 레이코는 유리를 찔러 죽이고 리세와 레이지는 학교를 빠져나간다.

 

일단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차원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으로 구분하여야 한다.

먼저 독자인 우리가 읽고 온다 리쿠가 쓴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있다. '기다리는 사람들', '이즈모 야상곡',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 '회전목마'로 이루어져 있다.

다음으로 책 속에 나오는 수수께끼의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있다. '흑과 다의 환상', '겨울 호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새피리'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4부 '회전목마'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있다. 4부 에서는 작가인 온다 리쿠가 가상의 인물, 그러나 곧 작가 자신을 등장시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아직 쓰여지지 않은 소설로 상정하고 있다. 책 속의 책인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내용에 대해서까지 고민하는데다가 집필단계의 갖가지 이미지를 끼워넣었으니 어리둥절해지고, 이미 엄연히 완결된 소설로 읽었던 앞의 세 장을 4장에서는 작가가 아직 쓰지 않았다고 하니 의도된 혼동은 한층 더해진다.  또 4부에만 나오는 액자 속 이야기까지 가세하여 그야말로 4부는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 든다.

 

<유지니아>에서도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은 할 수 있지만 범인을 밝히지는 않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그려냈는데,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서는 교묘한 구성으로 독자를 혼란하게 한다. 또 '이즈모 야상곡'에서는 작가가 아카네라고 말하는 듯 하다가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에서는 나오코라고 밝힌다. 아카네와 나오코가 동일인물이라고 단정할 근거로 편집자임을 들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동일인이라고 확신할 수만도 없다.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과의 연관성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팬쇼와 피터 스틸먼이 동일인인지 아닌지 모호한 부분 말이다. '유리의 도시'에 등장하는 빨간 공책 역시 그렇다.

어쨌든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각 부는 다른 작품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는데 <흑과 다의 환상>,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황혼의 백합의 뼈>등이 그것이다.

 

여러 층위를 배열하고 갖가지 상징을 숨겨놓아 구성을 공들인 소설임에는 틀림 없다. 하지만 감탄만 하게 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봤다.

먼저 책 속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 때문이다. 작가는 수수께끼의 책이며 읽는 이를 끌어당기는 힘이 놀랍다며 책에 대해 설명하지만 그 내용에 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내용에 대해 얘기하다보니 각 장에서 어떤 어떤 내용이 쓰여있는지 대충 정보를 얻게 된다. 소재에 불과할 때도 있고 내용 일부일 때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말한 그런 내용의 어디가 어떻게 매력적인가 하는 부분에 있어서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는 끊임없이 그 책이 한계가 많다고 부연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 우리가 읽은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 자체에 있다. 여러 장치들로 구성을 공들였지만 각 장의 내용을 따로 생각해보면 별 내용이 없다. 특히나 마지막 학원 이야기는 유치하기까지 하다. <성 앨리스 제국>에 대한 아쉬움에 자신만의 액자 속 이야기를 끼워 넣은 것일까. <성 앨리스 제국>의 주인공 괴도 제로가 카오루라는 여성으로 변장했지만 실제로는 남자인 것처럼, 레이코가 남자로 자랐지만 사실은 여자라는 부분은 그런 의도인지 어쩐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미스터리 작가임을 자인하면서 미스터리 자체에는 충실하지 못하다. 하지만, 순수문학을 하고 싶은 미스터리 작가의 시도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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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주인공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일정한 직업 없이 식당을 하는 아버지에 기대어 최소한의 생활비만 벌고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는다. 책을 읽어서 무엇이 되겠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독서 자체가 목적이다.

어느날 뒤라스의 <연인>을 사기 위해 한 남자를 만나는데, '나'는 그 남자가 읽고 있는 책마저 탐이 난다. '나'는 남자와 책을 거래하기 위해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몇 권의 책들을 거래한다.

한편 '나'의 친구인 유희는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잠만 자면서도 1등만 했던 아이로 영화광이다. 유희는 타고난 머리를 이용하여 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직장도 잘 구하고, 또한 그렇게 구한 직장을 잘도 때려치운다. 마지막으로 직장을 때려치운 유희는 뜻밖에도 소설을 쓰겠다고 한다.

또 다른 친구 채린은 항상 로맨스를 꿈꿔왔으나 '나'나 유희보다 먼저 시집을 갔는데, 착하기만 한 남편이 모든 것을 이해해 주는데도 로맨스를 꿈꾸며 유부남과 바람이 나고 심각한 상태에 빠진다.

