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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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인 '나'는 어느 날 익숙치 않은 공간에서 깨어난다. 주위를 둘러 보니 시체가 된 낯선 남자와 여자가 있다. 그리고 '나'에게 끊임없이 기초적인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져대는 컴퓨터와 로봇 팔도.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막연하게 '내'가 과학에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을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이런 저런 과학 실험을 통해 현재 이곳이 우주 공간이라는 것, 사망한 남자와 여자는 나와 함께 파견된 동료였다는 사실, 등을 기억해 낸다. 로봇 팔이 가져다 주는 식사를 하고, 과학 실험을 거듭하면서 '나'의 기억이 점차 돌아온다.

'나'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파견된 전직 과학 교사이며, '나'의 역할은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는 아스트로파지라는 물질의 천적을 발견해 지구를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임무 완수 후 돌아갈 연료가 없는 편도 여행이었다는 우울한 사실은 떠오르지 않았다면 좋았을 걸.

어느 날부터인가 지구로 도달하는 태양 빛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원인은 아스트로파지라는 물질이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기 때문. 이대로라면 30년 내 지구에 제2 빙하기가 도래할 것이고, 인류는 절멸하고 말 것이었다.

지구 구원의 사명을 자임한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과 연합하여, 아참 태국의 천재적인 사람 한명도, '부여받은 적은 없지만 행사할 수 있는' 전권을 휘둘러 전세계에서 필요 자원을 강제로 차출한 뒤 '헤일메리 호'를 건조한다. 목표는 유일하게 태양 에너지가 온전한 상태로 도달하고 있는 별 타우세티로 가 해결책을 찾는 것.

'나' 라인랜드 그레이스는 전권을 휘두르는 강철의 여인 에바 스트라트를 보좌하여 자살 임무를 수행할 과학자를 모집하고, 그들에게 아스트로파지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진행되던 아스트로파지 연구 과정에서 적임자가 폭사하고, 코마 면역이 있는 자원자 모집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자 '내'가 대체 투입된다.(사실은 자원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상의 기억을 떠올린 뒤 임무를 위해 타우 세티로 향하고, 그 과정에서 에리디 행성에서 '나'와 똑같은 목적으로 우주 비행에 나선 에리디언 '로키'를 만난다. 로키의 별 에리디는 소재 가공, 특히 금속류 제련에 관해서는 독보적인 경지에 이르렀지만 상대성 이론에 대한 지식은 아직 없는 상태였다. 또한 방사선에 대한 대비책도 없었기에 유일하게 아스트로파지에 둘러싸여 근무했던 로키를 제외하고 모두 사망한 상태였다.

로키는 눈이 없는 대신 초음파를 활용하여 주변 사물을 인식했고, 음향으로 의사표현을 했다. 그래서 둘은 '생각하는 기계(노트북)'을 활용해 의사소통 체계를 구축하고, 서로의 문화와 습성을 이해해 가며 우주적 우정을 쌓는다.

마침내 타우세티로 가서 아스트로파지의 천적을 발견한 '나'와 로키는 이 물질을 타우메바라 이름 짓는다. 지구로 돌아갈 연료가 없었던 '나'는 로키의 호의로 충분한 아스트로파지를 보급받아 고향으로 향한다.

하지만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타우메바를 강제 진화 시키는 과정에서 타우메바가 밀봉 소재를 뚫고 나가도록 진화되어 연료통의 아스트로파지를 포식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에리디를 향해 떠난 로키가 이런 사실을 모른다면 연료가 소진되어 우주미아가 될지도 몰랐다. 로키의 구조와 지구로의 귀환 사이에서 잠깐 방황한 '나'는 결국 우주적 우정을 선택한다.

에리디 행성에서 손님 대접을 받으며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내던 어느 날, '나'는 로키로부터 지구가 다시 빛을 되찾았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눈물을 흘린다.

소설을 읽는 동안 알 수 없는 의식의 흐름에 휩쓸려 영화 <ET>가 떠올랐다. 1984년 어느 날, 대전에서 아버지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본 영화. 외계인이 나타나고, 미국의 어느 마을에 사는 어린이가 그 외계인과 조우하여 우정을 나눈다는 내용의 영화.

그리고 데이브 머스테인이 씹어 뱉는 듯한 말투로 읊어대는 Megadeth의 <Hangar 18>이 떠오른다. 1947년 로스웰에 불시착한 외계인을 생체실험 했다는 내용을 기반으로 미국정부의 정보 독점과 수상한 기지에 관해 이야기한 노래다.

