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일생
조반니 보카치오 지음, J. G. 니콜스 외 옮김 / 메이킹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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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의 저자이자 단테 알리기에리와 같은 피렌체인이다. 조금 늦긴 했지만 같은 시대, 같은 이탈리아 시인으로써 이야기하는 단테를 보고 있으면 신곡을 읽을 때 내가 느꼈던 놀라움과 경외가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열렬함이 느껴진다. 단테에 대한 태몽부터, 유년시절, 베아트리체의 죽음을 거쳐, 피렌체에서 쫓겨나고 라벤나에서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조반니 보카치오의 열렬한 시선을 따라 단테의 일생을 되새기면 단테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이 내 마음에도 생겨나는 것 같다.


내가 주석 없이 단테의 신곡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고, 성격을 공부하고, 기벨린당, 겔프당을 알아보듯, 단테 또한 다른 시인들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어 역사를 공부하고, 대가들로부터 철학을 배우는 데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에 동질감이 형성되고 그와 동시에 <신곡> 속에 들어간 지식의 양이 상기되어 다시 한 번 경외감을 느꼈다.



이런 완벽한 공부의 결과, 당연히 그는 최고의 호칭들을 받는다.

그의 생애 동안에도 어떤 사람들은 단테를 ‘시인’으로,

‘철학자’로, 또는 ‘신학자’로 칭송하였다.

극복해야 할 상대의 힘이 클수록 그 승리의 영광 또한 커지듯,

여기저기 휘몰아치던 파도와 역풍의 사나운 바다를 극복하고,

화려한 명성의 안전한 항구에 그가 다다른 것에

우선 감사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P. 32


단테의 <신곡>에서는 지옥, 연옥, 천국의 이미지와 그 속에 배치된 인물들의 이야기에 집중을 해서 ‘단테 알리기에리’라는 인물은 뒷전이었는데, 이렇게 단테에만 집중하니 생소한 느낌이다. 그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에 흠뻑 빠지다 보면 보카치오와 같이 이런 위대한 시인을 추방하고 죽는 순간마저 포용하지 못하는 피렌체인들에게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를 가진 도시의 기쁨이

그의 출생 권리를 가진 것을 시기할 만큼 큰 것이 아니다.

또한 그 도시가 그의 마지막 날들을

기억하리라는 사실을 무시할 만큼도 아니다.

다만 그 옆에서 너희는 오직 출생지라는 이름만 매겨질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그 배은망덕에 머물러서,

너희 대신 영광스러워하는 라벤나가 영원히 행복하도록 

허락이나 하라!

P.69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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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의 아이들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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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점장 후루카와 가즈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도쿄제일은행 나가하라 지점 직원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실적 좋은 업무과의 신규 담당 에이스 다키노 마코토, 그와 비교되는 부진한 실적으로 냉대 받는 대리 엔도 다쿠지,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막중한 융자과의 도모노 히로시,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하는 영업과의 기타가와 아이리에 이르기까지 초반부터 인물들이 쏟아져 나와 정신이 없는데, 영업과, 업무과, 융자과의 내가 모르는 창구 너머의 세계가 인물들의 개인사와 맞물리며 그 많은 인물이 하나씩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진급을 위해 지점 전체 실적을 올려 하는 상사와 그 아래에서 개인 실적을 요구받는 부하직원들의 간절한 내면과 치열한 현장은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특히 실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심리적 압박감이 엄청나다. 실적을 내라는 상사의 직접적인 호통과 가정에서의 승진에 대한 은밀한 기대, 아이들의 악의 없는 순수한 말이 쌓여서 인물을 절박하게 만든다.


그러나 실적을 올리는 것도 만만치 않다. 세상에 은행은 많은데 고객에게 남들보다 우월하다 자부할 수 없는 상품을 팔아야 한다. 이에 순응하는 인물, 반항하는 인물, 압도되어 버린 인물 등 다양한 형태의 유형이 만들어내는 결말에 계속 경악하며 읽었다. 내용도, 흐름도, 결말도 각양각색이라 한 치 앞도 예상하기 힘들어 더 충격이었다. 각 과의 업무 형태와 인물들에 매료되어 읽고 있는 사이 사건이 발생한다.


현실을 그려 넣은 듯 입체적인 인물과 생생한 현장감에 내 모골이 송연해지고, 압박감을 느낄 정도였다. 이렇게 미친 듯이 숨통을 조였다가 풀어주기도 잘한다. ‘그렇게까지 해서 표창을 받고 싶을까?’ 묻는 타이밍이 얼마나 적절하던지! 숨 막히게 조였다가 풀었다가 하는 완급 조절이 예술이었다.


구조에게도 이번 분기가 ‘다음’을 위해 중요한 시기였다.

