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에 속지 마라 - 기대하지 마라, 예측하지 마라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이건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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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시에 출간된 <블랙 스완>으로 대중적 인지도까지 확보한 나심 탈레브의 3부작은 

<안티프래질>에 이르러 거의 독자적인 철학으로 봐도될 정도의 완성형에 다다릅니다.


금융위기 직전 공교로운 시점에 나오면서 전세계로부터 주목 받은 <블랙 스완>도

대미를 장식한 작품인 <안티프래질>도 훌륭한 내용이지만

가벼운 듯 싶으면서도 모든 내용이 담겨 있어 가독성 높은 <행운에 속지 마라>가 가장 끌리더군요.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론은 <안티프래질>에서 구체적으로 집대성되어 있는데

<행운에 속지 마라>의 후반부에도 해당 내용이 잘 압축·요약되어 있습니다.

유행이 끝나면 모든 게 금새 사라지는 다이제스트한 시대여도 

'소음'이 아닌 '신호'로써 받아들여야 할 탈레브의 성찰은, 언제든 다시 들춰볼 가치가 충분하지요.


특히 이 책의 1장에 나오는 존과 네로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할 정도로 '생생'하며

실무를 해본 탈레브 특유의 노골적인 기술이기에 저자의 체험담 같은 현장감이 담뿍 녹아있죠ㅎ

저자가 파생 트레이더였기에 주식 투자자들이 종종 말하는 

'곱하기 0의 법칙'에 해당하는 이런 사례들은 훨씬 많이 봐왔을 겁니다.

(반면 요즘은 고객/회사계정으로만 레버리지를 활용하고 본인의 성과급 및 연봉은 쟁여두는, 

 마치 현상금 사냥꾼 같은 고베타 추종 전문 트레이더들도 일부 있다는 건 에러)



전 블랙스완을 경계하고 행운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크게 공감하는 입장이지만

그의 철학을 자칫 확대해석하면 무한 회의론의 늪에 빠질 수도 있고

실제 투자를 단행함에 있어 예측을 전적으로 배제한다는 것 또한 넌센스라고 봅니다.

저자 본인도 확률, 기대값(혹은 수익)의 문제로 보고 있듯.


가령 탈레브의 논리에 기초하면 ELS 같은 상품은 되도록 혹은 무조건 피해야 하는 상품입니다.

시뮬레이션 상으로는 손실확률이 극단적으로 낮아보이는데 녹인이 참 잦은걸 보면 

몬테카를로가 수학적 가치는 있더라도 완벽한 계산도구가 아닌 건 명확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ELS 같은 상품 또한 나름의 장점 및 투자하기 괜찮은 시점도 있다고 봅니다.

코스피 기준 6년 반에 달하는 횡보장이 위로든 아래로든 한 번 가야한다면,

이런 통화기조 하 확률 상으로는 상방이지 않을까 생각 중이어서 더 그렇기도 합니다. 



선형과 비선형, 신호와 소음의 세계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게 그리 의미 없는 이 세상.

엄청난 분량의 <안티프래질> 등 굳이 여러 권의 책으로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한 문장으로 사람을 깨우치는 불가 고승들의 선문답 처럼 요즘은 '운칠기삼'이 단어 하나가 와닿습니다. 

단순 투자를 넘어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우발적 상황들이 있었는지 돌이켜본다면

대단히 잘 풀렸더라도 자신감이 넘쳐날 이유도, 잘 안 풀렸더라도 축 처지고 자책할 필요도 없겠지요.


비록 파티 분위기를 망치는 걸로 악명이 자자한 저자지만 

이런 점에서 그가 망치는 파티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가득한 싸구려 졸부들이 넘쳐나는 파티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인생의 통찰을 담고 있는 역작 <행운에 속지 마라>가 재출간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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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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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대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적 요인이라는 렌즈, 색안경으로부터 쉬이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았던 중세~근대에 살고 있다면 

독서 애호가들은 주문한 책을 실은 배가 입항하기까지 오랜 시간 애타게 기다려가며 입수한 뒤 

현대인들보다 훨씬 기뻐하면서 찬찬히 정독하고 낭독회도 열겠죠.