바람이 난 채린을 대신해서 비디오가게를 봐주던 '나'는 책을 팔았던 남자와 우연히 조우하고 남자와 채린은 한 가지 계약을 한다. 남자의 집에 있는 수많은 책들을 주는 대신에, 남자를 버리고 떠난 여자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 즉 사귀는 척을 해달라는 것이다. '나'는 책 욕심에 기꺼이 남자를 따라다니며 밥을 얻어먹고 사주는 옷도 입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남자를 떠난 여자에게 복수하기 위한 행동들은 온전히 '나'의 오해였을 뿐이고, 남자의 애인은 이미 죽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된다. 유희는 자살했던 친구 S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으로 과거를 극복하고 싶었고 결국 책을 출판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작품은 채린에 대해서 쓰겠다고 한다. 혹독한 평을 받을 것 같은 소재지만 유희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것임을 알기에 걱정하지 않는다. 채린은 남편과 이혼했지만 다시 남편과 만나 연애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나'와 남자는 <아비정전>에 나오는 새 이야기를 하다가 홍콩에 가기로 하고, 여행을 갔다온 후 남자를 다시 만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듯 사람을 읽는 나에게 '그'는 한번 읽어서 될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오래전 나는 쇼핑몰에 있는 카트를 끌고 서점의 책들을 쓸어 담는 것이 꿈이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러니 읽을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그런 공상을 해본 적이 있으니까. 대학교에 다닐 때 용돈이 올라오면 나는 서점에 갔다. 그리고 오래오래 책을 골랐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책을 골랐다. 돈이 별로 없었고, 동아리방에 굴러다니는 책이나 도서관의 책이 아닌, 내가 소유하게 될 책을 사는 것이니까 함부로 손에 집히는 대로 살 수 없었다. 지금은 돈을 버니까 읽고 싶은 책은 살 수 있다. 어쩌면 그때보다 조금 더 행복해 진 것인지 모르겠다.

 

소설의 출발점 '노동'과 '유희'의 분리이다. 작중에 주인공은 '책을 살 돈, 영화 볼 시간, 영화 티켓을 살 돈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일해야 하는 것이다...직업은 우리 인격의 어떤 부분도 반영하지 않는다. 그런 일을 목숨 걸고 열심히 하는 인간들이 한심하기 그지없다고 늘 생각한다' 라고 말한다.

노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는 식의 사고는 주인공에게 있어 불가해한 무엇이다. 따라서 일을 하는 것은 유희를 위한 희생이다. 따라서 주인공의 독서에 목적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작가는 '노동'은 악이고 '유희'는 선이라는 생각을 가진 것일까. 그것은 확실치 않다. '나'를 먹여 살리는 아버지는 매일 매일 치열한 노동을 하고 있는데 그런 아버지를 바보같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매일 목적 없는 독서를 하는 '나'와 매일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하는 '아버지'를 비교하여 가치판단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각각의 사고방식 차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다운시프트적 발상으로 빠져들 우려가 느껴진다. 유토피아 얘기에서도 어렴풋이 그것이 느껴진다.  

어쨌든 그런 점은 별도로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를 같이 샀는데 잘 한 짓 같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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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의 기사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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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느날 벤치에서 잠이 깬 주인공은 자신이 기억상실증에 걸렸음을 깨닫는다. 골목길에서 기둥서방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던 이시카와 료코라는 아가씨를 도와준 주인공은 그녀와 함께 모토스미요시로 이사하고, 그곳에서 불안하지만 행복한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료코는 주인공에게 이름이 필요할 것 같다며 이시카와 게이스케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녀는 게이스케가 혹시라도 과거의 기억을 찾을까봐 전전긍긍하는데 게이스케에게 아내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료코는 케이크 가게에서 일하고 게이스케는 공장에서 단순 노동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저녁이 되면 찻집에 가서 둘만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게이스케가 어느날 집에서 운전면허증을 찾아내면서 불행이 시작된다. 기억상실 후에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이 새빨간 멜론과 같이 보이는 환시를 체험한 후 게이스케는 거울을 못 보면서 살아왔다. 이제는 자신의 얼굴과 본명(마시코슈지益子秀司)을 알게 된 것이다.

