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의 지구사 식탁 위의 글로벌 히스토리
윌리엄 루벨 지음, 이인선 옮김, 주영하 감수 / 휴머니스트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빵은 이제 아시아 문화권 내에서도 쌀 못지않은 주식으로 자리잡았고,

조리법이 다양하며 그 자체가 완성된 요리와 다름없다는 점에서 여타 곡류와 차별화되는 추세인건 분명합니다.

실생활과 너무나 밀접함에도 불구하고 그간 음식에 대한 책을 다룬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빵의 지구사>는 문화·역사적 측면에서 빵을 바라보았다는 측면이 흥미로웠던 동시에

특히 부자의 빵, 빈자의 빵에 대한 내용과 국내 빵의 도입·발전에 대한 내용이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갈색보다는 흰색을, 딱딱한 것보단 식감 좋은 부드러운 빵을 선호해왔습니다.

지금처럼 잉여자원이 넘쳐나지 않았던 시절에는 

어떤 빵을 먹을 수 있는지가 사회적 계층을 보여주는 표식이 될 수 있었는데

현대인들에게 '품이 많이 들어가 소비계층이 제한적인 빵'이라는 표현은 굉장히 어색하게 다가오지요.

간신히 구한 소중한 바나나 한 알을 조심조심 까먹던 시절, 영화 속 장면이 불과 30년 전이듯...ㅎ


중세~근대의 몇몇 그림을 보면 그림 속에 부풀어오른 새하얀 빵이 놓여져있는지, 

아니면 납작한 갈색 빵이 놓여있는지 만으로도 그림 속 모델들의 사회적 지위를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디테일들이 바로 문화인류학의 잔잔한 묘미 아닌가 싶네요.

또한 예전에는 가난한 이들의 빵으로 취급받는 경향이 강했던 호밀빵이 

웰빙 열풍을 타고 되려 인기를 얻는 작금의 모습이 신선하게 비춰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원작과 별도 특집 형태로 후반부에 담긴, 

공장제 빵으로 시작된 한국 빵의 역사는 우리와 좀 더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영향 하에 카스테라, 단팥빵으로 시작된 한반도의 빵은 

태동기인 20세기 초부터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상류층을 대상으로 공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록에서는 제과점·과자점이라는 표현 등이 결코 전통이 아닌, 

일제의 후유증을 보여준다는 점도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추가로 일제강점기 이후 미군이 들어오면서 대량생산하는 업체들이 급성장, 

현재의 삼립식품이나 크라운제과가 되었다는 내용이나 건빵의 유래 등은 현재와 맞닿아 있는 이야기이고

내용이 매우 짧게 집약되어 있어 술술 읽을 수 있습니다.

파리바게트, 뚜레주르, 아티제, 베즐리 등 공장제 빵이 지배하는 현재가 반드시 특수한 상황은 아닌 셈이지요.


최근 공장제 대량생산 물건에 대한 은근한 반감이 팽배해있는데

생계형 동네빵집이 거의 지리멸렬했다는 점은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공장제가 영양학적으로는 별반 차이가 없고 

규모의 경제를 토대로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게만 치부할 건 아니라고 봅니다.


결국 개인이나 소규모 제빵업자들이 현실적인 한계를 뚫을 수 있는 틈새는

확고한 정체성을 토대로 대량생산 형태가 아닌 자기만의 맛을 선보이는 전통 수제 가게밖에 없겠지요.

해외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이제 획일적이지 않은, 유니크함을 찾는 수요도 확실히 많아진만큼

이 틈새을 잘 겨냥하는 작은 가게들이라면 역으로 높은 선호도를 이끌어낼 기회도 충분해 보입니다.

