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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ㅣ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평점 :
화자인 '나'는 어느 날 익숙치 않은 공간에서 깨어난다. 주위를 둘러 보니 시체가 된 낯선 남자와 여자가 있다. 그리고 '나'에게 끊임없이 기초적인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져대는 컴퓨터와 로봇 팔도.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막연하게 '내'가 과학에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을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이런 저런 과학 실험을 통해 현재 이곳이 우주 공간이라는 것, 사망한 남자와 여자는 나와 함께 파견된 동료였다는 사실, 등을 기억해 낸다. 로봇 팔이 가져다 주는 식사를 하고, 과학 실험을 거듭하면서 '나'의 기억이 점차 돌아온다.
'나'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파견된 전직 과학 교사이며, '나'의 역할은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는 아스트로파지라는 물질의 천적을 발견해 지구를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임무 완수 후 돌아갈 연료가 없는 편도 여행이었다는 우울한 사실은 떠오르지 않았다면 좋았을 걸.
어느 날부터인가 지구로 도달하는 태양 빛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원인은 아스트로파지라는 물질이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기 때문. 이대로라면 30년 내 지구에 제2 빙하기가 도래할 것이고, 인류는 절멸하고 말 것이었다.
지구 구원의 사명을 자임한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과 연합하여, 아참 태국의 천재적인 사람 한명도, '부여받은 적은 없지만 행사할 수 있는' 전권을 휘둘러 전세계에서 필요 자원을 강제로 차출한 뒤 '헤일메리 호'를 건조한다. 목표는 유일하게 태양 에너지가 온전한 상태로 도달하고 있는 별 타우세티로 가 해결책을 찾는 것.
'나' 라인랜드 그레이스는 전권을 휘두르는 강철의 여인 에바 스트라트를 보좌하여 자살 임무를 수행할 과학자를 모집하고, 그들에게 아스트로파지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진행되던 아스트로파지 연구 과정에서 적임자가 폭사하고, 코마 면역이 있는 자원자 모집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자 '내'가 대체 투입된다.(사실은 자원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상의 기억을 떠올린 뒤 임무를 위해 타우 세티로 향하고, 그 과정에서 에리디 행성에서 '나'와 똑같은 목적으로 우주 비행에 나선 에리디언 '로키'를 만난다. 로키의 별 에리디는 소재 가공, 특히 금속류 제련에 관해서는 독보적인 경지에 이르렀지만 상대성 이론에 대한 지식은 아직 없는 상태였다. 또한 방사선에 대한 대비책도 없었기에 유일하게 아스트로파지에 둘러싸여 근무했던 로키를 제외하고 모두 사망한 상태였다.
로키는 눈이 없는 대신 초음파를 활용하여 주변 사물을 인식했고, 음향으로 의사표현을 했다. 그래서 둘은 '생각하는 기계(노트북)'을 활용해 의사소통 체계를 구축하고, 서로의 문화와 습성을 이해해 가며 우주적 우정을 쌓는다.
마침내 타우세티로 가서 아스트로파지의 천적을 발견한 '나'와 로키는 이 물질을 타우메바라 이름 짓는다. 지구로 돌아갈 연료가 없었던 '나'는 로키의 호의로 충분한 아스트로파지를 보급받아 고향으로 향한다.
하지만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타우메바를 강제 진화 시키는 과정에서 타우메바가 밀봉 소재를 뚫고 나가도록 진화되어 연료통의 아스트로파지를 포식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에리디를 향해 떠난 로키가 이런 사실을 모른다면 연료가 소진되어 우주미아가 될지도 몰랐다. 로키의 구조와 지구로의 귀환 사이에서 잠깐 방황한 '나'는 결국 우주적 우정을 선택한다.
에리디 행성에서 손님 대접을 받으며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내던 어느 날, '나'는 로키로부터 지구가 다시 빛을 되찾았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눈물을 흘린다.
소설을 읽는 동안 알 수 없는 의식의 흐름에 휩쓸려 영화 <ET>가 떠올랐다. 1984년 어느 날, 대전에서 아버지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본 영화. 외계인이 나타나고, 미국의 어느 마을에 사는 어린이가 그 외계인과 조우하여 우정을 나눈다는 내용의 영화.