당시에 1천 페이지를 훌쩍 넘는 분량의 책들이 많이 출간된 데에는 이런 배경도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제 영상문학 또한 높은 경지에 다다랐으며 

다큐멘터리 및 유수 대학강의 같은 교육적인 영상까지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등

우리는 시공간의 제약을 거의 초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시청각까지 전방위로 활용하는 영상 콘텐츠들이 지닌 특장점(전달력)이 명확하고

한정된 24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요즘

<위대한 유산>이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토지>를 다 읽어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검색으로 필요한 정보를 바로 찾을 수 있으니 백과사전이 사라지는 등

팩트형 지식 습득이 지니는 효과는 예전과 달리 매우 제한적입니다.

교육영상만도 쏟아지는 판국이라 오히려 '정보의 과잉' 혹은 '노이즈'를 걱정해야 하는만큼

기존에는 부족한 정보를 찾아내는 게 중요한 역량이었다면

이제는 넘쳐나는 정보를 선별·추려내고 해석하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따라서 현대인들이 장문의 글/책을 읽지 못하게 된 데에는 

오랜 시간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을 사용한다는 전자파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인터넷의 등장으로 스낵컬쳐가 범람하면서 깊은 내용을 조금씩 피하게 된 것도 주요 원인이겠으나

시대적 수요가 달라졌다는 사실 또한 어느 정도는 감안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래저래, 출판시장은 황혼을 맞았습니다.



그렇다면 격변한 환경에서 책은 그저 낡고 저물어가는 콘텐츠인가 라는 회의론에 

저는 단연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를 토대로 이를 해석하고 엮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현대인의 필수역량.

이건 정보검색 같은 스킬만으로는 절대 뿜어낼 수 없는 진짜배기 능력이니까요.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제는 책을 대체할 수 있는 영상 콘텐츠들 또한 

충분히 많이 등장하지 않았는가 라는 반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서는 내용을 수용·습득하는 속도를 독자가 마음껏 조율할 수 있다는 능동성이라는 측면에서 

여타 콘텐츠들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책은 철저히 본인에게 맞춰 단어 하나든 문단이든 읽다 관심가는 내용은 얼마든 천천히 곱씹어볼 수 있으나

일방적 수동적으로 재생되는 영상들은 그러기 어렵습니다. (비록 일시정지, 재생속도 조절 기능이 있긴 하지만)


IT인프라가 잘 갖춰진 국내에서 독서기피 현상을 두드러지게 체감할 수 있는데

OECD 주요국 중 한국의 근무시간이 긴 건 사실이나

각종 수험서나 취업·자격증 책은 여전히 잘 팔리며 엄청난 수의 까페들이 매일 북적이는 걸 보면 

독서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건 핑계에 불과해 보입니다. 

단순 지식습득의 중요도는 낮아졌어도 비판적 사고력과 통찰력은 한결 중요해진 시대에서

검색결과나 요약본만 보고 '내용을 안다'고 생각하는 건 크나큰 착각 아닐까요. 


예리한 통찰을 바탕으로 현 사회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정보화 사회에서 차별화된 존재가 되기 위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사용하면 그만인 전자기기 외 과연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고민해본다면

답은 이미 나와있지 않나...라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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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 한국사회를 움직인 대법원 10대 논쟁 김영란 판결 시리즈
김영란 지음 / 창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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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녀의 벽이 곳곳에 그득한 한국에서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된 김영란 판사의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는

퇴임 후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렸던 주요 대법원 판결들을 되새겨보는 책입니다.


고전에는 그 시대를 어루만져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도

우리에겐 현재를 다루는 내용이 훨씬 더 다가오듯

일단 이 책은 최근의 논쟁거리들을 판사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생생한 현장감이 좋습니다.


