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인을 기다리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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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변방의 치안판사인 주인공 '나'는 30년간 평화롭게 도시 행정에 종사해 왔다. 어느날 검은 안경을 쓴 죨 대령이 야만인들의 위협으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해 정보부로부터 파견되어 오는데 그는 죄수들을 심문하여 진실을 알아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야만인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두 명의 죄수가 죨 대령에게 심문을 받은 날, 노인은 사망하고 소년의 몸에는 백여개의 칼자국이 남는다. '나'는 그들이 고문당했음을 알지만 진실을 마주 보는데 일말의 주저를 느낀다. 죨 대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어부임에 분명한 사람들을 잡아와 가둔다. 그들은 단지 먹을 것이 있다는 이유로 갖혀 지내면서도 만족하고 그들을 동정하던 도시인들은 그들을 백안시한다. 그들은 군인들에 의해 고문당하고 '나'는 죨 대령의 처사에 분개하지만 그에게 대적하지는 못한다.

어느날 동냥을 하는 눈먼 소녀를 발견한 '나'는 그녀가 고문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음을 알고, 그녀를 '나'의 방으로 데려가 일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매일 밤 고문을 당해 부러졌던 다리를 씻겨주고 마사지를 해주지만 정작 그녀에게 언뜻 느끼는 성욕을 표현할 수는 없다. 그는 창녀를 통해서 여자를 느끼고 소녀 곁에 돌아와 눕는다.

그녀를 원래 살던 곳으로 되돌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나'는 일단의 무리를 이끌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여행 끝에 야만인들을 만난다. '나'는 그녀에게 원한다면 그들에게 되돌아가도 좋지만 다시 '나'와 함께 도시로 돌아가길 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왜 그래야 하느냐며 야만인들과 함께 떠나고 도시로 되돌아온 나는 반역죄로 감옥에 갖힌다.

갖힌 곳에서 한동안은 의연한 자세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음을 믿지만, 고문과 굶주림이 반복됨에 따라 동물적인 본능에 자신의 존엄성이 잠식당함을 느낀다. 그는 폐인과 같이 되어 더 이상 군인들은 그를 가두어 두지도 않는다. 군인들이 야만인들의 볼에 철사를 꿰어 잡아와 벌거벗은 그들의 몸에 회초리질을 하고 망치로 살해하려는 것을 본 '나'는, 자신의 신체가 심각한 훼손을 당해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안된다고 외친다. 그리고 그러한 잔인한 짓을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서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있다고 외치고, 그 결과 나무에 목이 메달리고 날개꺽기를 당한다.

계속 그들의 계엄상태가 계속될 것만 같았던 도시에 어느날부터 군인들이 철수하기 시작하고 군인들이 야만인들에 의해 전멸당했다거나, 야만인들이 다른 도시를 점령하여 그곳으로 이동하고 있다거나 하는 소문들만 무성하다. 사람들은 변방을 떠나고 있고 나 역시 떠나야하는지 생각한다. 죨 대령은 초라한 모습으로 도시로 귀환했다가 시민들에게 돌 세례를 받으며 도망간다. '나'는 제국이 평화로운 시기에는 '나'와 같은 행정관을, 제국이 위태로운 시기에는 죨 대령과 같은 군인을 내세울 뿐 근본적으로 '나'와 죨 대령은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제국이 강요하는 것은 흥망성쇠가 있는 '역사'이지만, 사계절이 변화하고 곡식을 키우고 생활하는 삶은 역사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역자 해설을 보면 소설은 콘스탄틴 카바피(C.P.Cavafy)의 시 "야만인을 기다리며(Waiting for the Barbarians)"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하는데, 이 시의 마지막 연은 다음과 같다.

 

어째서 모든 거리와 광장이 그렇게도 빨리 텅 비어지는가?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도 깊은 생각에 잠겨 다시 집으로 향하는가?

저녁이 되었어도 야만인들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이 변경에서 돌아왔다.

그들은 더 이상 야만인들이 없다고 말했다.