그리고 데이브 머스테인이 씹어 뱉는 듯한 말투로 읊어대는 Megadeth의 <Hangar 18>이 떠오른다. 1947년 로스웰에 불시착한 외계인을 생체실험 했다는 내용을 기반으로 미국정부의 정보 독점과 수상한 기지에 관해 이야기한 노래다.
이제 내 의식은 산으로 들로 헤멘다. 이번엔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그들의 사고 방식과 세계관을 내재화한 제3세계 젊은이의 자화상을 그린 그 소설을.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부천우편집중국 시절 열심히 읽었던 류츠신의 <삼체>. 삼체 문제를 끝내 해결하지 못한 외계인이 지구에서 받은 메시지를 단서로 침공을 위해 출발한다는 내용의 걸작.
의식의 흐름에 굳이 의미를 부여해보자면 이렇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호(好)시절,1972년에 미국에서 태어난 앤디 위어와, 제3세계에서 80년 광주 학살의 순간 자택 지붕 위를 공수부대원들이 뛰어다니는 걸 목격했던 '나'와, 문화혁명과 천안문 사태를 경험한 국가사회주의 출신 SF작가 류츠신이 바라보는 외계 생명체는 같을 수 있을까.
미국인에게 있어 외계인은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ET>에서처럼 선한 존재, 혹은 <Hanger 18>에서와 같이 지구인에게 해부 당하는 존재다. 로키는 기꺼이 자신의 자원을 '나'에게 나누어 주는 선한 존재이고(이때 로키는 기꺼이 자신의 토지를 공유하고자 하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오버랩된다), ET 역시 식물 채집하러 지구에 왔다 고립된 어리버리한 외계인이다. 이들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설혹 과학 기술이 지구와 유사한 수준이거나 지구를 능가하더라도 세계를 지배할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하는 착한 존재다.(아니면 해부 당하는 존재거나)
동료로 눈을 돌리면 정작 필요할 땐 나약하기 그지 없어 미덥지 못하다.(중국과 러시아 동료는 이야기 시작과 동시에 사망! 일본 동료는 돈만 대고 빠졌는지 언급이 많지 않고, 태국인이 만든 코마 장치는 허접하기 그지없음)
반면 류츠신에게 있어 외계는 적대적이다. 그의 조국 중국은 역사적 유물론의 필연적 종착지로 나아가는 합법칙적 과정을 수행하는 고단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며 의무를 방기하지 않는다. 반면 외부의 미제국주의자들과 괴뢰 국가, 그리고 형제인척 하지만 사실은 '모험주의와 수정주의에 경도된 가짜 사회주의 국가' 소련 등은 중국의 혁명 과업을 방해한다. 이들이 바로 중국의 외부이다.
외계? 그것은 외부 세력의 확장 쯤이다. 지구에도 중국 빼고 다 반동 반혁명 세력인데, 외계 세력이 중국에 우호적일 리가 있겠는가? 게다가 외계인이 사회주의의 역사적 대업을 이해하고 이와 유사한 사회구성체를 지향하고 있다고 믿기엔 너무 어렵지 않은가... 차라리 지구를 통째로 우려 빼기 위해 출발했다고 가정하면 그건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한 설정이다.
그럼 어떨 땐 반봉건주의, 어떨 땐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그도 아니면 그런 구분이 뭐가 중요하냐 개발도상국 제3세계 국가 정도면 되었지, 였던 나라에서 태어난 '나'에게 있어 외계는 어떤 존재일까.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 그 실마리를 제시한다. 적극적인 탈피 노력이 없는 한, 우리 시각은 '헐리우드 키드'의 시각이다.
하지만 다행스럽다고 해야할까, 아이러니하다 해야할까, 이런 그릇된 세계관이 '아침에는 휴전을, 점심에는 종전을, 저녁에는 확전을 외치는' 조현병 환자 덕분에 적극적 노력 없이도 깨어지는 중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외치는 정의와 기준이 한갓 신기루였음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상황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과 같은 일종의 헤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일지도 모른다. 제국이 무너지고 있다.
이제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같이 미국이 주도하는 지구 구하기 이야기는 예전과 같은 인기를 구가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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