- 커피체인 중 최근 가장 돋보인 '폴 바셋'의 경우, 유명한 개인 등의 정체성을 덧씌워 공장제 시스템의 장점을 가미한

 매우 강력한 마케팅이기에 열위한 여건에 처한 개인들이 돌파구를 찾기가 정말 어렵다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회, 역사, 문화적 배경을 알면서 음악을 들으면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음식 또한 그 배경을 알면서 즐긴다면 일상생활이 한층 풍요로워지겠지요.

찾아보니 이 책 외에도 치즈, 아이스크림, 피자, 초콜릿, 커리, 향신료, 차, 위스키 등 

굉장히 다양한 형태의 음식 관련 시리즈물이 출간되어 있는데 

식도락을 즐기는 분이라면 관심이 가는 테마에 대한 책을 찾아보는 것도 음식의 풍미를 높이는데 한결 도움될 듯 합니다.

일상의즐거움,식도락의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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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를 신은 마윈 - 알리바바, 마윈이 공식 인정한 단 한 권의 책
왕리펀.리샹 지음, 김태성 옮김 / 36.5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개인·기업 등을 막론하고 어떠한 주체가 시장에 진입하고나면 

자기만의 지위를 굳히기 위해 어떠한 형태로든 '장벽'을 쌓기 마련입니다.

그 장벽은 기술력에 기반한 특허라는 방식으로 구현되기도 하고

규모의 경제를 통한 강력한 비용절감이라는 양상으로 구현되기도 하는데 

규제 등을 교묘하게 활용하면서 '카르텔' 형태로 나타나는 장벽은 해당 사회의 고질적 병폐가 됩니다.


실력이 뛰어난 운동선수가 파벌에 밀려 세계선수권대회·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다거나

음악계에서의 끌어주기 문제, 고질적인 유통마진 이슈 등은 대표적인 사례들이고

여기에 하나만 더 추가하자면 담보대출이라는 단순 국내 상업은행 업무에 붙어있는 유통마진도 꽤나 의문입니다.

이는 관치금융과 금융노조라는 줄다리기가 만들어낸 사회적 패착이지요.


돌이켜보년 21세기에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은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웅진 STX는 이미 산화되었고, 기존 산업 중에서는 그나마 미래에셋만이 눈에 띄는 정도이며

흥미로운 건 대기업의 반열에 포함시킬 수 있는 나머지 신생회사들은 

네이버, 다음카카오, 엔씨, 넥슨 등... 전부 IT/게임 기반이라는 점.

즉 기존의 카르텔이 강력하다면, 그 게임의 법칙을 빠져나가거나 아예 바꿔버릴 수 있는 산업에 

새로운 기회가 있음을 이들이 잘 보여준 셈입니다.


특히 '유통마진'이라는 비용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는건 바로 광대역 네트워크, 인터넷 전자상거래입니다.

알리바바는 불과 15년만에 전세계를 아우르는 메머드급 전자상거래 회사로 거듭났고

이에따라 창업자 마윈 또한 영화 <아이언맨>의 모델인 엘론 머스크 못지 않은 주목을 받고 있는데 

<운동화를 신은 마윈>은 마윈이 출연했던 '중국에서 성공하기'라는 창업 프로그램의 제작/진행을 맡았던 저자가 

오랜시간 마윈를 지켜보면서 집필한 책입니다.


'운동화를 신은' 마윈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알리바바의 창업자가 검소하고 소탈하리라 예측해볼 수 있고,

국민멘토 김태원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했던 것처럼 

마윈의 어록들은 창업 프로그램에서 큰 반향을 얻으며 회자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창업 관련 책이 성공에 이르기까지에 대한 내용을 피상적으로 짚고 있거나 그들을 영웅적으로 묘사하는데 비해 

이 책은 21세기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알리바바의 성공원인에 대해 

좀 더 깊은 동시에 소박(?)하게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사실 알리바바의 성공사례는 

미래형 비즈니스에 대한 인식·추진 → 소규모 번역회사와 옐로우페이지 시절부터 시작된 수많은 시행착오 → 

VC/엔젤/실리콘밸리 등으로부터의 자본유치 → 확장, 시장점유율 확대 → 상장 → 대기업화에 이르기까지

일정 이상 규모를 이룬 회사들의 성공 코스와 거의 유사합니다.


