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으로 인문학 하기 - 랩과 힙합 속 인문 정신을 만나다
박하재홍 지음 / 슬로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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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을 들으면  마냥  신나고  흥겹지만  
내가 랩을  쑥스러움은 나의 것이라  생각하며 
랩은 래퍼들이 하는 거지. . .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저자는 어릴 때 음치였다고 고백했다. 학창시절엔 가창 시험의 공포에 시달렸고, 노래를 포기하고 춤에 집중할 정도로 노래는 먼 나라 얘기였다. 나도 노래를 좋아하지만 한참 부족한 실력이라 그냥 들릴듯 말듯 흥얼거리는 정도인데? 나같은 사람도 랩을 즐길 수 있을까
저자는 음치여도 래퍼가 되었다는데.. 이 사람 참 솔직하다. 저자와 랩에 대한 친근감이 확 들면서 빗장 하나가 스르르 풀렸다. 이런 래퍼가 쓴 랩 책은 어떨까. 그것도 인문학과의 어우러짐이라니.

첫장에서 저자는 "랩이 뭘까요?" 하고 묻는다. 나는 여백에 '노래 시'라고 썼다
"랩은. 하고 싶은 말에. 장단을 실어.~" 
저자가 하는 말을 마침표마다 힘주어 따라 읽었다. 하고 싶은 말에. 장단을 실어.~
그렇구나. 하고 싶은 말이라. 나는 무얼 랩으로 말하지? 이제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랩을 쓰고 싶은 마음에 들떴다

 

래퍼에겐 디스보다 '피스'가 더 잘 어울린다(...) 내가 쓴 가사가 진짜 나의 모습과 어울리는지 고민을 해보라고 말한다.(33p)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하라고.
래퍼는 목소리를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37p)

 

끄덕끄덕 저자의 말을 따라 읽다가, 2장에서 와서 울컥했다. 신들린듯 쏟아내는 랩이 멋있다고만 생각했지 랩이 흑인들의 눈물로 쓰여지기 시작했다는 것, 그 과정에서 디스 랩의 후유증으로 래퍼가 죽는 참극이 발생했다는 것, 스스로 치유하고 자정하려는 래퍼들의 피스(평화)를 향한 열망이 바로 랩의 정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저자는 랩을 읊조리듯 랩에 담긴 슬픔과 함께 희망을 건넸다. 약자로 살아온 이들의 울분과 고통의 나날이 느껴졌고, 아프리카의 대지가 힙합, 랩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적 아픔, 개인의 삶이 어떻게 노래가 되고 랩이 되는지, 랩과 힙합의 역사를 아우르는 대목에서 왜 이 책의 제목이 <랩으로 인문학하기>인지 알 것 같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부터 MC스나이퍼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윤미래의 <검은 행복>까지 주제별로 들려주는 다양한 랩을 따라 읽고 부르다 보니 내가 쓴 가사가 진짜 나의 모습과 어울리는지 고민을 해보라고한 저자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감추고 싶었을지도 모를, 내밀한 아픔을 한글자마다 토해내듯 랩을 하는 윤미래의 <검은 행복>을 접하며 그녀의 솔직한 고백에 위로도 받았다. 감추고 싶은 내 약점을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던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결국 자기 얘기를 하면 되는 거구나.

이래도 랩 안 할래? 랩은 특별하지 않아.” 하고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 책의 백미는 4나도 할 수 있어가 아닐까 싶었다. 랩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막연한 나같은 이에게 저자는 성큼 다가와 실제로 랩을 쓰고 부를 수 있는 구체적인 예를 알려준다. 용기는 덤이다. 


자신만을 표현할 수 있는 걸 찾아내야 한다. 불만과 고민, 좋고 싫은 것을 거침없이 나열해 본 다음 그중에서 글거리가 될 만한 것을 골라낸다. (...) 생각나는 문장이라고는 피시방이 좋고 학교가 싫어요.’ 뿐이라면? 이럴 땐 다큐멘터리 카메라처럼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자. 아침 일찍 잠을 깨는 버릇은 무엇이고 학교까지 뭘 타고 가는지, 내 기분은 어떻고 다른 이들은 어찌 보이는지, 학교 정문에서 첫눈에 띄는 건? 교실 문을 여는 순간 어떤 모습과 감정이 교차하는지...” (154-155)

 

나의 일상을 다큐멘터리 카메라로 찍는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나의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좀 막연하고 어려웠다. '좋아! 난 래퍼다 홀로 선언하면, 자신이 뱉은 랩의 내용에 책임을 진다면 된다고 했지? 한번 써보는 거야!' 주저하고 머뭇대던 마음에 징검돌을 하나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문득 저자 박하재홍의 청소년기처럼 어느 교실에선가 홀로 외로움을 삼키고 소외에 시달리는, 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린, 청소년들의 시든 얼굴이 떠올랐다. 일일이 찾아갈 수 없는 그들에게 이 책을 건네주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니?

나도 너도 
우리 모두 래퍼가 될 수 있대.
너만의 이야기를 이야기해봐!
너의 한숨이 
너의 절망이
너의 낙서가 
랩이 되어 노래가 되어 

흐르는 거래.
,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기죽지 마! 라고.

이 책은 가만히 지친 어깨를 두드려준다.
음치여도 괜찮다고.

세상이 원하는 기준에 못 미쳐도

그것은 그들이 정한 기준일 뿐

우리는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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