추가로 본서에 수록된 핵심 논쟁들은 가치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주제들이다보니

'뭐가 더 중한가'에 대한 일반 논쟁을 떠나 철저한 리걸 마인드, 

논리에 의거 맞대응하는 다수의견-소수의견 간 가치관 차이를 엿볼 수 있다는 특장점이 살아 숨쉬고 있네요.


소위 '리걸 마인드'가 담겨있는 법조계 인사들이 구사하는 문장은 매끈·깔끔하고

특히 판결문으로 단련된 판사의 문장은 간결함의 극치입니다.

중언부언 하염없이 늘어지는 글과 달리 명료하게 쓰인 글은 술술 읽혀 순식간에 독파하기 마련이며

이 책은 만연체를 지양하는 문장의 표본이기도 할겁니다.


하기 논쟁거리들은 대법원 판결을 떠나 매스컴 등지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

다양한 논리를 보여주면서 본인의 생각은 되도록 생략한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과 달리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에는 저자가 아쉬웠거나 다시 짚어보고 싶은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저자 본인의 가치판단은 군데군데 묻어있습니다.


                    < 주요 판결들 >


1. 존엄하게 죽을 권리 vs 생명을 보호할 의무 ― 김 할머니 사건 

2. 주식회사는 누구의 것인가 ― 삼성 사건 

3.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 포털사이트 명예훼손 사건

4. 종교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는가 ― 양심적 병역거부와 K군 사건 

5. 교육의 공공성 vs 사립학교의 자율성 ― 상지대 사건

6. 성 소수자의 기본권 vs 사회 통념의 한계 ― 성전환자 성별정정 사건

7. 변화하는 전통과 장남의 권한 ― 호주제 폐지 이후의 관습법

8. 환경의 가치 vs 대규모 국책사업의 가치 ― 새만금, 천성산, 4대강

9. 출퇴근, 업무의 연장인가 아닌가 ― 출퇴근 재해에 대한 사회적 합의

10. 퇴직금은 무엇을 보장해야 하는가 ― 퇴직금 분할지급 사건



사람들의 생각은 늘 바뀝니다. 

흑인 노예는 인간이 아니라는 사회적 합의? 및 판결이 내려진 시대도 있었고

미니스커트를 입거나 장발머리를 해도 단죄해야 된다는 시절도 있었습니다.


변화무쌍한 한국에서는 날카롭게 대립하기 쉬운 이슈들을 피하려 하고 

이를 피하는 것이 마치 점잖고 예의바른 것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요.

하지만 변화가 격심한 이런 나라에서야말로 각종 요구들이 법률이나 판례라는 제도 속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공개적으로 자주 이루어져야하고, 그래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시간이 갈수록 사회라는 '시스템'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는데...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는 '사업성' 같은 명제에 대해 대법관들이 어디까지 관여해야 할지와 같은,

사법부의 역할·한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등을 간접 체험해볼 수 있어서 대단히 뜻깊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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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고 묻지 않는 삶 - 한국에서 살아가는 어떤 철학자의 영적 순례
알렉상드르 졸리앙 지음, 성귀수 옮김 / 인터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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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철학서를 잘 안 보지만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문구는 

라캉의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소위 젓가락 문화권 특유의 공동체? 혹은 체면? 중시 경향은 사회 평균적인 행복도의 저하를 가져왔습니다. 

(체면이라는 단어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겠군요ㅎ)


본서는 <월든>, <조화로운 삶>, <행복의 기원> 및 법정스님·법륜스님 같은 분들의 저서와 같은 선상에 서있으며 

사실 이런 책들은 대개 유사한 논조/패턴을 보입니다. 

어찌보면 뻔하고 늘 똑같은 맥락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들이 계속 출간되고 언급되는 건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방법론'인데도 막상 이를 지키며 사는 건 정말정말 어렵기 때문일겁니다.


'영성'이라는 주제조차 한없이 도구화되고 상품화된 현세에서

저자가 유명세를 훌훌 떨쳐버리고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한국에 와서 살고 있다는 건,

어떻게든 자신을 띄우고 드러내고 싶어 안달나있는 시대에

'내려놓을 줄 아는' 삶이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는 방증이라 소박하고 또 아름답습니다.

