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일산의 장발산역에 내리면서도 왜 역이름이 장발산인지에 의문을 갖지 못했을까. 일산의 랜드마크가 된 일산호수공원을 향하기에 바빴지, 그 건너 마주보는 곳에 자연 그대로의 장발산이 숨쉬고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흔히들 호수공원과 라페스타를 떠올리는 반면 정발산은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산 신시가지에서 가장 높은 엄연한 주산이다. 고양아람누리 옆길에 난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정발산역 이름의 유래가 된 정발산 공원이 나온다. 해발 88미터에 불과할 정도로 구릉이 낮고 완만하여 산이라 부르기 미안한 마음에 공원이라 한 그 정직함이 도리어 정겹다.

정발산의 산 이름이 지어진 것에는 두 이야기가 전한다. 정발산 밑에 정씨와 박씨가 각각 살았기 때문에 정박산이라고 부르다가 정발산이 되었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산의 생김새가 솔이나 주발처럼 넓적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산세가 낮다고, 공원으로 불린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조성된 도심의 여느 공원을 떠올리지는 말일이다. 64,000평에 우거진 소나무, 잣나무의 자연림이 주는 아늑함과 사람들의 발길로 다져진 아기자기한 산책로가 길을 연다. 오르는 길에 만난 청솔모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놀라 나무위를 잽싸게 오른다. 호랑이에게 놀라 쫒기는 것마냥 마냥 부산스럽다. 그런데 두 마리중 한마리는 도통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제 할일에 열중이다.

정발산 초입에서 정발산 약수 한사발 목을 축이면 세상 갈증이 녹아나는 것만 같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는 산길을 따라 산 정상에 올라서면 일산의 아파트 단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평심루에 올라 잠시 쉬어가도 좋다. 산중턱에는 헬스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시민체육시설에서 하늘을 지붕삼고 산을 전경 삼아 운동을 즐기는 일산 시민들의 모습이 곧잘 눈에 띄고, 두 손 꼭 잡고 산책을 즐기는 노부부의 뒷모습도 한가롭기만 하다.

정발산 정상을 넘어 서북쪽으로 향하면 조선시대부터 밤나무로 유명했던 밤가시 초가가 자리하고 있다. 예부터 이 마을에 밤나무가 울창했고, 가을이면 밤가시가 야산에 산재했다는 데서 밤가시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이 초가는 담벼락을 사이로 세월을 잊고 150여년 전의 초가를 그대로 보존하여 그 시절 사람살이의 정겨움이 한껏 묻어나온다.

산책을 마친 후라면 정발산의 정기를 받고 선 복합예술공간인 아람누리에서 예술의 향취에 젖어볼 일이다. 아람극장과 아람음악당, 새라새극장에서는 연일 오페라와 발레, 뮤지컬 등 다양하고 실험적인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얼마전에는 배철수가 활동했던 활주로 공연이 열려 직접 배철수씨가 축하공연을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가족 나들이에 좋은 아람미술관은 시민을 위한 기획전시가 활발해 큰 호웅을 얻고 있었는데, 이때는 이준 화백의 회고전이 전시중이었다.

'자연의 빛으로 엮은 추상' 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화풍과 시기별로 나누니 70여점의 추상작품과 유럽여행기간 동안에 감성을 포착한 스케치 작품과 영상자료를 선보여 구상회회로 현대미술의 선구자적인 이준 화백의 면면을 살필 수 있다.

그러한 전시에 머무르지 않고 아람어린이미술관에서는 '즐거운 추상'전을 열어 어린이들이 구상, 추상의 개념을 이해하고 추상미술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공간을 마련해놓았다.

문화, 예술과 자연이 숨쉬는 장발산. 가족들과 함께 저물어가는 겨울의 끝자락에서 정을 듬뿍 나누기에 좋은 곳. 그래서 정발산 일대를 일산의 새로운 발견이라 칭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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