게이스케는 지나다가 본 점성술 간판을 기억해 내고 그곳에서라면 자신의 과거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찾아가 본다. 과거를 알아 낼 수는 없었지만 특이한 성(姓)을 갖고있는 사내와 친구가 된다. 그의 성은 당사자가 밝히기로는 미타라이라고 읽지만 '御手洗' 라는 한자는 읽기에 따라서는 '화장실을 씻다' 정도의 뜻이 된다. (나중에 그의 이름이 기요시, 즉 한자로는 潔로 밝혀져 '화장실을 깨끗히 청소하다'가 된다) 특이한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성격의 미타라이이지만 진솔한 성품에 끌린 게이스케는 그와 친구가 된다.

운전면허증의 주소로 우여곡절 끝에 찾아가본 게이스케는 그곳에 최근에 이사온 아주머니로 부터 주소를 하나 받게 되고 그 주소로 찾아가 본 게이스케는 놀라운 과거를 알게 된다. 아내의 일기를 발견한 게이스케는 아내가 이하라라는 인물에게 걸려들어 갖은 능욕을 당한 후 결국 아이와 함께 살해당했음을 알게 된다. 게이스케는 자신의 기록을 통해 이하라의 동료이자 야쿠자였던 야마우치를 살해하고 이하라 역시 살해하려다가 도리어 함정에 빠져 폭행당했으며 그 결과 기억상실에 걸리게 되었음을 알게 되고 복수심에 이하라를 죽이려는 계획을 준비한다.

 

<이방의 기사>는 시마다 소지가 1979년에 완성한 최초 작품이지만 9년이나 지난 후에 발표 되었다. <점성술 살인사건>의 커다란 성공 뒤에 발표되었는데 작가가 처음 쓴 소설이라 그런지 거칠고 불완전한 면이 많다. 기억상실에 걸린 게이스케에게 료코 일가족이 거짓된 과거를 심은 후 이하라를 대리살해하려는 계획은 당시로서는 무척 참신한 아이디어임에 틀림 없다. 또한 갖가지 장치들도 세심하게 고민한 흔적은 보인다. 그렇지만 실행 상 야기될 수 있는 문제들을 너무 우연에 기대어 해결하는 면이 많다.  또 미타라이가 사건의 이면을 알게 되는 과정도 탐문에 의지한다거나 비약을 통해 접근하고 있어 '추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미타라이와 이시오카가 최초로 만난 작품이고 1988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5위, 독자 선정 '가장 재미있는 미타라이 시리즈' 1위를 차지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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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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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쉰 네살의 르네는 부자들이 모여사는 그르넬가 7번지 아파트의 수위 아줌마이다. 키가 작고 못생긴 르네였지만 소박하고 진솔한 성품의 뤼시앵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둘은 짧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뤼시앵이 암으로 죽은 후 그녀는 수위실에서 톨스토이의 이름을 딴 고양이 레옹을 키우며 고상한 문화생활을 남몰래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녀가 가장 근심하는 일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적 수준을 눈치채는 것이다. 그녀는 보통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수위 이미지'에 걸맞게 자신을 꾸미는데 골몰한다.

한편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열 두살의 팔로마는 또래보다 별나게 똑똑한 아이로 언젠가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있다. 팔로마는 그르넬가에 사는 어른들의 위선을 못 견뎌하고 삶의 부조리를 깨달아버린 이상 더 이상 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느낀다.

어느날 그르넬가에 일본인 오즈 가쿠로씨가 이사온다. 그는 다른 주민들과는 달리 수위인 르네에게도 선입견을 갖지 않고 대하고, 그 이유로 르네가 숨기고자 하는 면을 간파한다. 또한 팔로마와도 친해져 셋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어느날 르네를 가쿠로씨가 집으로 초대하고, 그들은 공통의 관심사로 친숙함을 느끼고 결국 가쿠로씨는 르네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르네에게는 가슴 아픈 과거가 있어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움츠리며 살아왔다. 그녀의 언니는 뛰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가난했기 때문에 농락당한 후 죽었고, 뛰어난 지성을 갖춘 르네는 자신의 사회적 계급을 벗어나려 했다가는 언니와 똑같은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톨스토이를 읽고 모자르트를 들으면서도 그런 사실들을 다른 사람이 눈치 챌 수 없도록 해온 것이다. 이런 사정을 들은 팔로마는 가쿠로에게 르네의 이야기를 하고 르네는 '당신은 당신의 언니가 아니다'라는 말로 사랑을 고백한다.

