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o 기다리는 사람들

사메시마 고이치는 어느날 회장의 집에 초대를 받는다. 회장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한때는 문학청년을 꿈꾸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매년 연휴에 직원 한 명을 초대하는데 이번에는 고이치가 낙점된 것이다.

그곳에 가니 회장 외에도 잇시키, 기모시다, 미즈코시 세 명이 더 있는데 이들 모두는 광적인 미스터리 팬이다. 이들은 10년째 한 권의 책을 찾고 있다고 한다. 책의 이름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 원작자가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 않으며 200부만을 출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작자는 이 책을 준 사람들에게 한 가지 단서를 붙이고 책을 주었는데, 책을 절대로 내돌려서는 안되고 누군가에게 빌려주더라도 단 하룻밤에 한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책들이 회수되기 시작하여 지금 돌아다니는 책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만이 가능하다.

회장을 비롯한 네 명은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되었고 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회장의 집을 설계한 사람은 아쿠쓰 히로오라는 사람인데 그는 활자중독증으로 자기 집의 20개의 서고를 책으로 꽉 채워 놓았다. 그가 죽기 전에 회장에게 책을 집 어딘가에 숨겨 두었고 그 단서는 '석류 열매' 라는 다잉메시지를 남겼다. 그래서 회장은 아쿠쓰 히로오의 집 전체를 이축한 뒤 매년 직원을 초대하여 책을 찾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고이치는 석류 열매를 단서로 여러 각도에서 책이 숨겨져 있을 만한 곳을 추리한 뒤 마침내 이축된 집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또 책을 읽는 족족 방에다 던져두었다던 회장의 말과 달리 순서대로 책이 방안에 있지 않은 것을 보고 누군가 읽었던 책이 아니라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이 없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많은 양의 책을 한꺼번에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추리를 내놓는다.

하지만 집은 잠함공법이라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원래부터 지면보다 낮게 건축되었고, 책이 놓인 순서가 다른 것은 누수로 인해 책을 옮긴 적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회장은 고이치의 추리가 틀렸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사실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란 책의 초판본 스물아홉권을 수집한 상태고, 그 책의 훌륭함을 알리기 위한 장난을 친 것이라고 말하며 책들이 꽂힌 장식장을 보여준다.

자신의 추리가 틀렸다는 것에 낙심한 고이치가 돌아가자 네 명은 고이치가 책 내용을 보자고 하지 않은데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들이 보여준 책은 겉표지만 있는 가짜 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넷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 즉 실재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쓰게 될 책을 쓰기 위해 회의를 시작한다.

 

o 이즈모 야상곡

다카코와 아카네(朱音)는 회사는 다르지만 편집 일을 하고 있다. 어느날 다카코가 아카네에게 이즈모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한다. 다카코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작가가 이즈모에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는 말에 아카네는 제안을 수락한다.

이즈모로 가는 밤 열차의 침대칸에서 다카코는 아카네에게 자신의 조사결과와 추리를 이야기 한다. 

다카코는 소설을 국어교사였던 자기 아버지에게 빌려서 읽었는데, 아버지 사후에 소설 역시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한번 읽고 싶다는 마음과, 편집자로서 작가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는 마음에 아버지가 몸담았던 동인지를 뒤져가며 작가를 추측했는데, 가능성 있는 인물을 현재 작가로 활동중인 사에키 시에이와 모로즈미 미쓰오, 그리고 평론가로 활동중인 사이토 겐이치로 좁힌다. 공동집필의 의혹도 있었으나 4부작의 소설에서 석류에 관해 일관된 분위기가 나오는 것을 보아 단독집필로 가닥을 잡는다. 계속되는 추리에서 다카코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왼손잡이인 것을 알아차리게 되고 작가 역시 왼손잡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작품의 불완전한 면 때문에 세 명의 작가는 결국 제외되지만 그들에게서 강하게 영향을 받은 누군가가 썼을 거라는 추리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작가와 작가의 가족, 그리고 주변 인물들 중 왼손잡이는 없었기 때문에 왼손잡이설을 포기할 무렵 우연히 작가를 발견하게 된다.

단서는 술병에 달린 조그마한 팸플릿에 적힌 문구였다. 그 문구는 모로즈미 미쓰오가 쓴 글이었는데 내용은 자신의 필명이 두 딸이 태어난 달의 이름을 이어 붙인 미나즈키 야요이(水無月 弥生, 6월과 3월)라는 것과 딸이 왼손잡이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혼을 하였기 때문에 딸들이 왼손잡이인 사실이 공식적으로는 알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야요이(弥生)라는 이름의 딸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쓴 것이 아닐까 아카네는 추측한다. 결국 이즈모에 도착하여 야요이의 집을 찾아가지만 그곳은 이미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폐가이다.

그리고 허탈해하는 다카코의 앞에서 아카네가 담배를 피워 무는데 그 손이 왼손이다. 그리고 차례로 떠오르는 단서들. 아카네의 이름은 '붉다'는 뜻이다. 그리고 폐가에 있는 가면이 아카네의 물잔에도 그려져 있다.  아카네의 한자는 다르게 읽으면 '주네', 로마자로 소리나는대로 표기하면 JUNE, 즉 6월이다.