이제 내 의식은 산으로 들로 헤멘다. 이번엔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그들의 사고 방식과 세계관을 내재화한 제3세계 젊은이의 자화상을 그린 그 소설을.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부천우편집중국 시절 열심히 읽었던 류츠신의 <삼체>. 삼체 문제를 끝내 해결하지 못한 외계인이 지구에서 받은 메시지를 단서로 침공을 위해 출발한다는 내용의 걸작.

의식의 흐름에 굳이 의미를 부여해보자면 이렇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호(好)시절,1972년에 미국에서 태어난 앤디 위어와, 제3세계에서 80년 광주 학살의 순간 자택 지붕 위를 공수부대원들이 뛰어다니는 걸 목격했던 '나'와, 문화혁명과 천안문 사태를 경험한 국가사회주의 출신 SF작가 류츠신이 바라보는 외계 생명체는 같을 수 있을까.

미국인에게 있어 외계인은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ET>에서처럼 선한 존재, 혹은 <Hanger 18>에서와 같이 지구인에게 해부 당하는 존재다. 로키는 기꺼이 자신의 자원을 '나'에게 나누어 주는 선한 존재이고(이때 로키는 기꺼이 자신의 토지를 공유하고자 하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오버랩된다), ET 역시 식물 채집하러 지구에 왔다 고립된 어리버리한 외계인이다. 이들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설혹 과학 기술이 지구와 유사한 수준이거나 지구를 능가하더라도 세계를 지배할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하는 착한 존재다.(아니면 해부 당하는 존재거나)

동료로 눈을 돌리면 정작 필요할 땐 나약하기 그지 없어 미덥지 못하다.(중국과 러시아 동료는 이야기 시작과 동시에 사망! 일본 동료는 돈만 대고 빠졌는지 언급이 많지 않고, 태국인이 만든 코마 장치는 허접하기 그지없음)

반면 류츠신에게 있어 외계는 적대적이다. 그의 조국 중국은 역사적 유물론의 필연적 종착지로 나아가는 합법칙적 과정을 수행하는 고단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며 의무를 방기하지 않는다. 반면 외부의 미제국주의자들과 괴뢰 국가, 그리고 형제인척 하지만 사실은 '모험주의와 수정주의에 경도된 가짜 사회주의 국가' 소련 등은 중국의 혁명 과업을 방해한다. 이들이 바로 중국의 외부이다.

외계? 그것은 외부 세력의 확장 쯤이다. 지구에도 중국 빼고 다 반동 반혁명 세력인데, 외계 세력이 중국에 우호적일 리가 있겠는가? 게다가 외계인이 사회주의의 역사적 대업을 이해하고 이와 유사한 사회구성체를 지향하고 있다고 믿기엔 너무 어렵지 않은가... 차라리 지구를 통째로 우려 빼기 위해 출발했다고 가정하면 그건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한 설정이다.

그럼 어떨 땐 반봉건주의, 어떨 땐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그도 아니면 그런 구분이 뭐가 중요하냐 개발도상국 제3세계 국가 정도면 되었지, 였던 나라에서 태어난 '나'에게 있어 외계는 어떤 존재일까.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 그 실마리를 제시한다. 적극적인 탈피 노력이 없는 한, 우리 시각은 '헐리우드 키드'의 시각이다.

하지만 다행스럽다고 해야할까, 아이러니하다 해야할까, 이런 그릇된 세계관이 '아침에는 휴전을, 점심에는 종전을, 저녁에는 확전을 외치는' 조현병 환자 덕분에 적극적 노력 없이도 깨어지는 중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외치는 정의와 기준이 한갓 신기루였음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상황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과 같은 일종의 헤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일지도 모른다. 제국이 무너지고 있다.

이제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같이 미국이 주도하는 지구 구하기 이야기는 예전과 같은 인기를 구가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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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요리
하시모토 쓰무구 지음, 권남희 외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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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하시모토 츠무구는 전업 작가를 지망하여 대학 중퇴 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98년 제4회 전격게임소설대상에서 <고양이 눈 사냥>으로 금상을 받아 정식 데뷔했으며, 초기에는 SF, 라이트 노벨 위주로 발표했다. 대표작은 <반쪽 달이 떠오르는 하늘>로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로 제작되었다.

작가는 데뷔 전과 직후 상당히 곤궁하게 생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돈 벌이가 시원치 않아 아내가 돈을 벌고 본인은 주부(主夫) 역할을 했다고 한다.이 때 경험이 바탕이 되어 23가지의 얼렁뚱땅 요리와 에피소드를 엮은 한 권의 책 <오늘의 요리>가 탄생했다.