야만인들이 없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사람들은 일종의 해결책이었다.

 

야만인들이 일종의 해결책이었다는 말은 무엇인가? 제국은 적(그것이 가상이든 실제이든)이 없으면 내부로부터 붕괴되는 구조이다. 과잉생산에 의한 공황은 제국을 끊임없이 위협하지만 이를 늦추어 줄 수 있는 특별한 상품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무기이다. 무기는 당장에 사용하지 않더라도 쌓아 둘 수가 있으며 그것은 재고가 아니다.억압과 압제라는 공통의 비전을 공유하는 실제하는 적이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냉전시대에 무한정 늘어만 가는 무기들은 시민들에게 든든함과 안정의 이미지마저 줄 수가 있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자 그들은 당황한다. 눈에 보이는 적이 없다면 이 많은 무기들은 누구에게 팔 것이며, 무기를 쌓아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은 '야만인'들이 있다고 말한다. 이라크에 대규모 살상무기가 있으며 이것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소리친다. 이라크에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고 쌓아두었던 재래식 무기를 마구 쏟아부어 재고를 소진한다. 실제 이라크에 대규모 살상무기는 없었지만, 있었을 것 같았다는 말만으로도 전쟁범죄는 면책된다. 야만인들은 실체없는 이미지이지만 그것은 마치 전염병처럼 사람들을 휩쓸고 광기에 휩싸인 사람들에게 이성이나 논리는 반역의 다른 이름이다. 

 

문체는 간결하고 역사 인식은 날카롭다. 특정한 지역과 특정한 시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국이 어떻게 사람들을 광기에 휩싸이게 하고 생활로부터 멀어지게하며 인간성을 파괴하는지, 읽는 내내 공감이 되는 것은 그러한 일들이 유사 이래 늘상 반복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치안판사의 인식, 자신과 죨 대령이 다르지 않다는 인식은 작가의 소설을 매력적이게 만드는 요소이다. 그들과 다르며 그들에 대항해서 싸우는 투사가 아닌, 그들 내부의 공범자가 최소한의 양심의 소리를 내려다가 좌절하고, 그 좌절에도 불구하고 다시 목소리를 내면서 인간성의 파괴에 대항하는 '나'의 모습을 간결한 문체로 묘사하는 솜씨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한, 눈먼소녀에게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나'와, 그녀가 '나'로부터 떠나는 장면에서 통속과 예술의 경계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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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예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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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야요이는 생각할 일이 있으면 가출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 가출은 다른 때와 뭔가 다르다. 가출 후 유키노 이모의 집에서 생활하는 동안 어렴풋한 옛날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고, 유키노가 친언니였음을 깨닫게 된다. 야요이는 아주 어릴 적부터 어떤 예감이 들어맞는 일이 많았는데, 유키노언니와 야요이, 그리고 부모님이 함께 여행을 하기 전 무척 슬픈 예감이 들었었다. 그리고 그 여행에서 부모님을 잃게 된다. 부모님을 잃은 후 현재의 부모님이 유키노와 야요이를 키우려고 했으나 유키노는 이를 거절하고 야요이에게는 자신을 이모로 알게 해달라고 한 후 혼자서 쓸쓸히 살아왔다. 잃어버린 기억이었지만 야요이는 그때의 기억에서 오는 느낌에 이질감을 느껴왔고 이번 가출에서 기억을 되찾은 것이다.

언제나 편안함을 느끼던 동생 데츠오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동생'임을 알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유키노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는 유키노의 옛 제자이자 애인인 마사히코를 만나 유키노에 대해 좀 더 알게되었고, 부모님이 사고로 사망한 장소에서 유키노를 찾아낸다. 돌아오는 길에 야요이는 이모와 동생을 잃은 것이 아니라, 내 손발로 언니와 애인을 발굴했다고 생각한다.