유럽 등지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저자라 많은 출판사들이 판권 경쟁을 벌였지만 아주 작은 출판사를 택했고

역시나 그놈의 마케팅이 잘 안되다보니 그다지 알려지지도 않고 소리소문 없이 볼 사람만 조용히 본 느낌.

이 책에 담긴 내용은 단지 체화와 실천이 어려울 뿐,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CGV에 가면 영화 시작 전에 나오는 지긋지긋한 광고가 있죠. '잊고 있었습니다~'

디씨를 비롯한 수많은 곳들에서 국뽕광고라 비웃음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나오더군요.

여기에 한창 싸이가 떴을 때 외국인만 보면 '두 유 노우 갱놤스타일?' 하며 무언가를 확인받고 싶어하는 자격지심,

인공지능으로 매년 기사를 대신 올려도 될 거 같은 고은의 노벨상 수상,

유투브에 넘쳐나는 'OOO를 처음 먹어본/접해본 외국인들의 반응',

해외 톱스타 내한 인터뷰에서 공식 입국절차처럼 외쳐대는 '김치 좋아해요~' 멘트 등등


내 인생을 살아가는데 남이 좋아하든 말든 타인의 생각에 왜 그렇게 신경을 쏟는지.

어떤 면에선 이런 어거지 국뽕 주입에 대한 반작용으로 헬조선 같은 단어가 나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자의 시선에 갇혀서 사는 기조가 지속되면 앞으로 삶의 질이 아무리 더 나아져봐야 불만은 영원히 해결될 수 없겠죠.

절대적인 측면에서 분명 예전보다 많이 향상된 삶의 질을 고려하면 이런 남 신경쓰는 문화, 

명품 등에 자기를 감추고 싶어하는 내면의 자격지심과 열등감은 분명 과합니다.



얼마 전 공중파에서 아스카 피규어를 거리낌없이 가지고 노는 데프콘의 모습은 대단히 이색적이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숨겼어야 할 일이니까요.

로보트를 모으든 피규어를 수집하든 게임을 하든 진정 내가 즐길 수 있다면 그 무엇을 하든 무슨 상관인지.

반대로 실상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본적도 없는 난해한 영화나 책을 좋아한다는 등 

가짜 자아를 만들어내고 자의식 과잉을 부추기는 사회문화가 참 재미있습니다. 


마침 이 책을 읽고 리암 니슨의 내한 인터뷰를 언뜻 보니 김치 좋아요 드립이 나오더군요. 여전히...-_-)a

공동체 지향적인 코리안 스탠다드에서 벗어나 각자 원대로 놀 줄 아는,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해방의 시대를 본격 맞이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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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가 울고 있네
리동혁 지음 / 금토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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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들과의 사적인 자리가 아닌 이상 소위 까는 글을 되도록 안올리고 

특히 서평 같은 콘텐츠 계통일 경우 어지간하면 피하는 편인데... 

간만에 특이한 비평서를 한 번 올려봅니다.


누가누가 읽었다더라 라는 마케팅 및 작가의 명성, 그리고 글솜씨에 힘입어 

삼국지 하면 누구나 일단 이문열 평역본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멋들어진 서문을 비롯 종장에 이르기까지, 삼국지 평역본에서 작가가 붓질하듯 펼쳐내는 문체는 맵시 있고

극적 요소가 가득한 황건적의 난부터 제갈공명까지의 기간 위주로 적으면서 그 이후를 대대적으로 단축시켜버린 구성 또한 

독자에 따라 호불호는 있을지 모르되 삼국지를 '이야기로 즐기기'에는 아주 적합한 구성입니다. 

공식 역사서가 아닌 다음에야 공명 사후 진나라 통일까지의 시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별로 못받는 편이니까요.

그 결과는 그야말로 대성공, 엄청난 판매부수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반해 재중동포 리동혁 씨가 쓴 <삼국지가 울고 있네>는 

이문열의 삼국지 평역본을 아주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책입니다.