소설 등장인

작가 하시모토 츠무구는 전업 작가를 지망하여 대학 중퇴 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98년 제4회 전격게임소설대상에서 <고양이 눈 사냥>으로 금상을 받아 정식 데뷔했으며, 초기에는 SF, 라이트 노벨 위주로 발표했다. 대표작은 <반쪽 달이 떠오르는 하늘>로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로 제작되었다.

작가는 데뷔 전과 직후 상당히 곤궁하게 생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돈 벌이가 시원치 않아 아내가 돈을 벌고 본인은 주부(主夫) 역할을 했다고 한다.이 때 경험이 바탕이 되어 23가지의 얼렁뚱땅 요리와 에피소드를 엮은 한 권의 책 <오늘의 요리>가 탄생했다.

소설 등장인물들은 소소하게 연애하고, 바람 피우고, 주변 사람과 갈등하고, 꿈을 향해 달려간다. 그런 일상에서 언제나 빠지지 않는 것이 요리. 냉장고에서 꺼낸 재료로 대충 만들어낸 요리도 있고, 주변에서 얻은 재료를 이용해 만든 그럴싸한 요리도 있다.

에피소드 중 기억나는 것은 부모가 이혼할 상황에 놓이자 할아버지 집으로 온 손녀 이야기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한 동거로 시작했지만 차츰 서로에게 익숙해져 마을 축제에 가서 함께 춤도 추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날 저녁 된장에 절인 방어 구이를 먹던 손녀가 '시간을 들이면 맛있어지냐'고 묻자, 할아버지는 '뭐, 대부분 그렇지' 하고 심상하게 대답한다. 둘은 이후로도 대화를 많이 하진 않겠지만, 그럭저럭 잘 지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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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꼬네집에 놀러올래
이만교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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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3학년 무렵 친구들이 하나 둘 휴학 했다. 아버지들이 직장에서 쫓겨났고, 우리들은 휴학한 뒤 입대 날짜를 받아 놓고 노가다를 다니며 세월을 보냈다. 등록금과 자취방 월세 낼 돈이 모자랐던 우리는 800원 짜리 학생식당 밥 사먹을 돈이 없어 한 명이 잔뜩 받아와 나눠 먹었고, 자판기 바닥을 50센티미터 자로 긁어 동전을 줍기도 했다.

그런 거지같은 상황에서도 학교는 뻔뻔하게 등록금을 인상했고, 등록금 투쟁에 참여한 학생들은 어디다 풀어야 할지 몰랐던 분노를 총장실을 때려 부수며 풀었다. 96년과 97년의 인하대학교 풍경이다.

<머꼬네 집에 놀러 올래>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이만교가 IMF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사실 이만교에 대한 기억은 별로 좋지 않다. 한수산의 <부초>나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강석경의 <숲속의 방>과 이만교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동렬에 올려놓고 싶지 않았다. (물론 <철수 사용 설명서>가 상을 수상했을 때 받은 충격에 비하면 비교할 꺼리도 되지 않지만)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제목의 소설 말미에 헌신적인 아내에게 영광을 돌리겠다는 대목에서 '뭐하는 자이지?' 하는 마음도 들었고, 그가 나와 같은 학교의 대학원생이라는 점도 그닥 맘에 들지 않았다. 아마 부러워서였을 것이다. 나는 공대생이었지만 지독히도 적성에 맞지 않아 홍정선 교수나 최원식 교수의 강의를 들었기에 부러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소설은 기지와 재치 넘치는 문장과 약간의 과장이 적절히 뒤섞인 가벼운 에피소드들로 채워져 있다. IMF 시기 망가진 아버지, 가족의 생계를 도우려고 아픈 무릎을 참아가며 공장에 나가는 어머니, 공부 잘해 성공한 큰형과 금슬 좋은 큰누나와 매형, 철딱서니 없는 작은 누나, 그리고 취직 자리 한 번 얻어 보려고 도서관에 다니며 아등바등하는 '나'. 누가 봐도 당시 평균치의 가정에 '머꼬'가 태어나면서 웃을 거리가 늘어나고 얼핏 이 가족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딴 나라 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내'가 해연과 헤어지는 원인이나, 큰형이 맏이로서의 책임을 피해 강남으로 훌훌 떠나가는 모습, 큰누나가 출산을 겁내고 출산 이후에도 부종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면 먹구름은 여전히 하늘에 걸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IMF 라는 국가적 불행이 남한 사회를 할퀴어대던 그 시기, 한 가족이 어떻게 불행의 강을 건너는 지 보여주는 이 소설은 이윤기의 말을 빌자면 '가볍게 말하기' 전략으로 슬픔조차 농담에 버무려 놓은, 술술 잘 읽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짧은 호흡과 농담을 걷어내고 내용물을 찬찬히 살펴봐도 치열한 그 무엇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가들의 작품과 같은 반열에 올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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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오후 - 창비장편소설
윤정모 / 창비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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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환의 아버지는 기자였다. 문장이 좋았고, 입바른 소리를 했다. 그런 이유로 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되어 매 맞아 죽었다.

