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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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상)

표도르 도스또예프스키 (지음) |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펴냄)



함께 읽은 벗들이 모두 "어렵다 어렵다" 한다. 기간을 길게 두고 읽으면 오히려 더 어려울까봐 오로지 이 한 권에 집중하며 읽었다. 어렵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어렵지 않다고 하기엔 '내가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걸까?'하는 부끄러운 의문이 들었다. 도스또예프스키의 저작 의도를 과연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려나...

상권에서 라스꼴리니꼬프가 괴로워하며 병증을 보이는 이유는 전당포 여주인 알료나를 살해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그에게 전당포 노파는 사람이 아닌 사회에 무익하고 추하고 해로운 "이"일 뿐이었다. 자신의 행위는 '이'를 제거하는 것이며, '이'에게 핍박받는 이들을 구원하려던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이 오히려 핍박받던 리자베따를 죽이게 됨으로써 무너진다. 라스꼴리니꼬프가 생각하는 돈의 부족은 개인적으로는 자유의 제한, 사회적으로는 빈부의 격차와 빈곤의 악순환이라는 사회악이었다. 사회악을 제거하기 위해 살인이라는 방법을 쓰려했던 라스꼴리니꼬프. 그에게 그럴 권리는 누가 주었나? 결국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유도 정의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을 포함한 타인들에 대한 혐오감을 얻었고 심리적인 부자유로 인해 잡히기를 원하는 상태가 되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아무와도 소통할 수 없고, 아무도 사랑할 수 없고, 아무런 기쁨도 없다. 그것이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육체의 구속은 심리적 자유로 향하는 여정이다. 그 시작은 소냐에게 한 고백으로 부터다. 라스꼴리니꼬프의 고백을 들은 소냐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불쌍한 사람이라며 연민한다. 이미 그가 받고 있는 벌의 무게를 짐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권에서는 죄를 지은 또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하게 보였다.

환경과 배경을 죄를 저지르는 원인으로 보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던 라스꼴리니꼬프는 수감생활을 하면서 뉘우침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을 자신의 희생으로 해결하던 소냐와는 대조적이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소냐의 고통스러운 모습에 자수를 행동으로 옮기지만 죄책감이나 뉘우침의 결과는 아니었다. 오히려 뽀르피리의 말대로 자수를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이성적 판단이 컸다.

그렇다면 라스꼴리니꼬프의 결말이 자신의 욕심과 평판을 위해 비열하게 소냐를 이용했던 루즨과 욕정에 눈멀었던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맞이한 결말과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인가?

루즨은 타인들에게 지식인이라 평가받는 레베쟈뜨니꼬프와 라스꼴리니꼬프의 증언에 비겁한 꽁무늬를 빼기 바빴고,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목적을 이루려던 그 순간에 두냐의 눈빛을 보고는 마음을 바꾼다. 두냐의 눈빛에서 자신이 결코 닿을 수 없음을 본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죽음을 선택하고, 소냐에게서 사랑과 희생의 결심을 본 라스꼴리니꼬프는 진정한 참회를 하게 된다. 모두가 손가락질 하던 소냐가 라스꼴리니꼬프에게는 영혼의 구원자인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적어도 세번은 읽어야 <죄와 벌>을 읽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용은 이해했으나 숨은 의미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반드시 읽어봐야할 고전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그렇다, 반드시!

<죄와 벌>을 읽지 않고는 고전문학을 읽었다고 말할 수 없겠다. 열린책들 세계문학에서 그 넘버가 왜 1번, 2번인지, 그만큼 꼭 읽어봐야할 명작이라서가 아닐까하는 짐작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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