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꼬네집에 놀러올래
이만교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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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3학년 무렵 친구들이 하나 둘 휴학 했다. 아버지들이 직장에서 쫓겨났고, 우리들은 휴학한 뒤 입대 날짜를 받아 놓고 노가다를 다니며 세월을 보냈다. 등록금과 자취방 월세 낼 돈이 모자랐던 우리는 800원 짜리 학생식당 밥 사먹을 돈이 없어 한 명이 잔뜩 받아와 나눠 먹었고, 자판기 바닥을 50센티미터 자로 긁어 동전을 줍기도 했다.

그런 거지같은 상황에서도 학교는 뻔뻔하게 등록금을 인상했고, 등록금 투쟁에 참여한 학생들은 어디다 풀어야 할지 몰랐던 분노를 총장실을 때려 부수며 풀었다. 96년과 97년의 인하대학교 풍경이다.

<머꼬네 집에 놀러 올래>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이만교가 IMF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사실 이만교에 대한 기억은 별로 좋지 않다. 한수산의 <부초>나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강석경의 <숲속의 방>과 이만교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동렬에 올려놓고 싶지 않았다. (물론 <철수 사용 설명서>가 상을 수상했을 때 받은 충격에 비하면 비교할 꺼리도 되지 않지만)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제목의 소설 말미에 헌신적인 아내에게 영광을 돌리겠다는 대목에서 '뭐하는 자이지?' 하는 마음도 들었고, 그가 나와 같은 학교의 대학원생이라는 점도 그닥 맘에 들지 않았다. 아마 부러워서였을 것이다. 나는 공대생이었지만 지독히도 적성에 맞지 않아 홍정선 교수나 최원식 교수의 강의를 들었기에 부러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소설은 기지와 재치 넘치는 문장과 약간의 과장이 적절히 뒤섞인 가벼운 에피소드들로 채워져 있다. IMF 시기 망가진 아버지, 가족의 생계를 도우려고 아픈 무릎을 참아가며 공장에 나가는 어머니, 공부 잘해 성공한 큰형과 금슬 좋은 큰누나와 매형, 철딱서니 없는 작은 누나, 그리고 취직 자리 한 번 얻어 보려고 도서관에 다니며 아등바등하는 '나'. 누가 봐도 당시 평균치의 가정에 '머꼬'가 태어나면서 웃을 거리가 늘어나고 얼핏 이 가족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딴 나라 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내'가 해연과 헤어지는 원인이나, 큰형이 맏이로서의 책임을 피해 강남으로 훌훌 떠나가는 모습, 큰누나가 출산을 겁내고 출산 이후에도 부종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면 먹구름은 여전히 하늘에 걸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IMF 라는 국가적 불행이 남한 사회를 할퀴어대던 그 시기, 한 가족이 어떻게 불행의 강을 건너는 지 보여주는 이 소설은 이윤기의 말을 빌자면 '가볍게 말하기' 전략으로 슬픔조차 농담에 버무려 놓은, 술술 잘 읽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짧은 호흡과 농담을 걷어내고 내용물을 찬찬히 살펴봐도 치열한 그 무엇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가들의 작품과 같은 반열에 올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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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오후 - 창비장편소설
윤정모 / 창비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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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환의 아버지는 기자였다. 문장이 좋았고, 입바른 소리를 했다. 그런 이유로 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되어 매 맞아 죽었다.

서연은 할머니와 둘이서 찢어진 루핑 집에 살았다. 두 살 일찍 학교에 들어갔고, 남한 사회에서는 남자만 성공할 수 있다는 할머니 믿음에 따라 한동안 남장을 했다.

웅변대회와 백일장에서 맞닥뜨리곤 하던 둘은 서로에게 끌렸다. 다만 그 강도와 이유가 사뭇 달랐다. 기환은 아낌없이 서연에게 주고 싶어했고, 자신의 곁에 묶어두고 싶어했다. 반면 서연은 기환에게 기대고 싶어했지만, 기환이 서연의 전부는 아니었다.

대학에 가서 둘은 동거했다. 생활비가 막연했으므로 기환이 행상을 하거나 단역 엑스트라를 하여 생활비와 학비를 댔다. 문학가가 되겠다는 꿈은 접은 지 오래였다. 서연은 기환의 그런 희생을 당연시했다. 그리고 한눈도 팔았다.

기환에게 집적이는 여자가 나타나자 기환은 서연의 질투를 유발하려 했다. 서연은 기환이 그럴 줄 몰랐으므로 화를 냈다. 서연은 사실혼 따위 법률 용어를 읊다 고시공부로 도피한다. 후에 서연은 사법고시에 패스해 판사가 된다.

한편 서연이 떠나자 절망한 기환은 수컷의 매력을 적극 어필하여 교사 아내를 얻지만 끝내 잘 되지 않아 이혼하고 만다.