서연은 할머니와 둘이서 찢어진 루핑 집에 살았다. 두 살 일찍 학교에 들어갔고, 남한 사회에서는 남자만 성공할 수 있다는 할머니 믿음에 따라 한동안 남장을 했다.

웅변대회와 백일장에서 맞닥뜨리곤 하던 둘은 서로에게 끌렸다. 다만 그 강도와 이유가 사뭇 달랐다. 기환은 아낌없이 서연에게 주고 싶어했고, 자신의 곁에 묶어두고 싶어했다. 반면 서연은 기환에게 기대고 싶어했지만, 기환이 서연의 전부는 아니었다.

대학에 가서 둘은 동거했다. 생활비가 막연했으므로 기환이 행상을 하거나 단역 엑스트라를 하여 생활비와 학비를 댔다. 문학가가 되겠다는 꿈은 접은 지 오래였다. 서연은 기환의 그런 희생을 당연시했다. 그리고 한눈도 팔았다.

기환에게 집적이는 여자가 나타나자 기환은 서연의 질투를 유발하려 했다. 서연은 기환이 그럴 줄 몰랐으므로 화를 냈다. 서연은 사실혼 따위 법률 용어를 읊다 고시공부로 도피한다. 후에 서연은 사법고시에 패스해 판사가 된다.

한편 서연이 떠나자 절망한 기환은 수컷의 매력을 적극 어필하여 교사 아내를 얻지만 끝내 잘 되지 않아 이혼하고 만다.

시간이 흘러 30년쯤 지나 서연이 여성단체 추천을 받아 장관이 된다. 장관이 된 그녀에게 정권과 VIP가 바라는 것은 여성 몫의 구색이나 갖추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연은 의견을 가감없이 피력했고, 사관학교 강연 때는 월남전에 파병된 우리나라 군인이 용병에 다름 아니었다는 발언도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서연은 경질된다.

경질된 서연은 도피길에 나선다. 그녀는 마치 누가 자기를 알아보면 그것으로 추락이 기정사실이 될 것처럼 사람들을 피했다. 강화에 자리잡은 기환의 전원주택은 서연에게 훌륭한 도피처가 되었다.

기환은 서연이 이제야 자기에게 돌아왔다고 느꼈다. 서연의 완곡한 거부도 부끄러움으로 느꼈고 청혼한 뒤 노년을 함께 보낼 꿈에 부풀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서연은 과거처럼 기환에게 기댄다. 그에게 몸을 열었고, 그가 제공하는 식사와 차량을 이용한다. 하지만 과거에 그랬듯 지금도 서연은 기환에게 자신을 모두 열어 보이고 그의 반려가 될 수는 없었다. 서연은 또 다시 기환을 떠나고, 기환은 서연이 사라진 철새 도래지에서 또 다시 혼자 남아 그녀가 정말 사라졌다는것을 뒤늦께 깨닫는다.

서연이 경질된 후 도피하는 이유는 후반부에 나오는데 그것은 서연의 아버지가 국군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인민군 간부로 6.25. 전쟁에 참전한 뒤 북의 인민무력부장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서연은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자신의 경질 이유가 이것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도피길에 나선 것이다.

기환은 소설 속에서 매우 점잖은 말투를 쓴다. '~했소', '~했구려' 따위의 어미를 갖춰 쓰고, 클래식을 들으며, 상당한 재력으로 서연을 공주처럼 대접한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고 드러내 보이는 사랑의 몸짓 이면에는 질투심과 소유욕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온갖 상상은 결국 '청혼', '결혼', '동거', '성교'로 이어지는 '소유 관계의 끊임없는 재확인'에 불과하다.