르네는 자신이 세상 속으로 나아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기대로 행복을 맛본다. 하지만 부랑자 제젠이 어느날 술에 취해 도로로 뛰어들자 그를 구하려다가 차에 치어 죽고 만다. 팔로마는 가쿠로, 르네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다시는' 오지 못할 것임을 깨닫고, 그러한 '다시는' 못 올 행복한 기억 속의 '언제나'를 생각하며 불을 지르고 자살하려 했던 결심을 포기한다.

 

책의 프롤로그는 <마르크스>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팔리에르 씨네 막내가 "마르크스가 내 세계관을 완전히 바꾸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르네는 <독일 이데올로기>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포이어바흐 제11테제를 생각한다.

제11테제가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데 있다" 이지만, 이 소설은 세계를 해석하지도, 변혁하지도 않는다. 마르크스는 단지 르네의 지적 수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소설 속에서 계급이라는 단어가 몇 차례 나오지만 마르크스의 계급은 아니다. 단지 부자는 높은 계급, 가난한 자는 낮은 계급이라는 조잡한 구분법을 사용할 뿐이다. 따라서 마르크스를 인용하면서도 르네가 하는 '노동'이 신성한 것으로 그려지지는 않으며 그저 천한 일로 그려진다.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곧 고급 문화라는 이상한 도식을 소설 전반에 깔아놓고 있다. 그런 이유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이 톨스토이를 읽고 모자르트를 듣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편 일본문화에 대한 작가의 편애를 유감없이 드러내는데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와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호타 유미의 <히카루의 바둑>등을 등장시킨다. 작가가 이들에 열광하고 있는 것을 꼭 말하고 싶었다는 느낌이 든다. 르네와 팔로마의 기호, 생각들이 작가의 생각임을 단숨에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소설적 형상화의 실패이다. 특히나 후설에 대한 장황한 비판이 그렇다. 

팔로마가 천재로 나오는데 어떤 점이 천재인지 역시 모호하다. 팔로마는 작중에서 '조로(早老)'의 느낌을 준다.

 

결국 기껏 프롤로그에서 마르크스를 인용해 놓고도 '돈이 많더라도 예술과 철학을 알지 못하고 이해할 의지가 없다면 그건 제대로 된 삶이 아니고, 가난하더라도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과 지성을 갖추면 훌륭한 삶'이라는 '가진 자의 논리'로 회귀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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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세네카의 기지촌
복거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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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근'이라는 이름을 가진 화자가 초등학교 시절 미군기지 캠프 세네카 주변으로 이사 와서 마흔이 넘어 그곳을 떠날 때까지를 술회하는 내용이다. 화자가 커나감에 따라 마을을 바라보는 어투와 안목이 바뀌는 점이 특이하다.

화자는 '재근'이지만, 소설의 실제 주인공은 화자의 아버지이다. 화자의 아버지는 재주가 많은 인물로 6.25 전쟁 전에는 남로당 활동을 했고 전쟁이 터진 후에는 한동안 인민군 지원 활동을 했다. 국군이 마을로 오자 한동안 부역자로 도피활동을 하였고, 이 와중에 고향에 두고온 부모님과 큰아들이 우익쪽 인물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부역 혐의를 벗기 위해 이번엔 국군 편에서 참전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미군부대에서 일을 한다. 

캠프 세네카가 들어서자 미군이 들어오기 전에 부대 앞에 터를 잡고 집을 지어 약종상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마을은 아무런 행정적 혜택을 받지 못했고 아버지는 마을에 학교와 보건소, 파출소 등이 들어올 수 있도록 애를 쓴다. 이 과정에서 미군 부대가 많은 도움을 주고 초등학교와 고아원은 미군 부대의 장비와 건축자재로 준공이 되어 미군부대장 이름을 세긴 기념비가 건립되기도 한다. 또 아버지는 국회의원과 관(官)의 도움을 받기 위해 여당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생계를 미군이 오로지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미군이 오래도록 주둔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마을이 제 꼴을 갖춰갈 무렵 미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 영향으로 미군은 캠프 세네카를 떠난다. 미군이 떠나자 주민들도 차츰 마을을 떠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돌아가시기 직전 아버지는 과거사를 재근에게 유언하듯 말하고, 화자는 당숙을 찾아간다. 그리고 당숙으로부터 6.25전쟁 당시 좌와 우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들으며 자신이 이해하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역사의 이면을 알게 된다.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두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유추해 볼 수가 있다.