무언가 실상을 알아가고 있는 듯한 다카코에게 아카네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서로를 미워하며 폐쇄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매가 있었다. 어느날 유명한 작가가 자매에게 편지를 보내온다.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둘에게 책읽기와 글쓰기를 권하고 둘은 아버지를 본보기로 삼아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들은 매일 치료요법으로 문장을 조금씩 써나갔고 긴 세월을 들여 완성한 소설을 아버지에게 보낸다. 그리고 제본된 책이 되돌아온다.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이고도 수치스러운 기록인 소설이 출판된 것이 너무 부끄러웠고 고민 끝에 아버지에게 그 책을 회수해 달라고 부탁한다. 황급히 책들을 회수했지만 책의 일부는 이미 세상에 퍼져버린 뒤였다.

 

o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

11월도 끝나가는 어느 아침 인구 15만이 안 되는 도시의 성터 공원 낭떠러지 밑에 소녀 두 명이 포개어지듯 죽은 채로 발견된다. 두 사람은 고교 3학년의 시노다 미사오와 2학년인 하야시 쇼코로 밝혀진다.

쇼코의 친구 마키코는 낭떠러지에서 쇼코가 미사오가 쇼코를 질투하여 살해했다고 생각한다. 그때 게이스케라는 소년이 그곳에 나타난다. 게이스케는 쇼코야 말로 살인범이라고 마키코에게 말한다.

마키코는 증거가 있다면서 편지 얘기를 한다. 그 편지는 봉투 안에 다시 봉투가 들어있을 정도로 용의주도했는데 편지에는 잔인한 내용이 가득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게이스케는 편지에 봉투가 또 들어있는 이유는 쇼코가 잔인한 내용의 편지를 미사오에게 보냈던 것이고,그것을 읽지 않은채 미사오가 쇼코에게 봉투째 되돌려보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노가미 나오코는 미사오의 과외선생으로 장래 편집자가 될 꿈을 꾸고 있다. 그녀는 어느날 미사오로부터 한권의 노트를 받는데 일기 형식의 그 노트에는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 노트에는 미사오가 어느날 쇼코가 자신의 이복동생임을 알게 되고 서로 만나게 되었음이 적혀있다. 사이가 좋아진 두 자매는 어느날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그 여행 직후 공백이 있고, 쇼코가 미사오에게 잔인한 편지를 보내어 왔음이 적혀있다.

나오코는 게이스케와 함께 둘이 여행했던 곳을 방문하면 실마리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함께 니가타 현을 방문한다. 자매가 여행한 곳은 아버지의 산소였고, 그곳에서 쇼코는 아버지가 무시무시한 살인범임을 알게 된다. 미사오는 이미 아버지가 살인범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쇼코는 새로 알게 된 사실에 충격을 받고 미사오를 미워한다. 나오코와 게이스케는 결벽증적인 성격의 쇼코로서는 살인범이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라 미사오만의 아버지라고 말하며 현실에서 도피하려 했고, 결국 미사오만 죽으면 이 사실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절벽으로 미사오를 불러 살해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미사오의 집을 방문한 나오코와 게이스케는 쇼코가 미사오의 팔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다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어쩌면 미사오는 쇼코를 이용하여 자살하려 한 것이고 쇼코 역시 한 순간의 충동으로 미사오를 밀었지만 자매에 대한 정 때문에 손을 놓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나오코는 언젠가 미사오가 쓰고 싶다는 소설을 자신이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 소설의 제목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다.

 

o 회전목마

나는 언젠가 로렌스 더렐의 <알렉산드리아 4중주>와 같은 역작을 쓰리라 다짐했었다. 그 결과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쓰려고 한다. 기획방향은 1부 '기다리는 사람들' 에서는 소설이 실제로는 없다는 내용으로, 2부 '이즈모 야상곡' 에서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3부 '무지개와 구름과 새' 에서는 앞으로 쓸 것이라는 내용이다. 4부는 '회전목마'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다. 

또 미우치 스즈에의 만화 <성 엘리스 제국>에 무척 매료되었었는데 여왕을 정점으로 하는 학원 제국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1회분의 흡입력을 이어가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연재가 중단된 것이 아쉽다고 생각한다.

나는 4부작의 제1부 제목을 듀크 엘링턴의 명곡을 따서 <흑과 다의 환상>이라고 명명려 한다.

