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의 지구사 식탁 위의 글로벌 히스토리
윌리엄 루벨 지음, 이인선 옮김, 주영하 감수 / 휴머니스트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빵은 이제 아시아 문화권 내에서도 쌀 못지않은 주식으로 자리잡았고,

조리법이 다양하며 그 자체가 완성된 요리와 다름없다는 점에서 여타 곡류와 차별화되는 추세인건 분명합니다.

실생활과 너무나 밀접함에도 불구하고 그간 음식에 대한 책을 다룬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빵의 지구사>는 문화·역사적 측면에서 빵을 바라보았다는 측면이 흥미로웠던 동시에

특히 부자의 빵, 빈자의 빵에 대한 내용과 국내 빵의 도입·발전에 대한 내용이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갈색보다는 흰색을, 딱딱한 것보단 식감 좋은 부드러운 빵을 선호해왔습니다.

지금처럼 잉여자원이 넘쳐나지 않았던 시절에는 

어떤 빵을 먹을 수 있는지가 사회적 계층을 보여주는 표식이 될 수 있었는데

현대인들에게 '품이 많이 들어가 소비계층이 제한적인 빵'이라는 표현은 굉장히 어색하게 다가오지요.

간신히 구한 소중한 바나나 한 알을 조심조심 까먹던 시절, 영화 속 장면이 불과 30년 전이듯...ㅎ


중세~근대의 몇몇 그림을 보면 그림 속에 부풀어오른 새하얀 빵이 놓여져있는지, 

아니면 납작한 갈색 빵이 놓여있는지 만으로도 그림 속 모델들의 사회적 지위를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디테일들이 바로 문화인류학의 잔잔한 묘미 아닌가 싶네요.

또한 예전에는 가난한 이들의 빵으로 취급받는 경향이 강했던 호밀빵이 

웰빙 열풍을 타고 되려 인기를 얻는 작금의 모습이 신선하게 비춰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원작과 별도 특집 형태로 후반부에 담긴, 

공장제 빵으로 시작된 한국 빵의 역사는 우리와 좀 더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영향 하에 카스테라, 단팥빵으로 시작된 한반도의 빵은 

태동기인 20세기 초부터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상류층을 대상으로 공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록에서는 제과점·과자점이라는 표현 등이 결코 전통이 아닌, 

일제의 후유증을 보여준다는 점도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추가로 일제강점기 이후 미군이 들어오면서 대량생산하는 업체들이 급성장, 

현재의 삼립식품이나 크라운제과가 되었다는 내용이나 건빵의 유래 등은 현재와 맞닿아 있는 이야기이고

내용이 매우 짧게 집약되어 있어 술술 읽을 수 있습니다.

파리바게트, 뚜레주르, 아티제, 베즐리 등 공장제 빵이 지배하는 현재가 반드시 특수한 상황은 아닌 셈이지요.


최근 공장제 대량생산 물건에 대한 은근한 반감이 팽배해있는데

생계형 동네빵집이 거의 지리멸렬했다는 점은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공장제가 영양학적으로는 별반 차이가 없고 

규모의 경제를 토대로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게만 치부할 건 아니라고 봅니다.


결국 개인이나 소규모 제빵업자들이 현실적인 한계를 뚫을 수 있는 틈새는

확고한 정체성을 토대로 대량생산 형태가 아닌 자기만의 맛을 선보이는 전통 수제 가게밖에 없겠지요.

해외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이제 획일적이지 않은, 유니크함을 찾는 수요도 확실히 많아진만큼

이 틈새을 잘 겨냥하는 작은 가게들이라면 역으로 높은 선호도를 이끌어낼 기회도 충분해 보입니다.

- 커피체인 중 최근 가장 돋보인 '폴 바셋'의 경우, 유명한 개인 등의 정체성을 덧씌워 공장제 시스템의 장점을 가미한

 매우 강력한 마케팅이기에 열위한 여건에 처한 개인들이 돌파구를 찾기가 정말 어렵다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회, 역사, 문화적 배경을 알면서 음악을 들으면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음식 또한 그 배경을 알면서 즐긴다면 일상생활이 한층 풍요로워지겠지요.

찾아보니 이 책 외에도 치즈, 아이스크림, 피자, 초콜릿, 커리, 향신료, 차, 위스키 등 

굉장히 다양한 형태의 음식 관련 시리즈물이 출간되어 있는데 

식도락을 즐기는 분이라면 관심이 가는 테마에 대한 책을 찾아보는 것도 음식의 풍미를 높이는데 한결 도움될 듯 합니다.

일상의즐거움,식도락의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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