여기에 추가로 강력한 마케팅 기법이 가미되지요. 

'중국에서 성공하기' 출연과 더불어 마케팅·홍보 이야기를 좀 더 하면,

김용의 걸작 영웅문의 화산논검을 본따 IT/인터넷 사업가들을 모아 논의하는 '서호논검'을 주최하고

실제로 작가 김용을 살아있는 간판이자 진행자로 모셔왔다는 점은 대단히 독특하고도 이색적입니다.

창업자들을 포함하여 중국인들의 김용 사랑이 각별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컨텐츠'를 활용한, 매력적이면서도 대단히 효과적인 홍보기법일 겁니다.  


그런데 부를 독식하지 않고 나누겠다는 생각으로 지은 이름 '알리바바'에서 알 수 있듯 

다른 이들과 마윈이 차별화되는 점은, 

미래를 읽는 비범한 식견이나 마케팅 능력, 리더십 보다도 

그가 지닌 사명감과 가치관의 힘이 좀 더 크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2000년 IT벤처붐은 한국에도 새롬기술을 비롯 수많은 악성 먹튀(인생은 한 방) 사례들을 낳았는데

마윈은 가치관이 올곶았기 때문에 결국 주변으로부터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벤처캐피탈에서 투자 업무를 담당한, 

알리바바의 CFO 차이충신은 진정한 '비전'을 발견했기에 투자협상 도중 

마윈이 삼고초려를 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1999년 100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월급 '500위안'에 불과한 마윈의 신생회사에 '본인 스스로' 합류했겠지요.

놀라운 결과물을 토대로 인물을 미화하는 건 본디 상당히 지양해야되지만

마이클 포터·피터 드러커가 늘 강조하는 '기업가 정신'과 마윈의 싱크로율은 상당부분 일치합니다.


거의 모든 것이 네트워크화될 미래를 생각하면 전자상거래나 전자결제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알리바바를 보면서 공인인증서 문제조차 해결 못하고 있는 국내의 상황이 계속 대비됐는데

기존의 아이러브스쿨, 싸이월드, 카카오톡 같은 혁신적인 모델들이 계속 생기고

이들이 한껏 뻗어나갈 수 있는 환경을 갖춰주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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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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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2014년 전세계를 강타했고,

<정의란 무엇인가>가 엄청난 반향을 얻었던 것처럼

불공정한 부의 축적 같은 이슈에 대단히 민감한 한국에서도 예상대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약 3세기에 달하는 여러 국가들의 방대한 통계자료에 기반하여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라고 흔히 표현하는 문구가 과연 사실인지를 검증했기 때문에 더욱 열렬한 반향을 이끌어내었지요.

신용에 의해 통화가 창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소득이 노동소득보다 지속 우위에 있을 경우 

부는 결국 세습되는 수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한 번 벌어진 격차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계속 벌어지게 됩니다.

 - 사실 이것이 '복리의 마법'의 실체일지도 모릅니다.


빚이 굴러가는 속도가 가처분 소득을 통해 빚을 갚는 속도보다 빠르면 

열심히 일해도 '워킹 푸어'의 매트릭스로부터 벗어나기 힘듭니다.

지역균형발전 또는 중소기업의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고 급속 발전에 따른 후유증이 있다는 특수성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정규직 - 계약직 - 비정규직이라며 노동계층 내에서조차 계급화가 진행된 이 사회에서

이미 소득 수준의 격차는 상당히 벌어져있는 상황입니다. 거기에 일자리조차 세습될 정도니...