한편, 기환은 자신의 아버지가 보도연맹에 연루되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어떤 구명 노력도 하지 않는다. 역사적 진실에서 멀어져 개인적인 욕망에 집중하는 그에게 서연은 보도연맹 사건에 대해 묻지만 기환은 이에 대해 대화하기를 거부한다. 서연은 자신의 과거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이를 극복하고 뿌리내리려 하지만 기환의 과거와 성향 때문에 서연은 그에게 뿌리내릴 수가 없다. 소파수술 받은 자궁에 착상이 어려운 것처럼.

<꾸야 삼촌>의 드라마를 기대하고 펼쳤는데 어둡고 음울한 내용이다. 이뤄지는 사랑이라면 굳이 소설로 쓸 필요 없겠고,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사랑은 소설 소재로 좀 더 적합하겠지만 이제는 해피엔딩이 좋다. 중년 이후 중국 드라마에 빠져드는 이유 중 하나가 천편일률적으로 권선징악이라 마음이 편안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뻔한 결말의 뻔한 소설을 읽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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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물
전건우 지음 / &(앤드)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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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스터리한 사건을 파헤치는 인기 프로그램 <비밀과 거짓말>의 조희정 작가에게 한 통의 제보 전화가 걸려 온다. 음산한 목소리의 제보자는 파주 현천강에 수귀가 있다고 했다. 네 명이 들어갔다가, 두 명만 나왔다는 말에 조희정 작가는 제보하신 분은 사고를 피하셔서 다행이라고 말을 건낸다. 그런데 제보자의 말. "나야. 물에서 못 나온... 둘 중 한 명... 나야..."

제보 내용을 확인해 보니 실제 현천강에서 최근 익사 사고가 일어나 경찰이 조사 중이었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현천강으로 가 마을 주민의 인터뷰를 따고, 검은색을 띤 현천강 인근을 촬영하는 등 프로그램 제작에 돌입한다.

그런데 제작진 여럿에게 불길한 일들이 일어난다. 벌에 쏘이거나, 발목이나 얼굴을 다치는 것은 그렇다 쳐도, 갑자기 열이 올라 응급실에 실려간다거나 영험한 기운이 있다는 귀걸이를 잃어버린다거나 하는 사건들은 왠지 음산한 느낌을 주었다.

한편, 막내작가 민시현은 마을 원로격에 속하는 조칠복을 인터뷰하다가 사이코메트리 능력으로 그가 어떤 여성을 낫으로 베어 죽인 뒤 다른 사람들에게 강물에 던져 버리라고 명령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전수라 작가가 시체가 되어 발견되고, 조희정이 실종된다. 비가 거세게 퍼붓고 애기신녀가 까만 물을 토해낸 뒤 번개가 작렬해 사람들이 거기에 깔려 사상자가 넷 발생한다. 신녀와 그의 제자는 수귀가 강물에서 나왔다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붙었다고 했다.

행방불명된 조희정, 까마귀를 닮은 미치광이 소녀 연수, 그리고 조칠복이 저지른 살인... 수귀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떤 원한을 풀려고 하는 것일까.

전건우 소설은 두 번째인데, 음산한 분위기를 잡아가는데는 능숙하다. 하지만 그 분위기라는 것이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들에서 다 한번씩 써먹은 듯한 느낌이라 참신함이 떨어진다. 또 인물에 활기를 불어넣고 그들 관계가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자연스레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능력이 떨어진다. 예전 추리소설 첫 페이지에 보면 등장 인물 이름과 간략한 설명이 나열되어 있는데, 전건우 소설 인물들은 딱 그 정도 형상화에서 멈추고 만다.

수귀의 정체는 살해당한 마을 무꾸리(무당)이다. 평온한 현천강변 마을에 조칠복 일당이 난입해 들어와 마을을 빼앗는다. 무꾸리가 이에 반항하자 조칠복 일당은 그녀를 살해해 강에 수장시킨다. 하지만 수귀가 된 무꾸리로 인해 마을에 흉한 일이 자꾸 일어나자 조칠복과 조희정은 무꾸리의 시체를 건져내 굿이라도 하려 한다. 이 때 동원된 자들이 제보자를 비롯한 네 명의 잠수부들이다.

마을 자체가 빈곤한 곳이라 조칠복이 마을을 빼앗고 사람을 죽여서까지 챙길 이득이 뭔지 잘 모르겠고, 조희정과 조칠복 부녀에 관한 사정도 전건우가 생략해버려 알 수가 없다. 민희정은 사이코메트리인데 이 능력이 작품 전체적인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해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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