시간이 흘러 30년쯤 지나 서연이 여성단체 추천을 받아 장관이 된다. 장관이 된 그녀에게 정권과 VIP가 바라는 것은 여성 몫의 구색이나 갖추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연은 의견을 가감없이 피력했고, 사관학교 강연 때는 월남전에 파병된 우리나라 군인이 용병에 다름 아니었다는 발언도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서연은 경질된다.

경질된 서연은 도피길에 나선다. 그녀는 마치 누가 자기를 알아보면 그것으로 추락이 기정사실이 될 것처럼 사람들을 피했다. 강화에 자리잡은 기환의 전원주택은 서연에게 훌륭한 도피처가 되었다.

기환은 서연이 이제야 자기에게 돌아왔다고 느꼈다. 서연의 완곡한 거부도 부끄러움으로 느꼈고 청혼한 뒤 노년을 함께 보낼 꿈에 부풀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서연은 과거처럼 기환에게 기댄다. 그에게 몸을 열었고, 그가 제공하는 식사와 차량을 이용한다. 하지만 과거에 그랬듯 지금도 서연은 기환에게 자신을 모두 열어 보이고 그의 반려가 될 수는 없었다. 서연은 또 다시 기환을 떠나고, 기환은 서연이 사라진 철새 도래지에서 또 다시 혼자 남아 그녀가 정말 사라졌다는것을 뒤늦께 깨닫는다.

서연이 경질된 후 도피하는 이유는 후반부에 나오는데 그것은 서연의 아버지가 국군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인민군 간부로 6.25. 전쟁에 참전한 뒤 북의 인민무력부장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서연은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자신의 경질 이유가 이것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도피길에 나선 것이다.

기환은 소설 속에서 매우 점잖은 말투를 쓴다. '~했소', '~했구려' 따위의 어미를 갖춰 쓰고, 클래식을 들으며, 상당한 재력으로 서연을 공주처럼 대접한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고 드러내 보이는 사랑의 몸짓 이면에는 질투심과 소유욕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온갖 상상은 결국 '청혼', '결혼', '동거', '성교'로 이어지는 '소유 관계의 끊임없는 재확인'에 불과하다.

한편, 기환은 자신의 아버지가 보도연맹에 연루되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어떤 구명 노력도 하지 않는다. 역사적 진실에서 멀어져 개인적인 욕망에 집중하는 그에게 서연은 보도연맹 사건에 대해 묻지만 기환은 이에 대해 대화하기를 거부한다. 서연은 자신의 과거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이를 극복하고 뿌리내리려 하지만 기환의 과거와 성향 때문에 서연은 그에게 뿌리내릴 수가 없다. 소파수술 받은 자궁에 착상이 어려운 것처럼.

<꾸야 삼촌>의 드라마를 기대하고 펼쳤는데 어둡고 음울한 내용이다. 이뤄지는 사랑이라면 굳이 소설로 쓸 필요 없겠고,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사랑은 소설 소재로 좀 더 적합하겠지만 이제는 해피엔딩이 좋다. 중년 이후 중국 드라마에 빠져드는 이유 중 하나가 천편일률적으로 권선징악이라 마음이 편안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뻔한 결말의 뻔한 소설을 읽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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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물
전건우 지음 / &(앤드)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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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스터리한 사건을 파헤치는 인기 프로그램 <비밀과 거짓말>의 조희정 작가에게 한 통의 제보 전화가 걸려 온다. 음산한 목소리의 제보자는 파주 현천강에 수귀가 있다고 했다. 네 명이 들어갔다가, 두 명만 나왔다는 말에 조희정 작가는 제보하신 분은 사고를 피하셔서 다행이라고 말을 건낸다. 그런데 제보자의 말. "나야. 물에서 못 나온... 둘 중 한 명... 나야..."

제보 내용을 확인해 보니 실제 현천강에서 최근 익사 사고가 일어나 경찰이 조사 중이었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현천강으로 가 마을 주민의 인터뷰를 따고, 검은색을 띤 현천강 인근을 촬영하는 등 프로그램 제작에 돌입한다.

그런데 제작진 여럿에게 불길한 일들이 일어난다. 벌에 쏘이거나, 발목이나 얼굴을 다치는 것은 그렇다 쳐도, 갑자기 열이 올라 응급실에 실려간다거나 영험한 기운이 있다는 귀걸이를 잃어버린다거나 하는 사건들은 왠지 음산한 느낌을 주었다.

한편, 막내작가 민시현은 마을 원로격에 속하는 조칠복을 인터뷰하다가 사이코메트리 능력으로 그가 어떤 여성을 낫으로 베어 죽인 뒤 다른 사람들에게 강물에 던져 버리라고 명령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전수라 작가가 시체가 되어 발견되고, 조희정이 실종된다. 비가 거세게 퍼붓고 애기신녀가 까만 물을 토해낸 뒤 번개가 작렬해 사람들이 거기에 깔려 사상자가 넷 발생한다. 신녀와 그의 제자는 수귀가 강물에서 나왔다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붙었다고 했다.