평역이므로 삼국지 각 인물들과 그들의 주요 행동에 대한 평가는 각자 다를 수 있겠으나 

본서는 작가 개인적인 평가와 별도로 번역·팩트 자체부터 심각하게 틀렸음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죠.


유별나게 과장이 심한 중국의 군담·무협소설에서 엿보이는 일기당천·일기토 등에 대한 기술은 웃고 넘길 수 있어도

'젊어서는 삼국지를 보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보지 말라'나 '징과 북을 울리다', '녹슨 전포', 

'병졸들의 장비 및 실제 역할', '진법', '예·양 지역으로 바뀌어버린 자객 예양' 등등 

명백한 오류로 보이는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반면 적절하고 부드럽게 문맥을 바꾼, '왕윤은 뒤가 없겠소이다' 같은 번역에 대한 지적도 간혹 보임)



본래 위촉오 시대는 기간도 짧거니와 방대한 중국사 내에서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 유비의 촉나라는 아주 잠깐 존재하다 금새 사라진 작디작은 지방 군벌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지가 지금껏 널리 사랑받는 건 바로 스토리텔링이 지닌 강력한 흡인력 덕분입니다.

유관장 삼형제 같은 인물들이 지니는 매력과 각종 영웅담 그리고 감성을 붇돋는 나관중의 스토리라인은

송, 명, 청나라 당시의 시대적 니즈와 더불어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죠.


일단 진수의 정사 삼국지가 아닌 이상 '정통 역사서'로 봐줄만한 책은 드문 편입니다.

나관중본이든 모종강본이든 구전 형태로 숱하게 재창조되면서 거의 가상의 영웅담이 된 건 팩트이기에

번역을 위해 참고한 여러 기초 판본 자체에도 수많은 오류가 묻어있고 

특히 연의 같은 책에는 만담꾼들이 지어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는 걸 인지하고 봐야겠으나 어쨌든,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건 반드시 짚고 가야 할 문제입니다. 이문열 삼국지 처럼 유명한 책일수록 더더욱.



사실 평역본 삼국지/수호지 시리즈를 제외하면 

<사람의 아들>이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후 이문열 씨는 작가로서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가 삼국지에 이어 수호지 시리즈로 다시 한 번 대박을 냈다는 것도 참 흥미롭고

수호지에서 도적들이 의로운 행동을 하는건 가소롭다며 6권으로 끝내려다 

반응이 너무 좋다보니 끝내 10권까지 낸 것도 재미있는 점ㅎ

천생 글쟁이라 그런지 양수나 공융 같은 문사들을 단죄하는 조조의 행동을 '펜으로 맺은 원한'으로 해석하는데 

이 책을 본다면 리동혁 씨에게 원한을 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초반에는 이문열 씨라고 칭하다가 후반가면 이씨라고까지 폄하하는 표현이 나오며, 

비판이라기보다는 비난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내용도 있으므로.


이문열 씨는 소설가이다보니 아주 세련된 문장을 구사하는 반면

리동혁 씨는 아주 투박하고 직구에 가까운 문장을 사용합니다. 

한 명은 소설을 쓰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네요.


전반적으로 <삼국지가 울고 있네>가 신랄하게 '까는데' 그쳤다는 건 살짝 아쉽고, 

설명문 같은 문체를 보면서 그가 직접 집필했다는 <본 삼국지> 시리즈가 원문을 지키는 번역은 잘했을지 모르나

이야기꾼이자 소설가로서의 필력은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간만에 이문열본, 진수 정사에 이어 또 다른 삼국지 시리즈를 보게 될 듯)

근본적으로 삼국지 연의가 역사서가 아닌 이상, 일단 재미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렇더라도 '국민필독서'에 대해 강렬한 비판의 날을 세웠다는 자체는 충분히 인정받아야할 측면으로

2002년 3판에 이어 번역 오류를 제대로 고친 개정 4판이 나오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표절을 콕 찍어내야 앞으로의 표절을 방지할 수 있듯이, 이런 게 바로 비평서가 지니는 의의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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