 

요새 들어 가벼운 소설을 출퇴근 기차간에서 읽고, 실망하기를 반복한다. 쉽게 읽히니까 집어들어 시간을 잘 보내놓고선, 다 읽고 나면 그럴줄 알았다는 식이어서 나 스스로가 한심하다. 나는 요시모토 바나나가 최근 작가인 줄로 생각했는데 작품이 씌인 연도가 1988년이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이니 꽤나 연식이 오래된 작가이다. 초기작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아이디어만 있고 생활은 없다. 자극적인 소재, 흥미를 끌만한 출발이지만 출발만 하고 만다. 나는 야요이와 데츠오가 그 후 어떻게 되는지를 알고 싶은 나이가 된 것일까. 지지리궁상이든 통속적인 결말이든 어찌되었든 그 후의 '생활'이 있는 소설을 읽고 싶다. 이렇게 써놓고 내일은 또 어떤 책을 읽을지 모르겠다. 그런 삶이 담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읽지 않는 것은, 내가 지금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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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건너뛰기
존 그리샴 지음, 최수민 옮김 / 북앳북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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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페루로 평화봉사단 활동을 떠나는 딸 블레어를 배웅하고 난 후 주인공 루터 크랭크는 지하실 서재에서 작년 크리스마스 경비를 계산한다. 자그마치 6,100달러나 썼다는 사실에 경악을 하는 한편 남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그는 올해 하나의 계획을 세웠다. 크리스마스 당일에 카리브해로 떠나는 크루즈 호를 예약한 것이다.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 떠나는 그 여행에 드는 경비는 3,000달러 정도이다. 비용도 절감될 뿐만 아니라 온갖 바보같은 짓에 허비될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가까스로 아내 노라를 설득시켰지만 넘어야 할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트리를 사지 않아서 보이스카웃에게 눈총을 받고, 달력과 케이크를 사지 않음으로서 경찰관과 소방관들이 차례로 적이 되었다. 눈사람 프로스티를 지붕에 세우지 않아 헴록 거리는 크리스마스 장식 대회에서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그 결과 마을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한다. 크랭크는 자유주의 국가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했을 뿐인데도 신문 가제트 일면에 비아냥거리는 기사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그러거나 말거나 꿋꿋이 크루즈 여행을 생각하며 내심 흐뭇한 미소마저 짓던 크랭크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평화봉사단으로 떠났던 딸 블레어가 한달도 되지 않아 크리스마스를 지내러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페루에서 만나 한눈에 반한 사위감을 데리고 말이다.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서 흐뭇함을 즐기던 크랭크와 노라는 이제 뒤늦게 트리를 사고 음식을 만들고 파티에 사람들을 초대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트리를 빌리려다가 악의를 잔뜩 품은 경찰관에게 도둑으로 체포될 위기에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마음껏 크랭크를 비웃어주지만, 결국은 크랭크 부부를 도와 블레어와 페루 사위감을 맞는데 손색없는 파티를 마련하는데 힘을 보태준다는 내용이다.

 

헐리우드 영화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존 그리샴의 소설을 읽었고 딱 기대했던 것 만큼이었다. 다만 법정 스릴러물이 아닌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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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어느덧 일 주일 문학동네작가상 9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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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의 주인공 '나'와 서른일곱살의 유부녀 기연씨의 일주일간 이야기이나, 불륜에 초점을 맞춘 자극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대학교 앞에서 바를 운영하는 기연씨와 기연씨 남편의 관계는 아저씨가 생각하고 있는 것 만큼 순탄한 것은 아닌지 기연씨는 주인공 '나'를 사랑하고 있다. '나'와 기연씨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그 관계의 끝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혼이라든가,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둘 사이에 등장하지 않는다.

작중 인물은 모두 소통에 장애를 안고 있다. '나'는 40살 차이가 나는 아버지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없고, 기연씨 역시 아저씨와 파경에 이른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 듯 하다.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신호씨나 정신이 붕괴되어버린 기연씨의 오빠는 그러한 장애가 외형적으로 드러났을 뿐이지, '나'나 기연씨와 별다른 점이 없다.