21세기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통계 기반 정량적 분석에 상당한 무게를 실은 반면

19세기말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은 같은 주제(대신 부동산 위주)를 다루면서 

수치가 없는 정성적 분석 위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토지사유제로 인한 임대료(지대)가 불로소득으로 누적되므로 지대조세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이 책의 핵심 내용이고

한국에서도 예전 정권에서 '종합부동산세'가 신설되는 등 당시의 주장은 지금도 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상대적 격차는 당연히 어느 정도 있을 수 밖에 없는데 과도한 균등화·획일화 아니냐는 포퓰리즘 이슈도 지적되었으나

단순 지니계수 등의 정량적 지표와 더불어 

중동·러시아의 석유 대부호 및 영미권 멕시코 인도 등지에서 일부에게 집중된 엄청난 부를 생각하면 

이들의 주장은 고질적인 빈부격차 문제에 대한 원인을 짚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반면 현실적인 측면에서 이들의 주장을 되짚어보면 이들이 내놓는 대안이 과연 실현 가능한지, 

실효성에 대해서는 꽤 의문입니다.

가령 글로벌 부유세가 강력하게 추진되면 지금도 만연한 자본소득의 탈루가 되려 심해지면서 지하경제만 커질 수도 있고

지대에 대한 조세가 부과될 경우 지주·임대인은 어차피 그 부담을 임차인에게 전가해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사용권만 부여하고 있는 중국·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의식주의 '주', 

생활 필수재인 부동산 거품 문제는 여타 국가들과 엇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심각한 상황이듯

그 근본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이 가나 현실적인 한계는 있기에 다소 이상적이란 우려도 듭니다.



신용거래가 일반화되어있는 이 세상에서 

채권자에 대한 이자, 자본투자자에 대한 배당 이라는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 건 엄연한 사실이겠으나

노동소득 등과의 적정성 논란, 줄다리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겠지요.

인류의 역사는 늘 '가진 자'와 '덜 가진 자'의 대립구도와 갈등이었고

상당수의 인구가 절대적 빈곤으로부터는 탈피했다지만 상대적 박탈감이 존재하는 한 

다른 이들의 시간과 노동을 사면서 지불하는 가치의 적정성에 대한 테제는 영원히 지속될 이슈일 겁니다.


IMF나 금융위기 이후... 잘나가는 업종이나 잘나가는 사람은 계속 잘되고

안풀리는 업종·사람은 계속 안되는 경향을 주변에서 계속 볼 수 있는데 

'지속 가능한 노동'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21세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대해 각자 대안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런저런 불안요소가 내재된 상황에서 구조적인 빈부의 세습은 막아야겠으나 

'이상이 과도하면 몽상가'가 될 수 있는만큼,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국가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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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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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대륙의 기질이 원래 그런진 몰라도 중국 소설 상당수는 내용 전개가 비약인 경우가 잦고

워낙 많은 우연성이 가미되어 거친 질감이 느껴집니다. 

이는 대륙의 스케일(?)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민중들이 오랜 세월 고달팠던 역사 때문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황당한 세상을 오래 겪은 걸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남미 지역의 작품들에서는

4차원적이면서도 신화적인 내용까지 자주 보입니다. (백년 동안의 고독을 생각하면 될 듯)

특히 남미 쪽은 우회적으로 표현해야 하면서도 갑갑한 상황이 지속되다보니 

'마법' 같은 형태로 이야기를 풀어내야 할 정도의 카타르시스가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네요.


대표작인 <인생>을 통해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중국 소설가 위화의 소설에서도

대륙소설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분위기는 물씬 풍깁니다. 

<인생> 못지 않게 인지도 높은 <허삼관 매혈기>는 

주인공인 아버지 허삼관이 가정을 지키고 이끌어나가기 위해 자신의 피를 파는 이야기로,

작가가 늘 그래왔듯 가족애와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중국현대사에 대한 아쉬움이 핵심 테마입니다.