 

★ 액자 속의 얘기

2월의 마지막 날 미즈노 리세는 '파란 언덕'에 있는 학교로 간다. 그곳은 하나의 제국이다. 학교에서 누군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보니 한 소년이 나무 뒤에 숨듯이 서 있다. 검고 긴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소년이다. 봉제 인형의 온몸에 시침 핀을 꽂아 놓은 섬뜩한 교감의 안내를 받아 학교를 안내 받은 리세는 '패밀리'를 만난다. '패밀리'는 각 학년을 모아 놓은 학생 그룹이다. '패밀리'의 일원인 레이지는 리세가 2월의 마지막 날에 왔다는 것에 불길에 한다. 왜냐하면 그곳은 3월에만 학생을 받으며 다른 달에 온 학생은 학교를 파멸시킬 거라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레이지는 이 학교에서는 졸업하는 사람이 없고 부모들은 그들을 학교에 영원히 감금시켜 놓으려 하고 있으며 학교의 취지에 어긋난 사고를 갖게 되면 어느틈에 사라진다고 말한다. 어느날 리세는 얼핏 울타리 부근에서 시체를 보지만 시체가 곧 사라지고, 분수가에서는 한 여자애가 살해당해 분수가 온통 피로 물든 것을 발견하지만 역시 잠시 후에 그곳을 누군가 말끔히 치운 것을 발견한다. 

얼마간 시간히 흐른 아침, 리세가 일어나 식당에 가보니 학생들이 죽어있고, 누군가가 리세 때문에 학교에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자 아이들은 리세를 죽이려 한다. 레이지의 도움으로 그곳을 벗어나지만 학교는 불에 타고 리세는 자신의 방에 있던 빨간색 책을 가지러 가야 한다고 되돌아간다. 그리고 검고 긴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소년을 다시 만난다. 그때 나타난 유리는 소년의 이름은 레이코로 여자이면서 남자처럼 자라났고 리세와 유리가 지내던 방에는 레이코가 기록한 빨간 일기장이 있었다고 말한다. 레이코는 유리를 찔러 죽이고 리세와 레이지는 학교를 빠져나간다.

 

일단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차원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으로 구분하여야 한다.

먼저 독자인 우리가 읽고 온다 리쿠가 쓴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있다. '기다리는 사람들', '이즈모 야상곡',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 '회전목마'로 이루어져 있다.

다음으로 책 속에 나오는 수수께끼의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있다. '흑과 다의 환상', '겨울 호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새피리'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4부 '회전목마'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있다. 4부 에서는 작가인 온다 리쿠가 가상의 인물, 그러나 곧 작가 자신을 등장시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아직 쓰여지지 않은 소설로 상정하고 있다. 책 속의 책인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내용에 대해서까지 고민하는데다가 집필단계의 갖가지 이미지를 끼워넣었으니 어리둥절해지고, 이미 엄연히 완결된 소설로 읽었던 앞의 세 장을 4장에서는 작가가 아직 쓰지 않았다고 하니 의도된 혼동은 한층 더해진다.  또 4부에만 나오는 액자 속 이야기까지 가세하여 그야말로 4부는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 든다.

 

<유지니아>에서도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은 할 수 있지만 범인을 밝히지는 않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그려냈는데,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서는 교묘한 구성으로 독자를 혼란하게 한다. 또 '이즈모 야상곡'에서는 작가가 아카네라고 말하는 듯 하다가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에서는 나오코라고 밝힌다. 아카네와 나오코가 동일인물이라고 단정할 근거로 편집자임을 들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동일인이라고 확신할 수만도 없다.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과의 연관성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팬쇼와 피터 스틸먼이 동일인인지 아닌지 모호한 부분 말이다. '유리의 도시'에 등장하는 빨간 공책 역시 그렇다.

어쨌든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각 부는 다른 작품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는데 <흑과 다의 환상>,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황혼의 백합의 뼈>등이 그것이다.

 

여러 층위를 배열하고 갖가지 상징을 숨겨놓아 구성을 공들인 소설임에는 틀림 없다. 하지만 감탄만 하게 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봤다.

먼저 책 속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 때문이다. 작가는 수수께끼의 책이며 읽는 이를 끌어당기는 힘이 놀랍다며 책에 대해 설명하지만 그 내용에 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내용에 대해 얘기하다보니 각 장에서 어떤 어떤 내용이 쓰여있는지 대충 정보를 얻게 된다. 소재에 불과할 때도 있고 내용 일부일 때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말한 그런 내용의 어디가 어떻게 매력적인가 하는 부분에 있어서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는 끊임없이 그 책이 한계가 많다고 부연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 우리가 읽은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 자체에 있다. 여러 장치들로 구성을 공들였지만 각 장의 내용을 따로 생각해보면 별 내용이 없다. 특히나 마지막 학원 이야기는 유치하기까지 하다. <성 앨리스 제국>에 대한 아쉬움에 자신만의 액자 속 이야기를 끼워 넣은 것일까. <성 앨리스 제국>의 주인공 괴도 제로가 카오루라는 여성으로 변장했지만 실제로는 남자인 것처럼, 레이코가 남자로 자랐지만 사실은 여자라는 부분은 그런 의도인지 어쩐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미스터리 작가임을 자인하면서 미스터리 자체에는 충실하지 못하다. 하지만, 순수문학을 하고 싶은 미스터리 작가의 시도는 흥미롭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36328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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