어느날 시청 광장 앞에서 끊임없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무언가 말을 해대는 노숙자와 시위 때문에 민중가요를 틀어대는 시위자 간에 싸움이 벌어지고, 며칠 뒤 노숙자가 자살을 하는 것을 '나'는 목격한다. 신호씨는 다니던 일식집을 그만두고 제주도로 떠나고, '나'는 취한 상태에서 여행에서 돌아온 아저씨 앞에서 기연씨에게 한 야릇한 행동 때문에 바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일단의 무리들에게 린치를 당하는데 그들은 스피커를 앞세워 회개하라고 외치던 기독교인들로 보인다.

쉽게 읽히는 이유는 작위적이기 때문이다. 주제를 위해 이야기나 등장인물들이 동원되는 느낌이 크다. 소통의 문제를 이야기 하기 위해 파경에 이르른 부부관계, 아버지와 대화가 없는 아들, 귀가 들리지 않는 친구, 정신이 붕괴된 오빠, 누군가를 향해 일방적으로 말하는 노숙자와 시위대, 그리고 종교인. 너무나 딱딱 맞아 떨어진다. 노숙자가 자살하는 장면에서 이러한 작위의 느낌은 극에 달한다.

쿨하게 인생을 바라보지만 인간에 대한 따뜻함도 갖고 싶은 주인공이 곧 작가 자신이라는 느낌이 강하고 문체가 성긴 느낌이어서 습작의 느낌이 든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 식의 이미지 나열로 빠지지 않는 점과 불륜 상황이지만 불륜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진부하게 전개되지 않는 점은 맘에 든다.

제9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인데 작가의 다른 작품이 검색되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상을 받고 그 이상을 써나가지 못하는 많은 작가들 중 한명이었을까. 또 다른 작품을 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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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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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추리소설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공유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가서야 '사실은...' 하면서 범인을 등장시키면 그것은 추리 소설로서 낙제점이다. 독자와 모든 정보를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범인을 알지 못하다가 결말에 가서야 무릎을 치는 것이야 말로 추리소설을 읽는 기쁨이다. 그래서 추리 소설은 단편인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범인을 찾아가는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책 전체가 트릭이다. 그리고 그 트릭은 온전히 독자의 선입견에 의한 착각에 불과하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은 어디서부터 속았던 것인지 생각하게 되고, 하나 하나 따져가다 보면 결국 나 스스로 그렇게 단정지었을 뿐 작가가 명확하게 말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주인공 나루세는 경비 아르바이트, 컴퓨터 강사 등을 하며 헬스클럽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즐긴다. 후배인 기요시는 현재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수험준비 중이다. 어느날 같은 클럽에 다니는 아이코씨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클럽에 빠지자 아이코씨를 사모하는 기요시, 그리고 나루세는 문병을 갔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는다. 아이코씨는 탐정 일을 했던 경력이 있는 나루세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이상의 초반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은연중 기요시는 십대 후반, 아이코와 나루세는 이십대 초반쯤으로 나이를 짐작한다. 그 짐작 속에서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아무런 부자연스러움도 느끼지 못하기에 그들은 젊은 사람으로 확정된다.

하지만, 말미에 가서 이들이 모두 60대를 훌쩍 넘어선 사람들임을 알게된다. 그래서 책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들춰보게 되고, 작가가 세심하게 쳐놓은 트릭에 완전히 걸려들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작가는 말한다. 사람들은 벚꽃이 피는 것만을 좋아하고 그 이후로는 벚나무를 쳐다보지도 않지만, 벚꽃이 지고 난 후에도 벚나무는 단풍이 들고 모습을 변화시켜 간다고. 60세만 넘으면 인생이 마치 끝난 것처럼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이다.

이제 나는 30세 중반을 넘어섰다.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는 아니겠고, 어쩌면 꽃이 떨어지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힘든 일도 있었고 기쁜 일도 있었지만, 어쨌든 또다른 행복을 맛볼 만큼은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http://blog.naver.com/rainsky94/80128184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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