물을 많이 마셔야 피를 더 많이 팔 수 있다고 철썩같이 믿는다거나

허옥란에게 샤오롱바오를 사주고 불과 한 달만에 부인으로 맞이하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문장 같은 걸쭉~한 내용 등은 전형적인 희극적인 요소.

반면 소설 전반에 흐르는 시대적 경제적 배경은 상당히 암울한, 비극을 희극으로 돌려 표현하는 전개 방식입니다.


20세기 후반 문화대혁명 및 먹고 살기 어려웠던 중국의 이미지와 달리

21세기의 중국은 엄청난 숫자의 마천루가 실시간으로 지어지는 등 현격히 다른 모습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중국의 급부상을 은근히 두려워하는 현재 

이 소설을 읽으면 공장 장갑을 하나씩 모아 가족들의 옷을 만드는 내용 등은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속성장의 빛과 그림자를 이미 잘 알고 있는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중국사를 통틀어 거의 해결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농민공 및 빈부격차 문제는 

휘황찬란해진 상해의 야경 바로 옆에서도 얼마든지 발견 가능합니다.

기존 작품과 달리 <허삼관 매혈기>에서는 중국 현대사의 어두운 측면이 다소 약하게, 살짝만 언급되고 넘어가는데

작가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부성애를 비롯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더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이번에 영화로 제작되어 1월에 개봉합니다.

강력한 티켓파워를 지닌 주연급 배우들이 상당수 출연하지만 원작 내용 자체가 밝은 내용은 아니므로 

소설 원작을 영화라는 창구를 통해 맛깔나게 살리기 쉽지 않다는 측면을 어떻게 극복해낼지, 

최근 국내 액션 영화에서 거의 원탑의 모습을 보여준 하정우가 이런 역할도 잘 소화해낼지 사뭇 궁금하네요.

 - 원작에서는 '자라 대가리' 주인공이 거의 찌질할 정도인...ㅎ

원작을 그대로 살리면 흥행 측면에선 약해질 가능성이 높은만큼 아마 원작에서는 부성애라는 모티브만 따오고 

중국현대사의 비극적 요소는 슬몃 비껴나가는 방향으로 각색되지 않았을까 예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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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추격, 추월, 추락 - 산업주도권과 추격사이클
이근.박태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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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서 하나의 유기체인 조직 또한 영욕의 세월이 있습니다.

고급 제품하면 일제 미제만을 찾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심지어 그 막강했던 소니나 파나소닉이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게 되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처럼 지금은 한국 기업들이 많은 분야에서 치고 올라온 상황이지만 

요즘은 거꾸로, 이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왕좌를 차지하기도 전에 중국에 의해 계단에서 내려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전 산업계를 뒤덮고 있지요.

 

<산업의 추격, 추월, 추락>은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산업의 흥망성쇠와 경기 사이클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휴대폰, 게임, 음악재생기, 반도체, 자동차 등 다양한 부문의 사례들을 통해 

신규 시장 진입자가 선도자를 어떻게 추격하고 결국 추월하는지, 

그리고 시장 선도자가 어떻게 우월적 지위를 잃는지에 대해 접근하고 있습니다.

 

무려 10명이 넘는 공동저자가 있는 기획출판 방식이라 

각 산업에 대해서는 해당 분야를 담당한 저자들이 개별적으로 기술하고 이를 다시 대표저자들이 종합하는 구성인데

이들이 표준화시킨 시장의 선도자와 추격자 간 지위를 흔드는 '촉매'는 크게 3가지 입니다.

 

1) 기술혁신 - 패러다임의 변화

2) 경기순환 - 시장수요의 변화

3) 정부규제 및 지원

 

기술혁신에 의한 패러다임 변화는 이미 아날로그 → 디지털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익숙합니다.