그 점에서 후루카와와 구조의 이해가 일치했다.

목표 달성의 의욕을 깎아내리는 자는 지점의 적, 출세의 장애물이다.

잘라버려야 한다고 후루카와는 생각했다.

P. 17


저는 톱니바퀴가 아닙니다.

제 생각이 있고 의지가 있는 은행원입니다.

P. 22


은행이라는 곳은 정말 잘도 둘러대는군.

도모노 씨, 나는 그때 깨달았소.

은행은 그저 거래처를 이용할 뿐이라고.

그래서 나도 은행을 이용하면 된다,

주거래은행의 입장이라는 건 고려할 필요가 없으니,

가능한 한 나도 이용할 수 있을 때까지 이용하자.

P. 68


그렇게까지 해서 표창을 받고 싶을까?

P. 142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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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왕 -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
후안 고메스 후라도 지음, 김유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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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부촌에서 온몸에 피가 빠진 채 죽은 소년의 시체가 발견된다. 소년의 손에는 그 몸에서 뽑은 피로 채워진 잔이 들려있다. 기이한 형태의 살인을 당한 피해자는 유럽 최대 은행 총장의 아들이다. 이어 글로벌 기업의 상속녀 또한 납치된다. 살인과 납치, 부촌에서 연이어 벌어지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붉은 여왕 프로젝트가 가동된다.


붉은 여왕 프로젝트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에서 영감을 받아 범죄자들 보다 더 앞서가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젝트다. 모종의 이유로 중지되었던 프로젝트가 3년 만에 재가동되지만 장애에 삐거덕거리기만 한다. 프로젝트에 갓 들어온 존 구티에레스는 겉돌고, 3년 만에 다시 일하는 안토니아 스콧의 심리는 안정적이지 못하다. 붉은 여왕 프로젝트의 특성상 활개치고 다닐 수도 없다. 난항이 연속인 상황에 멘토르의 요구대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납치된 카를라를 제때 구하는 것이 가능할지 발을 동동 굴렀다.

카를라의 현재 시점과 그녀를 찾기 위해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 계속 교차하며 조금씩 접점이 만들어진다. 하나 둘 겹치는 장면이 이어지면서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고 그를 추적하는 안토니아와 존의 긴박한 발걸음을 숨죽이며 쫓아갔다. 사건의 첫 장면부터 이어지는 세밀한 상황 설명은 후반부에서도 계속 이어져 마치 같은 장소에 있다는 현장감마저 느껴지며 범인을 쫓는 순간마저도 생생하게 그려졌다.

범인을 찾는 과정 속 존 구티에레스와 안토니아 스콧이 서로를 알아가는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처음에는 왜 떠났나 싶었는데, 지금은 왜 돌아왔나 하는 심정이다.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에 그녀의 과거와 앞으로의 미래가 궁금해지며 3부에 걸친 그녀의 이야기가 무척 기대된다.

붉은 여왕은 앨리스에게 자신의 나라에서 가만히 있으려면

달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포식자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적응이 필요한 거죠.

P. 78

부모는 인맥이 넓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누구를 의지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범인이 전화를 끊자마자 그들은 가장 윗선에 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소년이 사라진 지 1시간 반 만에 전화를 받았고요.

P. 105

철저한 납치 계획. 특히 피비린내 나는 비양심적인 범죄.

이 일을 한 사람은 매우 똑똑하고, 맞아요, 다시 또 살인을 저지를 겁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럼 연쇄 살인 사건인가요?

아니요. 이건 다릅니다.

종류가 다른 짐승이에요.

한 번도 본적 없는 사건입니다.

P. 107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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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의 기술 - 느낌을 표현하는 법
마크 도티 지음, 정해영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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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언어와 사랑에 빠진 시인의 열정을 본다.”라는 추천사대로 언어 대한 시인의 열렬함이 느껴진다. 시의 전체 또는 부분을 수록하고 거기에 어떤 묘사의 기술이 쓰였는가. 그 기술과 언어 자체를 곱씹고 언어가 언어와 만나 벌어지는 예술의 세계를 예찬하며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그려내는 풍경을 숨 가쁘게 이야기한다.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전공자의 열정을 보는 것처럼 그 열정의 언어를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가 이렇게나 시와 담을 쌓고 살았나 심각함을 느끼며, 중간중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찾아 읽고, 다시 한번 더 읽으며 시인의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시인의 설명도 이해해야 하고 시도 이해해야 해서 얇은 책이지만 다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저 겨울 풍경을 그렸을 뿐인 『겨울 장면』마저도 시인의 글을 읽어야 그 풍경이 그려질 정도였으니 시에 대한 나의 이해력이 정말 끔찍하다. 통탄하며 시인의 말을 필사적으로 따라갔다.