 

하나는 미군부대장의 이름이 쓰여져 있는 공적비 이야기이다. 소설의 말미에 전교조 소속의 초등학교 교사가 초등학교에 세워져 있는 기념비를 뽑아내는 대목이 나온다. 화자가 어린 시절, 마을 사람들은 미군 부대장을 찾아가 초등학교 건립에 도움을 주길 청하고, 부대장은 인도적 차원에서 미군의 물자들을 지원하여 초등학교가 건립된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은 부대장의 이름을 기념비에 세겨 넣고 미군 부대장은 무척 감격한다. 하지만 전교조 소속 교사는 학교가 외국인의 도움을 받아 지어졌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게 되면 자주독립 정신을 배우기는 커녕 사대주의 정신을 배우게 될 것이며 '아, 미국 사람들은 우리를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들이구나'하고 생각할 것이 소름끼친다고 말한다. 화자는 무언가 반박해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입에서 나온 말은 '공적비가 우리 마을 사람들의 것이고 선생님의 것이 아니다'라는 엉뚱한 말이었다.

 

다른 하나는 화자 아버지의 행적과 당숙의 이야기이다. 화자의 아버지는 남로당과 인민군 활동을 했는가 하면 국군 편에서 참전하였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기지촌 부근에서 미군들의 도움을 직간접적으로 얻어 생계를 꾸리고, 여당 활동을 하기까지 한다. 또한 당숙은 우익 활동을 하고 있는데 당숙모는 여맹활동을 한 죄목으로 잡혀들어가 있다.

 

먼저 공적비에서 화자가 발언한 '우리 마을 사람들의 것'과 '선생님의 것' 사이의 차이가 의미심장하다. 화자는 엉뚱한 말을 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엉뚱한 것 만은 아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의 것'이라는 의미 속에는 전쟁 후에 아이들을 키우고 살아가기 위해 미군의 도움을 받은 것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으며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부대 물자와 인력을 내어준 미군부대장에 대한 고마움도 거짓이 아니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의 상황과 생활과 더 나아가서는 마을 사람들의 역사가 담겨있는 것이다.

반면에 '선생님의 것' 은 바로 전교조 교사의 관념 속 개념을 말한다. 전교조 교사가 보기에 미군은 미제국주의의 첨병이며 미제국주의자가 6.25 전쟁의 주된 원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공적비는 나쁜 것이라고 관념속에서 결론 짓는다. 따라서 선생은 공적비를 '그릇된 물건' 치우는 차원에서 버린 것이다. 하지만 화자와 마을사람들에게 있어 공적비는 그들의 삶과 역사가 담겨있기에 '미군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 이상인 것이다.

 

다음으로 아버지와 당숙의 진술 부분이다. 아버지와 당숙의 진술에 따르면 좌익활동도, 우익활동도 시대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했던 측면이 있다. 소설에서는 기지촌 색시들에 대해 '너희들이 기지촌 색시들을 뭐라고 하지만 색시들이 있기 때문에 너희 아내와 딸들이 강간당하지 않고 맘 편이 살 수 있는 것을 왜 모르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엥겔스가 공창제도가 부르주아 가족 제도를 유지시키기 위한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결국 전쟁중 좌우 이념 대립과 그후 정치권의 부정부패 속에서 아버지의 삶의 행적이 일관성 없어 보일지는 몰라도 관념 만으로 옳다 그르다를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94년에 이 소설이 나왔을 때에 한총련 주류들이 대단히 불쾌해 했던 이유는 자명하다.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볼 때 미군부대장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고마움, 미군이 더 머물러 준다면 생활이 생활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진술 등은 대단히 불편했을 것이다. 아버지와 당숙의 진술이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매우 특수한 경우라면 그들의 불편함에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진술이 우리 역사 속에서 오히려 보편적인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

 

복거일의 보수적인 견해(그는 자유 민주주의의 신봉자인 듯 하다)가 내 견해와 다르다는 점은 별도로,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은 그 자체로 고민할 거리를 안겨 준다. 같은 맥락에서 '홍위군 운운'의 이문열과는 또 다른 느낌의 보수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35760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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