이제는 클리셰에 가까운 코닥 필름이나 워크맨-MD-MP3, 모토로라-노키아-애플·삼성-샤오미 사례처럼

기술적 근간이 통째로 뒤바뀌면 기존 선도자의 지위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고 

단계 생략, 즉 'Reset'되어 선도자나 추격자나 동일 출발선에 같이 서게 됩니다.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등장하면서 동시접속(멀티플레이)이 가능해져 나타날 수 있었던 MMORPG류의 온라인 게임이나 

IT 인프라 구축을 통한 스마트폰 게임의 급부상 또한 마찬가지겠지요.

 

첫번째 요인이 기술 혁신이 주로 IT쪽에서 일어나는 반면 2번째 요인인 경기순환은 전 산업에 공통된 촉매입니다.

   수요 부족 - 기존 기업들의 대규모 수익확보 - 신규 진입 및 경쟁적인 설비 증설 - 공급 과잉 - 

   수익 저하·재무적 부담 가중 - 치킨게임 돌입·일부 기업의 도태 - 감산에 따른 재차 수요 부족

이라는 경기순환 속에서 전성기를 지나 어려운 시기가 다가오면

그간 큰 덩치를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온 덩치 큰 기업들은 역으로 운전자본 부담에 힘겨워질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신규 진입자는 가벼운 덩치를 토대로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실리를 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규제 및 지원 또한 생각보다 대단히 중요한 측면으로,

특히 차관을 통한 정부의 지원 등이 현재의 포스코가 나올 수 있었던 큰 배경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상대적 강도는 약할지라도 LCD나 자동차, 조선 분야 또한 마찬가지인데

문제는 요즘 이런 방식을 중국에서도 벤치마킹하여 똑같이 응용하고 있다는 데 있겠지요. 

 

신제품 출시를 통해 기존 제품이 자가잠식당하는 카니발라이제이션 우려가 있더라도

선도기업이 우월적 지위에 자만하면서 '촉매'에 둔감해지는 순간 

그 빈틈을 헤집고 들어오는 추격자에게 급속도로 당할 수 있음을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잘 설명해줍니다.

기본적으로 내용 자체는 아주 쉽기 때문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관건은 과거에 대한 사례분석이 아니라 현재까지 패스트 팔로워로서 나름 잘해온 한국의 미래에 대한 제언이 될텐데...

패스트 팔로워에서 벗어나 시장 선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세간의 주장은 그 자체로서는 아주 매혹적이지만

지금까지의 성공 공식을 잊으면 안된다고 말하는 마지막 장의 내용은 상당히 현실적 실리적입니다.

 

특히 역사적으로 항상 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끝없이 적응하고 변해가며 살아온 한반도라면 

한국이 세계의 표준이 되기보다는 세계의 표준을 보면서 빠르게 대응하는 게 차라리 낫겠지요. 

현재 한국이 완전한 시장 선도자라고 볼 수 있는 분야는 반도체 등 일부산업 외 매우 드문 상황이며

와이브로 실패사례처럼 기술개발 능력이 많이 향상되었더라도 

표준에 대한 주도 및 네트워킹 역량이나 문화적 저변이 약한 한반도의 실정 고려 시 시장 선도·선점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Fast Follower가 아니라 표준이 정해지면 빠르게 진입해버리는 

선점자와 추종자 사이의 Fast Mover가 되는 것 또한 나름 현명한 전략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아니면 잠재적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해외기업들에 지분투자하거나 M&A하는 것도 또 하나의 돌파구겠지요. 

 

사회주의라는 외피를 벗어던지면 서구보다도 더 무서운 시장만능주의인데다 정부의 유무형적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과연 선점자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산업이 있을지,

그리고 가발·섬유·신발 - 건설 - 철강 - 화학·조선 - IT·자동차의 뒤를 이어 

과연 문화·바이오·식품·화장품·금융 등지에서도 기존처럼 강력한 추종자로 부상할 수 있을지, 

내용은 아주 쉽지만 각 산업 종사자들에게 종잡을 수 없는 미래 대응방안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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