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시를 다시 읽으며 감상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처음에 느꼈던 낯설고 불친절한 글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름다운 언어가 있었음을 지각하고, 그 언어를 하나하나 천천히 곱씹으며 시인이 그렸을 풍경을 서툴게 따라 그리자 시인이 예찬할 수밖에 없는 관경이 내 마음에도 펼쳐진다. 언어의 신비로움에 중독되어 계속 읽어갔다.


묘사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다는 말이 와닿는다. 헤이든 캐루스의 시 『 No Matter What, After All, and That Beautiful Word So 』에서 기러기의 울음을 묘사하고자 하지만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한다. 기러기의 울음에 끊임없이 반응하지만 완벽한 표현을 찾지 못하는 모습,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왜 이 책을 읽으며 묘사를 배우려 했는지 새삼 깨달았다. 세상의 자극에 대한 끊임없는 나의 반응을 언어로 옮기고 싶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적절하지 못하다. 불완전한 묘사를 채우고 싶은 나의 갈망이 이 책을 읽게 만들었으나 묘사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다니! 이에 대한 표현에 저자와 같이 감탄하며 불완전한 묘사를 채우기 위해 계속 페이지를 넘겼다.


...얼마나 위대한가, 이해할 수 없는

의미란!




말로 서술되지 않은 삶은 진정으로 

체험되는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떤 병의 증상이라면, 결국 그것은 적어도 

남들에게 진정한 선물을 주게 되는 병이다.

그리고 묘사된 세계를 인식하는 즐거움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P. 20


어떻게 다른 사람의 고통에서 

우리가 본 것을 책임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반응하지 않는 것은 태만이고, 너무 쉽게 반응하는 것은 거짓이다.

P. 103


당신은 선택에 따라 그저 베일만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원한다면, 또는 방법을 안다면,

베일 뒤에 숨어 있는 것을 읽을 수 있다.

P. 13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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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서
정용대 지음 / 델피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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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싱샵에서 약혼자가 살해당했다. 범인은 하루 만에 잡혔다. 그러나 세진은 미심쩍기만 하다. 재섭이 왁싱샵을 방문한 이유가 오리무중인 가운데 범인도 감방에서 죽어버리며 사건은 완전한 종결을 맞는 듯했다. 그러던 중 재섭의 장례식장에 왔던 조문객 또한 살해당했다는 기사가 보도된다. 그 시신에서 왁싱에 쓰이는 부직포 조각이 나오며 세진의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간다. 재섭의 살해는 우발적 범행이 아니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재섭과 조문객의 죽음의 공통점인 왁싱의 세계에 들어가기로 한다.

왁싱을 배워가는 첫 시작부터 흥미롭게 진행된다. 수업을 듣는 내내 세진이 속마음으로 하는 말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내가 직접 수업을 듣는 것 같은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창업을 위한 왁싱 기술이나 배우러 왔는데 해외 시장 진출의 필요성을 듣고 있으려니 생경한 느낌이라는 서술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미용 기술이라고 쉽게 여겼다가 반성하는 모습에 같이 자성했다.

세진에게 이입해서 수업을 듣고 있는데, 수강생이 하나가 손을 번쩍 들어 주목을 끈다. 많은 전문가들 가운데 선생님은 뭐가 특별하냐는 질문을 읽는 순간 내가 깜짝 놀랐다. 솔직히 궁금하긴 한데, 너무 공격적인 질문에 입이 벌어졌다. 여기에 강사는 어찌 대처할 것인가! 두근두근 심장을 졸이며 다음 문장으로 눈을 돌렸다.

 독특한 수강생, 윤송희와 세진이 같은 조가 되는데, 서로 투닥거리며 실력을 쌓아가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다가도 서로에게 으르렁거리는 모습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얘들아, 너네 같은 조야... 송희와 투닥거리며 왁싱의 세계를 정복해가는 세진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들어온다.




피부의 청결과 미관을 위한 왁싱이 스포츠계와 연결점이 생기며 부정부패의 온상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다. 왁싱과 스포츠계의 카르텔의 접점이 신선하면서 앞으로 펼쳐질 내용을 예상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려가며 책장을 미친 듯이 넘겼다. 과연 이 거대한 카르텔에서 약혼자의 죽음을 밝히고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지! 왁싱의 매력에서 충격의 카르텔까지 실감 나게 진행되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왁싱 산업에 먼저 발을 담갔다고 해서

모두가 실력이 있는 건 아니었다.

세상엔 실력도 없으면서 과대 포장된 인간들이

수두룩했으며 사기꾼도 천지였다.

P. 60

스포츠계에서 더럽고 역겨운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는 세력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다.

P. 255

그냥 공정하게 경쟁하면 안 되나요?

P. 278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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