행방불명된 조희정, 까마귀를 닮은 미치광이 소녀 연수, 그리고 조칠복이 저지른 살인... 수귀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떤 원한을 풀려고 하는 것일까.

전건우 소설은 두 번째인데, 음산한 분위기를 잡아가는데는 능숙하다. 하지만 그 분위기라는 것이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들에서 다 한번씩 써먹은 듯한 느낌이라 참신함이 떨어진다. 또 인물에 활기를 불어넣고 그들 관계가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자연스레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능력이 떨어진다. 예전 추리소설 첫 페이지에 보면 등장 인물 이름과 간략한 설명이 나열되어 있는데, 전건우 소설 인물들은 딱 그 정도 형상화에서 멈추고 만다.

수귀의 정체는 살해당한 마을 무꾸리(무당)이다. 평온한 현천강변 마을에 조칠복 일당이 난입해 들어와 마을을 빼앗는다. 무꾸리가 이에 반항하자 조칠복 일당은 그녀를 살해해 강에 수장시킨다. 하지만 수귀가 된 무꾸리로 인해 마을에 흉한 일이 자꾸 일어나자 조칠복과 조희정은 무꾸리의 시체를 건져내 굿이라도 하려 한다. 이 때 동원된 자들이 제보자를 비롯한 네 명의 잠수부들이다.

마을 자체가 빈곤한 곳이라 조칠복이 마을을 빼앗고 사람을 죽여서까지 챙길 이득이 뭔지 잘 모르겠고, 조희정과 조칠복 부녀에 관한 사정도 전건우가 생략해버려 알 수가 없다. 민희정은 사이코메트리인데 이 능력이 작품 전체적인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해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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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인사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25
구드룬 멥스 지음, 욥 묀스터 그림, 문성원 옮김 / 시공주니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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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 어느 날 아침, 비르기트 언니가 잠에서 깨어났는데 사팔눈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꽝스러워 보였는지 나와 언니는 한바탕 웃어댔다.

그런데 엄마는 웃지 않았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이미 출근한 아빠와 의사에게 차례차례 전화했다. 그러더니 나를 뮐러 아주머니 댁에 맡기고 언니와 병원으로 떠났다. 그날 밤, 아빠는 나에게 언니의 머리에 종양이 퍼져서 곧 죽게 될 거라고 말한 뒤 울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언니가 자는 침대 쪽을 바라보았다. 침대는 텅 비어 있었고 그제야 모든 게 다시 떠올랐다.

구두룬 멥스는 1944년에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동화작가이자 배우이다. <작별 인사>는 어느 날 아침 이상함을 느껴 병원에 간 언니가 뇌종양 수술을 받은 후 3주간의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주인공 나는 언니를 위해 양 인형을 챙겨주고 손뜨개질로 모자를 만들며 언니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지만 정해진 운명은 잔혹하게 언니의 목숨을 앗아간다.

인간의 삶은 부조리함 투성이어서 죽음과 같은 불행이 인과관계 없이 찾아오기도 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애가 끊어지는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 지 알 수 없어 괴로워한다. 사랑했던 사람이 죽고 마침내 썩어 흙으로 돌아가, 존재 자체가 무(無)로 화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인정하기에 우리는 너무 나약한 존재이다. 나약한 존재는 거짓 희망의 관념을 붙들고 '영혼'이라는 이름을 붙여 존재하지 않는 그를 다른 차원에서는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시작한다. 한결 편안해진다.

스스로 속은 '나'와, 관념 뿐인 '영혼'이 공범이 되어 현실의 나에게 살아갈 힘을 준다. 거짓말은 진화하여 언젠가 나 역시 그 영혼이 되어 사랑했던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까지 이른다...

이런 재미없는 상상을 하는 나는 이제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짧은 반백의 나이가 되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22825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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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영이의 이슬람 여행 - 세계사에서 숨은그림 찾기
정다영 지음 / 창비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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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보적 성향의 부모님 밑에서 진보 엘리트 조기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지은이가 ,'여행 중 깨닫고 배운 사실' 이라기 보다는 '여행 전 배운 사실을 확인하는 듯한 느낌'으로 적어 내려간 가족 여행기다.

확고한 세계관과 방대한 인용 자료가 고등학교 2학년의 머릿속에 꽉꽉 들어차 있어 '부모님이 있는 집에서 해온 백일장 숙제' 느낌이다. 출판까지 이어진 과정도 사뭇 궁금하다.

어쨌거나 2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2026년에도 이슬람 세계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고, 미국 역시 그렇다. 2026년 2월 28일 미국이 이란을 침공했고, 이스라엘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2천년을 자기땅을 잃고 헤메다 홀로코스트로 인종이 말살될 위기를 겪었다는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은 악마마저 외면할 만큼 잔혹하기 그지 없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4222666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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